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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개발협력은 우리를 더 성숙하게 합니다 (정종혁 KOICA ODA교육원 원장)-2014.8

좋은교사 2014. 9. 5. 17:20

국제개발협력은 우리를 더 성숙하게 합니다

 

 

 

정종혁 (KOICA ODA교육원 원장)

대학 졸업 후 UNESCO 한국위원회에 근무하였으며, 1991년 한국국제협력단(Korea International Cooperation Agency, KOICA) 설립 시 1기로 입사하여 보건의료 팀장, 볼리비아 KOICA 소장, KOICA ODA(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교육원 원장을 거쳐 최근 경제사회개발부장으로 자리를 옮겨 공공행정, 교육보건, 농어촌개발, 녹색환경산업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인터뷰 / ·김기웅

 

 

 

작년부터 시작된 YGA동아리는 지구촌의 아픔과 고통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는 다소 좋은교사운동 내에서 조금은 낯선 동아리였다. ‘학원복음화사역 속에서 YGA를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하는 생각은 있었으나 구체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던 시점에 KOICA를 알게 되었고, 이곳에서 교육을 담당하는 분야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 볼 기회를 갖게 되었다. 지난 5월 코이카 ODA교육원 주최의 개발교육 워크숍에 참석하면서 원장님과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원장님은 대학 졸업 이후 주로 해외에서 생활을 하셨는데, 한국에 대한 기억, 구체적으로 청소년기 성장과정과 학교에 관한 것 중에 생각나는 것이 있나요?

제 고향은 전남 구례이며 제가 자라던 마을에서 지리산 노고단과 왕시루봉을 바라보며 소설 <큰 바위 얼굴>에 나온 것처럼 큰 꿈을 품고 상상하던 기억이 납니다. 초등 5학년 때에는 부모님과 함께 광주시로 나왔고, 수줍은 성격이었으나 플라스틱 과목왕배지를 많이 달아 볼 만큼 공부도 수준급으로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선생님에 대한 기억과 관련해서 제게는 작은 좌절로 기억되는 어느 봄날 사생대회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당시 저는 굉장히 열심히 그림을 그렸는데, 분명히 제가 볼 때는 별로였던 남동생의 그림은 칭찬하시고 제 그림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시는 선생님의 모습에서 미술에 대한 꿈이 꺾이는 경험을 했습니다. 칭찬과 격려가 필요한 어린 시절의 저와 같은 사람들에게 선생님이란 존재가 끼칠 수 있는 영향이 얼마나 막대한가를 보여주는 예시지요.

무등중학교 입학해서는 처음으로 영어를 독하게 배우면서 영어공포증도 경험했습니다. 주입식이나 공포스런 분위기로 몰아치던 분위기가 기억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어학은 학문으로 접근하기보다는 생활과 언어로 배워가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봅니다.

전주 쪽으로 진학하려다가, 평준화학교인 광주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그 배경에는 아버지가 일부러 고생하러 가지는 말아라!’라고 하신 말씀이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것이 제게는 학교공부에 대한 싫증과 뺑뺑이로 왔다는 좌절감 등을 일으켰고, 이는 공부에 대한 의욕 상실과 성적 하락으로 귀결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절에 꿈마저도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입시 공부에 대해서는 의욕이 없었으나, 인문학 등 독서에 탐닉하면서 진로에 대한 고민은 많았습니다. 인간에 대한 깊은 관심으로 의사 또는 심리학자 등을 생각해 보다가 문과를 선택했죠.

이러한 학창시절을 돌이켜 볼 때 드는 생각은, 선생님들이 학생의 능력과 욕구들을 좀 더 고려하고 존중하며 아이들 하나하나를 잘 관찰하는 것, 개별적인 피드백을 제공하며 학교와 가정을 잘 연계하여 세심한 진로교육을 이룬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학창시절, 교육에 대한 안 좋은 기억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이러니하게도 교육 관련 기관에서 일하고 계신데, 이런 반전의 계기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직장 생활을 시작한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에서 뵙게 된 강대근 선생님과의 만남이 제게는 참 소중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선생님의 말, 행동, 성품이 제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분과 일할 때면 제가 부하직원이 아니라 동료임을 느끼게 해주셨습니다. 직원 엠티(M.T)를 가더라도 남자 직원들만 훌쩍 다녀오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부부와 가족을 함께 초청하셨습니다. 남자들이 가족들에 앞서 선발대로 엠티 현장에서 준비를 마치고, 가족들이 도착할 터미널로 달려가서 가족을 찾습니다라는 피켓을 들고 환대했던 경험이 생생합니다. 해외공항에서 여행을 인도할 가이드를 만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기분이었죠. 엠티 중에는 부부의 중요성을 늘 말씀하셨고 직원들과 세족식·산행·문화탐방(솟대 등 지역문화)도 진행했습니다. 제 성격이 터프하게 바뀌어 가면서 내면의 에너지를 분출해내기 시작했던 열혈청년의 혈기를 강대근 선생님이 여러모로 잘 잡아주셨습니다.

강대근 선생님은 일찍부터 일본 자이카(Japan International Cooperation Agency, JICA)를 우리에게 모델로 보여 주시면서, 코이카의 정신이나 출발에 대한 인식을 넓혀 주셨습니다. 또한 청년 운동에 대한 철학이 분명하셨고, 아시아 도처에 넓은 NGO 관련 인맥을 갖고 계셨으며, 기관 내부에서도 쓴소리를 주저 없이 하시면서도 재미있고 매너 있던 선생님이셨습니다. 그분으로 인해 균형 잡힌 인식과 안목을 갖출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제가 아시아 권역에서 국제협력사업을 펼쳐 보면서 강대근 선생님을 모르는 관계자들이 거의 없을 정도였습니다. 코이카 초창기에는 기관의 성격상 각 부처별 사람들이 모여 논의를 하기 때문에 쉽게 합의가 나오지 않았는데, 국제협력의 선각자 역할을 해내셨던 스승님을 따라서 포기하지 않고 일을 해나갈 수 있도록 동기를 주신 분이십니다.

제 삶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또 한 명의 사람은 독실한 기독교인으로서 늘 내 모습을 지키며 말없이 기도하며 삶으로 전도했던 아내입니다. 저는 40이 넘어서야 회심을 경험하게 되었고 광야같은 40년을 돌아 내 인생의 근원,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코이카 ODA교육원은 어떤 일을 하는 기관입니까?

코이카는 선생님들에게 해외봉사활동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 것 같은데 정확하게는 1991년 정부출연기관으로 설립되어 정부 차원의 대외무상협력사업을 전담 실시해 온 기관입니다. 우리나라와 개발도상국가와의 우호협력관계 및 상호교류를 증진하고 이들 국가의 경제사회발전을 지원함으로써 국제개발협력을 증진하는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 ODA교육원은 바로 이러한 국제개발협력 분야를 잘 수행할 전문가 육성·원조관련 이해관계자 간의 파트너십 강화·국민의 공적개발원조(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이해도 제고를 목적으로 세워진 부설교육기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국제개발협력 분야에 대해서 좀 더 설명해 주세요.

개발협력 사업은 코이카가 선도적으로 진행해 왔으며, 현재는 정부 산하 여러 부처들이 단위사업이나 국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등 확산되고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입니다. 최근에는 개발협력에 대한 관점과 철학의 재정립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저 역시 국제개발협력분야의 현장에서 열심히 뛰어온 당사자로서, ‘정말로, 개도국이나 제3세계 국가들에게 원조를 넘어선 건강한 영향력을 줄 수 있는가?’, ‘수원국의 주체성과 자발적인 역량을 키워가는 사업은 어떻게 가능한가?’ 등 매우 중요한 질문들을 직면하고 있습니다.

잠비아 출신의 거시 경제학자 담비사 모요는 죽은 원조(Dead Aid)’라는 저서에서, 일방적인 원조는 치유책을 가장한 질병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담비사 모요는 모기장을 무료로 배포하는 일이 현지 모기장 제조업자를 도산에 몰아넣는 등 수원국의 풀뿌리 경제를 파괴하였으며, 원조의 절정기였던 1970-1998년의 빈곤비율이 기존 10%에서 66%로 오히려 상승한 현상을 지적하며, 해당 국가의 기초 인프라 구축·자유경제체제를 통한 민간산업 육성 및 장기적인 일자리 창출 등 풀뿌리 경제를 살리는 방향으로 원조의 전환이 이루어져야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한편, 국제개발협력 분야에 책무성을 갖고 참여해 가는 일이 중요한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 일은 원조라는 형식을 제공받는 사람이나 국가가 아닌, ‘공여하는 사람이나 국가를 성숙하게 합니다. 이웃과 사회를 향한 공동체의식이나 시민의식의 성숙을 가져오며, 우리 사회의 정신과 문화를 명실공히 선진국으로 만들어 가는 기재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특별한 가치를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국민의 공적개발원조(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ODA) 이해도 제고라는 교육원의 목표와도 직결된다고 생각됩니다. 지난 5월에 차세대 개발교육 워크숍을 개최한 배경과도 관련있다고 볼 수 있겠죠?

잘 보셨습니다. Make Poverty History(빈곤을 역사 속으로) 캠페인 이야기를 드리겠습니다. 200572일 영국 에덴버러에서는 Make Poverty History라는 기치 아래 225천 명의 사람들이 운집하였습니다. 이들은 영국 글렌이글스에서 개최된 G-8 정상들에게 최빈국의 부채탕감, 더 많고 더 나은 원조(More and Better Aid) 제공, 공정한 무역구조 등을 요구하였습니다. 또한 444천 명의 사람들은 개도국의 빈곤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이메일을 영국 수상에게 일제히 보냈습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G-8 정상들은 2010년까지 추가로 480억 달러를 빈곤퇴치를 위해 공여하기로 약속했으며, 매년 18개 높은 채무빈곤국에 10억 달러의 빚을 탕감해주기로 약속했습니다. 우리 자신의 지극히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서도 자기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국가에 목소리를 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이처럼 나의 일이 아닌 지구 반대편의 가난한 사람들이 겪고 있는 문제 해결을 위해서 세계 정상들에게 힘을 합쳐 목소리를 내고 실질적인 성과를 이루어낸 이 사건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단순히 국제개발에 대한 인지 제고 및 공적개발원조 지지 세력을 키워내는 차원을 넘어, 세계의 문제에 대해서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아가는 글로벌 시민(Global Citizen)을 길러내기 위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이것을 EU 등 선진원조공여국에서는 개발교육(Development Education)’이라고 부릅니다. 개발교육은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상호의존성을 인지하는 토대 위에서, 글로벌 이슈와 개발 이슈를 학습하고, 나아가서는 통합적·창조적 사고능력 형성과 능동적인 참여태도를 함양하도록 하는 교육이라고 부연할 수 있겠습니다. 이미 많은 개발 NGO 기관들이 세계시민교육·국제개발협력교육·나눔교육 등의 이름으로 시행해 온 영역이기도 합니다.

저는 거시적인 관점에서도 이 개발교육이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섣불리 말하기는 조심스럽지만 우리 국가를 진정한 선진국으로 만들 수 있는 교육기반이라고 전망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사람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길을 같이 고민하면서 개인주의나 물질주의 등에 함몰되지 않고 자기존중감, 이타주의 등을 바탕으로 봉사와 나눔, 헌신 등을 잘 가르친다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현하는 국가로 갈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국제개발협력교육이 영국이나 아일랜드 등 유럽 국가들에서는 사범대 이수과목으로 편성될 정도로 학교 현장에도 깊숙하게 자리 잡은 것 같습니다.

사실 이들 국가는 개발교육이 시작된 지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ODA자금 액수를 보면 국가별로 나누었을 때에는 미국이 절대적으로 세계 제1의 공여국이지만, 유럽 국가들이 합쳐진 EU와 비교하게 되면 가장 많은 ODA를 제공하는 주체는 EU입니다. 뿐만 아니라 국제기구 내 국제개발 의제설정에 있어서 유럽의 역할은 거의 독보적이라고 할 수 있죠. 아마도 이것은 연간 220밀리언 유로(한화 약 3,280)가 사용되는 개발교육과 인지제고에 기인한 영향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이들 국가는 교육부, 외교부 및 정부원조기관, NGO들이 다 같이 연합하여 교육과정 내에 개발교육 내용을 확대하고, 교사 연수 및 교재 발간 등 공교육 전파에 힘을 쏟아왔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국내의 경우, 많은 기관들이 각자 다양하게 가르쳐 왔는데, NGO 기관들과 ODA교육원의 교육 만으로는 인식확산이 쉽지 않아 공교육화가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이를 위해 크게 두 가지를 고려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다양한 경험과 사역을 갖고 있는 분들이 모여 개발교육 논의를 계속 발전시켜 갈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 가운데에서 플랫폼 역할, 기관 간의 허브 역할을 코이카가 해야 할 것으로 보고요. 최근에는 월드프렌즈 교육원을 영월에 건립하고 있는데, ODA 캠프로 각 기관 관계자들간의 네트웍을 다지고 교원 연수도 점차 확대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둘째로는 개발교육 협력을 위한 자문위원회(협의체) 발족도 염두하고 있는데 기본 방향성은 직접 정하겠지만 개발교육 교육과정이나 콘텐츠 연구는 이 영역에서 열심히 일해 온 NGO 기관들과 협력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 좋은교사운동 YGA(Youth Global Action) 연구도 도움이 될 수 있겠습니다. 지금 단계에서는 좋은 콘텐츠가 만들어지고 적합한 강사진들이 구축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개발교육 미디어(동영상, 원격연수 형태) 교재를 만들어서 교육부와 협의하여 확산하는 일에도 힘쓸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과 더불어 교사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을 나눠주세요.

얼마 전, 명동성당 앞을 지나가다가 보게 된 화가들의 글귀가 생각납니다. ‘저희들은 가난한 사람을 구제할 수 없지만 가난한 사람을 위로할 수 있습니다

1991년 시작된 코이카에 30년이 곧 다가옵니다. 한 세대가 지나가고 다음 세대를 준비해야 하는 시점에서 인간의 삶을 고양하자는 숭고한 목표 아래, 우리 한국이 잘 할 수 있는 개발협력(한국형 새마을운동 등)을 잘 펼칠 수 있는 우리만의 원조방식을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 다음 세대에서는 선진국의 원조공여국 그룹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성숙함을 상상해 봅니다.

그런 점에서 선생님들의 가르침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청소년들이 과중한 학업과 다양한 스펙을 쌓는데 그치지 않고, 그 과정들을 통해서 직업 너머의 인생을 걸 만한 가치를 발견하고, 그 가치에 헌신해 갈 수 있도록 하는 교육에 힘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특히, 개발교육 영역에서도 좋은교사운동 같은 건강한 교사단체들이 교육과정 자문역할도 담당해 주시고, 선생님 한분 한분이 교실수업이나 생활지도에서 개발교육의 가치를 인식시키며 실천하게 도와주신다면 좋겠습니다.

 

현재 전 세계에 수많은 빈곤국가, 개발도상국가들을 돕는 일에 참여하고 있지만 정작 가장 가깝고도 먼 곳, 북한의 청소년들을 돕는 일과 탈북 청소년들을 잘 교육하는 일이 앞으로 해야 할 개인적인 과제라는 원장님의 말씀을 들었다. 개발협력의 밑바닥 정신이 바로 내 주변과 이웃에서부터 실천되어야 함을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