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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 일기

너희들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란다

너희들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란다

 

선생님이 요즘은 힘이 안 나는구나 

나는 언제나 좌절보다는 희망에 가까운 사람이고, 언제든 ‘아자 아자 힘내기!’에 강한 유형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이상하게 요즘은 참 힘이 안 난다. 너희들에게 늘 “기쁨과 슬픔은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다. 그러니 늘 ‘기쁨’을 선택하자” 하고 가르치는 내가. 왜 그럴까?

“딸내미들, 이제 시험 막바지라 스트레스 받고 있제?”라고 말하면서도 정말 받고 있을까 하는 약간의 의심. 그것은 아마 당신들이 유난히 밝고 명랑하고 씩씩하고 장난기 많고 심지어 잠시도 가만있질 못하는 모습을 시종일관 보여주고 있기 때문!

너희들을 보면, 내 고등학교 생활이 잘 기억이 안 난다. 나는 어땠더라? 선생님들이 보시기엔 잔소리할 것 없는 착실한(응?) 아이였을 것 같고, 친구들이 보기에도 그냥 열심히 하는, 간혹 4차원적인 면모를 보여 주는 아이였을 테다. (스스로는 지극히 정상적이라고 여기며 살았으나…. ㅡ.ㅡ;;)

그런데 정작 나 자신은 그저 빨리 이 고등학교 시간을 끝내서, 얼른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었단다. 바꿔 말하면 학교는 내게 그다지 행복하고 즐거운 공간이 아니었다는 이야기지. 이번 주 내내 아침마다 날라 오는 ‘레드 포인트’ 명단을 보면서 우리 아이들은 학교 오는 것이 행복할까 생각해 보았다.

나는 너희들이 거짓말할 때 가장 절망스럽다. 믿어 주어야 하는 건지, 속아 주어야 하는 건지 갈등이 생긴다. 한두 번쯤은 나도 그렇게 자랐겠지 하다가도, 속고 속이는 관계, 앞과 뒤가 달라야 하는 그 순간들이 참 서글프다.

그러나 언제나 나는 또 너희들에게 내 마음을 설명한다. “네가 이렇게 하면 선생님이 속상하다. 다음부터는 안 그랬으면 좋겠다.” 그러고 나면, 나는 또다시 새하얀 종이가 되어서 처음처럼 다시 믿어 주려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려고 애쓴다. 반복되는 배신감에는 가끔 분노를 폭발시키기도 하지만…. ㅋㅋ

 

삶이 좀 더 가벼워졌으면

오늘은 편지 쓰는 데 시간이 참 많이 걸린다.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를 여러 번. 나의 정신적 고뇌가 느껴지느뇨? 책상 앞엔 가은이가 그려 준 가은이 머릿속 그림이 붙여져 있지. 나도 내 머릿속을 한번 그려 보고 싶다. 지금 선생님이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 가장 고민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년엔 기필코 하고 있는 일들을, 내 욕심을 좀 내려놓아야겠다. 삶이 조금 더 가벼워져야겠다. 내 삶이 가벼워져야 너희들을 사랑할 수 있는 힘이 더 많이 생기니까.

사랑하는 11반.

너희들에게 학교가 행복한 곳이었으면 좋겠다. 아침마다 “주번 앞뒤 청소해라”, “현정아, 쌈이 물은 줬나?”, “아파서 조퇴했던 애들은 괜찮아졌제?”, “어제 야자 시간엔 조용히 잘 공부했나?” 등등 나의 백만 가지 잔소리가 너희를 지치게 하고 답답하게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가끔 야자 시간에 올라가서 사탕 같은 야자 간식을 나눠 줄 때, 선생님 맘이 그래. 이렇게 갇혀 있듯, 학교에 남아 공부하는 아이들 맘이 조금이라도, 잠깐이라도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마음. 그리고 나도 행복하면 좋겠다. 선생님은 너희들이 진심을 보일 때, 너희들이 진심으로 행복할 때, 그때 나도 가장 행복한 것 같다.

 

사랑하는 11반!

주말 잘 보내렴. 우리에겐 수능보다 내신이 있다믄서. 파이팅! 파이팅!

 

붙임 : 우리 반 달력을 보면 거의 매일매일 병 지각, 병 조퇴, 병 결석이 있단다. 학교에서 견딜 수 있는 만큼 정말 최선을 다해서 견뎌 보고 그래도 안 될 때, 너무 많이 힘들 때만 조퇴나 결석을 사용했으면 좋겠구나. 살아가면서 겪게 될 수많은 어려움들, 그것을 견뎌 내는 힘을 연습한다고 생각하자꾸나.

 

비 그친 오후, 맑아진 학교.

세상의 모든 맑음, 그대들.

그것이 세상의 희망.

엄마 담임 여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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