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구조 개혁은
지역의 균형 발전이라는
비전을 담고 있어야 합니다
장수명(한국교원대학교 교수)
한국교원대학교 교육정책전문대학원 교수이자 도서관장을 맡고 있다. 경제학을 전공하고 대학 제도, 지역 발전, 교육 개혁 등에 대한 연구에 주력하였다. 저서로 《노무현 시대의 좌절》, 《사회를 바꾸는 교육혁명》,《핀란드 교육의 기적》 등이 있다.
인터뷰 김진우 사진 김영식
대학 구조와 관련한 이슈가 몇 가지 있다. 대학의 서열 구조 완화와 학령 인구 감소에 따른 대학 구조 개혁 문제, 그리고 대학 진학률은 얼마가 적정한가 하는 문제 등. 이와 관련하여 고등교육 구조 개혁에 대한 대안을 제시해 온 한국교원대 교육대학원 장수명 교수를 만났다. 장수명 교수는 교육부 정책자문위원회 고등교육혁신분과위원장으로, 고등교육 분야 개혁의 그림을 그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인터뷰는 10월 19일 교원대에서 진행되었다.
고등교육에 대한 개혁의 상을 어떻게 가지고 있습니까?
한국의 고등교육은 중요한 선택의 시점에 와 있습니다. 1995년 5.31 교육 개혁으로 대학 설립 준칙주의에 의한 대학 설립 자유와 정원 자율화 정책을 통한 대폭적인 대학 정원 확대가 있었어요. 고등교육의 양적 확대와 질적 고양을 국가의 투자를 통해서 할 것인가, 시장을 통해서 할 것인가의 문제에서 후자를 선택했습니다. 대학끼리 경쟁을 하면 질이 높아질 것이라는 시장 논리를 갖고 접근했어요. 결과적으로 대학 정원이 증가했고, 학생의 등록금 부담이 늘었습니다. 대학에 많이 진학하면 경쟁이 줄고 서열이 완화될 것이라 보았지만 서열은 완화되지 않았고, 중등교육도 정상화되지 않았습니다. 대졸자가 많이 나왔지만 일자리는 많지 않고, 청년 실업과 준실업이 광범위하게 존재하는데 기업은 인재를 구할 수 없다는 말을 합니다. 여기에 지방 국립대가 서울 중심 대학 서열의 하위로 재편되면서 역할이 굉장히 위축되었습니다. 우리 사회의 중요한 요소가 국가의 균형 발전인데 이에 큰 도움이 안 되고 있어요.
전반적으로 고등교육 체계에서 국가의 역할이 확대되다가 중단되고 개인의 부담으로 넘어갔습니다. 특히 교육비의 개인 부담이 높습니다. 1인당 등록금 부담이 미국 다음으로 높고 교육비 환원율은 미국보다 낮습니다. 교육비 환원율이란 개인이 지불하는 교육비에 대해 대학에서 1인당 투자되는 교육비인데, 이를 비교하면 미국은 2.5배 정도인데 우리나라는 1.2배밖에 안 됩니다. 북유럽은 개인 부담이 거의 없으니 거의 무한대에 가깝지요. 또 경쟁을 통해서 질이 높아질 거라 했는데 교수들의 연구 논문 수가 늘어난 것을 제외하면 대학의 질이 높아졌다는 근거가 별로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희망적인 단초는 국가가 주도해서 투자한 과학기술원, 교대, 폴리텍의 수준은 균형적으로 많이 높아졌다는 것입니다.
고등교육의 방향은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국가 단위에서 국공립 고등교육을 체계적으로 계획하고 운영할 수 있는 기구가 필요합니다. 개별 대학의 문제로 취급하지 말고, 국공립을 기본으로 해서 전체 대학의 운영을 고민하는 기구가 필요합니다.
둘째, 대학에 대한 장기적인 마스터 플랜이 필요합니다. 장기적 계획이 없으면 특정 대학을 실험적으로 개혁한다고 할 때 단기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개혁이 좌초됩니다. 이것을 교육부가 할 수 있을까요? 교육부 재정 정책을 보면 올해 써야 할 돈을 9월에 내려 보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고등교육을 장기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조건이 안 돼요.
셋째, 국가가 책임지는 고등교육을 확대해야 합니다. 그 방향은 지역의 균형 발전이 되어야 합니다. 지역의 균형 발전 체계와 대학의 균형 발전 체계가 선순환을 만드는 구조가 필요합니다. 대학과 지역의 균형 발전 선순환이 없이는 한국 사회가 다음 발전 단계로 나가는 것, 보수적 담론에서는 선진화, 진보적 담론에서는 복지국가라 표현되는 것을 성취하기 어렵습니다.
대학 교육의 질은 어떻게 높일 수 있을까요?
첫째, 대학의 교수, 학생, 연구자들이 교육과 연구의 질을 획기적으로 높이기 위해 자율적으로 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아져야 합니다. 단순히 논문 몇 편으로 평가되는 구조 속에서는 어렵습니다.
둘째, 자주적인 운동과 더불어 국가 차원에서 대학의 질 향상에 걸림돌이 되는 것을 살펴서 제거하는 정책을 펼쳐야 합니다. 연구재단 문제와 고등교육 평가와 관련된 문제입니다. 현재 교육부가 구성한 임시적인 위원회가 다양한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국가 단위에서 대학의 질을 일관성 있게 바라보는 기구가 없습니다. 참여정부 때부터 고등교육평가원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었는데,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대학교육협의회에 넘기자는 말도 있었지만 협회는 이해관계에 매여 있어 어려울 수 있습니다. 교육부도 아니고 대교협도 아닌 제3의 안정된 기관이 필요합니다. 대학의 질을 평가하는 일관성 있는 체제가 만들어지고, 이를 운영하는 고등교육평가원 같은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이것 역시 과거부터 논의해 온 대안입니다. 안정된 정책과 평가 없이 개별 정책으로 대학을 바꾸기는 어렵습니다.
마스터 플랜을 만들 때 대학의 구조는 어떻게 되어야 합니까?
현재는 4년제 중심, 수도권 중심의 편향이 있습니다. 첫 방향은 양질의 직업교육 체계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과거 정부들이 국립 전문대를 4년제 대학으로 통합하는 과정에서 전문대에 대한 국가 책임을 사실상 놓아 버렸습니다. 양질의 직업교육 체계를 세워 놓지 않으면 대학 서열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폴리텍이 잘 운영되고 있지만 제조업 중심이라는 한계가 있습니다.
또 하나의 포인트는 고등교육이 평생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해야 합니다. 핀란드는 고등교육에 재학하는 사람 상당수가 자기 직장을 갖고 있습니다. 미국도 고등교육 재학자 중에 직업인이 많습니다. 풀타임 학생 중심의 대학 체제는 학생 개인에게도 사회적으로도 굉장한 손실일 수 있습니다.
고등교육에 대한 국가의 지원을 높이는 한편 양질의 직업교육과 평생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이를 위해 국가 차원의 고등교육의 질을 관리하는 기구가 필요하다는 주장으로 이해됩니다. 이런 주장에 대한 반대가 있습니까?
반론은 주로 디테일에 있습니다. 굉장히 많은 사립대학이 존재하는데 사립대학의 경우, 국공립 위주의 투자와 발전에 대해서 반발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사회적 재정 사용의 효과성 측면입니다. 선택 집중해서 지원하는 방식과 평균적으로 분배해서 지원하는 방식 중 어느 것으로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현 정부의 중요 공약 중에 거점 국립대를 지원하겠다는 것이 있었는데 국립대학 안에서도 미묘한 갈등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실험 단계에서 선택이 안 되면 배제되는 것으로 해석하는 반발이 있을 수 있어요.
재정 배분의 갈등이 있을 수 있다 하셨는데, 정책에서 어려운 것이 이해관계 조정인 것 같습니다. 누가 장기적 비전을 가지고 신뢰성을 바탕으로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인데 그 가능성은 어디에서 나올 것이라고 보십니까?
국가 단위의 교육 정책에 대한 담론을 할 때, 경험의 다양성이 중요합니다. 경험의 다양성이 충분히 포괄되는 단위의 정책적 리더십이 형성될 수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지역 균형 발전을 이야기하자면 지역 단위의 고등교육 계획에 대한 목소리가 있어야 하고 시민 사회나 산업계나 대학 사회의 요구가 있어야 하는데, 교수들의 영향력은 큰데 지역 사회의 다양한 참여자의 목소리가 낮습니다. 지방의 대학은 대학 서열도 낮고 학생들의 상황이 가장 열악한데 지역에서 대학 개혁에 대해 거의 목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반값 등록금 이야기도 지방에서는 잘 나오지 않았습니다. 서울과 유사한 등록금을 내면서도요. 지역 사회 단위에서도 고등학교가 서울대에 얼마나 보냈느냐가 중요한 담론이지, 우리 지역의 인재가 우리 지역을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느냐에 대한 이야기는 없습니다. 완전히 동떨어진 사고입니다. 유럽이나 미국의 경우 인구 300만 정도의 규모만 되도 세계적인 대학이 존재해요. 우리나라 부산이 인구 300만이 되는데 여전히 서울 중심입니다.
강준만 교수가 이야기한 지방의 식민지화론과 관련이 있습니다. 지역의 정치 지도자, 도지사, 시장 등이 대부분 서울에서 공부하고 와서 지방에서 뽑힙니다. 법원, 검찰, 대학 교수 모두 지역의 사람들이 서울에 가서 공부하고 지방으로 옵니다. 마치 일제 강점기에 지식인들이 일본에 가서 공부하고 오고, 해방 후에 미국에 가서 공부하고 오는 것과 같습니다. 지역에 있는 사람들마저도 지도자를 뽑는데 우리 지역의 다양한 목소리를 어떻게 대변하느냐를 고민하지 않고, 어느 대학 나왔나를 본다는 거죠. 개혁적인 입장을 가진 지방의 학자들도 활동지가 서울입니다. 지방대학에 있는 교수들도 활동 무대는 서울인 경우가 많습니다. 전국적 단위의 개혁은 강력한데 지역이라는 공간에 뿌리를 두지 않는 개혁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지역 단위에서 지방 정부, 지역 산업계, 시민 사회가 왜 우리 지역에 양질의 대학이 존재해야 하는지 설득력 있게 요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중등교육의 입시 경쟁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대학의 서열을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습니다. 이를 위해 국공립 통합네트워크, 대학입학 보장제, 메이저리그대학 통합선발 등의 주장이 있었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대학 서열화를 공격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해결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양질의 대학이 이곳저곳에 균형 있게 발전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장기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방안입니다. 억지로 서열을 낮추기 어렵습니다. 현재 카이스트, 교대, 폴리텍, 국립대학의 의과대학 모형처럼 정부 투자를 통해 어느 정도 질을 확보하고 시장의 수요에 조응한다면 서열이 완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선발을 통합으로 한다는 아이디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선발을 통합으로 한다고 했을 때, 대부분의 학생이 통합된 대학 중에서 어디를 가려고 하겠습니까? 수도권으로 쏠리지 않을까요? 그러므로 균형 있는 양질의 대학 발전 없이는 어려운 문제입니다. 서열을 완전하게 없애는 것보다 유사한 수준이면 됩니다. 예를 들어 교대의 경우 진주교대와 서울교대의 차이는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수능 등급제를 작동하게 하여 거점 국립대학에서 수능 A등급을 절대 기준으로 정할 수 있습니다. 캘리포니아 체제도 이와 비슷합니다. 학생들을 거점 국립대학에 받아들이고 학사 과정을 엄격하게 하고 편입은 가능하게 합니다. 등급제와 거점 국립대를 연결하면 서울의 정원이 먼저 채워지고 거점 국립대학들의 정원이 안 채워져도 등급을 유지하게 되고, 국가가 대학을 지원하면서 소수의 학생에게 양질의 교육을 실시하면 몇 년 후 경쟁력이 회복될 것입니다.
학령 인구 감소에 따른 대학 구조 조정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대학의 구조 개혁과 관련한 가장 큰 오해는 학령 인구와 대학 정원을 직접적으로 등치시키는 것입니다. 이게 가능한 이야기인가 생각합니다. 그들이 다 대학에 들어가야 하나요? 다 고등교육이 필요한가요? 그건 학생을 등록금 수입원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대학의 교육과정을 이수할 수 있는 자가 누구인지 학습자의 시각으로 봐야 하는데, 대학 경영 차원에서 보는 시각이 일반화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비례 관계가 있지 않겠습니까?
평생교육 관점에서 보면 그것도 옅어집니다. 핀란드는 대학 졸업생 연령이 우리보다 훨씬 높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비례 관계는 존재합니다. 학령 인구 감소로 대학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시기가 몇 년 남지 않았는데 일차적 파고로 지방 전문대가 먼저 어려워질 것입니다. 그것을 제외하면 40~55%의 4년제 대학은 그대로 있을 겁니다. 그냥 두면 망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수요와 공급에 따라 대응하는 기업과 달리 대학은 간단합니다. 수입은 학생 등록금, 지출은 교수 임금과 교직원 임금입니다. 수입이 줄어들면 지출을 낮추는 식으로 갈 것입니다. 지방 사립대의 경우 지금 정규 교수를 뽑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 임용된 교수들은 임금이 높지 않고요. 희생을 전가하면서 장기적으로 생존해 갈 것입니다.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만족할 수 있는 세상이 되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대학 진학률이 너무 높다는 시각이 있는가 하면 미래 지식 사회를 위해서 대학 진학률이 더 높아져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능력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가드너가 준 통찰은 인간의 능력은 일면적이 아니라 다면적이라는 것입니다. 지식 사회니까 지식이 필요하고, 일반적 숙련이 높은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할수록 저소득층이나 인지 능력이 상대적으로 낮은 아이들에게는 불리한 교육 구조와 숙련 구조를 갖게 됩니다.
오스트리아나 스위스, 독일 등은 탄탄한 중등 단계의 직업교육이 사회적 평등으로 이어집니다. 다방면의 숙련을 계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고 있습니다. 핀란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자격 시험을 봅니다. 축구 선수도 직업 자격이 있어야 졸업이 됩니다. 직업 능력을 시민의 기본으로 보고 매우 엄격하게 관리합니다. 통과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다른 성인교육기관 등을 통해 다른 능력을 갖게 만듭니다. 그걸 안 하면 실업 수당을 못 받습니다. 시스템이 매우 촘촘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3년 동안 잠을 자도 졸업이 됩니다. 이렇게 놔두면 정말 위험한 사회로 가게 됩니다. 독일의 부스마이어는 충실한 직업교육이 저소득층과 인지 능력이 상대적으로 낮은 사람들에게 충분한 대안이 되고 사회적 평등의 경로가 된다고 했습니다.
핀란드는 직업 능력이든 학력이든 기본을 책임지는 교육이 특징인 것 같습니다. 핀란드에서 연구년을 보내신 적이 있는데 핀란드 교육이 우리 교육에 줄 수 있는 시사점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북유럽 학교의 특징은 종합학교 모형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루터교 전통이지만 독일과 달리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가 종합학교를 채택했습니다. 즉 중학교까지는 기본적으로 시민교육을 하는 것입니다. 고등학교에 가면 다양성을 수용하면서 학습자의 책임을 강조하는 체제로 바뀝니다. 종합학교 논쟁은 매우 치열했는데 처음에 교사들이 제일 반대했습니다. 학생들의 수준차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고민했는데 1975년에 논의를 시작해서 1985년에 완성했습니다.
교사교육체계도 다릅니다. 직업교육 교사의 경우 대학을 졸업하고 그 직업 분야에 수년 이상의 경험이 있는 사람이 교육학을 공부해서 교사가 됩니다. 입직 연령도 높고 다양한 배경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그 분야의 숙련을 요구합니다. 인문계고등학교 교사는 사범대 같은 곳이 없습니다. 일반학과를 전공하고 부전공으로 교육학을 해서 5년 정도의 과정을 밟아야 합니다.
핀란드 교사들이 공유하는 교육 철학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빌둥(Bildung)이라고 하는데 독일어로 끄집어내다, 도야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학습은 스스로 내면에서 끄집어내는 것이라는 관점입니다. 중세의 독일 기독교 신비주의와 독일 신휴머니즘 등의 전통을 이어온 것입니다. 존 듀이도 헤겔의 이 사상을 이어받아 발전시킨 관점이기도 한데요, 외부의 지식보다는 내면의 영성이 중요하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교육은 인간 안에 내면의 빛, 하나님의 형상, 선한 씨앗이 있음을 신뢰하고 그것을 싹 틔우기 위해 노력하는데 개인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만 자신을 온전히 성장시킬 수 있기 때문에 사회적 관계를 어떻게 맺어갈 것인가 하는 점을 중시합니다. 교사는 지식의 전달자가 아니라 내면 발달의 안내자, 촉진자의 역할을 합니다. 교육과정은 전달과 통제의 수단이 아니라 학습자 개인의 경험에 유연하게 반응하는 체제로 구성됩니다. 고로 개인별 학습 계획이 강조되는 기반입니다.
문재인 정부의 교육 개혁이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첫째, 교사에 대한 존중에 기반을 두는 협치의 구조를 만들어 내야 합니다. 헌신적인 다양한 교사 그룹의 운동을 포섭하고 수용하는 개혁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 국가가 책임지는 교육, 한 아이도 놓치지 않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교육적 가치를 실천적 과제로 만들어 내는 섬세하고 실용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소수 관료의 힘으로 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지난 정부에서 인성교육법이 제정되고, 학교폭력 문제를 해결을 위해 스포츠교육을 강화했는데 교육과정 전체에서 바라본 것이 아닌 분절적인 정책이었습니다. 전체 교육의 틀 안에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진행되어 여러 문제를 만들어 내고 학교에 부담만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점에서 정책 실명제는 말이 안 됩니다. 한 개인이 어떻게 국가 정책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요? 광범위한 위원회 단위에서 사회적 합의와 전문적 확인의 과정을 거친 이후에 실행의 과정이 따라야 합니다.
셋째, 사회적 수용을 위해 충분히 무르익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시기를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중요하다 해서 무조건 앞에 놓을 것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의 물꼬를 어떻게 틔워 나갈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사교육이 맘에 안 든다고 해서 무조건 없앨 수는 없습니다. 기존 제도의 경로 의존성이 있음을 인정하고, 그 안에 있는 틈을 찾아 나가야 합니다. 진보 교육감이 선출된 것이 그 때문입니다. 국민들이 자기 선호에 따라 교육감을 선택하게 되면서 드러나지 않았던 국민들의 다른 선호가 발전되어 나가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틈을 포착하고, 그 열망이 사회적으로 발산되는 과정과 맞춰 나가야 합니다. 진정으로 국민들이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 정책하는 사람의 본분이지, 주장이나 선명성을 위해 무조건 시행할 수는 없습니다.
초중등교육의 문제를 논하다 보면 그 핵심에 대학 문제가 연결되어 있다. 입시 정책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는 수도권의 4년제 대학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입시 경쟁을 촉발하는 대학의 서열을 완화하기 위한 제안이 분분하다. 장수명 교수는 선발 문제를 직접 건드리는 방식보다는 양질의 지방 대학을 많이 육성하는 것이 근본적 해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국가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하는 비전과 연결되어 있다. 지역 균형 발전이라는 비전과 맞추어 고등교육이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하는 화두인 것이다. 이 화두는 초중등교육의 비전과도 연결된다. 수도권 4년제 대학에 초점을 맞춘 중등교육은 옳은가? 10%를 위한 교육은 옳은가? 보편적 시민교육과 다양성과 책무성이라는 가치를 다시 한 번 곱씹어 볼 때다. 그 중심에는 우리 사회의 토대인 보통 아이들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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