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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오 칼럼

기도의 사람(2015.08)

정병오 칼럼

 

기도의 사람

 

 

올해 서울시교육청에서 하는 오디세이학교(자세한 내용은 5월호 칼럼 참조) 일을 맡다 보니 지난 몇 달은 정말 한 치도 쉴 틈 없이 그것도 초긴장 상태에서 일을 해왔다. 처음에는 한국에서 덴마크 애프터스쿨을 실험해 본다’ ‘꽉 막힌 한국의 입시교육의 틀 가운데 숨 쉴 틈을 제공해주는 새로운 교육과정의 길을 열어 보겠다’ ‘극도로 비정상화로 치닫고 있는 한국 교육 가운데 상식적인 교육의 모습을 보여 주겠다’ ‘공교육과 대안교육의 건강한 상생모델을 만들어 보겠다등 여러 이상을 가지고 시작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어떤 일을 할 때 이상만 분명하면 그것을 붙들고 부딪혀보는 편이고 세세하고 치밀하게 계산해보는 스타일이 아니었기에 이 일을 맡겠다고 나설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여간 세상 모든 일이 마찬가지겠지만 머릿속에만 있던 이상을 현실 가운데 실제로 만들어가는 쉽지 않은 법이다. 특별히 1년간 기존의 공교육 교육과정과는 완전히 다른 대안교육과정을 운영하면서 학력을 인정해 주려니 기존 체제와 충돌 지점이 많았다. 그리고 이에 따르는 학생위탁, 출결, 성적산출, 생기부 기록 등과 관련해서 행정 체계를 잡으려니 거의 하나의 학교를 설립하는 것과 비슷한 에너지와 품이 들어갔다. 이에 더하여 그동안 10년 이상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척박한 환경 가운데 시대의 흐름을 거슬러 교육의 본질을 실천해왔던 대안교육 현장의 교육력을 오디세이학교 안으로 모아내는 일도 버거운 일이었다.

 

내 연약함과 한계 가운데서

그런데도 내가 일의 핵심을 잘 잡아내고 여러 흐름들을 잘 조율해서 교통정리를 제 때 잘 해냈다면 일도 좀 더 효율적으로 잘 진행이 되고 함께 일을 하는 사람들도 덜 힘들었을 것이고 오디세이학교의 교육의 질도 좀 더 좋아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일들을 잘 감당하기에 나는 내가 보기에도 너무 부족함이 많은 사람이었다. 우선 나는 일을 꼼꼼하고 치밀하게 기획하고 처리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큰 방향은 잡고 다른 사람들이 잘 보지 못하는 숨겨진 핵심은 잘 파악하지만 구체적인 행정에 있어서는 구멍이 많이 났다. 그리고 나는 공교육의 관료행정 체계와 조직에 익숙하지 못했다. 교육경력이 30년에 육박하지만 이 중 절반은 휴직을 했고 또 학교 일도 실제 아이들을 만나고 그들을 위해 실제적인 기획을 하는 일을 많이 했지 학교 행정 체계에 깊이 간여한 적이 별로 없기 때문이었다. 대안교육도 책을 통해서만 접했지 실제로 대안교육을 움직이는 핵심적인 교육철학과 교육과정, 운영체계를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들과 소통을 하거나 이들의 교육경험을 오디세이학교 안에 녹여내는 일을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순수하게 개인적인 일이 아니라 서울시교육청의 중요한 프로젝트를 맡아서 그것도 하나의 전시성 프로젝트가 아니라 잘 하기만 하면 어쩌면 입시고통 가운데 신음하고 자기를 찾지 못하고 미래를 구상할 힘이 없어서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위한 새로운 물꼬를 틀 수 있는 중요한 일을 맡아 그 일을 제대로 해 내지 못하는 나를 발견하는 것은 참 괴로운 일이었다. 그리고 내가 제대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함으로 인해 함께 이 일을 하는 주변 사람들까지 힘들게 하고 있는 상황은 내 의도가 그렇지 않았다라는 말로 변명하기에는 너무 미안한 일이었다.

 

무시로, 쉬지 말고

이렇게 여러 한계 상황에 부딪히다 보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하는 것밖에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정상 출근 시간보다 1시간 일찍 출근해서 하루의 모든 일정을 위해 기도하고, 결론이 잘 나지 않는 치열한 회의 가운데서도 말없이 마음으로 기도했다. 당장 어떤 조치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행정적인 충돌로 인해 일이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 할 때도, 아이들 가운데 예기치 못한 사안이 터질 때도, 스스로의 한계 때문에 주변에 본의 아닌 민폐를 끼칠 때도, 도무지 내 힘과 경험으로는 풀 수 없는 문제들 앞에서도 기도하고 부르짖고 그분 앞에 무릎 꿇는 일을 수시로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기도의 사람이었다. 내가 무슨 대단한 영성이 있어서가 아니라 내 연약함이 너무 컸고 내 한계가 너무도 분명했기에 기도하지 않고는 살아낼 수도 버텨낼 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교직생활만 돌아보더라도 매 수업 교실에 들어갈 때마다 기도했고 교실 가운데서 나를 격분케 하는 아이들을 맞닥뜨릴 때도 마음속으로는 계속 기도했고, 아이를 교무실로 내려오라고 불러놓고 그 아이를 기다리면서도 간절히 기도했다. 때로 교실 문을 닫고 나올 때 수업의 실패감 때문에 뒤통수가 간지럽고 그 자리에 주저 않고 싶을 때도 기도했고, 수업을 준비하다가 도무지 뚫리지 않을 때도 책을 덮어놓고 생각이 날 때까지 기도를 했다.

좋은교사운동에서 대표를 할 때도 그랬다. 기독교사대회 등 중요한 일정을 앞두고는 몰려드는 두려움과 중압감에 대회가 열리는 호서대나 연세대 캠퍼스를 밤새도록 걷고 걸으며 기도했다. 좋은교사운동이 나아갈 중장기 구상을 해야 하고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때 여러 실행위원들과 상근자들과 의논을 하지만 결국은 내가 최종 결정을 해야 할 때 얍복강 가의 야곱이 되어 하나님을 끝까지 놓지 않고 씨름할 때가 많았다. 어디 이뿐이겠는가? 아주 일상의 사무행정에서부터 크고 작은 글쓰기에 이르기까지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지 않고 그냥 한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간구, 연약한 인간을 위한 가장 큰 선물

그러므로 나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의 의미를 잘 안다.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는 말을 매 순간 체험하며 산다. 이 말이 없다면, 이렇게 무시로 기도할 수 없다면 나는 어떻게 살았을까 생각할 수도 없다.

물론 나는 잘 알고 있다. 기도의 본질이 간구가 아니라는 것을. 하나님은 구하지 않아도 내게 필요한 것을 미리 다 알고 계시고 필요한 것을 주시는 분이심을. 간구를 넘어서 하나님의 영광의 빛 아래로 나아가 그 분의 임재 속에 깊이 잠기는 황홀함이 무엇인지 그것을 충분히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맛보아 알고 있다.

하지만 비록 간구가 기도의 본질이 아니라 할지라도 인간의 연약함을 생각할 때 간구의 가치는 결코 약화되지 않는다. 일상에서 날마다 부딪히는 자신의 한계 가운데 하나님께 부르짖고 그 분의 도우심을 구하는 간구의 과정 없이 곧바로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로 직행할 수 없는 영성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이러한 것을 생각할 때 간구야 말로 무시로 수시로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연약한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제일 큰 선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거기 기도하는 사람이 있었네

그런데 참 감사한 일은 이러한 일상의 간구의 결과가 단지 내 마음의 위로와 평안으로만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 기도와 간구가 실제로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켜 하나 되게 하고, 도무지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을 이루어내기도 하고, 사람의 지혜와 상식을 넘어 기적을 만들어내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가끔이 아닌 자주. 물론 사람들은 이러한 결과를 내 기도와 간구의 힘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일은 우리가 최선을 다한 결과라고 생각하거나 우연의 결과라고 말한다. 때로 기적 같은 일을 경험하면서 혹시 그것이 내 기도의 결과일지도 모른다는 마음의 움직임을 느끼지만 그럴 리가 없다며 그냥 넘겨버린다.

하지만 이럴 때 굳이 그 일의 결과와 내 기도를 연결시켜 설명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러한 설명을 하다 보니 그냥 도무지 어쩔 수 없어서 하나님 앞에서 주저 앉아버린 그 일을 종교적인 공로로 만들어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차피 이러한 연결은 주께서 영적인 눈을 열어주지 않으면 결코 볼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믿고 있다. 가나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예수님의 능력을 아무도 몰랐지만 마리아는 분명히 알았고 물 떠온 하인들과 제자들이 알고 믿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듯이 그런 일들이 내 주변에서 조금씩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주 조금씩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면 그것으로 나는 충분히 만족한다. 어쩌면 이 일이야말로 내가 어떤 일을 성공적으로 해 내는 것보다 더 큰일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