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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리는 나침반처럼 분명한 방향성은 지니되 성찰하며 나아가겠습니다(조희연 서울시 교육감)-2014.9

좋은교사 2014. 10. 8. 12:11

떨리는 나침반처럼 분명한 방향성은 지니되

성찰하며 나아가겠습니다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사회학과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겸 NGO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며, NGO대학원장과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공동의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1994년 박원순 변호사와 함께 참여연대 창립에 주도적으로 나서기도 했다. 2007년 아시아 사회운동가 재교육과정으로서의 MAINS(아시아 비정부기구학 과정), 민주주의연구소, 민주자료관, 인권평화연구소, 아시아NGO정보센터, 민주사회정책연구원 등을 설립하는 등 현재 성공회대학교의 진보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시사저널 700호 기념 시민운동가 대상 여론조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식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주요 저서로 <계급과 빈곤>, <현대 한국 사회운동과 조직>, <한국의 민주주의와 사회운동>, <비정상성에 대한 저항에서 정상성에 대한 저항으로>, <동원된 근대화> 등이 있다.

 

 

인터뷰·김진우, 정병오 / 사진·김평화 / 정리·김진우

 

 

6.4 지방선거가 끝나고 가장 부각되었던 이슈는 진보교육감의 약진이었다. 그중에서도 조희연 교육감의 당선은 뉴스의 초점이었다. 이 의미를 둘러싸고 많은 평론이 쏟아져 나왔다. 이슈가 되고 있는 그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인터뷰 일정을 잡기가 어려웠다. 힘들게 잡은 일정도 다급한 일로 미루어지기도 했는데 결국 인터뷰 일정을 주말로 옮긴 탓에 비교적 여유 있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요즘 기분이 어떻습니까?

교수라는 게 자유로운 직업인데 교수로서 누리던 무한한 자유로움은 한순간에 없어져버리고 무한책임의 부담감만 갑자기 다가와서 자유와 무한책임을 맞교환한 것 같아 가끔은 교수로서의 자유로움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당선되는 과정을 보면 초반의 열세를 만회하고 막판의 역전극을 이루어내는 과정이 드라마틱했고, 뭔가 인간의 힘을 넘어서는 초월적인 힘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본인은 어떠셨습니까?

진짜 그런 느낌을 가지셨던 분들이 있는 것 같아요. 저의 두 형이 목사님인데 그렇게 해석을 해요. 선거 전략을 뛰어넘는 어떤 인도하심이 있었다는 식으로개인적으로 이상하게 가슴에 맺혀있는 성경구절이 있어요.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전에 갈릴리 바닷가에서 베드로에게 네가 젊었을 때는 마음대로 다녔지만 후에는 남들이 네게 띠 띠우고 네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가리라는 말씀을 하셨는데요. 이 말씀이 제 마음에 있어요. 제가 농담처럼 이야기하기도 하고 그랬는데 이번이 저로서는 그런 느낌을 받아요. 전혀 원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70~80%는 제가 원하지 않았던 길인데 결과는 전과는 전혀 다른 궤적에 서게 되었습니다. 가끔 관용차를 타고 다니면서 스스로 내가 제대로 있는 것인가 하는 그런 생각을 합니다.

 

기독교 신앙이 본인에게 지금까지 어떤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교회 영향이 굉장히 큽니다. 스스로 반추해 볼 때 제가 5살 때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새어머니가 오셨는데 새어머니 아래서 형, 자매들하고 관계가 안 좋고, 전형적인 갈등을 겪으며 상처를 받으며 자랐는데 그러한 환경이 미친 영향이 있고,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교회를 나갔는데 굉장히 광적으로 다녔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하면 기독교가 어린 시절에 심성에 미친 영향은 큰 것 같아요. 두 측면이 있는 것 같은데 자화자찬 같지만 겸손해야 한다는 의식이 있어요. 성경에 네 눈에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의 눈에 티를 없앤다고 하지 말라는 말씀이 어린 시절에 굉장히 영향을 미쳤어요. 제가 학자로서 글쓰기도 하고 토론도 하면서 이념적으로 급진적인 글쓰기는 하는데 대체로 개인적인 비판은 하지 않습니다. 또 제게 자기성찰성이라는 부분이 있어요. 어린 시절에 들었던 티와 들보의 은유가 깊이 남아 있어요. 다른 사람의 비판에 비추어서 제 자신을 돌아보는 버릇이 있지요. 제가 성찰적 진보, 좌파의 자기성찰성을 자주 이야기하는데 사실은 기독교적인 배경이 있어요.

 

학창시절 기억은 어떻습니까?

전형적인 모범생 스타일이었던 것 같아요. 재미는 좀 없었죠. 선생님과 관련된 기억 중의 하나는 전주에서 초등학교 다닐 때 전주교대 교생 선생님 생각이 나요. 그 교생 선생님을 무척 좋아했었고, 그때 같은 반 아이들 8명하고 같이 경기전 앞에서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있는데 애틋한 느낌이 들어요. 후에 그 기억 때문에 같이 사진을 찍었던 8명이 만났던 적이 있습니다.

전주 동북교회를 다닐 때 중등부 회장을 했습니다. 제가 정말 부지런했어요. 자전거를 타고 교회 안 나온 아이들 집을 다 돌았어요. 지금 생각하면 난리도 아니었죠. 애들 입장에서는 괴로웠겠지만 모범생이 교회 활동 열심히 하고 하니까 거부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저 때문에 교회 다닌 친구들도 많습니다. 생각나는 친구 가운데, 전정모라는 친구가 있었어요. 1 때는 무지하게 음치였는데, 3이 되니까 음정도 잘 맞추고 성가대도 하고, 그래서 우리가 신앙의 힘은 위대하다. 음치도 고칠 수 있다.”고 말하며 놀리기도 했던 기억이 나요.

 

교회와 멀어지게 된 것은 현실 기독교에 회의를 느꼈기 때문인가요?

교회를 안 다니게 된 것은 긴 스토리가 있는데요. 동대문에 있는 동인교회를 다녔는데 겨자씨라는 모임이 있었어요. 지금의 강경민, 박철수 목사와 같은 일종의 개혁 복음주의 그룹의 고등학교 그룹에 제가 참여했습니다. Hi-CCC 창립 멤버로 활동하기도 했고, 중앙고등학교 기독학생회도 만들기도 했고요. 그런데 대학교에 들어가서 서클 활동을 하다 보니 보수적 교회와 진보적 사회과학과의 갭이 많이 느껴지더군요. 그래서 고민을 많이 하다가 진보적 교회를 나가게 되었는데 새문안교회도 나가다가 최종적으로 경동교회 쪽으로 가게 되었죠. 당시 박노해, 태혜숙 같은 분들과 같이 활동을 했구요. 대학교 4학년 때 긴급조치로 감옥에 가기 전까지 교회를 다녔는데, 감옥 갔다 온 이후부터 잘 나가지 않게 되었던 것 같아요.

 

70년대에 노동현장으로 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다가 학자의 길을 걷게 된 것에 대해 일종의 부채의식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때 했던 생각들이 현재에 어떻게 이어지고 있나요?

70년대는 참 고통스러운 시간이기도 했지만 그 역동적인 시대를 산 기쁨도 있는 것 같아요. 그런 고통스런 시대를 살면서 느낀 연대의식이 현재에도 관통하고 있어요. 나는 스스로 2선 지식인이라고 표현합니다. 100%를 다 던져서 투쟁하는 친구들에 비하면 나는 기득권도 지키면서 2선에서 따라가는 지식인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 당시는 대학원에 간다던가 하면 부끄러운 일이고, 노동자가 되면 존경스러운 삶을 사는 것으로 인식되는 시대였어요. 이우재라는 친구가 있는데 비상한 머리를 가진 친구가 투쟁하느라고 자기 인생을 펴보지 못하고 살다가 이제야 논어학당 하면서 책도 내고 자기 자리를 찾은 것을 보면서 미안한 마음도 들어요. 그 과정에서 죽은 친구들도 있기 때문에 그러한 부채의식을 가지고 제가 2선에서라도 뭔가 하려는 노력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는 1978년 긴급조치 위반으로 1년간 옥살이를 하고 가석방으로 출옥한 후 노동현장으로 가기 위해 열관리기능사 자격증 시험을 보기도 했다. 그러다 박정희 정권이 붕괴하면서 복학의 길이 열리고 학자의 길을 걷게 된다.

 

교육감으로서 그러한 부채의식을 갚는다는 의식을 하게 되나요?

2선 지식인으로 30년간 살아오면서 지켜왔던 진보적 가치를 교육 영역에서 실현하려고 나름의 노력을 하고자 생각 중입니다. 우리 시대는 일종의 민중의식 같은 것이 있었어요. 한때 제적당하고 감옥도 가고 했는데, 아버지는 평생 뭐 먹고 살래? 독립운동 했던 사람들 자녀들은 다 어렵게 산다는데하시며 안타까워 하셨던 기억도 나요. 어쨌든 그렇게 해서 밑바닥까지 가고 다 잃어본 경험들이 좋은 교훈인 것 같아요. 어려울 때 원점하고 비교해서 생각할 수 있게 해요. 지금도 가끔 아무 것도 없었던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많이 가지고 있는데, 또 잃으면 어떠한가하는 생각을 해요.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친구도 있고, 민주화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살았던 세대의 일부이기 때문에 개인적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하지 않겠나 싶어요. 저도 조금 지나면 기득권적인 사고를 할지도 모르겠으나 최소한 마음으로는 반기득권적인 가치와 꿈을 실현하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는 자세로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요.

 

교육감의 길은 이전에 예상하지 못했던 길이기도 할 텐데 평소에 미래를 생각했던 부분들이 있었다면 어떤 길이었는지, 또 앞으로 이후의 길에 대한 비전은 어떠한지요?

제가 교육감에 안 나왔더라면, 70, 80년대 고투하면서 고민했던 것들을 지적(知的)으로 풀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한국의 진보 사상을 동아시아적 시각에서 바라보는 책을 쓰고 싶었어요. 나름의 아이디어가 있었는데, 지식인으로서 조희연의 삶을 포기할 때 그런 작업들을 중단해야 하는 아쉬움이 있었어요. 어쨌든 제가 당선된 것이 어떤 신적 부르심이 있었다면 그 목적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할 때, 현재의 교육시스템에서 승자든 패자든 모두 불행한 현실을 개혁해야 한다는 시대적 과제가 있다고 생각을 해요. 이 점에서 저의 학자로서의 장점이라면, 하나의 문제를 종합적으로 볼 수 있고, 사회구조적 관점에서 볼 수 있고, 성찰적이고 유연한 점이 있다고 할 수 있어요.

이상적 롤 모델이라면, 진보의 가치와, 노무현 대통령의 진정성과, 김대중 대통령의 뱀같이 지혜로운 유연한 방법론을 잘 결합하고 싶은 소망이 있죠. 그리고 약간은 성찰적이고자 했던 노력을 통해, 보수와 진보의 한계를 넘어서는 균형을 잡아내고 싶다는 고민이 있어요. 어쨌든 앞으로는 비판받을 일만 남아있기 때문에, 어떻게 비판을 잘 감내하며 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있어요.

 

스트레스가 많을 것 같은데 스트레스 관리나 건강 관리는 어떻게 하나요?

예전에는 글 쓰는 스트레스가 많았어요. 제가 글을 좀 많이 쓰는 스타일이에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스트레스가 가장 강해요. 글을 쓸 때는, 물론 교수 연구실도 있지만, ·고등학생들이 다니는 독서실에 가요. 제 옆에 중학생도 있고, 고시생도 있는데, 집중해서 글쓰기는 그쪽이 좋아요.

지금은 글쓰기 스트레스 대신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 미래를 모르는 상황에서 고독한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새로운 스트레스에 직면하고 있죠. 예전에는 늦잠도 잘 잤는데 요즘은 530분이면 깨요. 밤에는 가급적 일찍 자려고 노력하는데 잘 되지는 않죠. 하여간 운동을 많이 하려고 하는데 집 앞에 항동 수목원이 있어서 아침에 앞산을 다녀오곤 합니다. 원래는 등산도 좋아하고 사진 찍는 것도 좋아하고, 자전거 타는 것도 좋아하는데, 앞으로 일요일에는 다른 것 안 하고 고정해서 하려고 해요.

 

교육감 되고 나서 여러 사람들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들었을 텐데 명심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신영복 선생님이 쓰신 글을 집무실의 벽에 걸어두었어요. ‘떨리는 나침반, 떨리는 지남철에 관한 글인데요. 늘 북극성을 가리키고 있는, 지향점을 잃지 않는, 그러나 그것을 향해서 지속적으로 떨리는 그 떨림의 의미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면,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목표를 향해 간다는 의미죠. 자신의 명확한 방향성은 있지만, 다양한 입장을 듣는 것. 이 얘기 들으면 이 얘기가 맞는 것 같고, 저 얘기 들어보면 저 얘기가 맞는 것 같은 것이 떨림이 아닌가 생각돼요. 하지만 결국 자신의 균형 잡힌 입장을 찾아가게 되는 것이라고 봐요. 기존의 진보가 지향하는 목표는 분명하고 확신에 차 있어요. 그런데 떨림이 부족한 것 같고, 그렇다고 떨림만 있으면 흔들리게 되니까 그 두 가지가 다 필요한 것 같아요.

 

그런 성향들이 교육감 직책을 수행하기에 장점도 있을 것 같고 단점도 있을 것 같습니다만

스스로 다른 사람들 이야기를 많이 듣는 스타일입니다. 여러 입장에 대해 귀가 열려 있으면서 자신의 입장을 유연하게 견지하는 사려 깊은 진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내 입장이 옳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입장을 악마화하는 입장을 꼭 취하고 싶지는 않아요. 세상을 이분법으로 보는 입장은 현실의 복잡성을 못 보게 되는데 교육은 훨씬 더 복잡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분법적으로 보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교육감으로 지향해야 할 국민들의 바람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이런 질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선거 민심을 분석하는 가운데 박원순을 지지했던 국민들이 조희연을 찍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하는 것입니다. 그 부분을 어떻게 읽어야 할 것인지, 그 부분에 감추어져 있는 국민들의 바람이 무엇인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희 선거 전략에서도 중요한 지점이 박원순을 찍지만 조희연을 찍지 않는 사람들의 지지를 어떻게 얻어낼 것인가 하는 거였어요. 물론 박원순 시장의 탁월함이 있고 재선으로써 보여주는 성과가 있는 것에 비해 저는 행정적 경험이 없다는 것에 대한 불확실성과 불안감도 있을 수 있고, 자녀교육에 대해서 학부모들이 가지는 안정지향적인 성향도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진보적 가치를 추구하면서도 질서와 안정에 대한 보수적 심리를 잘 끌어안고 갈 수 있다면, 지지가 확장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해요. 한편으로는 이번 선거에서 흥미로운 부분이 정몽준 선거운동원이 저희보고 조희연을 찍겠다고 했던 사람이 꽤 있었는데, 이런 민심도 헤아리고 살려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봐요.

 

<병든 사회, 아픈 교육>에서 우리 사회의 경쟁 구조에 대해 매우 큰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는 것 같습니다. 미친 경쟁이라고 불리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대학 구조를 비롯한 사회 구조 전반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하는데, 문제는 그러한 근본적인 상황들이 금방 바뀌지 않은 가운데 초중등교육에서는 어떤 해법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대학이나 사회를 바꾸면서 초중등교육을 바꾸는 쪽으로 노력을 해 왔는데, 이제는 거꾸로 생각해야 할 것 같아요. 초중등교육에서 새로운 싹을 틔우고 실험을 해서 이 힘으로 대입제도나 사회제도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과 인식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해요. 예를 들면 혁신학교적 교육을 바라는 학부모들의 소망이 진보교육감을 대거 탄생하게 했던 동기였는데, 혁신학교가 추구하는 방향은 대학입시경쟁교육으로부터 자유로운 자유교육, 창의교육일 거예요. 이것이 마구 확산되면 이것을 반영하는 식으로 대입제도가 바뀌어야 할 겁니다. 그것이 입학사정관제가 확대되는 형식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여하튼 창의적 인재를 선발하는 방식의 변화가 나타날 것입니다.

한편 다른 교육감들과 함께 학벌 문제나 대입 제도에 대해서도 꾸준히 문제제기를 하며 공론화하려고 합니다. 이번 지자체 선거나 세월호 사건은 그것을 정면으로 제기해도 큰 반향을 일으키는 상태에 왔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요.

 

입시경쟁 문제의 해결 방향은 크게 세 가지라고 봅니다. 첫째는 경쟁의 강도를 완화하는 방법, 둘째는 공정한 경쟁을 위한 출발선을 맞추는 방법, 셋째는 경쟁의 질을 교육적으로 높이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학학벌구조를 바꾸는 것은 첫째 영역이고, 혁신학교 관련한 것은 셋째 영역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둘째 과제인 공정한 경쟁을 위한 출발선을 맞추는 방안으로 학력 격차, 교육 불평등 문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이를테면 학력격차를 줄이고 모두가 성취할 수 있도록 하는 완전학습이 가능하다고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학력격차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보십니까?

완전학습은 어떤 과목에 있어서는 가능한 목표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국영수와 같은 과목에서는 완전학습이 쉽지 않은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특히 사회 경제적 불평등으로 인해 제약을 받는 점이 있어요. 그런 점에서 언제나 모든 사람들이 공정한 출발선에 서도록 부단히 만들어주는 교육불평등 완화 정책이 중요할 것 같아요. 하지만 현재의 교육시스템이 유지되는 한, 무모하리 만치 치열한 경쟁 상황이 유지되는 한, 교육복지특별사업이건 방과후학교 바우처건 불평등을 상쇄하기가 참 어려운 상황인 것 같아요. 왜냐하면 지원해 봐야 100만원 수준일 텐데, 잘 사는 부모들이 1,000만 원을 쓴다면 그 간격을 메우기가 어려운 상황이 아닌가 싶어, 경쟁 자체를 완화하는 파격적인 정책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사회구조 속에서 학교와 교사의 영향은 얼마나 된다고 보시는지요?

모든 개혁과 변화는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죠. 그런데 모든 교사가 다 능동적이지는 않은 것 같아요. 일부 소수는 케어를 받아야 할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더 많은 교사들이 능동적인 개혁주체와 새로운 교육적 실험의 주체로 나설 수 있도록 하지 않는 한 어느 하나도 실행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개혁이 행정적으로만 일어날 수는 없어요. 행정을 하더라도 교사가 새로운 실험을 할 수 있는 조건, 구조를 전환하는 것이지 결과를 창출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결국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교사가 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획기적인 교원업무 정상화를 통해서 교사들이 뭔가 새로운 실험을 할 수 있는 심리적, 시간적 공간을 만들어 드리고, 가능하면 후진국형 경쟁 방식을 선진국형 경쟁방식으로, 또 새로운 질의 교육에 대한 교사의 마인드를 틔워주는 연수 과정들을 변화시키는 것에 대한 노력이 필요한 것 같아요. 또 학생도 지식 수용자로만 보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어떤 학교에서는 입시에 저해된다고 동아리 활동을 못하게 하기도 했다는데, 사실 말이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동아리 활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협동 능력, 리더십 능력이야말로 교육이 추구하는 목표 중 하나이기 때문에, 동아리 활동도 교육의 중요한 일부분이라고 인정해야 합니다.

 

혁신학교의 핵심을 교사의 소통과 협력이라고 한다면, 이런 힘을 어떻게 이끌어낼 것인가 하는 것이 혁신학교 일반화의 열쇠라고 봅니다. 혁신학교가 열정적인 교사들이 한 곳에 모여 만들어낸 변화라고 한다면, 다른 학교에서 일반화되기는 어렵지 않은가라는 비판이 있을 수도 있는데요.

어제 혁신학교 부장 선생님들과 간담회를 했는데요. 혁신학교 시즌1을 시즌2로 어떻게 업그레이드시킬 것인지를 이야기했습니다. 혁신학교의 성공적인 사례들이 모델화될 필요가 있고 다른 곳에서 쉽게 따라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확산될 것인데, 확산의 과정에서는 유형적 다양화가 되어야 할 필요가 있어요. 지금은 교사의 자율성을 주고 학교의 민주적 관계를 확대해서 교사가 창의적인 교육실험들을 할 수 있게 하는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것이 있을 거예요. 예를 들어 1987년을 기점으로 권위주의 시대에서 민주주의 시대로 간 것처럼, 권위주의 시대를 살던 사람에게는 엄청난 변화이지만 지금 민주주의는 우리에게 주어진 조건일 뿐이지 민주주의 자체가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고 어떤 민주주의인 것이냐가 문제이죠. 혁신교육도 어떤 혁신교육이냐가 문제되는 단계로 가야될 수도 있어요. 2기 혁신교육은 확산기가 되어야 하고 새로운 경험과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마지막으로 좋은교사운동을 비롯한 교원단체에 대해서 바라는 점을 말씀해 주세요.

좋은교사운동은 이름을 참 잘 지은 것 같아요. 좋은 교사의 모델이 많이 나오면 좋겠습니다. 큰 틀에서 보면 공문을 잘 쓰고 행정을 잘해서 평가받는 것보다 교육과 생활지도를 잘 하고 거기에 전념하시는 분들이 존경을 받고 평가를 받고 승진의 기회를 많이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봐요. 그리고 이미 존경받을 만한 선생님들의 롤 모델이 많다고 생각해요. 혁신학교도 용기 있는 분들의 실험이 있었던 것인데, 교육청이 제도적으로 지원함으로써 학교현장에서 선도적으로 이루어지는 좋은 실험들이 무엇이 있을까, ‘좋은교사에 의한 좋은 실험들이 무엇이 있을까 주의해서 보고 싶어요. 그런 점에서 교원단체가 선도해 주면 좋겠어요.

또한 교육청에 대한 감시 역할도 당연히 해야 할 것입니다. 제가 시민단체의 성원으로 권력 감시를 했는데 이제는 아무래도 감시받아야 하는 그런 입장이고, 비판을 두려워해서는 안 될 것 같고, 비판에 귀를 기울이는 자세로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또 항상 교사의 자기 욕심이 있을 수 있는 지점이 있는데, 모든 조직은 부패할 수 있는 소지가 있고 자기논리의 함정이 있기 때문에, 조직 논리 때문에 문제를 전체 학생, 교사, 사회의 관점에서 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아요. 내부 구성원의 이해관계를 뛰어넘어 전체 사회의 관점에서 더 많이 바라보는 단체가 좋은 단체일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교사의 자기 혁신도 선도할 수 있으면 더 좋을 것이라 생각해요.

특히 좋은교사운동의 균형 잡힌 시각과 훌륭한 정책 제안 역량을 높이 평가하고 있어요. 좋은교사운동 이름대로 모두가 좋은 교사가 되게 하는 운동을 힘 있게 펼쳐 주시길 바라고, 교육감으로서 모든 교원단체와 건설적인 파트너십을 맺고자 하는 것처럼 좋은교사운동도 서울교육 발전을 위해 힘을 보태 주시기를 간곡히 요청합니다.

 

예정된 인터뷰를 마치고 화제는 자사고 문제로 옮겨갔다. 가장 뜨거운 이슈이긴 하지만 그 대화를 다 옮길 수는 없다. 다만 대화 가운데 받은 인상은 떨리는 나침반이었다. 방향성에 대해서는 분명한 관점이 있지만 가는 방법에 대해서는 유연하면서도 치밀한 대안을 모색하는 자세를 엿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 교육의 모순이 가장 치열한 형태로 얽혀 있는 서울교육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 걱정스러우면서도 기대가 된다. 왜냐하면 그가 말한 대로 이분법적 시각을 뛰어넘어 문제를 모든 측면에서 바라보는 치밀한 학자적 관점과 공공선을 향한 신념으로 달려온 시민운동가의 훈련이 이 복잡한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중요한 자질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