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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오 칼럼

내가 만난 하나님, 나를 만나주시는 하나님(2015.11)

정병오 칼럼

내가 만난 하나님, 나를 만나주시는 하나님

 

하나님을 아는 지식

당신이 믿는 하나님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어떻게 표현하시겠어요?”

이 질문 앞에서 내 머리는 복잡하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우선 이 천지만물을 만드시고 지금도 다스리고 계신 전능하신 창조주가 떠오르고, 다음으로 우리 인생의 세밀한 부분까지 다 아시고 모든 인간의 생사화복과 모든 역사를 섭리로 주관하시는 주님이 겹쳐진다. 자신을 반역한 인간을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인간의 몸으로 보내시고 죽기까지 복종하게 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떠오르고, 부활의 능력으로 사탄의 계략을 파하시고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린 그 모든 것 위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지혜가 떠오른다. 그리고 부름받은 당신의 백성과 교회를 통해 이 세상을 회복하시고 우주적인 구원을 완성해가시는 하나님의 경륜에 이어 하나님의 정하신 때에 오셔서 이 세상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며 새 하늘과 새 땅을 회복하셔서 성도와 함께 영원히 다스리실 하나님에게로 이른다. 이렇게 표현하고도 다 담아내지 못한 하나님의 모습이 계속 떠오르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인가?

글세, 그 광대하신 하나님을 어떻게 한마디 말로 표현할 수 있겠어요? 저로서는 불가능한 일이에요.”

 

당신이 하나님을 만나는 통로는?

그렇죠.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하나님을 어떻게 다 알 수 있으며 또 다 담을 수 있겠어요. 더군다나 하나님에 대해서 한 권의 책이나 한 편의 글로 표현하라는 것도 아니고 한 문장이나 한마디로 표현하라는 것이 무리라는 것은 저도 잘 알아요. 그렇다면 제가 질문을 바꿔볼게요. 당신은 주로 어떤 통로를 통해 하나님을 경험하고, 제일 많이 경험하는 하나님의 모습은 어떤 모습인가요?”

, 이 질문에 대한 답도 그리 간단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우선 나는 개인적인 말씀묵상이나 성경공부 혹은 설교나 강의, 신학서적 등을 통해 하나님의 계시를 깨달을 때, 그래서 하나님의 속성과 그 분이 행하신 일들의 깊이와 높이, 풍성함을 깨달아 알아갈 때 말할 수 없는 희열을 느껴요. 그래서 나는 할 수 있다면 이러한 기쁨을 누리기 위해 탐닉하듯이 말씀을 읽고 듣고 찾으려 해요. 다음으로 나는 기도할 때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편이에요. 특히 골방기도를 할 때는 내가 어떤 기도제목을 가지고 갔든 관계없이 하나님이 내게 이미 주신 은혜에 감격하여 허우적거릴 때가 많아요. 그리고 일상 가운데서도 크고 작은 일을 하나님께 아뢰고 그 분의 의지할 때 도우시는 하나님을 많이 경험해요.”

 

당신의 일상에서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이제야 제가 묻고 싶었던 핵심에 근접해가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 당신은 당신이 고백하는 교리적으로 정리된 믿음의 내용과 당신이 일상과는 조금 떨어진 경건의 시간을 통해 집중적으로 만나 교제하는 하나님의 모습을 주로 이야기를 해 왔어요. 하지만 정말 제가 궁금하고 알고 싶은 부분은 교리적이거나 종교적인 부분과 무관해 보이는 믿지 않는 자들도 똑같이 경험하는 일상에서 당신은 하나님을 어떻게 만나고 있으며, 그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하는 것이에요. 물론 이 부분도 교리적인 부분이나 종교적인 부분의 부산물이거나 깊이 연결되어 있겠죠?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약간 주관적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저는 이 부분이 정말 중요하도 생각해요.”

이제야 당신이 뭘 말하고자 하는지 감이 오네요. 그렇다면 저는 고린도전서 1013절 말씀,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로 답을 하고 싶네요. 이 구절은 비록 교리적인 면에서 핵심 구절은 아니지만 내가 일상에서 제일 많이 경험하는 하나님의 실체와 그리고 이 하나님을 만나는 통로를 가장 잘 표현해주는 말씀이에요.”

 

시험당할 때 나는 누구이고,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조금 의외네요. 설명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그렇죠? 우선 내가 날마다 경험하는 하나님은 나를 시험하는 하나님이란 것입니다. 이 시험에는 나의 범죄나 연약함으로 인해 자초했거나 벌로 받는 것도 있고, 이와 무관하게 많은 인생들이 죄와 사탄의 통치로 인해 왜곡된 세상 가운데 살아가기 때문에 당해야 하는 시험인 것 같아요. 물론 내가 이 세상 사람이 겪는 모든 시험을 다 당하지는 않겠죠? 하지만 주관적으로 느끼기에는 웬만한 시험은 결코 나를 비껴가지 않고 내 삶을 관통해 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제는 나도 경험이 쌓여 내게 다가올 시험이 예상이 되고, 그래서 하나님께 이 시험만은 나를 비껴가게 해 달라고 기도할 때가 많지만 하나님이 이 기도를 들어주신 적은 거의 없는 것 같아요.

그런데 또 하나 고백할 수밖에 없는 것은 하나님은 나를 극단적인 시험으로 몰아가지는 않는다는 거예요. 특별히 주변의 사람 가운데 나와 비슷한 시험으로 인해 나보다 훨씬 더 극단의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볼 때 이를 분명히 고백하게 되요. 물론 모든 시험과 고통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당하는 그 사람에게는 그것이 제일 심한 고통이니까 비교가 무의미할지는 몰라요.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객관적인 비교도 가능하잖아요. 저는 하나님이 저의 연약함을 아시고 항상 어느 선에서 멈추시는 것을 많이 경험해요. 아마 하나님이 조금 더 원칙적으로 나를 시험하시면 내가 변화되기는커녕 완전히 무너져버릴 것을 아시기 때문이겠지요. 내가 그 시험을 주시는 하나님께 제대로 굴복하지도 않았고 변화되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멈추시는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마음 약하심을 느낄 때 또 다른 전율을 느낄 때가 많아요.

그리고 하나님은 모든 시험 가운데서 항상 피할 길을 주시는 분이세요. 이러한 피할 길은 가끔은 나를 강하게 하사 시험을 이기게 하기도 하지만 이런 경우는 예외적인 경우에요. 대부분의 경우에는 나를 둘러싼 환경을 변화시키거나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방법을 사용하세요. 내 죄와 허물로 인한 시험을 겪을 때 하나님은 때로 나의 죄와 허물을 사람들 가운데 드러나게 하시고 수치를 당하게 하심으로 해결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이 죄와 허물을 완전히 혹은 부분적으로 숨기시는 방법으로 해결해 주세요. 대부분의 사람이 겪는 시험의 경우에도 내 힘이 닿는 데까지 하다하다 어쩔 수 없어 낙심할 때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더 큰 마음으로 나를 품어주게 하시거나 도움의 손길을 뻗게 하는 것이 대부분이에요.“

 

그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주는 유익

그렇군요. 당신이 일상 가운데 만나는 하나님과 그 만남의 방식이 얼마나 보편적인 것인지 아니면 당신에게만 해당되는 특수한 것인지 잘 판단이 되지는 않군요. 하여간 그렇다면 하나님이 당신을 그렇게 만나주심으로 당신에게 주시는 메시지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우선 저는 대부분의 인생이 겪는 시험을 겪으면서 시험당하고 고통당하는 사람들, 심지어 범죄하여 쓰러지는 사람들까지도 이해를 하는 폭이 넓어지는 것 같아요. 비록 제가 같은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았지만 이는 하나님의 은혜 덕분이지 결코 내가 나은 것이 없음을 아는 것이지요. 그리고 시험 가운데서 나를 극단적으로 몰아가지 않는 하나님에 대한 경험은 시험을 당하더라도 과도하게 두려워하지 않게 해요. 하나님이 내 연약함을 아시고 가장 적절한 때에 멈추시고 구원하실 거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죠. 그리고 피할 길을 여시는 하나님에 대한 경험은 하나님은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이 나의 연약함과 허물을 감당하고 있음을 알기에 그들에 대한 부채의식과 겸손함을 갖게 하고, 나도 적극적으로 주변 사람들의 연약함과 허물을 감당하는 자가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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