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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 일기

에티오피아에서 학생로 사는 법


에티오피아에서 학생으로 사는 법

 

  이제는 하루가 다르게 하늘의 높이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10월의 완연한 가을 하늘입니다. 하늘이 높아지고 청명해지면 자연스레 아프리카 하늘이 떠오르는데요. 흔히, 일반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부분 중 하나는 아프리카는 하루 종일 해가 따갑게 내리쬘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살았던 곳은 한국의 가을 하늘처럼 청명하고 날씨도 그리 덥지 않은 날도 많았습니다. 오늘은 문득 이 맑은 하늘 아래에서 아프리카 아이들과 함께 즐겁게 축구도 하고 수업도 해 보고 마음이 불쑥 듭니다.

 

‘자 - Ruler’를 모르는 학생들

아이들과 수업을 하면서 한국에서는 전혀 겪지 못한 부분들이 많이 있어서 당황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처음으로 아이들과 ‘점과 직선’에 대해서 수업할 때였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그 전날에 필요한 교구로 ‘자’를 준비해 오라고 했습니다.

다음날 아이들에게 ‘자’를 꺼내 보라고 했더니 딱 한 명만 자를 준비해 왔던 것이었습니다. 순간 화가 나서 “애들아, 선생님이 외국인 선생님이라서 말을 잘 안 듣는 거니?” 하며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한 친구가 일어나서 하는 말이 “선생님, 자가 뭔지 몰랐어요”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무언가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아! 이 아이들은 자를 한 번도 본적이 없었구나.’ 순간, 아이들에게 화를 냈던 것이 정말 부끄러워졌습니다. 자가 뭔지 알아도 자를 살 수 없는 형편이었을 것인데 그걸 새까맣게 잊어버렸던 것입니다.

 

드디어 ‘자’를 알다

다음 시간. 한 반 치 분량의 자를 자비로 마련한 뒤, 다시는 이런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다른 교실에 들어갔습니다. 수업을 시작하며 당당하게 자를 꺼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게 자라는 것이며 자를 어떻게 사용하는지도 알려 줬습니다.

이 정도면 학생들이 잘 사용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점과 직선’에 대해 수업을 진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점’에 대해서는 학생들이 잘 따라왔습니다. 단순히 점을 찍는 것이니 아이들이 즐거워하면서 쉽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가 준비 되었고 사용 방법을 설명했는데도 문제는 결국 ‘직선’에서 나타났습니다. “애들아, 자를 대고 일직선을 그려 보렴.” 몇몇 눈치 빠른 친구들은 좀 전에 제가 했던 설명을 따라서 제법 잘 그렸습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친구들은 다시 헤매고 있었습니다. “이상하다.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신 대로 자를 데고 그 위에다 그렸는데….” 아이들은 자를 데고 선을 그었으나, 자 바로 위에 연필을 데고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자와 연필이 따로 놀면서 직선을 그리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각도기의 굴욕

‘점과 직선’ 수업을 겨우겨우 끝내고 다음 단원은 다들 아시겠지만, 각도를 재는 단원이었습니다. 각도를 구하는 단원인 만큼 각도기가 절대적으로 필요했습니다. 각도기도 미리 준비하고 설명 방법도 수차례 설명한 후, 겨우겨우 각도의 의미를 설명하고 재려는 순간, 또다시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습니다. 중점을 맞추지 못하고 어디 눈금을 읽어야 할지 몰라 모두들 허둥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이들에게 화가 나기는커녕 투정도 나지 않았습니다. 그저 실수를 해도 마냥 즐거워하고 처음 보는 각도기에 마냥 신기해 하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을 뿐이었습니다.

 

아이들의 웃음

요즘 대한민국 아이들은 드넓은 들판을 뛰어다니고 자연과 함께 생활하는 것을 잘 알지 못할 것입니다. 한국의 학생들은 너무나 많은 공부 량과 방과 후 짜인 수많은 학원 스케줄로 인하여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에티오피아 아이들은 드넓은 초원을 자신의 앞마당인 냥 뛰어다니며 인간 본연의 순수한 웃음을 늘 띠고 다닙니다. 문명의 혜택과 보다 나은 수준의 교육 제공과는 좀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아프리카 아이들이 보여 준 순수한 미소는 늘 제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요즘 따라 유달리 힘들게 공부하는 아이들을 보면 아프리카 아이들의 미소를 한 번 보여 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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