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행복한 수업 만들기

프린트 수업에 대한 성찰

김태현의 수업 이야기 7

프린트 수업에 대한 성찰

 

  새 학기를 맞이하여, 수업에서 성찰해야 여러 지점들을 가상 대화로 풀어 보았습니다. 수업친구들과 이런 주제들을 가지고 자연스럽게 대화해 보세요.

 

제 2의 교과서, 프린트

사회자 : 안녕하세요. 김태현 선생님. 조만간 지난 2010년에 냈던, 《내가, 사랑하는 수업》 말고 수업에 관한 새로운 책이 나오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사실인가요?

태 : 네. 작년에 좋은교사 상근 근무를 하면서, 수업에 대해 고민했던 여러 지점들을 책으로 풀어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수업》에서는 공교육에서의 기독교적인 수업에 대해 다루었다면, 새로 나오는 책은, 일반 교사들도 쉽게 볼 수 있는 책으로, 수업을 개선할 때, 교사 스스로 어떤 점을 성찰해야 하는지를 설명했습니다. 예를 든다면, 수업에서의 몰입, 대화, 질서 등 수업의 기법, 기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수업의 ‘속’, 즉 수업하는 교사의 내면을 많이 파헤치고 있습니다.

사 : 오호! 기대되는데요. 그렇다면 오늘은 신간 속에 있는 이야기를 조금 꺼내 놓으시겠네요.

태 : 네, 맞습니다. 오늘은 새 학기라, 우리 수업 전반에 펴져 있는 프린트 수업에 대해서 이야기하려 합니다.

사 : 프린트라 ! 새 학기 첫 주제로는 무게감이 조금 떨어지는 것 같은데요?

태 : 아닙니다. 프린트는 수업을 다룸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지점입니다. 특히 한국의 수업에서는요. 초등은 조금 덜하지만, 중ㆍ고등학교 선생님들은 프린트 없는 수업이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프린트 수업에 대한 우리의 성찰은 많이 부족합니다.

사 : 어떤 성찰을 해야 한다는 거죠? 프린트를 사용하는 데도 성찰이 필요한가요?

태 : 프린트는 한국 수업을 지배하는 아주 중요한 지점입니다. 교사들은 프린트를 사용함에 있어서 누구를 위해, 무슨 목적으로, 왜 사용해야 하는지를 성찰해야 합니다. 이런 성찰 없이 프린트를 사용하게 되면, 프린트는 오히려 학생들을 배움으로부터 도주하게 만듭니다.

사 : 듣고 보니 선생님들이 너무 당연하게 프린트를 나눠 주는 것 같네요. 저도 학창 시절에 수많은 프린트가 제 2의 교과서가 되어서 그곳에 빈칸을 메우고, 문제를 푸느라고 고생이 많았습니다.

태 : 사실 프린트를 사용하는 이유는, 교사 스스로가 교과서만으로 수업하는 데 부족함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사들은 스스로 프린트를 만들어서 자기만의 수업 흐름을 만들기도 하고, 교과서에 없는 여러 내용들을 보충 설명하기 위해서 프린트를 만듭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프린트가 지나치게 정보지로 전락하는 데 있습니다.

 

정보지로 전락한 프린트

사 : 정보지요?

태 : 네. 대다수의 교사들은 프린트를 정보지로 활용합니다. 교과서에 있는 내용을 좀 더 구조화시켜서 내용을 정리할 때, 혹은 교과서에 없는 내용을 보충할 때, 프린트를 활용합니다. 프린트를 정보지로 활용하면 교사는 좀 더 효율적으로 교과 지식을 전달하고, 그 내용을 익히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프린트가 정보지로 전락하는 경우, 수업은 정보 전달의 수업이 되고, 수업의 흥미도는 급격히 떨어지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프린트에 무엇인가를 빽빽하게 받아 적지만 그 과정 속에서 배움이 사라질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교사도 수업을 진행할 때, 프린트 빈칸을 메우고 문제를 푸는 것에만 만족해서 프린트 진도를 나가는 것으로 수업에 흡족해 합니다. 그래서 학생들의 생각을 묻기보다는 잘 받아 적었는지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다 적었니?”, “다음으로 가도 되겠니?” 이런 말들을 많이 던지게 되고, 학생들도 이것을 적느라고 많은 시간이 소비됩니다. 받아 적으면서 내용을 이해하면 좋은데 대다수의 학생들은 기계적으로 적을 뿐이죠.

사 : 그렇다면 프린트를 어떻게 활용하는 것이 좋을까요?

태 : 사실 프린트는 없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필기, 프린트가 적을수록 학생들의 배움은 크게 일어납니다. 그러나 지식의 양을 많이 전달해야 하는 사회, 과학, 역사의 경우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가능하면 프린트의 양은 줄이되, 기본적으로 프린트는 활동지이어야 합니다.

사 ; 프린트가 정보지가 아니라 활동지이어야 한다! 무슨 얘기죠?

 

수업 철학과 수업 리듬을 담은 프린트

태 : 프린트가 활동지여야 한다는 것은, 프린트에 정보를 빼곡하게 나열하는 식이 아니라, 교사가 의도한 배움, 즉 주제의 흐름을 보여 줄 수 있는, 프린트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교과서가 잘 구안되어 있으면 활동지가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교사들은 교과서의 흐름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수업의 흐름이 유기적이지 못하고, 주제가 없이 지식만이 나열되어 있어서, 수업을 잘 하려는 교사에게 있어서, 교과서는 만족할 만한 결과를 주지 못합니다. 그래서 열정 있는 교사들은 수업 흐름을 새로이 짜곤 합니다. 프린트는 바로 그 수업의 전체 흐름을 담는 것이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한 국사 선생님은 소단원 중심으로 프린트를 나눠 주는데, ‘이 단원에서 배우는 키워드’ - ‘전체적인 흐름도’ - ‘활동 1’ - ‘활동 2’ - ‘이것만은 알아 두자’ - ‘역사, 현재와 만나다’식으로 수업의 일정한 흐름을 가지고 프린트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그 교사만의 수업 철학과 리듬이 프린트에 담기는 것입니다.

프린트가 정보지에서 활동지로 격상되는 순간, 수업은 좀 더 활력을 갖게 됩니다. 프린트를 바탕으로 학생들은 자기 생각을 적고, 표현 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 : 하지만 활동지로만 프린트가 활용될 경우, 교과 지식들은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요?

태 : 맞습니다. 프린트 속에는 필요한 정보들이 잘 정리되어 있어야 합니다. 학생들이 내신 공부할 때, 체계적으로 정리하게끔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학생들은 학원에서 이런 정보들을 얻으려고 합니다. 프린트를 정보지로만, 활동지로만 한 방향으로 활용하게 되면 단점이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수업 속에서 우리가 좀 더 깊은 배움을 만들려면 수업 프린트를 활동지, 정보지를 둘 다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 : 활동지, 정보지를 다 만들어야 한다고요?

태 : 네, 프린트를 잘 만들려면, 활동지와 정보지 둘 다 필요합니다. 먼저 프린트는 앞서 말씀드린 대로, 한 단원이 하나의 주제로 유기적으로 결합된 활동지여야 합니다. 이렇게 수업 활동을 한눈에 알게 될 때, 학생들은 수업의 흐름을 잡게 되고, 그 수업 속에서 교사가 원하는 배움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이런 활동지가 되려면 교사 스스로 그 단원에서 목표로 한 배움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활동을 위계적으로 조직해야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마음 열기 - 생각 쌓기 - 생각에 날개 달기 - 삶에 접속하기’ 이 4단계의 틀로 수업의 흐름을 조절하는데, 프린트 역시 그렇게 구성합니다.

그리고 활동지 속에 필요한 지식들은 정보지 역할을 하는 프린트를 또 만들어서 나눠 줍니다. 이때 주의할 것은 빈칸을 최소화하라는 것입니다. 빈칸이 많으면 많을수록 학생들은 또다시 필기하는 데 부담을 느낍니다. 정보지는 어디까지나 부가 되어야지 수업의 주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저는 시중에 나와 있는 자습서를 하나 골라서 그것을 그대로 프린트해 줍니다. 학생들에게는 ‘수렴용’ 프린트라고 말하죠. 활동지는 ‘발산용’ 프린트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저는 수업을 일단 활동지로 하고, 정리를 수렴용 프린트로 합니다.

이런 식으로 수업을 진행하려면 교사는 정보지를 바탕으로 활동할 수 있는 과제를 잘 만들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고려가요 청산별곡를 가르친다면, 정보지로서는 청산별곡이 잘 해석되어진 프린트를 주고, 활동지로는 청산별곡을 바탕으로 고려 시대 사람들의 겪었던 아픔을 생각하는 과제를 나눠 줍니다. 수업에서는 정보지에 있는 내용을 참고로 하여 활동지에 있는 질문들에 대해서 토의하라고 하면 됩니다. 이렇게 정보지와 활동지가 연결될 때 학생들은 정보를 교사가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활동지의 과제를 통해 개념적 지식을 스스로 이해하고 사고하는 훈련을 하게 됩니다.

사 : 결국 선생님은 프린트를 최소화해야 하지만, 정보지로만 흘러가지 않고, 활동지 형태로 전체 수업의 그림을 그리고, 적절한 과제를 제시해서, 학생들이 정보지를 바탕으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이군요.

태 : 사실 지금 이야기한 것은, 하나의 방법이지 본질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교사들이 막연히 프린트를 나눠 주고 수업하는 것이 아니라, 교사가 이 프린트를 통해 어떤 배움을 주고자 하는지를 늘 성찰하면서 수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프린트의 90% 이상을 정보지로 활용하고 있는데, 그것보다는 활동지로 전체적인 맥락을 재구성하고 정보지를 통해 개념을 잘 정리하자는 것입니다.

사 : 오늘 이야기 감사합니다. 새 학기를 준비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겠습니다. 다음에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실 건가요?

태 : 배움에서의 소외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