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교육을 위한 도전
정찬필 ((사)미래교실네트워크 사무총장)
22년 동안 KBS 다큐멘터리 PD로 활동했다. “다큐멘터리 3일”, “시사투나잇”, “환경스페셜” 등 시사적 성격이 강한 프로그램을 주로 제작해오다가 2013년 ‘21세기 교육’이란 화두에 꽂혀 과감한 교육실험 프로그램을 만든다. 2014년 <21세기 교육혁명 미래교실을 찾아서> 3부작, 2015년 <거꾸로교실의 마법> 4부작과 <학교의 진화> 2부작, 2016년 <배움은 놀이다> 시리즈를 통해 교육계에 ‘거꾸로교실’로 미래교육에 대한 화두를 던졌다. 2016년 10월 KBS PD를 사직하고 ‘미래교실네트워크’ 사무총장으로 취임하였고, 아쇼카 재단에서 주는 ‘아쇼카 펠로우’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인터뷰.정리_임종화 / 사진_김현경
작년 한 해 알파고 충격, 제4차 산업혁명이 사회적 화두가 되었고 교육계에서는 학생부 종합전형, 수행평가 100%, 자유학기제 등이 논쟁되었다. 이에 따라 미래교육에 대한 관심과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현재의 교육으로는 학생들에게 미래를 살아갈 능력을 길러 줄 수 없다는 문제의식에는 대부분 동의하지만 이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직 뚜렷한 해법과 공감대를 찾고 있지 못한 것도 현실이다. 이에 방송을 통해 교육계에 ‘미래교육’에 대한 화두를 던졌고, 최근에는안정된 KBS PD를 사임하고 미래교육을 위해 교육운동에 뛰어든 정찬필 미래교실네트워크 사무총장을 만나 미래교육의 방향과 과제에 대해 듣는 시간을 가졌다.
먼저 ‘거꾸로교실’을 취재하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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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저의 백그라운드는 교육이 아니었어요. KBS에서 시사 프로그램에 가까운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게 제 업무였어요. 그러다가 2013년 2월에 우연히 교육 혁신 관련 국제 세미나에 참석을 하게 되었는데요. 그야말로 휴식한다는 의미로 간 세미나였고 공식적인 취재도 아니었죠. 그곳에서 이야기를 듣다가 많이 놀랐어요. 왜 놀랐냐면 대한민국 공교육이 위기라고 하는 것은 이제 뉴스도 안 되는, 다 아는 이야기잖아요. 그런데 그런 공교육의 위기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였어요. 전 세계가 똑같다. 거기서 충격을 받은 거죠.
이렇게 되면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교육의 위기라고 하는 진단부터가 틀렸다고 볼 수 있는 거거든요. 지엽적으로 문제를 분석하고 해답을 찾으려고 할 게 아닌 거죠. 지금까지 한국적인 특성 때문에 입시가 과열되고 교육이 망가지고 그래서 한국 아이들이 문제라는 식으로 접근을 해왔잖아요. 그런데 이것이 전 세계적인 현상이라면 그게 원인이 아니었다는 얘기가 되죠. 아주 근원적으로 문제 진단을 잘못하고 있는 것일 수 있겠다. 그러면 해법도 완전히 달라지겠다고 판단해서 교육에 대해 자료를 조사했어요. 제가 명색이 언론인인데 내가 알고 있었던 교육, 모든 사람이 알고 있다고 생각한 교육이 어쩌면 굉장히 큰 함정에 빠져 있었다는 생각을 한 거죠.
그 후 3개월 넘게 집중적으로 스터디를 했어요. 이 이슈를 세계 수준에서는 어떻게 보고 있는지, 돌파구를 어떻게 찾고 있는지 쭉 봤더니 굉장히 강력한 시그널이 나타난 거죠. 문제 분석에 대해서도 의외로 쉽게 포착되는 부분이 있었고, 해결책에 대해서도 의외로 많은 것들이 제시되고 있었어요. 그래서 회사에 “교육 혁신이 글로벌 수준에서 임계점에 왔다”고 보고했죠. 모든 곳에서 수렁에 빠져있다는 의미는 역으로 무언가 유효한 해결책 하나가 터지면 순식간에 뒤바뀌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겠다고 예측한 겁니다.
그런 맥락에서 거꾸로교실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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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교실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는데 대부분의 경우 본질을 못 봐요. 왜냐하면 거꾸로교실은 목표가 아니거든요. 거꾸로교실은 교육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책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일종의 시작 단계로 봤어요. 그런데 이것이 기존의 붕괴되었던 교실을 워낙 빠른 속도로 되살리는 방법이 된 거죠. 그래서 우선은 여기에 집중하자고 생각한 거예요. 대부분의 교실이 붕괴된 상황에서 이상적인 교육의 목표를 이야기하는 것이 공허할 거 같아서 현재의 문제를 강력하게 풀어낼 수 있는 거꾸로교실만을 우선적으로 이야기 한 것인데, 대개의 경우 이것이 목표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한편으로는 죄송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해요.
저희는 이것을 21세기 교육이라고 하는 고속도로에 올라타기 위한 진입 램프라고 생각해요. 곧 학생들의 태도(attitude), 학습 DNA를 바꾸는 거라고 얘기하죠. 이 과정을 거치면 거꾸로교실이라는 방법은 사라져버려요. 의미가 없어져버리니까요. 이미 학생들끼리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상태가 된 거예요. 그러니까 이걸 목표로 삼으면 안 된다는 거죠.
거꾸로교실이 미래교육을 위한 진입 단계라면 그 다음 단계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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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매우 쉬워요. 협력적 문제해결능력을 키우는 핵심적인 방법으로서 일종의 프로젝트 학습 상태로 가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까지 많은 PBL(Project-based learning, 프로젝트 기반학습)이 학교현장에서 작동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유를 계속 찾아봤는데 그때 찾아낸 결정적인 힌트가 지금처럼 무기력하고 수동적인 아이들한테 PBL을 적용해봤자 움직이지 않는다는 거였어요. 그래서 초기에 거꾸로교실이라는 틀이 굉장히 중요한 거죠. 중요한 것은 프로젝트 학습 상태로 넘어가는 것인데 지금 상태에서는 못 넘어가니까 거꾸로교실을 통해서 넘어가게 하겠다는 전략이었죠.
이 내용은 감춰진 것이 아니고, 이미 2016년 12월에 방영된 <학교의 진화>라는 방송 2편 “세상을 바꾸는 교실”에 담겨있는 내용이에요. 방송을 보시면 거꾸로교실로 학습 DNA가 바뀐 아이들한테 프로젝트를 주면 어떻게 반응하는지와 이것이 궁극적인 21세기 교육의 방향이 될 것이라는 내용이 나와요.
현재 우리가 경험하는 교육의 문제가 세계적인 문제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문제의 핵심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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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아시는 내용이에요. 공교육의 지체현상, 공교육이 진짜 세상의 변화를 따라잡는 게 아니라 계속 멀어지는 현상이죠. 결과적으로 학교에서 배운 것이 진짜 삶을 살아가는데 아무 의미 없는 상태로 계속 멀어지기 때문에 교실이 붕괴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어요. 사교육과 대학 입시 몰입과 과열 현상 등은 사실 공교육의 지체문제에서 발생한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나타난 문제들을 현상으로 보지 않고, 그것이 문제의 본질이라고 생각을 한 것이죠. 그래서 교실 붕괴라는 문제의 원인을 아이들에게서 찾거나 혹은 교사의 수업방법에서 찾는 식으로 봐온 거예요.
제가 만든 첫 번째 시즌 전체 시리즈 제목이 <21세기 교육혁명 미래교실을 찾아서>였는데, 첫 편이 “거꾸로교실의 마법”, 두 번째가 “가르침 시대의 종말”, 세 번째가 “진짜 세상을 향한 교실”이에요. 이 제목 안에 무엇을 말하려는지 다 들어있어요. 그런데 말로만 해서는 아무리 강조를 해도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고 보았죠. 실증적인 사례가 없으면 말이에요. 그래서 3년 동안 거꾸로교실을 현장에서 실천하며, 어떤 단계를 거쳤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계속 실제로 증명한 거예요.
조금 전 말씀하신 ‘협력적 문제해결능력’과 같은 역량은 최근 교육계에서 논의가 많이 되고 있거든요. 교육이 세상과 지체 없이 가기 위해 아이들이 키워야 하는 능력은 어떤 능력이라고 보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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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적 문제해결능력’이라는 표현 안에 모든 것이 다 들어있어요. 21세기 교육 목표의 핵심을 요약한 표현이죠. 협력적 문제해결이 가능하도록 만들어 주면 그 안에서 비판적 사고능력, 소통능력, 협력능력, 창의력 등이 모두 자연스럽게 생겨요. 그것이 진짜로 살아갈 가장 중요한 능력이 되는 것이구요.
저희가 흔히 역량중심교육이라고 할 때 이 개념이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를 봤더니 프레임을 너무 복잡하게 만들었어요. 각각의 역량이 왜 필요한지가 명확하지 않고 분절되어 있어요. 그 능력들이 어떻게 연결되어서 의미를 만드는지가 명확하지 않으니까 일단은 ‘역량’ 자체를 이해하는 것부터 어려워요. 그리고 제일 심각한 것은 (특히 중등) 과목별로 존재하는 교사들에게 분절되어있는 영역들을 통합하여 역량을 키우라고 하니 해결하지 못하는 거죠. 불가능한 것을 교사들에게 계속 요구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 제가 했던 말은 “미국, 유럽의 교사들도 똑같더라”였어요. 역량중심교육이라는 선진국에서 하는 이상적인 교육 모델이 있고 그걸 한국에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 어디에서도 못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런데 이것을 마치 한국 교사들의 문제로 생각하면서 오히려 문제가 많이 꼬이게 된 거죠.
거꾸로교실도 결국은 정해진 교과 내에서 교사가 하는 수밖에 없잖아요. 교사끼리의 융합이나 협력이 이루어지기 어려운 상황인데 어떻게 이것은 잘 될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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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의 분석이 어떤 함정에 빠지냐면 거꾸로교실을 콘텐츠 학습을 위한 것이라고 이해하는 거예요. 기존의 평가 방식으로 거꾸로교실이 어떤 효과를 발휘하는지 등에 집중하니까 거기서 힘이 빠져요. 사실 거꾸로교실 시작할 때부터 ‘21세기 교육 프레임’이란 관점에서 시작했어요. 그 안에서 콘텐츠는 제일 하위에 있는 것이고 핵심은 이것을 통해서 아이들이 21세기 역량을 키울 수 있는지를 보는 거예요.
쉽게 말해서 거꾸로교실을 하다보면 학생들에게서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소통능력이 수직으로 상승하는 것이 보여요. 그리고 거기에 창의력 등이 함께 상승해요. 관찰의 포인트는 이거예요. 기존의 교육 시스템 속에서 이러한 변화가 어떻게 21세기 교육의 형태로 변환시켜 낼 수 있는가? 이것을 통해 콘텐츠 학습의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 혹은 완전학습이 가능한지 등은 이미 한참 전 이야기고 저희의 주 관심사는 아닙니다.
이 부분은 선생님들에게 굉장히 중요한 얘기네요. ‘거꾸로 학습’을 현재의 교육을 더 효과적으로 하는 방법으로 이해할 가능성이 높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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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는 처음부터 선생님들과 이야기할 때 ‘성적은 미끼다’라고 표현했어요. 성적은 분명히 올라간다. 왜냐하면 이 과정을 통해 수업시간에 자던 아이들이 일어나니까요. 성적은 분명히 올라가죠. 하지만 그것이 목표가 아니라는 거죠. 다만 기존의 평가 시스템에서 이 방법이 유효하지 않고 유리하지 않으면 아무도 안 할 거잖아요. 기존에 있던 수많은 대안적인 접근처럼, 좋은 취지의 유의미한 방향 설정을 했더라도 기존 평가에서 실패한다면 확산의 실패가 될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지금 상태에서 학습 결과가 올라가는 것은 성공을 위한 전제 조건이라고 봤던 것이고 다행히 많은 선생님들이 이것을 검증해 주셨죠.
우문일 수도 있지만, 가장 이상적인 교실과 학교의 모습을 그려주시면 이해하기 좋을 것 같은데요. 어느 정도의 의사소통과 수업이 이루어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최근 인터넷 기반 학습으로 유명한 칸 아카데미도 학교를 한다고 하고, 미네르바스쿨 등의 실험도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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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 스쿨은 이미 저희와 밀접하게 협력 관계를 맺고 있어요. 핵심적인 것은 학생 본인이 관심 있는 주제와 문제를 가지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배우는 구조를 만드는 거라고 생각해요. 여기서 배운다는 것은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진짜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을 끌고 들어와서 익혀 나가는 거예요. 그래서 배우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 배운 것을 적용해서 실제 문제를 해결하는 것. 이런 나선 구조를 가지면서 성장하는 것이 저희가 봤던 기본적인 모델이죠.
그런 상황 안에서 교사의 역할은 어떻게 바뀔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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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전체 상황에 대한 디자이너죠. 전체 판을 짜주고 학생들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적재적소에 필요한 자극을 주고 태도의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을 감당하겠죠.
그렇다면 현재 교과를 담당하는 교사의 역할이 바뀌어야 한다는 말씀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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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전달자로서 교사는 이미 끝났죠. 단 미래교실네트워크에서 하는 방식의 강점은 기존의 교과서 중심 커리큘럼의 콘텐츠를 경시하지 않는 거예요. 많은 오해 중 하나가 교과서 자체가 의미 없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분석해 봤더니 교과서 자체는 신경을 많이 써서 잘 만들려고 애쓴 콘텐츠였어요. 중요한 것은 이것을 어떻게 활용해서 진짜 세상을 이해하고 문제를 풀어가는 데 써먹을 거냐는 거죠. 지금까지 그 방법을 안 알려준 것이 문제지, 이 콘텐츠 자체가 의미 없었던 것이 아니라는 말이죠. 제가 학생들이나 선생님들에게 해보게 하는 것이 교과서에 나온 것을 가지고 진짜 세상의 문제를 푸는데 이용하는 방법을 익숙하게 하는 거예요. 이것이 되면 세상의 모든 지식을 무의미하게 넘기지 않게 돼요.
방송을 보다보면, 선생님들의 편견일 수도 있지만 방송에는 잘 되는 사례만 편집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거든요(웃음). 많은 학교를 다니며 수업의 변화를 보셨을 텐데 실제 효과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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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실제적인 효과는 방송보다 100배쯤은 강해요. 심지어 자살위험군으로 분류되었던 아이들도 살아나요. 자살위험군에 들어가 있다는 건 어떤 아이일까요? 그 아이에게는 사는 이유가 없어요. 살 이유가 없다는 것은 사실 존재감, 곧 내가 세상에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는 거잖아요. 그런데 이 프로젝트를 만나면 자신이 남을 위해, 사회를 위해 그리고 주변 친구를 위해 무언가를 할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삶이 바뀌는 거예요. 굉장히 빠르게 존재감을 되찾고 내가 사는 것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게 돼요. 예를 들어 한 달 전까지도 꿈이 없고, 항상 죽겠다고 하던 아이가 이제는 꿈이 생겼다고 말해요. 꿈이 뭐냐고 물었더니, 뭐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남한테 도움 되는 사람이 될 거라고 말해요. 살아갈 이유를 찾아 낸 거죠.
거꾸로교실에 대한 오해를 풀기 위해 이 프로젝트를 잘 표현할 수 있는 다른 이름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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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저희가 ‘거꾸로교실네트워크’라고 안 쓰고 ‘미래교실네트워크’라고 쓴 거였어요. 미래교실네트워크의 존재 이유는 거꾸로교실이라는 수업방법을 어떻게 확산할까가 아니고 지금 시대 아이들이 미래에 살아갈 능력을 위한 교육을 실제적으로 실현해내고 그 방법을 확산시키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해요.
다른 나라에서 이런 것이 잘 되고 있는 곳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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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 스케일이라면 인구 대비 우리가 가장 잘 되어 있는 것 같아요. 2013년에 교육의 위기가 임계점에 있었다고 했잖아요. 교육을 제대로 바꾸고 있는 곳이 하나도 없었던 거예요. 선진 교육을 하고 있다는 핀란드조차도 말이죠. 2015년에 핀란드가 대대적인 교육 혁신을 하면서 ‘교과 대신 주제로’라는 것을 핵심으로 하잖아요. 이 말과 저희의 맥락과 프레임은 똑같아요. 방향은 같은데 문제는 이것을 어떻게 실현할거냐는 거죠. 저희는 대규모로 실험을 돌려서 가능한 방법을 찾아내고 있죠.
이 프로젝트가 더 잘 작동하기 위해 바뀌어야할 구조나 환경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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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를 위해 전제되어야 할 조건은 없어요. 저희 접근 방법이 정말 강력했던 것은 어떤 조건이 필요하다고 말하지 않은 거였어요. 지금 상태에서 전환이 가능하다는 것이죠. 프로젝트에 참여하다보면 교사들이 이제 뭐가 바뀌어야 하는지 생각하고 평가 제도를 스스로 바꿔내기 시작해요. 선다형 시험을 갈수록 줄이고 서술형으로 내고, 수행평가를 늘리고 지필고사를 줄이고…. 아이들이 변하는 것을 직접 보니까 학교에서 뭐가 문제였는지 쉽게 파악하게 되는 거예요.
저희도 그런 면에서 수행평가 확대, 교사별 평가, 정시를 줄이고 수시를 늘리자는 등의 주장을 하고 있는데 제도적인 측면에서 이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에 동의하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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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는 하죠. 하지만 제도를 바꾸어서 수업을 바꾸겠다는 방식은 굉장히 실현되기 어려운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역방향이 오히려 쉬워요. 제도적으로는 사실상 한계가 없어지고 있잖아요. 이미 2016년 초에 교육부에서 중학교는 수행평가 100%를 가능하게 했어요. 고등학교도 가능하게 하겠다고 발표했더니 선생님들이 아우성쳐서 못한 거잖아요. 그러니까 제도의 문제가 아닌 거예요. 교사들이 자기 수업을 바꿔보지 못했기 때문에 왜 이 제도가 중요한지, 이 제도가 가능한지 안 한지 가늠을 못하는 거예요.
미래교실네트워크에서 봤을 때 알파고나 4차 산업혁명과 같은 변화는 새로운 것이 아니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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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왜냐하면 시작할 때부터 같은 이슈로 시작했어요. 4차 산업혁명이나 알파고 같은 이슈는 사실 20세기 말, 21세기 초기에도 이미 동일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큰일 났다’고 계속 말해 왔어요. 단지 의미 있는 해결책을 찾지 못했을 뿐이죠.
방송 PD를 하시다가 이쪽으로 아예 방향을 틀었다는 건 그만큼 이 사역이 중요하다고 판단하신 것 같은데. 그 과정을 간단히 말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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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PD를 22년을 하다가 2013년에 실험을 시작하면서, 이 실험이 성공하면 핵폭탄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빨리, 실험 시작 첫 날부터 이것이 작동되는 것을 확인하게 됐죠. 개인적으로 충격을 받았고, 11월 들어서면서 이거면 해결된다는 확신이 생겼어요. 그래서 방송 내보내고 끝낼 것이 아니라 교사들 사이에 확산되게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조직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거죠. 그래서 교사들 사이에 동료 학습 상황을 만들어주면 되겠다는 생각으로 만든 것이 ‘미래교실네트워크’였어요.
2013년 11월에 거의 마스터플랜을 세웠는데, 생각보다 큰 그림이었던 것이 빠른 속도로 맞아 들어갔어요. 사실 방송으로 할 수 있는 얘기는 이제 다 했어요. “학교의 진화”까지 가면 이것이 어느 단계까지 가능한지를 다 말한 거예요. 2016년 11월에 방송을 끝내면서 방송 일 혹은 ‘미래교실네트워크’ 중 하나를 접어야 하는 결정의 순간이 왔는데 이 프로젝트를 접기에는 너무 아깝더라고요. 내가 세운 가설이 진짜라면 역사적인 변화잖아요. 마침 여러 곳에서 소셜 이노베이터(사회 혁신가)의 역할에 대해 지원을 해주겠다는 분들이 계셨어요. 특히 아쇼카 재단이 저를 아쇼카 펠로우로 인정하고 경제적으로도 적지 않은 지원을 해주어서 결심하게 되었죠.
이 프로젝트가 확산되다보면 교육부나 교육청에서도 관심을 갖고 정책으로 추진하겠다는 말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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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프로젝트가 결정적으로 커지게 된 계기가 있어요. 두 번째 시즌 들어가면서 교사 연수 프로그램(캠프)을 돌리고 있는데, 대구교육청에서 캠프 비용을 전액 지원하면서부터 프로젝트가 커질 수 있었죠. 올해 1월 첫 주에 40차 캠프까지 진행되었는데, 대구에서 시작한 연수가 이제는 전국의 거의 모든 교육청에서 요청이 들어오고 있어요. 최근에는 경기 영어마을 쪽에 장소도 제공받았어요.
교육청이든 교육부든 이미 이 프로젝트의 존재와 효과, 확산되는 속도에 대해 인지하고 있고 협력 방안에 대해 얘기하고 있어요. 저희 쪽에서 교육청과 교육부에 꼭 말씀 드리는 것이 있는데요. 일방적인 정책으로 강요하지 말라는 거예요. 관리자 연수에서도 이것이 효과 있고 좋다는 것 아셨으면 돌아가서 조용히 계셔라. 선생님들한테 하라고 말하는 대신 연수 기회 있으면 알려주고 연수비 지원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이렇게 말씀드려요.
현재 미래교실네트워크에 참여하는 선생님들의 숫자와 운영방식이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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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으로 연결되어 있는 교사 숫자만 현재 13,000명을 돌파했습니다. 그리고 커뮤니티에서 연결되는 수준으로 하면 5,000명 정도 되지 않나 싶어요. 지역별로 커뮤니티가 촘촘하게 되어 있어서 오프라인으로 계속 연결되는 구조이고, 핵심적인 교사는 150명 정도 돼요. 이 선생님들이 주변 선생님들한테 ‘진짜 동료 교사’로서의 역할을 하죠. 네트워크를 통해 계속 같이 활동하면서 실제 수업 경험을 공유하면서 몸에 배도록 합니다. 그것을 보면 이 선생님이 프로젝트를 어느 정도 이해했는지 볼 수 있어요. 또 실제 선생님들이 지역에서 만나서 모임을 하니까 자발적으로 ‘이 정도면 신뢰하고 같이 갈 수 있겠다’는 판단을 하세요.
학교 전체에 굉장히 파급력 있었던 배움의 공동체, 혁신학교 등도 꽤 큰 네트워크인데 어떻게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또 일부 선생님은 이것도 하나의 유행일거라고도 말씀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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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의 공동체에 대해서는 솔직히 잘 몰라요. 사실 일정한 불신은 정상적인 거잖아요. 방송이 워낙 거짓말을 잘해요. 방송에 나왔다고 무조건 믿으면 안 되죠(웃음). 특강이나 연수에서 매번 강조하는 것이, 어차피 제가 하는 이야기 안 믿으실 테니까 주변에 이미 시작한 선생님들 만나서 경험을 직접 들은 후에 같이 해볼지 말지를 결정하라고 말씀드려요. 그런데 제가 답답한 건 안 만나고 안 들으세요. 선입견을 가지고 판단을 끝내버리는 거죠. 사실 이것은 아이들에게 교육적으로도 좋지 않은 태도죠.
거꾸로학습을 만든 존 버그만 선생님과의 관계가 궁금합니다. 존 버그만 선생님이 바라보는 미래교실네트워크도 궁금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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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버그만은 Flipped Learning을 만든 원조잖아요. 하지만 아까도 말씀드렸듯 저희의 목표는 그게 아니에요. 저희는 거꾸로교실을 가볍게 생각하거든요. 로켓이 궤도에 올라갔으면 1단 로켓을 툭 버리고 가듯이, 거꾸로교실 역시 중요하지만 그것을 위해서 하는 것은 아니라는 거예요.
애초에 시작 단계부터 저는 Flipped Learning을 보고 들어간 것이 아니고 전체 교육의 상황을 보다가 연결 지은 거예요. 제가 저널리스트였기 때문에 갖게 된 강점이기도 한데요. 취재하는 과정에서 교육혁신과 관련해서 통찰(insight)이 훌륭한 분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어요. 그 사람들이 해석하는 Flipped Learning의 본질과 한계에 대해 다 들은 다음에 시작한 거예요. 그래서 거꾸로교실은 존 버그만의 Flipped Learning이 굉장히 진화한 한국형 모델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거죠.
스마트교육은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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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교육은 교육혁신을 위한 방법으로 테크놀로지와 디바이스를 이용한다는 거잖아요. 테크놀로지는 정말 중요해요. 저도 마찬가지고 우리 선생님들도 정말 잘 쓰고 있죠. 하지만 저희는 시작하는 단계에서 영상을 보는 것 이외에 테크놀로지를 쓰는 모든 방법을 배제하자고 했어요. 교육을 혁신하는데 있어서 가장 낮은 수준의 기술이 뭘까 살펴봤어요. 기술의 최저 수준에서 어떤 장비와 테크놀로지가 필요한지, 어느 정도의 예산이 투입되면 교육이 바뀔 수 있는지 분석하고 그런 사례를 계속 취재했어요. 결론적으로 ‘영상을 볼 수 있는 단계’면 된다는 것을 발견했죠.
그래서 저희가 시작할 때 완전히 다르게 접근한 것은, 아날로그 상태로 간다. 그런데 그 상태에서 교실이 살아나는 것을 봤잖아요. 교실이 살아나기 위해 중요한 것은 테크놀로지가 아니라는 것을 본거예요. 아이들이 주도적으로 뭔가를 해내고 궤도에 올라가고 나서, 그때 디바이스를 주면 굉장히 생산적으로 써요. 예전에는 재미있는 것이 없어서 게임하러 들어갔다면 지금은 수업활동이 재미있게 느껴지니까 수업의 도구로 쓰는 거예요. 아이들에게 디바이스의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잖아요. 그러면 쓰는 수준도 계속 올라가게 돼요.
저희는 초반부터 ‘타임라인’이라는 개념을 썼는데요. 어떤 방법이 유효하니까 쓰자 혹은 말자가 아니라, ‘어떤 순서로 갈 것이냐’가 중요하다는 거죠. 거기서 오해가 많이 발생해요. 예를 들어 저희가 테크놀로지를 활용해서 수업한 것을 발표하면 비판하는 쪽에서는 결국 기술을 사용하는 거 아니냐고 하세요. 저희는 그런 의미가 전혀 아닌데 말이죠. 이 문제는 다른 나라도 똑같았어요. 기술이 교육을 바꿀 거라는 생각이 있었죠. 하지만 요즘은 그런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매우 중요한 지점입니다. 사실 선생님들이 새로운 시도를 할 때 현실 여건이 가장 큰 장애물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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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의 또 한 가지 특성은 항상 ‘성공 케이스’를 만드는 거예요. 그리고는 그 성공 케이스가 얼마나 쉽게 이루어지는지를 말해주었죠. 캠프 때도 선생님들이 얘기하는 것이 “나 이렇게 재미있는 수업을 해봤는데 정말 쉽게 한 거야. 날로 먹었어.” 이런 이야기를 해요. 지금 핵심 멤버인 선생님 중 많은 분들은 원래 '좋은 교사'라고 자신하시던 분들이 아니었어요. 기존에 붕괴 상태에 있던 분이 많았죠. 임용된 지 보름 만에 바닥을 치고 수업이 회복된 경우, 정년을 2년 남기고 수업에서 펄펄 나는 선생님, 교실에서 애들한테 완전히 무시당하다가 이제는 살아난 선생님 등 다양해요. 그래서 저희가 말씀드리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다는 거예요.
앞으로 계획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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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계속 하고 싶은 것은 교육이 진짜 유의미하게 바뀔 수 있는 모델을 찾아내고 실험하고, 그런 경험을 나눠서 다 같이 변하는 거예요. 이런 면에서는 지금까지 잘 해온 것 같아요. 계속 유의미한 사례들을 만들어 내고 있는데, 이제는 이것을 한 자리에서 실현해보는 경험을 해보고 싶은 거죠. 그래서 학교를 해 보고 싶어요. 그 장소로 유력하게 생각하는 곳이 파주에 있는 ‘거꾸로캠퍼스’예요. 가능한 단시간에 선생님들이 모여서 학교처럼 진행하고 그 결과를 공유하는 거죠. 올해 3월부터 바로 하려고 해요. 계속 기록을 할 거예요.
마지막으로 좋은교사운동 선생님을 포함한 현장 선생님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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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교사가 아니고 거짓말 잘하는 언론인이잖아요. 제 말 믿지 마시고 주변에 있는 선생님들 수업을 한번만 봐주세요. 미래교실네트워크 홈페이지 들어가면 지도가 있고 어떤 지역에 어떤 선생님들이 있는지 다 나와 있어요. 못 찾겠으면 연락주시면 알아봐드릴게요. 실제 수업을 보고도 믿을 수 없다면 할 수 없지만 먼저 해야 할 작업은 바뀐 교실을 직접 보시는 거예요. 판단은 그 다음에….
인터뷰 이후 저녁에는 정찬필 사무총장의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고, 사무실에 돌아와 미래교육 관련 시리즈 방송을 다시 보았다. 세계적인 교육의 흐름에 대한 통찰과 이를 바탕으로 한 미래 역량의 도출, 현실과 분리되어 이상만 쫓지 않고 현재 여건에서부터 시작하는 전략, 교사의 자발적인 참여와 네트워크를 통한 확산, 그리고 교육을 바꾸기 위해 과감하게 안정된 직장을 포기하고 몸을 던지는 헌신적 삶을 보며 나 자신과 우리 운동을 성찰하게 되었다.올 한해도 ‘미래교육’에 대한 화두를 품고 오늘 학교에서 실천하고 있는 모든 선생님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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