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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종료/정병오 칼럼

역사를 사는 그리스도인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3. 28. 11:55


   정병오 칼럼

역사를 사는 그리스도인

   

   

“아빠! 성경의 핵심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음, 성경의 핵심을 여러 말로 표현할 수 있겠지만, 아빠는 이원우 교수님이 《성서》(살림출판사)에서 표현한 ‘성경은 하나님의 이야기인데, 이 이야기의 핵심은 세상을 향한 그의 변함없는 사랑이다. 아름답고 공평하고 완벽하게 지음 받은 세상이 혼란과 부패와 성스럽지 못함으로 변질되었을 때, 새 하늘과 새 땅을 꿈꾸며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사랑! 자신과의 선한 관계를 깨뜨린 인간을 위해 새로운 화목을 위해 몇 번이고 다시 찾아오시는 사랑! 맹목적 사랑이 아니라 정의와 공의, 희생과 용서가 가득한 아름다운 사랑! 강요된 사랑이 아니라 몸소 사랑의 아픔과 상처를 짊어진 희생의 사랑! 예수를 통해 보여준 고난을 통한 승리의 사랑 이야기!’라는 표현이 아빠의 생각에 제일 가까워.”



성경,  하나님의 이야기


“그렇다면 아빠, 하나님이 이러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시려면 좀 더 명확하고 간결하게 표현하면 되잖아? 예를 들어 ‘나는 전지전능한 하나님이다’, ‘나는 사랑의 하나님이다’ 등과 같이 말이야. 그런데 성경은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적나라한 인간사, 그리고 수많은 전쟁 이야기, 제사와 율법 이야기, 선지자들의 이야기, 그리고 여러 편지글로 되어 있어서 보통 사람들은 성경의 핵심을 찾기가 너무 어려워. 그리고 간결한 문장이 아닌 여러 복잡한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을 드러내시다 보니 사람들 가운데는 하나님에 대한 오해도 많고 또 이단들도 많이 생기는 거잖아.”

“그렇지만 만약 하나님이 자신을 간결한 문장으로 표현했을 경우에는 하나님이 그 표현 속에 갇혀 버리게 돼. 사실 하나님은 너무도 크고 넓고 깊은 분이기 때문에 인간의 언어로 정확하게 표현해 낼 수 없는 분이야. 그리고 하나님은 고정된 법칙이 아니라 그 무엇에도 제한을 받지 않는 자유로운 분이기 때문에 그 어떤 표현도 살아 움직이시는 하나님을 제대로 포착할 수 없는 거지. 그리고 또 하나, 우리 하나님은 인간의 삶과 무관하게 저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인간의 구체적인 삶에 개입하시고 동행하시고 사랑을 나누시고 이 가운데서 기쁨과 아픔을 공유하시는 분이지. 이러한 하나님을 표현하려고 하니 수많은 이야기들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그러니까 아빠 말은 성경은 하나님의 이야기인데, 인간의 삶에 개입하셔서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드러낸 이야기라는 거지? 또 이런 관계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하나님의 실체를 가장 잘 드러내는 방식이라는 거지?”

“그래서 흔히 기독교를 역사의 종교라고 이야기하기도 해. 이 말은 여러 의미를 담고 있는데, 핵심적인 것은 기독교는 구체적인 역사와 시간의 한 시점 속에서 하나님의 반복적이지 않은 유일한 일하심이 있고, 역사와 시간의 각 시점에서의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한 그 시대 사람들의 각각의 응답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거야. 그런데 다른 종교들은 그렇지 않아. 특별히 불교를 보게 되면 수천 수억 년을 넘어 영겁의 시간 가운데서 계속적인 윤회를 하기 때문에 시간과 역사의 개념이 중요하지 않아. 어찌 보면 기독교보다 더 웅장해 보이지만 사실 역사적 실체가 없는 것이거든.”



일반 역사를 어떻게 이해할까?


“그런데 아빠, 성경에 나오는 역사에는 하나님의 개입하심과 일하심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그 가운데서 인간들의 반응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그 역사를 통해 하나님을 알 수가 있고 각각 사람들의 삶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하지만 일반 역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해?"

“흔히 일반 역사를 가리켜 ‘인간의 이야기’라는 표현을 하지.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하나님의 개입하시고 다스리심 아래 있는 인간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지.”

“그렇다면 아빠 이야기는 일반 역사도 하나님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 거네? 그렇다면 성경과 일반 역사의 차이점은 무엇이지?”

“하나님이 인간의 삶에 개입하셨고, 그 개입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셨다는 측면에서는 성경의 역사나 일반 역사는 본질적으로 같다고 봐! 다만 성경의 역사는 하나님이 당신의 속성과 당신의 구원 역사를 인간에게 명료하게 드러내시고 구원의 수단으로 사용하기 위해 그 숨겨진 하나님의 일하심과 의미를 밝히 드러낸 것이고, 일반 역사는 그 많은 부분을 숨기셨다는 차이가 있는 것이지.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 차이를 특별 계시와 일반 계시라는 말로 설명하기도 해.”

“그러니까 인간의 삶에 개입하신 하나님의 같은 이야기라 하더라도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용도가 다른 것이라고 할 수 있네.”

“그렇지, 성경은 인간의 삶에 개입하시고 관계를 맺어 오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발견하고 그 분을 찬양하고 경배하며, 그 분이 제시하신 구원의 길을 따라 믿고 순종하며 살라고 주신 책이라고 할 수 있지. 반면 일반 역사는 그 역사 속에 개입하신 하나님의 손길과 의미 부분을 숨기셨기 때문에 이미 드러난 사건들 가운데서 인간의 연약함과 한계를 깨닫기도 하고 혹 인간의 용기와 선행을 본받기도 하면서 교훈을 얻어 가라는 용도라고 할 수 있지.”



숨기신 일과 나타내신 일


“그렇다면 일반 역사는 단지 인간적인 교훈을 줄 뿐 하나님의 다스리심과는 무관한 것인가요?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날마다 주어지는 역사적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요? 그리고 우리가 믿는 성경은 역사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에게 어떤 의미가 있지요?”

“아빠 말은 일반 역사 가운데서 성경의 역사같이 하나님의 일하심과 구원사의 서정을 명확하게 읽어 낼 수가 없다는 것을 말했을 뿐이야. 오히려 일반 역사도 세상을 변함없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손길 아래 있는 것이고,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을 당신의 직접적인 도구로 사용하셔서 세상을 향한 당신의 사랑을 실현해 가시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의식을 가지고 세상 역사 가운데 적극적으로 개입해 가야 해. 이것이 역사의 주인 되신 하나님을 믿는 자들의 바른 태도지. 다만 우리가 주의할 것은 이 역사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손길과 모든 사건들의 의미들, 즉 하나님이 분명하게 드러내지 않은 부분들에 대해서 미리 단정하지 말고 겸손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거야. 그렇지 않으면 그리스도인이 십자군이나 신정 정치를 시도하려 하거나 너무 쉽게 세상을 포기하고 판단하며 좌절하는 오류를 범할 수가 있다는 거야.”

“하나님이 성경의 역사 정도는 아니지만, 일반 역사 가운데도 당신의 백성에게 당신의 뜻과 역사의 의미를 좀 더 분명하게 알려 주시면 좋을 텐데, 너무 아쉽고 때로 하나님이 원망스러울 때도 있어요.”

“이와 관련해서 모세는 신명기 29장 29절에 ‘이 세상에는 주 우리의 하나님이 숨기시기 때문에 알 수 없는 일도 많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뜻이 담긴 율법을 밝히 드러내 주셨으니, 이것은 우리의 것입니다. 우리와 우리 자손은 길이길이 이 율법의 모든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라고 말하고 있어. 즉, 우리에게 허락되지 않은 역사의 의미를 찾는데 급급하지 말고, 이미 우리에게 명료하게 주어진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삶을 살라는 거지. 지금 분명하게 주어진 성경 말씀에 순종하기 위한 몸부림이 없는 가운데 역사의 의미를 논하는 것은 마치 음부의 고통 중에 있는 부자가 자기 친척에게 나사로를 보내 달라고 했을 때, 아브라함이 지금 있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나사로가 가도 듣지 않는다고 했던 것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지.”

“결국 이 지점에서 성경과 역사가 다시 만나네요. 그렇지만 처음 이야기할 때보다 많이 분명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