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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 일기

에티오피아에서 여학생으로 사는 법


에티오피아에서 여학생으로 사는 법

 

 

날씨가 많이 차가워지면서 어느새 가을도 금세 자취를 감출 것 같습니다. 지금 이맘때쯤이면 에티오피아에서도 가을 하늘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아프리카에 무슨 가을이냐고요? 에티오피아에 가을이라는 명칭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가을 하늘처럼 맑은 하늘과 차디찬 바람을 밤과 낮으로 즐길 수 있습니다. 바로 아프리카의 고온 건조한 기후가 주는 특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청명한 가을 하늘을 가장 마음 깊이 느끼고 감성에 젖을 수 있는 여학생들의 처지가 생각나는 11월입니다. 이번 호에서는 아프리카에서 ‘여학생’으로 사는 법을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넌 몇 살이니?

에티오피아에서 수업을 하다 보면 나이 대가 다양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저도 처음 수업에 들어갔을 때, 다양한 연령층의 학생들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학생들의 이름과 나이를 물어보면서 출석부를 작성하는 것이 처음 수업에 들어가면서 으레 하는 작업입니다. 학생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가면서 성별과 나이를 조사하던 중 저는 몇 차례나 학생들의 나이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제 나이 대에 맞게 학교에 오는 학생은 한 반에 10% 정도에 지나지 않고, 특히 여학생들은 원래 학생들의 나이보다 적게는 한두 살, 많게는 대여섯 살까지 많았습니다. “넌 도대체 몇 살이니?” “저요? 20살이요. 히히.” 수줍게 웃던 여학생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정말? 음…. 왜 늦게 학교에 왔는지 물어봐도 되니?” “제가 없으면 빨래하고 밥은 누가 하나요? 이제는 동생들이 커서 공부할 수 있어요.” 여학생의 대답입니다.

 

초등학교만이라도…

“신은 존재하죠. 하지만 신은 불공평한 것 같아요”라고 어느 한 여학생이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 여학생은 17살로 이제 초등학교 6학년에서 수업을 듣는 학생이었습니다. “빨래, 음식 만들기, 청소, 동생 돌보기 등 제가 없으면 집안일이 돌아가지 않아요. 이렇게 학교에 나오는 것도 부모님께 눈치 보이는 일이에요. 하지만 지금 학교를 다니지 않으면 글도 모르고 숫자도 모르고 나중에 너무 억울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이렇게 나와서 공부하고 있어요. 중학교까지는 꿈도 꾸지 않지만 초등학교만이라도 마칠 수 있으면 정말 좋겠어요.”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이제 신부 값을 받고 팔려 갈 수밖에 없는 처지에 몰리게 될 이 여학생은 지금의 삶이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어릴 때는 집안일로 가정과 사회로부터 배척되고 나이가 들어서는 가족들의 미래를 보장하는 어느 정도의 돈을 받고 팔리는 이 안타까운 현실 속에서 지금도 많은 에티오피아의 여학생들은 살아가고 있습니다.

 

삶의 덫을 벗어나고 싶어요

전 세계적으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역의 여학생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에 동참하는 차원에서 에티오피아 내 한국 사회에서도 에티오피아 여학생 몇 명을 돕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었습니다. 하지만 도움의 결과는 처참하기에 그지없었습니다. 에티오피아 사회도 남학생들에게 학업 기회를 주는 것은 자신들의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해 우리에게 많은 협조를 구해 왔고 우리도 함께 협력했습니다. 그러나 그네들은 여학생들에게 장학금과 학업의 기회를 주는 것은 쓸모없는 것이라 여겨 이 일에 대해서는 협조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도움을 받은 여학생의 가정에서는 장학금을 가로채 가정 살림에 요긴하게 쓰는 경우가 매우 많았습니다. 심지어 어떤 학부모는 여학생에게 도움을 주는 몇몇 후원자를 경찰에 고발해 여학생을 꼬드겨 집을 나오게 한다며 억울한 일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는 여학생들이 그만큼 가정 안에서 요긴하게 쓰이고(?) 있다는 점을 반증하는 것일 수 있겠지요. 여학생들은 가정 형편이 어느 날 갑자기 풍족해지지 않는 한 삶의 덫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여학생의 퉁퉁 부은 손

학생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가슴 아팠던 장면이 몇몇 있었습니다. 그중 하나는 고된 집안일에 손이 퉁퉁 부어 학교를 온 여학생이 연필을 쥐고 열심히 필기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이들에게 ‘해방’이라는 단어가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삶의 덫으로부터 절대적으로 벗어나게 할 방법이 절실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 여학생들의 마음속에는 시간이 흐를 때마다 긴장감의 연속일 것입니다. ‘점심밥을 차려야 하는데, 동생들을 돌봐 줘야 하는데, 설거지도 하고 집안 빨래도 해야 하는데. 빨리 학교가 끝나고 달려가야지 아버지가 학교 다니지 말라고 하지 않으실 텐데….’ 하고 말입니다. 수업도 끝나기 전에 긴장감에 휩싸인 여학생 몇 명은 종종 수업 중간에 학교를 도망쳤습니다. 그래야지 내일도 학교를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당장 무엇인가를 해 줄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지금 중동 지역의 철옹성 같은 무슬림 국가들의 절대 통치가 무너지듯이 주님의 애틋한 은총이 그들에게도 임하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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