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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오 칼럼

어떤 결혼 주례사(2015.09)

정병오 칼럼

어떤 결혼 주례사

 

결혼 서약문의 의미

결혼식에 많은 순서가 있지만 이 중 가장 중요한 순서는 신랑신부의 결혼 서약일 것입니다. 조금 전 신랑 신부는 결혼 서약문을 통해서 서로를 향해 이제부터 평생토록 괴로우나 즐거우나, 가난하거나 부하거나, 병들거나 건강하거나, 어떤 환경 중에서라도 그대를 귀중히 여기고 사랑하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신랑 신부는 이 약속을 온 마음을 담아 진실하게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약속의 의미를 다 알고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결혼 생활이란 이 약속 속에 담긴 그 깊은 의미를 탐구해가고 맛보아 알아가는 긴 여행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먼저, 이 약속에는 두 분의 만남과 결혼에 이르는 과정이 단지 두 분의 사랑이라는 감정의 결과만이 아니라 이 감정을 넘어서는 신비한 뜻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이것은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두 분이 어떻게 만나게 되었으며 어떻게 사랑하게 되었으며 어떻게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는지의 과정을 돌아보면 쉽게 고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은 이를 하나님의 섭리라고 표현합니다. 하나님이 두 분을 창세 전에 부부로 예정하시고 때가 되매 만나게 하시고 결혼까지 인도했다는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살아가면서 우리의 감정이 요동할 때에도 우리는 우리를 결혼으로 인도하시고 묶어주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사랑을 신실하게 가꾸어가겠다는 약속을 하는 것이고, 그 분이 이 약속을 지켜갈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담아 지금, 이 약속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이 약속에는 지금 남편과 아내로 맞은 배우자는 내게 거저 주어진 선물이라는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즉 나는 나의 배우자가 오늘의 모습이 되기까지 기여한 것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렇죠? 지금의 이 곱고 듬직한 배우자가 지금의 모습으로 있기까지 가장 많이 기여한 사람은 배우자의 부모님일 것입니다. 그리고 선생님들이나 친구, 친척, 이웃들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생명과 건강, 학업과 진로를 포함해서 그 모든 것을 다 선하게 인도하시어 지금의 두 분을 이렇게 훌륭하게 길러오셨습니다. 이렇게 내가 아무런 수고도 하지 않았는데 공짜로 받는 것을 은혜라고 합니다. 이러한 은혜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반응은 감사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감사로 서로를 향한 더 깊은 사랑을 가꾸어 그 사랑이 주변으로 흘러넘쳐 가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결혼서약문은 바로 이러한 은혜에 대한 감사의 약속인 것입니다.

 

셋째로 이 약속에는 하나님이 내게 선물로 주신 배우자를 감사함으로 사랑하면서, 배우자의 현재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를 포함해 모든 것을 다 사랑하고 헌신하겠다는 고백이 담겨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배우자의 현재의 모습을 보고 사랑을 느끼고 결혼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막상 결혼을 하게 되면 배우자의 현재의 모습 뒤에는 내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많은 과거의 시간이 함께 있음을 알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나는 한 사람의 배우자와 결혼을 했는데 그 배우자는 부모님을 포함해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 있음을 알게 됩니다. 또한 우리는 앞으로 배우자가 어떻게 변화될지 또한 어떤 새로운 관계가 주어질지 다 알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모든 내가 알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는 시간과 관계를 따지지 않고 그 모든 것까지 다 사랑하겠다고 약속을 하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는 연약하지만 하나님이 이러한 믿음의 약속을 귀히 보시고 이 약속을 지켜갈 수 있는 힘을 주실 것을 믿음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결혼 예식의 당사자들이들이 지켜야 할 약속들

결혼 서약문의 의미에 이어 이제 지금 우리가 진행하고 있는 결혼 예식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본 회퍼가 사랑은 개인적인 일이지만 결혼은 사회적인 일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즉 우리는 서로 사랑하니까 그냥 같이 사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결혼예식이라는 사회적 의식을 치릅니다. 이 결혼예식은 결혼을 하는 신랑 신부, 그리고 신랑 신부를 결혼시키는 양가 부모님, 그리고 이 결혼예식의 증인으로 참석한 하객이라는 3주체가 서로 책임 있는 약속을 하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저는 주례자로서 이 3주체가 각각 지켜야 할 책임들을 다시 확인하려고 합니다.

 

먼저는 신랑신부의 오늘이 있도록 지극한 정성으로 돌보시고 보호해 오신 양가 부모님께 신랑신부와 여기 오신 모든 분들을 대신하여 존경과 감사를 전합니다. 또 자녀의 결혼을 앞에 두고 양가 부모님이 해야 할 약속이 있음도 전합니다. 오늘 양가 부모님이 자녀의 결혼식을 치른다는 것은 지금까지 아들이고 딸이었던 나의 자녀가 지금부터는 사위의 아내이고, 며느리의 남편이 된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예식인 것입니다. 이제 자녀들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그들의 배우자가 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아들과 딸을 며느리와 사위에게 빼앗겼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자리인 것입니다. 물론 나중에는 아들과 딸을 더 얻게 되겠지만 우선은 그리고 당분간은 넘겨주는 것이 분명해야 나중에 아들과 딸을 하나 더 얻는 과정이 순조롭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 아들과 딸이 부모인 나보다 사위와 며느리를 더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고 그의 말을 더 우선적으로 듣는 것을 이상히 여기거나 섭섭하게 생각하지 않고 기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새로 이루는 이 가정의 독립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아무리 새 가정이 어설프게 보여도 그들이 도움을 청하기 이전에 먼저 간섭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지난 날 자녀를 키워올 때 여러모로 자녀를 기다려주었던 것 이상으로 이 새로운 가정이 하나의 가정으로 안착해서 자기 책임을 다하도록 기다려주고 믿어주고 뒤에서 기도해주는 과정을 거치겠다는 약속과 다짐을 해야 할 것입니다.

 

다음으로 신랑, 신부가 해야 할 약속입니다. 마찬가지로 신랑 신부는 이제부터 자신의 제일 중요한 정체성이 한 아내의 남편이요, 한 남편의 아내라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부모로부터는 완전히 독립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부모님께 불효를 하라는 것이 아님을 잘 알 것입니다. 남편은 그 누구보다 아내를 깊이 사랑함으로, 또한 아내 역시 남편을 깊이 사랑함으로 이제는 거기서 나오는 사랑으로 양가 부모님을 섬겨야 2배의 섬김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찬가지로 친구 관계나 직장 일, 심지어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섬기는 일조차도 서로를 깊이 사랑하고 거기서 나오는 사랑의 능력을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혼자일 때 잘 하던 일도 이제는 부부가 서로 진실하게 사랑하지 않는 상태에서는 다른 일을 잘 하기가 힘들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랑 신부는 오늘 결혼예식을 통해서 이제는 자유자가 아니라 배우자에게 얽매인 자라는 것을, 이제는 혼자서는 온전할 수가 없고 반쪽짜리 인생이라는 것을, 이제는 혼자가 아닌 배우자와 한 몸으로서 가정의 일원으로서 사랑하고 일하는 자가 되었음을 공개적으로 선언하고 약속을 해야 할 것입니다.

 

끝으로 여기에 참여한 하객들이 해야 할 약속입니다. 우리는 그냥 축하하기 위해서 참석했을 뿐인데 무슨 약속을 하고 무슨 책임을 져야 하냐고요? 오늘 결혼예식에 참여한 여러분은 단지 결혼식을 구경하러온 관객이 아니라 이 결혼식의 엄중한 증인으로 참석한 것이고 증인의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증인의 약속과 책임은 소극적 책임과 적극적 책임으로 나누어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선 소극적 책임으로는 두 사람의 결혼생활에 방해가 되는 말을 부추기거나 행동을 해서는 안 됩니다. 예를 들어 남편과 아내는 결혼 초에 꽉 잡아야 한다.”느니 등의 말로 헛된 기싸움을 부추겨서는 안 되고, 신랑 신부의 친구들이 자주 불러내서도 안 됩니다. 가정에 충실하려는 남편을 공처가니 꽉 잡혀 산다느니 라고 하며 폄하해서도 안 됩니다. 나아가 적극적으로 신랑 신부의 가정이 잘 안착되도록 도와야 합니다. 신랑과 신부의 직장 동료들은 두 사람이 가정에 좀 더 시간을 낼 수 있도록 직장 일을 줄여주어야 하고, 교회나 교사모임에서도 모임횟수나 책임을 줄여주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이 가정을 위한 기도의 책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저도 주례자로서 이 가정을 위한 기도를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

 

결혼생활을 위한 실제적인 조언

다음으로 새롭게 출발하는 이 가정을 위한 몇 가지 실제적인 권면을 드리고자 합니다. 이 권면들은 부족하지만 저희 가정이 지켜오고 있는 것으로서 작지만 가정을 가꾸어가는 실제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개인의 인생도 거창한 구호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떠한 습관을 형성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듯 행복한 결혼과 가정도 결국 부부가 어떠한 습관을 형성하는가 하는 것이 좌우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주례자가 주는 조언들을 작다 생각하지 말고 거룩한 습관으로 형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선 하루를 마무리하고 자기 전에 신랑과 신부가 함께 손을 잡고 기도하는 습관을 갖기 바랍니다. 이렇게 자기 전 신랑과 신부가 기도하는 습관은 두 사람의 관계를 날마다 결혼생활의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 세울 것이고,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으로 서로를 더 깊이 사랑할 수 있는 힘을 공급받을 수 있는 원천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매일 함께 드리는 이 기도 시간을 통해 두 사람 사이에는 영적 일체감이 쌓여갈 것입니다. 이렇게 부부가 기도하는 습관은 이후 자녀를 낳게 되면 자연스럽게 자녀를 포함해 온 가족이 매일 가정예배를 드리는 습관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가정예배의 습관은 자녀를 믿음으로 양육하는 매우 소중한 기초가 될 것입니다.

 

둘째 결혼 이후 어떠한 일이 있어도 부부가 함께 살을 부대끼며 잠을 자는 습관을 갖기 바랍니다. 이는 당연한 것처럼 생각이 들겠지만 수면습관의 차이나 자녀양육, 남은 업무 기타 여러 가지 이유로 방을 따로 사용하거나 같은 방을 사용하더라도 부부 사이에 아이를 두고 자거나 침대 위와 아래서 떨어져 자는 부부가 의외로 많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연약하기 때문에 부부가 살을 부대끼는 횟수가 줄어들수록 친밀함은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서로의 수면 습관이 맞지 않으면 서로 맞춰가고, 자녀로 인해 수면이 방해를 받더라도 그 피곤함을 감내하고, 침대에 대한 선호가 다르면 잘 의논해서 침대를 치우거나 아니면 같이 침대에 자는 방법을 간구해 부부가 살을 맞대고 자는 것을 우선순위에 두기 바랍니다.

 

셋째 부부가 서로 친하다고 해서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되고 할 수 있다면 서로 존댓말을 사용하기를 권합니다. 부부가 함께 생활하다 보면 서로 간 의견이 맞지 않는 경우도 있고 감정이 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라도 평소 서로 존댓말을 사용하거나 최소한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 습관이 형성되어 있을 경우에는 갈등이 일정한 범위를 넘지 않고 관리가 될 수 있습니다. 평소 서로를 존중하는 언어 습관은 이후 부부관계를 지키는 매우 중요한 테두리 역할을 할 것입니다. 사랑만큼 중요한 것은 서로를 존중하는 것입니다.

 

넷째 가정의 중심은 아내입니다. 아내가 기뻐야 온 집안이 밝고 기쁩니다. 그러기에 남편은 어떤 경우에라도 아내가 기쁠 수 있도록 생각하고 아이디어를 내야 할 것입니다. 자신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아내를 방치해서는 안 되고 늘 아내의 마음을 살피고 만져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남편이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닌 아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서 그것으로 아내를 기쁘게 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서, 자기 전에, 또 출근하고 퇴근할 때 꼭 아내의 이름을 불러주고 안아주며, 아내의 기분을 물어주어야 합니다. 아내는 뭘 해야 되냐고요? 보통 아내는 본능적으로 자신이 뭘 해야 할지를 잘 압니다. 다만 남편이 처음부터 잘 되지 않는 것을 기다려주고 설명해주고 인내하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