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교단 일기

김치 #2

김치 #2

 

 

김치가 왔다

그러나 내가 받은 것은

차가운 새벽물에 절인 배추를 흔드느라

불그레 부어 오른

할매의 퉁퉁한 손

고추따라 벌겋게 물든

당신의 손

그리고 옴팡지게 두터운 배춧잎 사이 사이

추억처럼 익은

우리 둘의 시시콜콜한

속것

 

해와 땀과 눈물로 간하고도 모자라

푸른 앞바다와

할매의 간소한 텃밭

자주 다니는 동네 시장

저마다 한 가지씩 가방에 이름표 달고

할매 손사래질 따라

바람 타고 넘어 온 모양새가 영 겁먹어서 신속한 것이

꼭 육이오동란 피난가족 같다

 

김치 한 줄 째서 입에 넣다가

치,

내 눈이 붉어지는데

꽃 똑똑 따서 길에 뿌리는 아이들 혼내키려고

치, 여기까지 넘어 온 할매 손이 더 벌겋구만

속도 모르고

김치는 자꾸 자꾸 목으로 넘어 오는구만

치, 기장 앞바다와 동네 시장바닥 이야기까지 다 끌어와 놓고선

김치는 뭐하러 겁나게 빨리 보내서

 

(2010. 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