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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수업 만들기

대단원 재구성, Bridge를 부르다

행복 수업 초등 이야기

대단원 재구성, Bridge를 부르다

 

 

 

 

문경민

(행복한수업만들기 부위원장)

동주의 수업

행복한수업만들기 양재 모임 식구들과 영화 〈완득이〉를 보았다. 힘이 있는, 야성이 살아 있는 영화였다.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감동이 멈추지 않았고, 눈물도 질금거렸다. 영화가 끝나고 정말 행복했다. 영화관 창문을 뚫고 뛰어내려도 하늘 높이 치솟아 날아갈 것 같았다.

 

영화의 주인공, 동주 선생의 수업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동주 선생은 야성이 살아 있는 거친 사람이다. 그의 야성은 악덕 사장으로 외국인 근로자를 학대했던 아버지에 대한 자괴감에서 움튼다. 동주 선생의 옷은 남루하고 그가 살고 있는 집은 허름하기 그지없는 옥탑방이다. 그는 자신이 가르치는 사회 교과(아마도 그럴 듯)의 지식대로 사는 사람이다. 그가 정말로 정성을 기울이는 일은 불법 체류자로 쫓기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일이다. 그 일로 그는 법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고 고소를 당해 유치장 밥을 먹기도 한다.

동주 선생의 수업은 별것 없다. 동주 선생은 무단결석한 완득이의 엉덩짝을 시원스레 후려갈긴다. 스마트 폰으로 체벌 장면을 찍는 학생에게 경찰에 꼭 신고하라며 압박 아닌 압박을 가한다. 거기에 한술 더 떠서 “학원에서 다 배운 거 내가 가르칠 게 뭐 있냐 !” 멘트 날려 주신다. ‘대학만 대학이 아니라, 세상이 다 대학이란다. 그게 고등학교 2학년 담임 선생이 수업 시간에 할 소리냐’ 듣는 학생들은 아마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영화 내내, 동주 선생이 수업하는 장면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동주 선생이 수업 시간에 자는 장면, 동주 선생이 경찰에 연행되어 면회실에서 완득이를 만나는 장면, 동주 선생이 완득이네 티코에 낙서를 한 이웃을 향해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튀어 올라가는 장면. 그런 것들만 가득하다.

아, 딱 한 장면, 그가 수업을 하는 모습이 아주 잠깐 나온다. 그는 막스 베버를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었다. 특별한 기법도 없다. 생산 수단의 사유화에 대해, 그는 그냥 말한다. 학생과 교감하는 눈빛도, 열의도 보이지 않는다. 그냥 그는 심드렁하게, 투박하게 이야기할 따름이다. ‘생산 수단의 사유화’를 이야기하는 교실 밖에는 외국인 근로자를 도와준 동주 선생의 ‘위법’을 다스리기 위해 사복 경찰이 알짱거리고 있다.

 

투박하게, 그는 가르치고 있다. 완득이는 그로 인해 삶이 변하고, 그가 가르치는 학생들도 그를 좋아한다. 학기 마지막 날, 종업식을 하는 그의 교실은 담임 선생 동주에 대한 잔잔한 감사가 적당히 넘쳐 난다. 격한 눈물 같은 건 흘리지 않지만, 교실의 분위기는 따뜻하고 후련하다. 그의 야성이 투박한 수업과 수업을 넘어선 여러 다리를 통해 학생들에게 전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수업은 엉망일지 모르지만, 그는 가르친다. 그리고 사람을 변화시킨다. 그리고 그 변화는 그의 매력으로부터 시작된다. 가르침과 삶이 이격되지 않은 교사 동주. 그는 매력적인 교사다. 그가 수업 시간에 생산 수단의 사유화에 대해서 이야기했을 때, 영화를 보던 나는 짧게나마 그의 교실에 앉아 있는 듯했다.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그가 이야기한 그 한마디에 마음이 홀짝 넘어가고 마는 것이다. 그가 바로 ‘그’이므로.

 

Bridge를 시작하다

나는 트위터보다 페이스북을 더 좋아한다. 페이스북은 개개인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담을 수 있다. 어느 날, 행복한수업만들기 양재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한 선생님의 담벼락을 보았다.

 

찬찬히 읽어 보니 어디서 베낀 글이 아니다. 자기가 생산한 자기 문장이다. 나보다 열 살은 어려 보이는 사람이 쓴 문장. 십년 전의 나는 뭐했나 싶다. 이 글을 보면서 나는 이 글을 생산한 선생님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동주 선생이 그렇듯, 그녀에게는 그녀의 삶의 스토리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마도 그녀는, 가끔씩이나마 자신의 수업에서 자신의 삶의 스토리를 드러낼 것이다. 그리고 그 드러냄의 욕망이 가르침의 야성을 일깨울 것이라 생각했다. 다소 거칠기는 하더라도, 그래서 동료 선생님들과 부딪히기도 하고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눈치를 살피는 자기 검열을 하게 되더라도, 그녀가 수업에서 드러내는 야성은 가르침의 엔진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페이스북으로 서인혜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면서 기독 교사의 소양을 기르고 자신의 야성을 일깨울 수 있는 어떤 배움의 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배움의 장은 세상과 기독 교사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행복한수업만들기 과학 분과의 구형규 선생님이 진행하고 있는 징검다리 프로젝트와 행복한수업만들기 사무국의 김자윤 선생님이 자신의 교육 역할을 설명할 때 쓰는 ‘다리’라는 어휘가 떠올랐다. 그리고 완득이의 동주 선생이 생각났다.

2011년 10월 26일. 서울 시장 보궐 선거를 앞둔 새벽 한 시 즈음. 행복한수업만들기 월례 강좌 Bridge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좋은교사운동의 기독교적인 수업을 위해 2008년에 시작된 행복한수업만들기는 다양한 성과들을 내며 3년의 시간을 열심히 일구었다. 열 곳에서 모임이 이루어지고 있고, 네 번의 워크숍을 열었으며, 세 권의 행복수업 길라잡이를 간행하였다. 또한 행복수업 학습지 24를 개발하여 배포하였다. 팀을 꾸려 세 권의 책(나니아 여행 시리즈)을 출판하였고, 과학 분과에서는 동물학 서적을 감수하기도 하였다.

팀을 꾸려 세 권의 책(『나니아 여행 4』, 『아름다운 경제 교육을 위한 마을 활동』, 『징검다리 프로젝트』)을 출판하려 하고 있다. 대표인 권일한 선생님은 글쓰기와 독서에 대한 책을 출판해 냈고, 행복한수업만들기 대구 모임 선생님들은 어린이 책을 집필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정인영 선생님은 C.S 루이스의 책을 번역하여 출판을 진행하고 있고 나 역시 초등학생들의 인문학적 소양을 기를 수 있는 고전 관련 책 출판을 진행하고 있다.

이번 겨울엔 정인영 선생님이 지난 여름에 이어 또 다른 형태의 나니아 캠프를 열 것이고 행복한수업만들기 청주 모임에서는 영성 훈련을 겸한 학습 캠프를 기획하고 있다. 전교조 계열의 거대 교사 연구 모임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우리는 우리의 규모 안에서 좋은교사운동의 기독 교사 전문성을 일구는 기둥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 시점에, Bridge를 시작하고 있다. Bridge에 이르게 된 과정을 간략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Bridge 서울’의 첫 강좌, ‘알자, 한미 FTA’

2011년 11월 22일. 한미 FTA가 비준되었다. 그리고 11월 28일 양재 토즈에서 Bridge 서울의 첫 강좌를 열었다. 첫 강좌로 한미 FTA를 다룬 것은, Bridge가 다룰 주제에 성역이 없음을 천명하고 싶은 마음과 순발력 있게 주제를 선정하는 민감성이 Bridge에 깃들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다.

첫 주제가 정치적이었던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살아 있는 지식은 가치를 지향하고, 가치는 정치적 색깔을 띠게 마련이다. Bridge가 정치적 색깔이 가늠되는 배움의 장이 되었으면 했다.

첫 강좌 ‘알자, 한미 FTA’는 17대 국회 의원이었던 최재천 변호사님과 함께한 넓고 깊은, 풍성한 강좌였다.

Bridge는 현재 준비 중이다. 운영 위원들의 모임인 교각 회의를 열어 Bridge의 운영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하고 어떤 매력이 있는 월례 강좌를 만들어 갈 것인지 의논하려 한다.

감히 예상하건데, 아마도 우리는 세상의 모든 영역을 다루게 될 것이다. 세상에서 자기 메시지를 품고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세상의 모든 지식인들이 우리의 초청 대상이 될 것이다.

그들이 아기처럼 품고 있는 살아 있는 지식이 Bridge를 통해 좋은교사운동으로 흘러들 것이다. 그것들은 기독 교사들의 가슴에서 발아하여 싹을 틔우고, 우리 자신과 우리의 수업을 탄실하게 바꾸어 낼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나의 가르침을 통해 세상을 회복하는 데 기여하게 될 것이다.

Bridge에 바라는 소망이다. 다가오는 2012 기독교사대회 이후, ‘Bridge 부산’을 시작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