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은 변별을 위해
만든 시험이 아닙니다
인터뷰 김진우 사진 김영식
박도순(고려대학교 명예교수)
고려대 교육학과를 나와 고려대학교 사범대학장, 교육대학원장, 한국교육학회장, 교육평가학회장을 역임하였다. 국립평가원장을 거쳐 초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으로 수능을 창안하였다. 김영삼 정부 교육개혁위원회로부터 참여정부 교육혁신위원회에 이르기까지 교육개혁기구에 참여하였다. 주요 저서는 《교육평가》 《교육연구방법론》 《신교육학개론》 등이 있고, 수능제도와 대학입시제도에 대한 논문을 다수 발표하였다.
수능 절대평가 논란이 한참 뜨거울 때 수능의 창시자로 불리는 박도순 교수가 한 인터뷰를 통해 “수능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것은 학부모의 소송감이 될 수도 있다.”는 도발적인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수능으로 선발하는 것이 가장 공정하다는 목소리가 높은데, 수능을 설계했던 그는 지금 수능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수능은 원래 자격고사 개념으로 설계되었다. 고등학교 과정을 정상적으로 이수한 학생은 만점을 받는 것이 정상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수능 만점자가 수만 명이 되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되면 변별력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그래서 변별력을 높인 결과 한 문제를 틀리면 2등급으로 떨어져서 대학이 바뀐다. 통계학적으로 보면 한 문제를 틀린 학생이나 맞춘 학생이나 오차 범위 안에 있다. 실력의 차이가 유의미하지 않은데 한 문제 차이로 불합격이 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수능은 1점 차이로 합격과 불합격을 정당화하는 승복의 기제가 되고 있다. 그 근저에는 대학의 서열이라는 현실이 자리 잡고 있다.
박도순 교수는 수능 절대평가의 문제는 우리 교육이 나아갈 방향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와 연결하여 바라보아야 한다고 했다. 경쟁을 어떻게 볼 것인가? 대학을 어떤 기관으로 보아야 하나? 등 우리 교육의 근본적인 방향에 대해 합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평생 교육만 생각했고 교육 개혁의 현장에서 활약했던 노 교육학자의 생각을 들어 보았다.
수능 절대평가 논란 어떻게 보십니까?
잘라 말하면 절대평가는 꼭 해야 해요. 수능만 딱 떼놓고 이야기할 수는 없고 전체적인 맥락에서 생각해 보아야 해요. 원래 수능을 만든 의도는 자격고사 개념에 가깝습니다. 수능의 정의는 지금도 유효한데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정상적으로 이수한 사람이면 누구나 맞출 수 있는 문제라고 했어요. 만점자가 몇 만 명이 나오는 것이 정상인데 그걸 인정 못하는 겁니다. 수능이 쉽다, 어렵다 말이 많은데 그 기준도 상위권 대학 중심입니다. 만점 받았는데 원하는 대학에 못 들어가면 문제라고 난리죠.
지금은 평가에서 가장 중요한 기능이 변별이라고 인식되는 것 같습니다.
원론적으로 평가는 사람을 구별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하나님만 할 수 있어요. 평가는 사람을 도와주기 위해서 하는 것이어야 해요. 평가의 내용을 보면 평가의 한계가 더욱 명백해요. 예를 들어 국어 시험은 국어 교육의 여러 목표 중에 잴 수 있는 것만 재는 겁니다. 다른 능력은 제쳐놓고 지적 능력 중에서도 지식, 이해, 적용, 분석, 평가 중에 지식이나 이해 정도만 겨우 재는 것이죠. 이해 능력도 제대로 재기가 어려워요. 그걸 가지고 국어 능력이 있다 없다 하는 것이 어불성설이죠.
점수 자체가 허황되기 짝이 없습니다. 점수의 한계를 알고 그 속에서만 해석해야 해요. 숫자와 통계를 들이대니까 굉장히 과학적인 것 같지만 실상은 매우 비과학적입니다. 측정 오차만 생각해도 분명해요. 예를 들어 지능 검사만 해도 측정 오차가 ±6입니다. 지능 검사는 상당히 철저한 과정을 거치는데도 그러한데 수능은 그보다 훨씬 더 오차가 크다고 봐야 해요. 1점 차이가 별 의미 없다는 것을 전문가는 다 아는데도 불구하고 현실에서 승복의 기제로 쓰고 있어요. 사실 제대로 알면 부모가 소송을 할 수도 있어요.
수능 점수가 변별의 도구로 사용되는 것이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절대평가를 통해 변별의 기능을 약화시켜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됩니다. 그렇다면 절대평가로서의 수능은 어떤 기능을 가져야 할까요?
절대평가는 변별이 목적이 아니라 pass, fail을 구분하는 겁니다. 알면 알고 모르면 모르는 것이지 좀 더 안다는 개념이 없어요. 중요한 것은 교과에서 달성해야 할 목표를 어떻게 잡느냐 하는 겁니다. 절대평가 개념으로 가면 전반적으로 시험이 쉬워지게 돼요. 최소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교과의 시시콜콜한 것까지 다 알아야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돼요. 미적분을 모든 학생이 다 알아야 할 필요가 없어요. 필요한 대학에서 가르쳐야지 왜 모든 고등학생이 배워야 하나요?
원래 수능은 대학에서 꼭 필요로 하는 잠재 능력을 알아보기 위한 것이었어요. 언어 능력은 국어 시험이 아닙니다. 대학에서 교수들의 이야기를 알아들을 수 있는 능력을 말해요. 수리는 논리적 사고를 묻는 것인데 수학 시험과는 전혀 달라요. 만약 수능이 제대로 출제되었다면, 선생님이 수능을 봤을 때 학생보다 점수가 높게 나와야 돼요. 제가 고대 학생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는데 4학년 학생들이 점수가 더 낮게 나왔어요. 높게 나온 학생도 있었는데 그 학생은 계속 과외를 했더라고요. 이 말은 수능이 기본 능력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는 거죠. 처음 수능을 발표할 때 기자들이 대체 수능이 어떤 문제냐고 물어봐서, 제가 직접 기자들에게 문제를 풀어 보게 했어요. 대부분 80점 이상 맞을 거다 했는데 실제로 그렇게 나오면서 수긍을 하게 됐어요. 그럼에도 1년 지나고 문제를 그렇게 내면 안 된다는 논란이 바로 일어났어요.
수능의 원래 의도에도 불구하고 결국 오늘날과 같은 성격으로 변질된 맥락이 궁금합니다.
수능이 변질된 근본적인 이유는 수능이 대학 입학 전형에 너무 많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예비고사 비슷하게 자격고사 성격으로 가려고 했는데 대학에서 변별력을 요구했어요. 또 교과의 입장이 들어왔어요. 맨 처음 과학계에서 과학 진흥이 국가 목표인데 과학이 수능 과목으로 안 들어가면 안 된다고 했어요. 노태우 대통령 시절인데 제가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된다고 반대했지만 과학계가 들고 일어나니까 대통령도 어쩔 수 없더라고요. 과학이 들어오는 순간 사회 쪽에서 들고 일어나서 사회 탐구를 넣어야 된다고 해서 들어왔어요. 그래서 대안으로 탐구 과목을 만드는 대신 통합교과적으로 문제를 출제했는데 고등학교에서 가르치기가 어렵다고 항의를 했어요. 답변은 간단했어요. “그것은 고등학교에서 따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학부모들의 항의도 있었고, 사교육이 발 빠르게 대응을 하면서 결국 학력고사 성격으로 돌아가게 되었어요.
결국 수능의 성격은 전체 대입 전형의 구조 속에서 결정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당시 수능을 설계할 때 다른 전형 요소를 어떻게 구상했습니까?
수능을 자격고사로 가져가면서 대학의 본고사를 허용하고자 했습니다. 본고사를 2년 시행하고 그만뒀는데 그 이유는 대학이 어려워했어요. 제대로 된 문제를 내려면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데 감당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한편으로는 너무 어려운 문제를 출제해서 사교육이 심화되는 문제도 생겼죠.
본고사는 더 큰 문제를 야기한 것 같은데요. 그렇다면 본고사가 아닌 방식으로 어떻게 대입 전형을 해야 할까요? 내신 성적을 강화하는 것도 적지 않은 문제가 있을 것 같은데요.
심층 면접만 제대로 하면 됩니다. 학교생활기록부에는 그야말로 학생의 학교생활을 기록해 주면 되고 대학은 알아서 면접해서 심사하면 됩니다. 내신은 지금처럼 점수를 적어 줄 필요가 없어요. 우리는 획일화를 너무 좋아해요. 교육에 가장 나쁜 것이 획일화입니다. 점수가 없어도 얼마든지 뽑을 수 있어요. 면접위원 3명 정도가 30분쯤 면접하면 다 드러납니다. 면접위원 간 차이가 거의 없어요. 요즘 대학원생 뽑을 때 시험 안 봅니다. 기업도 그래요. 면접을 못 믿는다고 하면 다른 어떤 것도 성립이 안 돼요. 객관성, 공정성을 중시하는데 이것 때문에 평가가 제대로 안 돼요. 평가란 본질적으로 주관성이 모인 것입니다. 그걸 객관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약간의 흠결이 있으면 문제를 삼는데 그것이 문제입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엄격하게 처벌을 하면 되는데, 그것 때문에 처음부터 객관성을 요구하면 정말 보아야 할 것을 못 봅니다. 10명 중에 1명이 문제가 있다고 안 된다고 하면 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어요. 사회 어디에 그런 완벽함이 존재하나요?
모든 것을 점수화해야 객관적이라고 믿는 상황 속에서 수능은 물론 내신 성적 없이도 학생을 뽑을 수 있다는 말이 파격적입니다. 점수에 의존하는 대입 전형의 문제는 대입을 둘러싼 사회적 조건 속에서 결정되는 것일 텐데요. 앞으로 대입 전형을 설계할 때 무엇을 고려해야 할까요?
첫째, 대입 전형을 설계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요인은 경쟁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경쟁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갈 것인지 아닌지가 중요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쟁을 완전히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고 바람직하지도 않지만 현재보다 경쟁을 완화하자는 것에는 대부분 공감합니다. 그 방향이 확고하게 합의가 되면 방법을 찾는 것은 수월합니다. 문제는 실제로 경쟁을 완화하는 방법이 들어올 때 반대하는 세력의 저항입니다. 경쟁을 완화하려면 사회에서 보수의 차이를 줄이고, 대학의 서열을 없애면 됩니다. 그리고 대학의 서열을 한 줄로 세우는 전국 단위의 수능의 영향력을 줄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런 방향으로 학벌의 영향력을 줄이는 것과 함께 가야 합니다.
둘째, 이때 대학을 무엇으로 볼 것인가 하는 점이 대두하는데요. 대학 진학률이 30% 미만일 경우는 엘리트 교육 기관의 성격이 강하지만 70%를 넘어선 우리나라는 교양 교육 기관으로 보아야 합니다. 서울대에서는 왜 농어촌 전형을 안 하느냐 물었더니 그 학생들이 졸업을 못한다는 이야기를 해요. 나는 참으로 한심하다고 했어요. 러시아 학생을 데리고 오면 한국어를 공부시키듯 농어촌 아이를 뽑았으면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공부 잘하는 아이만 뽑으려고 하지 말고 못하는 아이를 어떻게 교육할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 대학의 책무죠.
셋째, 고등학교와 대학의 역할을 분리해 주어야 합니다. 대학의 자율과 고교 교육의 정상화 문제가 늘 부딪치는데 대학 입시가 고교 교육을 좌지우지하지 않도록 해야 해요. 대학이 고등학교에 성적을 요구할 필요가 없어요. 고등학교는 고등학교대로, 대학은 대학대로 알아서 하면 됩니다. 수능의 자격고사화는 현재 어렵지만, 대학이 알아서 수능을 반영하면 됩니다. 수능 성적을 전혀 안 보는 대학도 많아요.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결국 상위권 20여 개 대학입니다. 전체적인 대입 전형 요소는 학생부를 중심으로 면접을 하면 됩니다. 굳이 점수를 안 넣어도 돼요. 그 정도만 해도 대학은 알아서 할 수 있어요. 여기에 공정성, 객관성을 지나치게 요구하면 안 돼요.
말씀하신 하나하나가 많은 토론과 합의를 요구하는 주제인데요. 과연 우리 사회가 그러한 합의를 이룰 수 있을까요?
합의하기가 어려워요. 제가 대입 전형에 오랜 시간 관여하며 느낀 것이 여러 사람의 의견을 다 반영하려고 하면 아무도 찬성하지 않는 입학제도가 된다는 겁니다. 경쟁 완화, 고교 정상화, 대학 서열화 등 선택의 문제가 있는데 이쪽 의견도 조금, 저쪽 의견도 조금씩 섞어 놓으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어요. 핵심적인 부분에 대해서 토론을 하고 방향성을 정하면 그것을 토대로 국민을 설득해야 해요. 30%의 지지만 받아도 돼요. 입시제도 중에 30% 이상의 지지를 받은 것이 없어요. 내용보다도 절차에 대해 먼저 합의를 해야 해요.
현재 수능 변별력 문제와 관련해서 등급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가 쟁점입니다. 현행 9등급 체제를 채택한 배경도 궁금합니다. 참여정부 교육혁신위원회에서 5등급제를 주장했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교육혁신위원회에서 수능 변별력을 줄이려고 당시 안병영 장관과 논쟁을 했어요. 5등급제 절대평가로 가기 위한 하나의 과정으로 보았는데 안 장관이 배수진을 치고 결사적으로 반대했죠. 지금 대통령도 당시 논의에 참여했는데 5등급제를 적극 지지했어요. 청와대에서 대책 회의를 했는데 노무현 대통령이 자신은 교육에 대해 잘 모르니 이해찬 총리에게 결정하라고 맡겼는데 교육부총리가 저렇게 나오니 그 말을 들어주자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어요. 그 때 여러 수석들도 혁신위원회의 안을 지지했었는데 안 장관의 태도에 불만이 있었죠.
왜 9등급제에서 1등급을 4%로 정했나요? 1등급을 10%로 하는 것은 불가능한가요?
통계적으로 스테나인 척도를 근거로 한 것인데 근본적으로는 그렇게 할 필요가 없어요. 너무 자세히 나누려고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학교에서 보면 학생이 잘한다 못한다 정도는 구분할 수 있어요. 그런데 1등부터 꼴찌까지 자세히 줄을 세우려고 하니까 문제가 됩니다.
절대평가의 원리로 볼 때는 세밀하게 구분할 필요가 없고 합격과 불합격을 정하면 됩니다. 제일 어려운 문제는 절대평가의 기준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걸 교과에서 해야 해요. 평가원에서 시도했었는데 문제는 교과 전문가들이 현재 있는 모든 것이 다 중요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완전학습과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오늘날 학교에서 완전학습의 목표는 잊힌 것 같은데요. 완전학습은 여전히 유효한 원리일까요? 이 정도 배우면 된다는 절대적 기준을 설정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일까요?
완전학습은 당연히 가능하고 해야 하는데, 문제는 교과의 절대적 기준이 합의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3차 교육과정 논의할 때 제가 교육과정 심의위원을 했어요. 60여 명의 전문가, 언론인이 위원회로 모였는데 처음에는 현재 아이들 책가방이 너무 무겁다, 교과서 내용이 너무 많으니 3분의 1은 줄여야 한다는 것에 모두가 이의 없이 동의를 했어요. 그런데 무엇을 줄이느냐로 들어가니까 한 치의 양보도 없어요. 모든 의견을 들으면 현재보다 3배를 더 늘려야 된다는 결론이 나와요. 그때 어떤 논설위원이 이런 하나마나한 회의 하지 말고 길거리에서 사람들에게 쓸데없다고 생각하는 것에 줄을 그으라고 하는 것이 차라리 낫겠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박도순 교수가 《월간교육》(2016년 11월호)에 쿠바에 대한 탐방기를 올린 적이 있다. 쿠바 학생들은 집에 가는 것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라고 할 만큼 학교를 좋아하고, 쿠바의 하위 집단의 학력 수준은 아르헨티나의 상위 집단의 학력 수준보다 높게 나오고 있다고 한다.
관련해서 쿠바 교육에 대한 글을 보니 쿠바는 완전학습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더군요. 쿠바 교육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쿠바는 직업별 임금 차이가 없죠. 대학도 가고 싶은 사람만 가고, 교육비는 국가가 다 부담합니다. 교육에 대한 국가의 투자가 GDP의 24%를 차지할 만큼 높아요. 체 게바라가 혁명 이후에 100만 명을 동원해서 문맹을 없앴어요. 기본적으로 학생 간에 경쟁이 없고, 협력 수업과 개인 맞춤형 학습을 합니다. 숙제도 똑같지 않고 개인마다 다른 숙제를 내 줍니다. 서로 비교하지 않고 절대 기준에 도달하느냐 안 하느냐를 중점적으로 봅니다. 85점 이하면 낙제를 시키는데 그 학생에 대해서 교사, 학생, 학부모, 지역이 공동 책임을 부여 받아요. 다만 경쟁이 없는 만큼 국가 발전이 좀 더디다는 약점은 있는 것 같아요.
미국의 교육도 경험하셨지요.
미국에서 우리 아이를 보니 학교 가는 것을 즐거워해요. 일단 물리적 환경이 좋아요. 그리고 학교 선생님들이 아이 한 명 한 명에 대해 관심이 많아요. 학생들이 하교할 때 교장선생님도 나와서 아이들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격려를 해 줘요. 한번은 선생님이 우리 아이가 클라리넷을 배우는 것이 좋겠다고 했는데 교육비를 걱정하며 우물쭈물하니까 동의만 하라고 해서 했어요. 그랬더니 학교에서 악기를 대여해 주고, 과외 선생을 구해 택시까지 태워서 교육을 받게 하면서 교육비를 학교에서 다 지원해 주어서 놀랐어요. 성적에 따라 상을 주는 건 못 봤어요. 대신 투표로 선정된 학생에 대해서는 운동 경기가 있을 때 선수들과 사진을 찍는 상을 줘요. 아이들에게 잊을 수 없는 상이죠. 그리고 20명이 넘으면 다른 학급을 만든다는 기준도 있었어요. 그러다가 우리나라로 오니까 한 학급에 105명이 다니는 환경에서 학교를 다니기 싫어하더라고요.
지금까지 교수님 생애에 잊지 못할 스승이 계신가요?
대학원 다닐 때 유영준 교수님이 미국에서 공부하고 오셨는데 이 분은 정말 공부를 재미있어 하는 분이세요. 특이한 것이 수업 중에 학생이 질문을 하면 언짢아해요. 그 이유를 가만히 보니 1시간 강의하기 위해 며칠씩 준비를 하는데 학생이 별 생각 없이 툭툭 질문하는 것이 기분이 안 좋았던 거죠. 자신의 강의에 대해 어떤 질문이 들어오면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 답장을 해요. 그 분의 학문하는 태도에 깊은 감명을 받았어요. 제가 평가원장할 때 연구원에게 지금 하는 일이 재미없으면 내가 추천서 써 줄 테니 다른 곳으로 가라고 자주 말했어요. 공부든 일이든 즐거워야 해요.
마지막으로 교사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퇴근을 하고도 아이들에 대한 생각을 하고, 이야기를 해도 아이들 이야기가 많은 교사이면 좋겠어요. 은사님 중에 왕학수 교수님은 오랜만에 사람을 만나도 그 사람 이야기를 너무 자세히 알고 있어요. 그 비결이 이분은 만나는 사람마다 카드에 이야기 한 내용을 기록을 해 두었다가 이야기를 해요. 그러니 자기를 기억해 주고 존중해 준다는 느낌을 받아요. 선생님들도 아이들에 대해 자세한 정보를 기록하고 학부모를 만날 때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선생님을 대하는 학부모의 태도가 달라질 것 같아요.
평가란 무엇인가? 사람을 구별 짓는 것이 아니라 도와주는 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평가학의 원론적 명제가 낯설다. 현실에서 평가는 구별의 수단이며, 더욱 세밀하게 구별해 주기를 요구받고 있다. 절대평가, 완전학습의 교육학적 이념은 사라지고 상대평가, 변별력이 진리가 되고 있는 세상이다. 공정성, 객관성이라는 미명하에 교육적 타당성은 질식 당하고 있다. 입시에 지배되어 무의미한 숫자 게임에 빠져 있는 한국교육을 향한 수능 제도의 설계자이자 평가 전문가의 일갈은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만든다. 학교교육의 목적이 마치 정밀한 줄 세우기에 있는 것처럼 시험에 목숨을 걸고 있는 오늘날의 학교에 대해 학교의 목적은 그것이 아니라 절대 기준을 세우고 모든 학생이 성취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는 본질을 일깨워 주고 있다. 수능 절대평가 논쟁은 변별력에 매몰된 우리 교육을 구출할 수 있는 교육적 관점이 우리에게 있는가 하는 것에서 결판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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