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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 일기

대학생 선생님이 오셨어요

작은 학교, 큰 이야기 #6

대학생 선생님이 오셨어요

 

  작은 학교에 찾아온 손님

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지난 여름, 한적한 시골 분교에 대학생 손님들이 찾아왔다. 비욘드 더 마인드(beyond the mind)라는 대학생 재능 나눔 단체의 대학생들이 아이들과 함께 여름 캠프를 하기 위해 우리 학교에 온 것이다. 대학생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더 좋은 교육 환경에서 공부하고, 더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하고 싶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다. 그리고 곧 자신들의 다양한 전공을 살려 일주일 동안 아이들과 함께했다.

월요일 아침, 기대에 부푼 아이들이 학교에 모여들었다. 형과 누나, 언니와 오빠 같은 대학생 선생님들과의 첫 만남! 아이들은 처음에는 낯설고 어색해 했지만, 선생님들과 자기소개와 게임도 하고, 운동장에서 짝을 지어 피구도 하며 점점 마음을 열어 갔다. 햇볕이 쨍쨍하게 내리쬐는 오후 시간에는 시원한 교실에서 재미있는 영어 수업을 이어 나갔다.

 

물총 염색 시간에는 물총으로 흰 티셔츠를 염색하여 자신만의 옷을 만드는 시간을 가졌다. 다들 오늘만큼은 디자이너가 되어 저마다 생각해 놓은 모양을 물총으로 뿌리거나 글씨를 쓰며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옷을 만들어 나갔다. 등 번호를 넣어 축구 유니폼을 만든 주영이, 글씨를 잔뜩 써 넣은 다윗이, 서로의 옷에 몰래 사랑의 편지를 쓰는 선생님과 아이들의 모습들…. 물론 옷을 다 만들고 햇볕이 쨍쨍한 오후에는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뒤섞여 신나게 한바탕 물총 싸움을 하며 더위를 식혔다. 그 어느 때보다도 해맑게 웃는 아이들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절로 웃음이 나왔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항상 이렇게 밝게 웃을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을 것 같았다.

다음 날에는 아이들의 손을 본떠서 석고로 만든 다음 채색까지 하는 활동을 하였다. 자신의 손과 똑같은 모양의 석고를 보는 아이들의 눈은 휘둥그레졌다. 책상에 놓인 자신들의 손 모양 석고가 신기하기만 한가 보다. 점심시간에는 각자 집에서 가져 온 나물들을 비벼서 비빔밥을 해 먹었다. 아이들이 직접 준비하고 요리한다는 것이 큰 의미가 있었지만, 무엇보다 역시 비빔밥의 고장답게 음식이 정말 맛있게 만들어져서 그 어느 때보다도 즐겁고 풍성한 점심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우리는 꿈을 그려요

매일 오후 느지막한 시간이 되면 아이들은 꾸준히 벽화를 그려 나갔다. 조금은 남루한 학교 뒤편의 벽면은 금세 새하얀 새 옷으로 갈아입었고, 그곳에는 어느새 건물이 지어졌고, 무지개도 뜨고 우주선이 날고 있었다. 무엇보다 의미 있었던 것은 아이들이 벽화의 주인공이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캠프를 하는 동안 아이들이 각자의 꿈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었는데, 실제로 아이들이 벽에 기대서 자신의 실루엣을 그린 다음 30년 후 자신의 꿈을 그려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조금 심심했던 벽화 배경에는 대통령, 요리사, 정육점 사장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의 꿈을 펼치고 있는 미래의 아이들이 빼곡히 들어차게 되었다.

떠나는 날, 아침부터 아이들과 선생님들은 편지를 써 주고 같이 사진도 찍으면서 일주일간의 시간을 되돌아보았다. 첫 만남의 서먹함은 찾을 길 없고, 그동안 정이 든 선생님과 아이들은 떠나는 시간을 못내 아쉬워했다. 난 이번 캠프가 끝이 아니라 앞으로도 방학 때마다 꾸준히 선생님과 아이들이 유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이 캠프를 계속 이어 가리라 다짐했다.

이번 캠프에 대해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 나는 대학 시절 경북 예천의 작은 시골 학교에 교육 봉사 활동을 다녀 온 기억들을 떠올리며, 풋풋한 대학생들과 함께할 여름 방학을 아이들보다 더 많이 기대했었다. 이번 캠프 기간 동안 아이들의 해맑게 웃는 얼굴을 바라보며,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를 만들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 더 많이 고민하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벽화 제작을 포함한 다양한 체험 활동에 녹아 있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통해 많은 것을 보고 배우며 느끼게 되었다. 현실에 안주하려는 생각이나 스스로의 힘을 의지하는 교만함을 버리고, 더 좋은 교육을 위해 내 생각을 잠시 멈추고, 겸손하게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여유를 가져야겠다 생각했다.

 

나눔의 기쁨을 누리길

또한 소외당하고 어려운 환경의 아이들에게도 좋은 교육 환경을 만들어 주고자 자신들이 가진 것을 나누고 싶다는 대학생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과 함께 ‘나눔’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물건을 통용하고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었다. 물질 만능주의와 무한 경쟁 시대, 가치가 혼란해져 가는 이 시대 속에 우리 아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나눔의 삶을 살아가는 아이들이 되기를 기도했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주변을 둘러보면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그들에게 물질과 재산과 같은 육의 양식은 물론이요,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할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사랑과 복음의 말씀을 나누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하며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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