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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수업 만들기

마지막 당부


열혈 아줌마의 좌충우돌 수업 이야기 10

 

마지막 당부

 

 

김주화

(행복한수업만들기 한문 모임 대표)

어수선한 2월

선생님이 계신 학교는 2월에 며칠이나 수업을 하세요? 저희 학교는 4일 합니다. 그중 하루는 종업식이지요. 그러니 고작 3일 수업하는 셈이 됩니다. 개학일 하루, 그 뒤 이틀 더 나가면 바로 종업식을 합니다. 2월 수업 운영에 어려움이 많다 보니 미리 수업 일수를 조절해서 2월 수업을 최소화한 것임은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이미 12월 기말고사 이후 마치 모든 것이 끝인 듯 행동하지요. 교과서는 이미 없어졌고, 본인들도 어디에 있는지 모릅니다. 기말고사 이후 수업을 하려면 시험도 다 끝났는데 수업을 왜 하냐는 비난과 항의를 묵묵히 견뎌 내야 합니다. 잘 달래고 구슬려서 수업을 막상 시작하면 또 곧잘 따라오기는 합니다만, 그 들뜬 분위기를 수업으로 이끌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12월에도 이런데 2월이야 오죽할까요. 이런저런 행정 업무의 마무리로 교사 스스로도 무척 마음이 바쁘고, 해내야 하는 일도 많지요.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방학과 방학 사이에 잠시 등교하는 그 기간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고 들떠서만 보내니 2월은 아무리 짧아도 괴로운 기간입니다.

‘위기’는 ‘위’기이면서 ‘기’회라고 합니다. 위급하고 어려운 상황이더라도 지혜롭게 대처한다면 오히려 더 좋은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말일 것입니다. 저는 교사에게는 2월이 그 ‘위기’의 시간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이미 평가는 모두 끝났고, 2~3일 지나면 다시 방학을 하고, 이미 마음은 진급을 앞둔 설렘과 기대에 부풀어 있는데 수업을 해야 하는 그 상황 말입니다. 하지만, 이 기간은 다시 만나지 못할지도 모르는 이 아이들과 마지막 대면을 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이기도 합니다.

 

한문 선생님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저는 개인적으로 12월 기말고사 이후 시간이나, 2월 수업 시간이 무척 어렵지만 좋기도 합니다. 수업 분위기를 잡기는 힘들지만, 교사에게 주어진 약간의 자유가 참 매력적이기 때문입니다. 이 기간은 교과서에서 살짝 벗어난 수업을 해도, 다른 자료를 참고로 하거나 그동안 못했던 활동을 해도 ‘진도’와 ‘평가’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2월 수업을 할 때면, 우리가 함께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아 엄청나게 슬프다고 분위기를 잡고, 선생님이 너희에게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당부’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걸고 비장하게(?) 수업을 시작합니다. 물론 아이들의 반응은 그야말로 ‘무엇을 상상하시든 그 이상’입니다. 하지만, 어쩌지 못하고 따라옵니다. 다음은 육아 휴직 전 마지막으로 했던 2월 수업의 본문입니다.


 

塾之徒其相藻, 市之徒其相漆,

牧之徒其相蓬, 江牌馬弔之徒其相哮而儇.

蓋以其習日遠, 而其性日遷.

誠於其中, 達於其外, 而相以其變.

人見其相之變也, 而方且曰其相如是也,故其習如彼也.

噫其舛矣.

 

공부하는 학생은 그 상이 어여쁘다. 장사치는 상이 시커멓다.

목동은 상이 지저분하다. 노름꾼은 상이 사납고 약삭빠르다.

대개 익힌 것이 오랠수록 성품 또한 옮겨 간다.

속으로 마음을 쏟는 것이 겉으로 드러나 상도 이에 따라 변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상이 변한 것을 보고, “상이 이러니 하는 짓이 저렇지”라고 말한다.

아! 이것은 잘못이다.

- 정약용 『相論』,(정민 역) -





이 글은 제가 그해에 읽었던 『다산어록청상 』(정민)에 실려 있던 내용입니다. 그 때 그 글을 읽으며 참 좋아서 기회가 되면 이 이야기를 아이들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사람은 생긴 대로 노는 것이 아니라 노는 대로 생긴다는 것, 그래서 상이 자꾸 변한다는 것, 그러니까 나이 들면서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 아직 어린 너희는 너무나 어여쁘니 앞으로 너희 얼굴을 만드는 것은 너희의 생각과 행동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정해진 교육 과정에서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는 2월에 이 글로 수업을 했습니다.

 

마침 당시 24개월이었던 큰아이가 보던 유아 그림책 중에 ‘얼굴’과 관련 있는 내용의 그림책이 있어 학교로 들고 가서 남고생들에게 직접 읽어 주었습니다. 내용은 간단합니다.

물론 이 그림책은 각 동물의 특징을 탐색하기 위해 지어진 것입니다. 그렇지만, 연예인이나 다른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자신의 얼굴에 대해 ‘나도 ~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한번쯤은 모두 하기에 웃으면서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얼굴이 예쁜데도 인상이 나빠 호감이 가지 않는 경우나 예쁜 얼굴은 아니어도 호감이 가는, 인상이 좋은 얼굴에 대해 생각해 보았지요. 그리고 본문 내용을 함께 공부했습니다. 교육용 한자 1800자에서  벗어난 한자들이 좀 있어서 뜻과 음을 알려 주고, 문법적 이해보다는 풀이와 내용 이해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본문 학습이 끝나니 아이들은 제법 교사가 하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눈치 채더군요. ‘한 걸음 더’에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최후의 만찬〉을 그릴 때 예수의 모델을 찾아 그림을 그린 후 6년이 지난 후 가룟 유다의 모델을 찾아 그림을 그렸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두 사람이 같은 사람이었더라는 일화를 소개했습니다. 예수의 모델이 될 정도로 깨끗하고 선한 얼굴을 가졌던 사람이 6년이라는 시간 동안 어떻게 지냈기에 가룟 유다의 모델이 되었을까요. 얼굴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에 따라 얼굴이 변해 간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일화였습니다.




[1] 마음 열기

- 유아 그림책 『이렇게 생겼으면 좋겠어요』(한고운 글/ 한세진 그림) 제시

- ‘얼굴’과 ‘인상’에 대해 생각해 보기

[2] 본문 학습

- 본문 내용 학습 (相論)

- 한자의 음과 뜻 익히기, 본문 내용 풀이 및 이해, 문법적 설명 등

[3] 한 걸음 더

-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 〈최후의 만찬〉과 얽힌 일화 제시

: 예수의 모델이 가룟 유다의 모델이 된 이야기

[4] 삶에 접속하기

- 얼굴이 얼의 꼴, 즉 마음의 모습임을 되새기기

- 자신의 얼굴 속에서 마음 들여다보기

마음이 하는 일을 낯빛이 닮아 간다. 얼굴은 얼의 꼴, 즉 마음의 모습이다. 공부하는 학생의 얼굴은 해맑다. 매일 듣고 보는 글의 표정을 닮았다. 어찌하면 돈을 많이 벌까하는 궁리만 하는 장사치는 그 검은 속을 닮아 얼굴조차 시커멓다. 꼴 먹이고 소똥을 치우는 목동은 모습도 덩달아 지저분하다. 노름꾼의 눈동자는 잠시도 쉬지 않고 희번덕거린다. 해맑던 아이의 표정 위에 어느덧 장사치의 시커먼 속과 노름꾼의 교활한 눈빛이 깃든다. 사람은 생긴 대로 노는 것이 아니다. 노는 대로 생긴다. 상은 자꾸 변한다. 사람은 나이 들면서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

- 정민, 『다산어록청상』중-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예수님을 닮아 살아가겠다고 결심한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모습을 따라가려고 노력하고 발버둥을 치면 우리의 낯빛에서도 예수님을 닮아 가는 모습이 보여야 할 텐데 전 거울을 보면 욕심, 불평, 고집스러움이 묻어난 얼굴뿐이라서 참 민망할 때가 많습니다. 3년이 지난 지금, 그때의 수업을 되돌아보며 또다시 생각이 많아집니다.

 

다시 2월을 준비하며

올해도 어김없이 2월이 오고 있습니다.(이 글이 읽힐 때면 이미 2월 이겠군요.) 두 시간이 되었든 한 시간이 되었든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과 만날 시간이 아주 조금 남아있습니다. 그냥 보내기에는 참 아까운 시간이고, 이 아이들을 뜨겁게 사랑할 마지막 시간입니다.

다시 2월을 준비합니다. 지금 저는 중1을 가르치고 있기에 앞의 본문은 너무 어려워서 중학생들과는 함께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지금 제가 가르치고 있는 아이들, 1년을 아옹다옹, 지지고 볶으며 함께한, 그래서 고운 정인지 미운 정인지 알 수 없는 情이 옴팡 들어 버린 이 아이들에게, 제 진심이 담긴 마지막 한문 수업을 어떻게 해야 할지 방학 동안 고민하려 합니다. 제가 고민하고 노력하는 진심이 제 얼굴에도 묻어나 아이들에게도 전해지기를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