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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 쌤의 계속되는 교사 도전기 13 : 이상한 교육, 이상적 교육?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5. 4. 14:13


아줌마 쌤의 계속되는 교사 도전기 13
이상한 교육, 이상적 교육 ?

김 은 영


 

지각  Zero = 이상적 교육 ?

  자습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에도 우리 반에는 빈자리가 보인다. 이상하다. 치맛단도 끝까지 뜯게 했으니 분명히 치마 길이 때문에 잡힌 것은 아닐 것이다. 머리? 머리도 누가 봐도 분명히 목에 닿지 않는 길이인데…. 그럼 무엇일까? 지각? 아픈가? 아프면 문자라도 왔을 텐데…. 혹 우리 반 한 명 때문에 ‘전교생 지각 Zero’가 실패로 돌아가는 거 아니야?

  불가능할 것으로 보였던 지각 제로화가 3월 한 달 동안 두 번이나 실현되었다. 매일 아침과 점심마다 5분씩 반복되는 생활 지도(지각, 폭력, 정숙, 간식 먹지 않기, 복장 등) 교육이 어느 정도 효과를 본 것일까? 1,400명이 넘는 십대들이 어떻게 지각을 아무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갑자기 참을 수 없는 복통으로 등교하려고 신던 신발을 다시 벗고 화장실로 달려가는 아이가 하나도 없을까? 너무 피곤한 나머지 알람을 끄고 다시 자는 바람에 얼굴에 물만 칠하고 등교할 수밖에 없는 아이는 없을까? 정말 집요하게 지독하게 반복하고 세뇌하는 것이 ‘교육’이어서 지각 제로가 되었단 말인가? 이해할 수 없는 이런저런 생각에 마음이 불편하다.

  그때 “2반 지각자 한 명 있네. 2반은 왜 이리 지각자가 많아?”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말씀을 던지시고 홀연 사라진다.


7교시 방과 후 100% 참가 = 이상적 교육?

  7교시 방과 후 수업, 성적으로 끝에서 자른 20명. 어떻게든 그들의 마음을 잡아 즐겁게 수업해 보리라 결심했던 마음은 한 순간에 한계에 부딪친다. ‘왜요?’, ‘뭘요?’, ‘싫어요’가 반응의 전부인 그들은 PC방과 교실의 용도를 구분하지 못한다. 그래도 30%는 열심히 쓰고 따라 하고 대답도 한다. 그 녀석들이 어느 때보다 빛나고 고마운 시간이다. 부모와 교사의 당부에 마지못해 앉아 분별없이 구는 녀석들. 왜 그들이 이 자리에 앉아 서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야 하는지. 예외 사항 없이 방과 후 수업 100% 참가라는 것이 자랑거리라도 되는 것일까? 100%라는 완벽한 겉모습과 우울한 속사정 사이에 서 있는 일개 교사의 마음은 갈팡질팡한다.


명문(?) 중학교

  이런 여러 이유로 우리 학교는 전입할 때 가장 선호하는 학교다. 인근 학부모들이 가장 우선으로 자녀를 보내고 싶어 하는 학교다. 물론 그것이 헛소문일 수도, 우리 학교 일부 교사들의 착각일 수도 있지만. 그런데도 때때로 답답함을 느낀다. 정말 좋은 학교인지 의심이 생긴다. 정말 이상적인 교육을 향해 가고 있는지 한숨이 나올 때가 있다.

  하나님께서 위임하신 모든 권위에 순종할 때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흘러간다는 존 비비어 목사님의 강권이 내겐 너무 어렵게만 느껴진다. 여기서 숨을 쉬면서 적응하느라 애쓰는 건 사실 권위에 순종해서는 아닌 듯하다. 지각자 없고, 복장 위반자 없고, 떠들고 싸우는 녀석들 없고, 예외 사항 없고. 이런 학교가 교사에겐 편한 공간이라는 것을 내 몸이 알아채 버린 듯하다. 그런데 녀석들과 실랑이 벌일 필요 없는 학교가 정말 좋은 학교일까?

  예수님의 제자들, 12명밖에 안 되는 그들도 잠자느라 기도 안 하고, 예수님 모른다고 거짓말하고, 돈 때문에 예수님을 팔기도 하고, 더 높은 자리에 앉으려고 다투고,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의심하고. 예수님의 제자들도 이러했는데 정말 1,400명이 넘는 녀석들이 가능한 이야기일까?


이상한 교육에서 이상적 교육으로

  ‘그거 해서 뭐하게요?’ 가정 방문을 앞두고 매년 들어왔던 질문인데도 어김없이 생각의 꼬리를 문다. 특히 방문을 꺼려하신다는 이야기를 아이를 통해 들을 때, 그 꼬리는 더 길어진다.

  ‘정말 내가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것인가?’ 보이는 아이들을 감당하고 천천히 알아 가고 그 자체로 이해하고 돕는 것과 굳이 가정 방문을 해서 듣고 보고 하는 것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하는 일도 많은데 버스 타고, 걸어서 저녁도 먹지 못한 채 움직이는 일개 교사의 밤길이 과연 우리 아이들 교육에 한 가닥 희망의 길을 만들어 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방문을 통해 이어지는 대부분의 대화는 역시 ‘공부’, ‘진학’ 인 것을. 집의 아이 공부 습관도 변화시키지 못하는 내가 부모님과 아이들이 원하는 획기적인 변화를 줄 수도 없는데. 당연히 해야 하고, 그 당연함 속에는 방문이 꼭 필요한 아이들이 있음을 알면서 발걸음이 무겁다.

  그때. 이런, 버스 속에서 아파 조퇴하는 졸업생을 만나다니. 아프다면서 질문도 많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가정 방문 가는 사연을 듣더니, “나름대로 중요한 의미가 있네요.” 하며 웃는다. 내 마음도 따라 웃는다.

  그러고 보니 예수님은 3년 공생애 동안 제자들에게 집중하신 것은 사랑의 참 제자 양육이었다. 테두리만 만져 대는 이상한 교육이 본질에 다가가는 이상적 교육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은 나만의 소망은 아닐 듯하다.








김 은 영

최선과 자유로움 사이에서 허덕이는 14년차 아줌마 쌤.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좋은 엄마, 좋은 교사가 되는 것이 목표. eunda95@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