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만나고 싶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오직 말씀으로, 오직 은혜로, 오직 그리스도로, 그리고 오직 주의 영광을 위해서(임성빈 장로회신학대학교 총장_2017.1)


오직 믿음으로, 오직 말씀으로,

오직 은혜로, 오직 그리스도로

그리고 

오직 주의 영광을 위해서

 










임성빈 (장로회신학대학교 총장)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에서 박사(ph.D)학위를 받았다. 1994년부터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기독교 윤리를 가르치고 있다. 문화선교연구원장, 기독교윤리실천운동 공동대표, 한반도평화연구원 부원장 등으로 활동하였고, 현재 장로회신학대학교 총장과 대한민국교육봉사단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21세기 책임윤리의 모색, 소비문화 시대의 기독교, 공공신학: 한국교회의 사회적 섬김에로의 초대(공저), 통일에 대한 기독교적 성찰(공저) 등이 있다.

 


인터뷰.정리 임종화 사진 김현경


 

교회의 위기, 교회학교의 위기라는 말을 들어도 이제는 무덤덤해진 시대가 되었습니다그만큼 위기는 현실이 되었는데 대안은 보이지 않는 답답한 상황입니다특별히 2017년은 종교개혁 500주년입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고 기억하며 교회가 복음의 능력을 회복하여 이 시대의 과제에 응답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묻기 위해 지난 10월 장로회신학대학교 총장으로 취임한 임성빈 총장을 만나 교회에 대한 고민과 비전을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장신대 총장이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먼저 장신대 신학교육의 비전을 듣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신학대학은 교회를 섬길 목회 후보자를 양성하는 곳이기 때문에 목회 후보자 양성이 첫 번째 목적입니다. 두 번째로 신학대학에는 신학생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 교육, 교회 음악 전공 등도 있기 때문에 꼭 목회자가 아니더라도 시민사회를 섬길 지도자나 동역할 사람을 양육한다는 사명이 있죠. 오늘날 한국 교회와 사회의 위기는 우리에게도 위기입니다. 그런 면에서 한국 사회가 건강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교회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하고, 그 빛과 소금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서 신학교가 해야 할 몫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신학교는 일종의 물이 공급되는 유수지라고 생각해요. 교회에 목회자를 공급하고, 교회가 나아갈 방향을 신학적으로 제시하는 터전이죠. 그래서 좀 더 신학교다운 신학교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2017년은 종교개혁 500주년이고 2018년이 대한민국 정부수립 70주년, 2019년이 3.1운동 100주년입니다. 이런 사건들의 의미를 생각하며 통일한국을 준비하면서 교회다운 교회를 세워나가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결국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신학교다운 신학교, 하나님 나라를 지향하는 신학교, 통일시대를 준비하는 신학교, 세계 교회와 협력하는 신학교. 이렇게 하나님 나라 중심의 비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현재 우리 사회에서 어떤 것이 가장 위기이고 문제라고 생각하시는지요?

현상적으로 사회의 양극화가 위기입니다. 이 문제는 표면적으로는 경제적 위기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경제적인 양극화를 조율할 수 있는 것이 정치적인 리더십이잖아요. 지금 정치적 리더십이 우리에게 상당한 절망과 허망함을 주고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 국민들이 정치에 신뢰를 잃어가면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리는 것이 가장 큰 위기라고 생각합니다.

 

총장님은 신학자이시면서 한편으로 기독교윤리실천운동, 문화선교연구원, 한반도평화연구원 등 다양한 전문 영역에서 활동하고 계십니다. 이런 활동을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이런 전문영역 자체가 어떤 기독교적 의미가 있을까요?

저는 기독교 윤리학자인데요. 기독교 윤리학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시작하는데 결국은 말씀으로 은혜를 받은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느냐로 나타납니다. 독일어로 은혜를 가베’(Gabe)라고 하거든요.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곧 은혜는 선물이고, 은혜에 덧붙여지는 것을 아우프가베’(Aufgabe)라고 하는데 이것을 책무라고 해요. 결국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책임을 가지게 되는 거죠. 하나님께 사랑을 받은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게 되고, 그와 같이 이웃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은혜를 받으면 받을수록, 하나님을 알면 알아갈수록 이웃의 범위가 확장되어 갑니다. 나의 하나님에서 우리 가정의 하나님, 우리 교회의 하나님, 이렇게 말이에요. 이 모든 것은 사실 세상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고백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를 하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와 구속으로 연결돼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고 누구든지 멸망치 않고 구원을 받기 원하신다.” 이걸 깨닫게 되면 세상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됩니다. 그것이 당연한 선교적 관심이죠. 우리가 신앙인이자 은혜를 깨달은 사람이라면 은혜를 아는 만큼 하나님의 사랑이 깊고 높고 넓음을 아는 만큼 책무의 범위가 넓어지게 됩니다.

장로교 창시자인 칼뱅은 우주란 하나님의 영광이 펼쳐지는 무대라고 봤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한 온 우주가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의 나라여야 하는데 지금 죄로 인해서 다 뒤틀려 있어서 이것을 회복하기 위해 우리가 청지기로서 부름 받은 거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영역이 하나님의 나라로 회복되어야 하는 영역인 거죠. 기독교 윤리학의 핵심적 과제는 이 영역들에 대해서 기독교적 정체성을 바탕으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책무, 즉 기독교적 정체성과 공적 책무성을 어떻게 조화하느냐는 겁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어떻게 조화하느냐는 거예요. 어찌 보면 제가 기윤실, 문화선교연구원, 한반도평화연구원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거죠.

다만 저는 신학자이기 때문에 그 모든 영역에 전문성이 있는 것은 아니죠. 통일은 민족적 이슈, 문화는 기독교인으로서 문화 명령의 기본적인 책무 영역, 기윤실은 구조 안에서 기독교적인 삶을 제대로 살아내느냐 하는 문제를 각각 다룹니다. 제가 갖고 있는 것은 신학적 관점이고요.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헌신적인 지식인들과 각 전문단체를 통해 학제 간 만남이 있었고, 그것을 통해 지평이 넓어지고 도전을 받는 것은 굉장히 의미 있다고 보거든요.


2017년 올해가 종교개혁 500주년입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누가복음 188절에서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 하셨더라구요. “인자가 다시 올 때에 믿음 있는 자들을 보겠느냐.” 처음에는 이 말이 잘 이해가 안됐어요. 왜냐하면 저는 한국 교회가 성장하는 70~80년대를 살아왔잖아요. 제 주위에는 항상 믿음 좋아 보이고 절대 예수님 배반 안하고 순교할 것 같은 사람들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세월호 사건이라든지 최근 국정농단 등을 보면서 ! 우리가 진짜 무력하구나, 믿음 있는 사람들이 정말 이 땅에 5분의 1이라도 되었다면 이 땅이 이렇게 되었을까? 우리가 정말 믿음이 없구나라는 생각에 제 자신의 믿음에 대해서 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우리가 믿음이 있다는 것이 뭐냐, 교회 다닌다고 믿음이 있는 거냐, 이런 것에 대해 근본적으로 묻게 되더라고요.

종교개혁은 바로 그것을 묻는 것입니다. ‘무엇으로 구원을 얻느냐. 교회 다닌다고, 목사라고 집사라고 장로라고, 헌금 좀 하고 무슨 사역을 좀 했다고 구원을 얻는 것이냐. 그런 걸로 구원 얻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사는 것은 오직 믿음으로, 오직 말씀으로, 오직 은혜로, 오직 그리스도로 사는 거다. 그리고 오직 주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거다.’ 저는 이것이 2017년을 맞이하는 우리들에게 여전히 강력하게 도전되어야 될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종교개혁은 이벤트가 아닌 프로세스로서 우리가 계속 그 안에 들어가야 합니다.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만 한다’(Ecclesia reformata est semper reformanda, The reformed church should always be reformed)라는 말처럼 개혁된 교회라도 계속 깨어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교회는 특정한 제도적 교회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각 성도를 말합니다. 우리 자신들이 사도 바울의 말씀처럼 매일매일 죽어야 되고 거듭나야 된다는 뜻이죠. 저는 그런 의미에서 500주년에 우리 자신에 있는 들보를 더 깊이 보고 개인과 제도-조직을 성찰하며 가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말씀하신 맥락에서 이야기를 이어가고 싶습니다. 현재 교회의 위기라고 하는데요. 구체적으로 무엇이 위기인지를 알아야 구체적으로 대책을 마련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교회의 위기를 다양하게 얘기할 수 있겠죠. 먼저 교회의 위기는 교인된 우리, 신앙인들의 위기라고 생각을 해요. 왜냐면 교회 자체가 바로 우리거든요. 교회는 어떤 특정한 목회자나 특정한 교회 한두 개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는 우리거든요.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것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건데.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리스도인다워지는 만큼 교회는 교회다워진다고 생각해요. 신앙인은 오직 말씀과 믿음으로 살아가야하는데 우리에게 너무 불순물이 많이 끼어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개인적 차원에서의 회개와 반성이 있어야 합니다.

제도적 차원과 문화적 차원에서 이런 것들을 정당화하고 회개하지 않게 하는 나쁜 신학이나 나쁜 제도나 나쁜 문화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 면에서 신학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 오염된 신앙, 오염된 신학, 오염된 문화를 좀 더 근본적인 복음의 관점에서 비판할 수 있느냐. 그리고 건전한 신앙과 신학으로 도전하느냐. 이것이 신학교의 중요한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범위를 좁혀서 요즘 학교보다 교회학교가 더 위기라는 말을 하는데 교회학교의 위기에 대해 교회가 어떤 식으로 대처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쉽지 않은 주제인데요. 교회학교의 위기에 대한 분석은 여러 가지가 있잖아요. 인구절벽, 교회가 젊은 부모를 잃어가는 문제 등이요. 저는 이것이 굉장히 유기적인 문제라고 생각해요. 많은 교회에서 정책 결정권 같은 주도적인 힘은 기성세대에게 있는 거죠. 그러다 보니 설교라든지 교육 정책의 초점이 그들에게 맞춰져 있는 경향이 많습니다. 30~40대에게는 기성교회가 도전을 주지 못하고, 그러다보니 그들의 자녀 또한 교회학교에 열심히 안 나오게 되는 것이 원인 중 하나입니다. 이처럼 교회학교의 문제는 매우 복합적인 문제여서 교회학교 하나만의 처방으로 끝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교회 전반적인 차원에서 성찰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30~40대가 남아있고 자녀들이 있는 교회는 조금 더 그들 눈높이에 맞추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는 전근대, 근대, 탈근대가 문화적으로 공존합니다. 저는 전근대가 근대보다 더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둘의 특색이 다른 거죠. 전근대는 관계성을 강조하고 장유유서의 문화가 있고, 근대는 그에 비하면 굉장히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것을 추구하죠. 당회는 전근대적이지만 제직회나 청년회는 근대적 성향이 있잖아요. 그런데 또 교회학교는 그 둘 가지고도 안 돼요. 상당히 포스트모던(탈근대)적인 성격이 강하죠. 그러니 교육방법도 달라져야해요. 전통적 교회학교 식의 획일적인 것에서 벗어나 온라인을 활용하기도 하고, 더 통전적이고 인격적인 교회학교가 되어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선생님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열정이 있는 선생님들은 문화적인 것이나 기기를 활용하는 역량이 부족하고, 역량이 되는 선생님들은 열정이 부족한 경우를 종종 보게 되는 것이죠. 이를 위해 교사 안에서 먼저 세대적인 협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한편으로 기성교회를 비판만 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재는 교회를 유지하는 것만도 쉽지 않거든요. 50대 이상의 성년을 교회 안에서 복음적으로 양육하기가 쉽지 않아요. 그들의 경우 세속화가 워낙 강하여 세상의 유혹을 이기기가 쉽지 않거든요. 교회 다니면서도 점집에 다닐 정도로 신앙의 뿌리가 약한 사람이 많습니다. 이런 현실이 현재 교회 안의 문화적 흐름이거든요. 세속화와 소비문화, 유교적이고 샤머니즘적인 것들이 우리 안에 다 섞여 있어서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것이 참 쉽지 않습니다.

다른 측면에서 청년을 신앙인답게 교육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젊은 사람들 위주로 모이는 중소형 교회가 많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요즘 가나안 교인 백만 시대라고 합니다. 기성교회에 적응하기 어려운 분들을 위한 교회가 세워지되, 그런 교회는 도덕적이거나 영적인 우월성을 갖지 않고 기성교회에 대한 쓴뿌리를 갖지 않는 교회여야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선교적 사명을 가지고 젊은이와 가나안 교인 등을 섬기겠다고 생각하는 교회가 많아져야 하고, 기성교회는 그런 교회들을 지원하고 축복해주는 거죠.

장신대도 이러한 부분에 관심이 많습니다. 장신대 학생들이 중소형 교회를 섬기는 비전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중소형 교회에서의 목회가 쉬운 것이 아닙니다. 큰 교회에 가면 부분적 사역을 하면 되지만 중소형 교회에서는 본인이 다 해야 하거든요. 훨씬 많은 역량이 있어야 하죠. 예비 목회자들에게 이러한 역량을 키워주는 것이 우리 학교의 과제입니다.


좋은교사운동과 같은 전문영역의 기독 NGO들은 교회 성장기인 90년대에 만들어졌습니다. 교회와 마찬가지로 저희도 다음세대에 대한 고민이 있습니다.

좋은교사운동도 20년 됐고, 제가 섬겼던 문화선교연구원도 20년이 되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시작되었죠. 모두 한국 기독교가 힘이 있을 때 만들어진 것들이에요. 힘이 있으니까 전문화되고 분화된 것이죠. 그 전까지 교회의 성장이 곧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라고 생각했다면, 하나님 나라에 눈을 뜨면서 , 교회에서 말씀으로 은혜를 받은 다음에 복음이 실천되어야 하는 곳은 전문영역이다라는 것을 깨닫고 전문인으로서의 사명감을 가지고 각자 영역에서 시민운동과 함께 시작된 것이죠.

그때도 물론 다음세대를 위해서 무엇인가를 했어요. 아카데미나 리더십 학교의 형태가 많았죠. 당시 저희는 브릿지 세대라는 자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우리 윗세대가 개척자 세대라면 우리는 브릿지 세대로 다음 세대가 좀 더 전문성을 가지고 사회에서 기독교적 가치관과 세계관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를 명료하게 세워나가게 하자는 비전을 가지고 있었던 거죠.

그런데 돌아보니, 각 분야의 전문성과 복음적 정체성을 융합하고 조화시키는 것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느끼게 돼요. 저희 세대에는 어떤 분야에 있어서 기독교인이 비기독교인보다 앞서나갈 수 있는 여건이 있었어요. 그러다보니 지금 1세대들의 운동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면 엘리트적이고 계몽적인 성향이 있었다고도 볼 수 있거든요. 반면 지금은 훨씬 더 경쟁이 치열해졌고 교회가 가지는 상대적인 경쟁력이 떨어졌죠. 지금 운동은 대중적이면서 생활에 밀착한 운동이 될 수도 있어서 다른 점이 있을 것 같아요.

 

전문운동 차원에서 좋은교사운동을 어떻게 바라보시는지요?

좋은교사운동은 아주 오래 전부터 알았는데요. 저도 교육자지만 교육영역에서 교사는 굉장히 중요한 존재입니다. 교육의 여러 요소들이 다 중요하지만, 교사 영향력의 중요성에 대해 저는 매우 강조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신앙을 가진 선생님들이 신앙을 마음에 품고 학생들을 제대로 섬기겠다, 교육현장을 제대로 섬기겠다는 마음으로 개인적 차원, 구조적 차원에서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 너무 고맙죠. 희망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나라 교육운동을 봤을 때 지금까지는 너무 양극화된 이미지를 갖고 있잖아요. 한쪽은 이념적이고 한쪽은 기득권에 천착하는 듯한 이미지를 갖고 있죠. 그런데 좋은교사운동이 이야기하고 실천한 것들은 그런 이미지를 뛰어넘어서 복음적인 교육을 이야기하고 실천해 오지 않았습니까. 지금까지의 발걸음이 앞으로도 한국 교회의 자랑이자 한국 사회의 희망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좋은교사운동의 출발과 지금까지 사역에 대해 축복하고, 기쁘고 자랑스럽게 생각을 하죠.

좋은교사운동에 대한 기대라고 한다면, 지금까지의 성공이 아니라 이제부터가 진짜 중요한 때인데, 이 때를 어떻게 끌고 나갈 것인지 기대하게 되죠. 교육현장에 모순적인 상황이 극명할 때는 틀린 것을 틀렸다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고 그 반대로만 행동하면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양자택일도, 사지선다도 아닌 다양성의 시대이며 모호함의 시대잖아요. 이 시대 속에서 과연 기독교적 세계관과 가치를 어떻게 적용할 것이냐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 거예요. 이런 때 우리가 어떤 길을 택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좋은교사운동이 제시해 주어야 한다는 기대와 요구를 받게 될 것입니다. 어느덧 그런 자리에 왔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좋은교사운동의 전문적 역량이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는 요구를 받을 것 같습니다.

그것은 개인적 차원에서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기독교사의 역할, 기독교사로서의 리더십은 인격전문성비전을 가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인격은 신앙을 토대로 아이들에게 진짜 영향을 줄 수 있는 신실함, 정직성 등을 말합니다. 그리고 전문성은 강의에 대한 실력, 전공분야에 대한 탁월함을 말하죠. 당위성만 가지고 수업을 하면 아이들은 질식하고 맙니다. 사실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것이 탁월함은 없고 가르치는 사람이라는 지위와 권위만 가지는 거잖아요. 자기 분야에서 역량을 키우는 것은 인격의 신실함을 갖추는 것만큼 중요해요. 마지막으로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전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다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겸손하게 다른 사람과 연대할 수 있는 비전이 우리에게 있어야 하죠. 이 세 가지를 위해 우리는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인격, 전문성, 비전이라는 세 가지는 저희에게 매우 중요한 기준이 되는 것 같습니다. 한 편에서 좋은교사운동이 교사측면의 운동은 잘 하고 있는데, ‘기독측면에서 개인의 영성, 교회와의 협력은 약화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있습니다. 개인적인 신앙, 교회와의 협력 측면에서 좋은교사운동이 어떻게 하면 좋을지 조언을 해주신다면?

그 부분이 바로 좋은교사운동이 해주면 좋을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건데요. 좋은교사운동이 교회와 해야 할 일이 매우 많다고 생각해요. 각 교회는 보통 그 지역사회의 허브잖아요. 지역에는 학교들이 있죠. 교회가 지역에 있는 학교와 긴밀하게 연계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 학교에 계시는 좋은교사운동 선생님을 통해 어려운 아이들이 교회와 연결되고, 교회가 가정도 돕고 공부도 하게 하면서 지역사회를 구체적으로 도울 수 있을 겁니다. 그러면서 교회가 교육의 미래를 같이 고민할 수 있게 되죠. 제가 대한민국교육봉사단 씨드스쿨을 시작하게 된 계기도 교회가 이런 역할을 하기 원했던 거죠.

교회들은 대부분 교육에 관심이 많습니다. 하지만 교육현장은 급변하고, 교회는 현장의 변화를 잘 모르거든요. 그러니까 좋은교사운동 선생님들과 그 지역 목사님들이 협조하여 교육현장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하면 많은 목사님들이 설교에서부터 실제 교육현장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고, 실제적인 동역을 할 수 있게 될 거라고 봅니다. 은평구에서 지역교회와 학교가 연합하여 활동하고 있는 좋은학교만들기 네트워크가 이것을 잘 하고 있죠. 이런 네트워크가 지역마다 있었으면 좋겠어요. 5일제, 자유학기제 등이 시행되면서 교회들도 교육에 있어서 몸부림을 하려고 하는데, 좋은교사운동이 이런 면에서 교회와의 협력을 강화하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좋은교사운동 선생님에게 한 말씀 해 주세요.

먼저 좋은교사운동 선생님들에게 다시 한 번 고맙고 자랑스럽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특별히 오늘날 대한민국 현실에서 초..고가 너무 중요한 때거든요. 학교에서 개인적으로 섬기실 뿐만 아니라 교육 구조를 위해서도 하나님 나라의 통전적 관점으로 섬기고 계신 것이 정말 고맙죠. 특별히 2년마다 기독교사대회로 선생님들이 모이는 것을 보면서 희망을 가져요. 저도 교육자지만 교육의 현실을 생각할 때 희망이 있나싶다가도 좋은교사운동 선생님들이 신앙을 포기하지 않고 교육을 포기하지 않고 힘쓰시는 것 보면서 저도 희망을 가집니다. 감사합니다.

 

총장님과의 대화를 마치고 교회의 위기에 대해 나 자신을 먼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나 자신은 복음에 근거하여 철저하게 살고 있는지, 기독교사로서 인격, 전문성비전을 갖추고 있는지 묻고 또 물었습니다이러한 자기 성찰과 사회적 아픔에 대한 공감,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이 교회가 회복되는 시작임을 기억합니다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그 정신을 기억하는 2017이 되기를 바라며 한 해를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