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가 어려운 아이를 돕는 좋은 의사
정재석 (서울아이정신건강의학과 원장)
대구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성장했다. 서울대학교 의대를 졸업하고 정신과 전문의가 되었다. 국군수도병원 정신과 과장, 서울대학교병원 소아정신과에서 임상강사를 거쳐 소아정신과 전문의가 되었다. 지금은 수원에 있는 자신의 병원에서 아이들과 상담하면서, 난독증 학부모 단체와 아이들을 돕는 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등산을 아주 좋아해서 안나푸르나 등반을 준비하고 있다. <난독증의 진단과 치료>, <난독증 심리학>, <수학부진아 지도 프로그램 매스리커버리> 등의 책을 번역했다.
인터뷰 / 글 / 사진·김중훈
어느 날 엄마 손 잡고 찾아온 아이를 보고 어떻게 도와주어야 할지를 몰라 난독증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점점 더 많은 어머니들을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상담하고,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치료 방법을 찾고자 수백 권의 외국 원서를 읽었다는 소아정신과 의사가 있다. 어느새 그는 아마존닷컴의 우수회원이 되어 미국에서 무료로 책이 배송될 정도라고 한다. 교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글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아이들이 글을 읽을 수 있도록 돕고 있는 소아정신과 의사 정재석 원장을 만나보았다.
여러 가지 직업 중에 의사, 특별히 소아정신과 의사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된 사연이나 이유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제 적성과 상관없이 성적이 되고 또 어머니의 권유가 있어서 의대에 진학했습니다. 그런데 수술을 많이 하는 의사의 특성상 손재주가 뛰어나야 하는데 이와는 거리가 멀었고, 또 피를 무서워해서 입학 전부터 의대에 가는 조건이 정신과에 지원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소아정신과에는 원래 자폐 아동에 많은 관심과 흥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을 만나면 마음도 편안해지고 그랬습니다.
자폐 아동을 만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하였는데 일반적으로 정신병을 가지고 있는 이들을 만나는 사람들은 낯설거나 무서워하지 않나요?
일반 사람들은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보면 무서워하고 낯설게 느낍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특수학교가 들어오면 혐오시설이라고 해서 반대하는데 많은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아주 가끔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실수와 사고를 저지르기는 하지만 대부분 아주 온순하고 소심합니다. 범죄율도 일반 사람들에 비교해 현저하게 낮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신분열과 자폐는 대부분 말과 행동이 상당히 예측 가능합니다.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경우 두려움, 망상 등의 증상에 의해서 행동합니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욕심, 이익 등에 따라서 다르게 행동하고 말하기 때문에 오히려 예측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들과 만나고 대화하는 것이 아주 안전하고 편안하게 느껴집니다. 특별히 서울대 의대는 교수님의 영향을 받아 전통적으로 자폐에 대하여 깊이 공부합니다. 저도 자폐증에 많은 매력을 느꼈습니다.
요즘 장래 희망을 조사하면 정신과 의사가 되고 싶다는 학생들이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정신과 의사만의 직업적 매력이 있나요?
최근에 청소년들이 범죄 프로파일러와 같이 사람들의 심리를 파악하는데 많은 호기심을 가지는 것 같아요. 정신과 의사들은 특성상 환자들과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의사가 서울에서 100명의 환자를 진료하다가 대전에 있는 병원으로 옮기면 90명이 함께 따라 갈 정도입니다. 특별히 정신과 의사는 환자의 진료뿐만 아니라 인생 전반에 책임을 가지고 조언하고 돕는 역할을 합니다. 환자들도 의사를 신뢰하고 잘 따릅니다. 이렇게 깊은 신뢰가 있기 때문에 부모님과 핫라인을 가지고 있습니다. 환자가 아주 나빠지기 전에 미리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환자와 가족 그리고 정신과 의사는 남다른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소아정신과 의사로서 선생님들께 부탁드리고 싶은 조언이 있을 것 같습니다.
첫 번째가 과잉행동증후군(ADHD)입니다. 우선 ADHD로 치료 받고 있는 학생들은 지속적으로 치료를 받으면 상당히 좋아지는데 선생님 요인으로 치료를 중단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의사 입장에서는 부작용 없이 그리고 드러나는 행동에도 문제없이 학생에게 맞는 약을 잘 조절해서 아주 만족스럽게 치료를 진행합니다. 그런데 이런 학생의 양호한 모습을 본 선생님께서는 ADHD가 아닌 것 같다고 학부모님께 말씀하셔서 치료를 중단하는 사례가 종종 있습니다. 학부모님은 의사가 잘못 진단해서 과잉진료를 한다고 오해합니다. 이러한 선생님들의 관점에는 ADHD에 대한 이해의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들이 생각하는 ADHD는 충동성, 공격적인 행동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사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주의력 결핍으로 멍하게 있거나, 충분한 시간임에도 주어진 활동을 잘 못하는 것, 너무 자주 깜박하는 이런 것에 대한 고려가 적은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ADHD가 아니라고 하거나 약을 복용할 필요가 없다고 학부모님께 조언을 하면 대부분 의사의 진단을 오해하고 치료를 중단하기도 합니다. 또 하나는 학생이 진단을 받고 약을 복용하면 초기에는 멍하게 누워 있거나 밥을 잘 먹지 않는 등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아이들이 불쌍한 마음에 떠들어도 괜찮으니 약을 먹지 말라고 합니다. 그래서 중단하기도 합니다. ADHD는 크게 3가지로 나누어집니다. 첫째는 과잉행동형, 둘째는 주의력 결핍형, 셋째는 과잉행동과 주의력 결핍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경우로 나누어집니다.
ADHD는 치료가 되거나 좋아진다고 생각하기보다 수업을 방해하거나 타인에게 피해를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선생님들은 아이가 불쌍해서 떠들어도 좋으니 약을 먹지 말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실제 치료를 하면 좋아지나요?
네, 그렇습니다. 대체적으로 처음에는 효과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약 3년 정도 치료를 받으면 과잉행동은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약을 계속 복용하면 주의력 결핍도 개선됩니다. 성적도 올라가고, 그 전에는 사귀지 못했던 친구도 생기기 시작합니다. 물론 약에 대한 부작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사는 초기에 조심스럽게 조절합니다. 그런데 약이 맞지 않으면 선생님과 학부모님은 의사의 진단이 잘못 되었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 같습니다. ADHD의 경우 난독증과는 다르게 사람들에게 이미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의학에서는 약 5% 정도로 추정하고 있지만, 실제는 전체 ADHD 중에 약 10% 정도만 진단과 치료가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에서는 ADHD 치료를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더 많이 받습니다. 또한 이 약은 소위 ‘공부 잘하는 약’으로 논쟁에 휘말려 있기도 합니다. 상당히 예민한 이슈입니다. 마치 운동선수 금지 약물복용과 같습니다. 미국 전체 대학생의 약 8%가 복용하고 있고, 특별히 미국의 하버드대학교, 예일대학교 학생은 25%가 복용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이 경우는 오남용하는 사례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로 선생님들께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바로 난독증입니다. 사실 학교 선생님들이 가장 잘 찾을 수 있고 잘 도와줄 수 있습니다. 난독증이라고 하면 전혀 글을 못 읽는다고 생각하는데, 난독증을 가지고 있는 많은 아이들은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읽는 속도가 느리고 부정확한 것에 있습니다. 또래 친구들에 비해 현저한 차이가 발생합니다. 난독증에 관한 많은 연구에서는 5% 정도 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하지만 ADHD와 비교할 때, 거의 진단과 치료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보아야 합니다. 지난해 통계에는 0.04% 정도입니다. 그 학생과 부모들이 가지고 있는 어려움과 고통을 다른 사람들은 잘 모릅니다.
난독증에 대하여 연구하고 치료 프로그램을 갖추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떤 계기로 시작되었나요?
올해 호암봉사상을 수상한 안나의 집 김하종 신부님 때문에 시작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처음에는 현재 학부모 모임인 한국난독증본부를 돕고 있는 신영화 본부장께서 난독증이 있는 아이를 데리고 여러 대학병원에 다니시다가 당시 분당에 있는 우리 병원으로 오셨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이었는데 아이큐도 높고 참 똑똑했습니다. 하지만 글을 전혀 못 읽었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신영화 본부장님께 학부모 모임을 운영하라고 부탁하셨고, 저에게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학부모 상담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아마 온라인 상담 내용도 수백 개가 될 것입니다. 당시 저는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지 잘 몰랐습니다. 저도 난독증 학생을 처음 만났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준비가 잘 되어 있지 않아서 제대로 도와주지 못했습니다. 그때부터 난독증에 대하여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 미국에서 치료를 위한 책을 몇 백 권 정도 읽었습니다. 그렇게 학부모님들을 상담하니 병원으로 아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이후로 진단과 치료 프로그램을 만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치료 프로그램은 당시 충분하지 않아서 이후 계속 업그레이드를 진행했습니다. 이제 난독증 본부 카페에서 새롭게 홈페이지를 구축하여 그동안 상담했던 내용을 선생님이나 학부모님이 볼 수 있도록 이동, 게시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홈페이지에 아이들을 돕는 선생님이나 언어치료사를 위한 자료도 함께 올리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치료 프로그램을 계속 완성해 가면서 극적으로 치료가 되었던 사례나 기억에 남는 아이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전혀 글을 읽지 못하다가 치료하면서 나중에는 글을 잘 읽게 된 아이들이 많습니다. 영화 <지상의 별처럼>에 나오는 이샨 같이 심한 난독증을 가진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저보다 사실 우리 병원에 있는 언어치료사들이 더 극적인 경험을 많이 할 것 같습니다. 저는 언제나 치료 프로그램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아이 중에는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 이렇게 3대가 난독을 가지고 있는 아이였습니다. 매주 주말마다 부산에서 어머니가 6시간 직접 운전을 하여 수원에 있는 우리 병원까지 왔습니다. 처음에는 단 한 글자도 읽을 수 없었습니다. 저도 어머니가 너무 안타까워서 병원 진료를 마치고 별도로 시간을 더 추가해서 1년 반 정도 치료를 했습니다. 그제야 더듬더듬 읽을 수 있었죠. 어머니는 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 치료를 받지 못한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모범적인 사례도 있습니다. 유치원 때 읽기와 수학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엄마가 미리 찾았고, 우리 병원에 와서 열심히 치료를 했습니다. 일찍 시작해서 효과도 좋았습니다. 학교에 입학해서도 지금까지 어려움 없이 공부를 잘하는 좋은 사례도 종종 있습니다. 난독증 치료하면서 개인적으로 제일 보람된 순간은 의과대학생 교과서에 학습장애 부분을 써 달라고 의뢰받았을 때 그리고 전국에서 소아정신과 전문의가 되려고 공부하는 의사들에게 매년 학습장애 교육을 해달라고 부탁받았을 때였습니다.
난독증이 있는 아이를 가진 부모님들이 이야기하는 주된 고민은 무엇인가요?
공부라는 것은 많이 읽는 것이 꼭 필요한데 일반 학생들과 비교하여 난독증을 가진 아이들에게는 공부 자체가 참 어렵습니다. 그래서 학부모님들 중에는 “학교를 한 학년 유예하면 어떨까요?” 라고 질문을 많이 합니다. 왜냐하면 난독증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은 거의 한 학년 늦게 발달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일대학교 쉐이윌츠 박사는 그렇게 하지 말라고 권합니다. 첫째는 유치원에 계속 있는 것보다 초등학교에 가면 더 많이 배울 것이고, 둘째는 이 아이들이 언제나 약 1/2정도 발달하기 때문에 결국 2~3학년이 되면 나이가 어린 같은 학년 친구들에게 다시 뒤쳐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때는 더 힘들 수 있다고 합니다.
또 한 가지는 “어차피 이 아이들은 공부로 성공하기 힘드니깐 어렵게 공부를 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라고 자주 질문을 합니다. 하지만 연구에 의하면 난독증은 초기 20년은 느리고 힘들지만 이후 20년은 보통 사람들보다 더 뛰어난 성취를 나타내는 사례가 많다고 합니다. 주의집중력이 늦게 높은 수준에 도달하지만 이후 20년은 보통 사람들보다 더 오랫동안 주의집중력이 유지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후기 20년은 난독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이긴다고 합니다. 최고 CEO 중에 유독 난독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뿐만 아니라 부모가 난독증을 가지고 있었지만 열심히 극복하고 공부한 경우 그 자녀들은 덜 심한 난독증을 가진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무엇보다 구조적으로 난독증 학생들에게 대학입시가 쉽지 않은 것이 참 어려운 현실인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무한한 잠재능력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는 것 같아 참 안타깝습니다.
앞으로 희망이나 계획이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우선 한글 난독증 학생을 위한 치료 프로그램을 책으로 출판한 다음, 난산증을 가지고 있어 수학이 어려운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리고 난독증 학생이 한글을 넘어서면 더 어려운 장벽이 바로 영어입니다. 이 때문에 영어 난독증 프로그램 또한 개발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산을 좋아하는데 킬리만자로 산을 등반하는 것과 스페인어를 공부해서 혼자 남미에 있는 파타고니아 산을 꼭 오르고 싶습니다.
그는 잘 팔리지 않지만 난독증 공부에 꼭 필요한 책을 많이 출판했다. 그리고 수익금은 다시 난독증 아이들과 학부모를 돕는데 모두 기부했다. 그와 함께 여러 가지 학습이론과 학습부진에 대해 토론하면서 어느새 바닥을 드러낸 교사인 나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를 만나면서 문제의 답은 언제나 평범한 현장에서 시작되고, 한 아이를 돕기 위해 고민한 사람에게 그 답이 풍성한 선물로 다시 돌아온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 땅의 교사로서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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