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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오 칼럼

열린 문, 열리는 문(2018.3)

정병오 칼럼

열린 문, 열리는 문

 

대표를 보면서 전전대표가 느끼는 소회

김진우, 임종화 공동대표가 5년간의 임기를 마무리하고 대표의 반열에 올랐다. 이들이 좋은교사운동과 한국 교육계를 끌어안고 하던 고민의 무거운 짐을 잠시 내려놓고 자신의 남은 교직생활과 이후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 길을 5년 먼저 걸은 사람으로서 지난 5년의 시간을 반추해 본다.

2011년 초였던 것 같다. 대표 임기를 2년 남은 시점이 되자 차기 대표 선임에 대한 압박이 오기 시작했다.(좋은교사운동은 현 대표 임기 만료 1년 전 이사회에서 차기 대표를 선임한다.) 그런데 유력한 후보였던 사람들이 다 거절했고 새로운 인물이 잘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이사회에서는 내가 대표를 5년 더 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었다.(좋은교사운동 정관에는 대표 임기를 5년으로 규정해 놓았을 뿐 연임에 대한 제한은 두고 있지 않다.) 나도 일시적으로 마음이 흔들렸으나 몇 사람과 상의하는 가운데 차기 후보를 염두에 두지 말고 내가 연임을 하지 않겠다는 것을 분명하게 선언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하였다. 이사회에 나의 의사를 분명하게 전달한 후 차기 대표 선임 TF가 구성되었고, 우여곡절 끝에 2011년 말 이사회에서 김진우, 임종화 두 사람을 차기 대표로 선임하게 되었다.

 

송인수의 길, 정병오의 길

차기 대표 문제가 해결되자 2012년은 나의 대표 임기 만료 후 진로가 화두로 떠올랐다. 물론 이 문제에 대해 제일 많이 고민한 것은 나 자신이었다. 하지만 한 사람의 인생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고 옆에 있는 사람들이 좌지우지하려는좋은교사운동 전통의 영향으로 주변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은 말을 했다. 당시 좋은교사운동에서 대표 임기 만료 후 진로에 대한 전통은 송인수의 길하나뿐이었다. 그것은 교직을 퇴직한 후 교육계에 꼭 필요한 영역에서 새로운 사역을 개척하는 길이었다. 특히나 송인수 전 대표가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라는 단체를 개척해 사역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모델은 나에게 큰 압박이 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송인수가 아니었다. 그는 교육과 아이들에 대한 애정은 물론이고 문제 해결의 길을 만들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고도의 집중력과 열정, 자신의 열정을 다른 사람에게 솔직하게 공개하여 다른 사람들의 자원과 헌신을 결합시킬 줄 아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모든 부분에서 부족해 나를 드릴 문제를 붙드는 것도 쉽지 않았고 그것을 위한 자원을 끌어들이는 부분도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앞으로 5년 주기로 대표가 계속 배출될 것인데, ‘송인수의 길뿐 아니라 정병오의 길이라는 새로운 경로를 만들어 놓는 것도 필요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후배들이 자신의 부르심을 따라 좀 더 적합한 길을 갈 수 있도록 길을 하나 더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고도 온전한 확신이 없어 2013년은 복직을 1년 미루고 안식년을 가졌다. 1년 동안 공교육 가운데서의 기독교사운동이 갖는 의미와 운동 방식에 대한 연구를 했고, 대표 임기 말미에 시작된 회복적 생활교육 실천가 과정에 참여하면서 회복적 생활교육의 틀을 잡는 일을 옆에서 돕기도 했다.

 

백지에서 꽉 찬 삶으로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한 사람의 평교사 평회원의 삶을 충실히 살아야겠다는 확신을 가지고 2014년에 중학교로 복직을 했다. 1학년 담임을 하면서 좋은교사운동이 제시하는 모든 실천운동을 빠짐없이 실천했고 당시 시범 사업으로 들어와 있던 자유학기제의 활성화를 위해 노력했다.(물론 열심히는 했지만 잘 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대표 이전에 소속되어 있던 서울 강남 기독교사 지역모임에 다시 나가고, 기윤실교사모임의 리더 양성 과정인 꿈꾸는 섬김이 학교교장으로 섬겼다.

그러던 중 20146월 지방선거를 통해 당선된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으로부터 교육감 인수위원회에 들어와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우여곡절 끝에 인수위원회에 들어갔고 거의 아무런 역할을 한 게 없었지만, 그 인연으로 조 교육감의 공약 중 하나인 고등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한 길 찾기 과정 인생학교’(이후 오디세이학교로 명칭 변경) TF에 참여하게 되었다. 2015년부터는 오디세이학교 교사로 참여하게 되었고 올해로 4년째 이 일을 하고 있다.

이와는 별도로 2016년에 기독교윤리실천운동 내부에서 발생한 몇 가지 갈등 해결을 돕고자 노력하다가 깊게 개입하게 되었다. 결국 2017년부터는 기윤실의 공동대표 및 상임집행위원장을 맡아 상당 정도의 에너지를 쏟고 있다. 그리고 20174월부터 말씀 묵상한 것을 글로 정리해 인터넷에 올렸는데, 1년 정도 꾸준히 하다 보니 온라인상의 말씀 묵상 운동으로 자리 잡고 있다.

 

10년을 헌신할 자세로, 당장이라도 그만둘 수 있는 태도로

5년 전 무엇을 해야 할지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 상황에서 평교사 평회원이라는 구호 하나만 붙들고 왔을 뿐인데, 이제는 나 스스로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삶이 꽉 차 버렸다. 그래서 지금은 향후 5년 혹은 10년까지도 지금 삶의 틀에서 큰 변동이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한다. 중요한 것은 지난 5년의 삶이 내가 큰 그림을 가지고 만들어 온 삶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런 계획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주께서 아주 조금 열어 주신 문틈으로 한 발을 내디뎠을 뿐이고, 그 후 조금씩 더 열리는 문을 향해 발걸음을 뗐을 뿐이다.

이제 남은 교직생활 10년은 3년간 오디세이학교의 경험을 통해 체득한 대안교육의 원리를 공교육 변화의 틀로 적용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입시경쟁교육 가운데 살아가는 아이들의 내면을 힘을 키워 그들로 하여금 입시경쟁구조에 작은 균열을 만들어 가는 길을 확대·적용하는 일에 전념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인생의 길은 예측할 수 없고 나의 가는 길은 오직 그가 아실 뿐이다. 지난 3년 동안 이제 이 일을 내려놓아야겠다.’는 생각을 안 해본 적이 없듯이 크고 작은 갈등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 생각보다 훨씬 빨리 이 일을 털고 나와야 할 때가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의 사역도 향후 10년은 헌신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동시에 당장 내년이라도 그만둘 수 있도록 사람을 세워가는 일을 하고 있다. 어떤 일이든 주인의식을 가지고 책임을 지는 장기 사역자가 없이는 제대로 세워질 수 없음을 알기에 나를 드려 묵묵히 일해야겠다는 자세를 가지지만, 동시에 내 능력의 한계로 혹은 나의 사욕이 조직의 활력이나 세대교체, 새로워짐을 막고 있다고 판단될 때는 언제든지 물러날 마음의 자세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김진우의 길’, ‘임종화의 길을 만들어 가길

지난 5년 동안 좋은교사운동과 한국 교육의 변혁을 위해 온 몸을 바쳐 수고한 김진우, 임종화 두 대표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이들이 졌을 책임감의 무게와 수고의 고통을 잘 알면서도 도와주기는커녕 제대로 위로 한마디 건네지 못한 것에 대해 용서를 구한다. 핑곗거리를 대자면 송인수의 길이 아닌 정병오의 길이라는 새로운 경로를 만들어 가노라고 경황이 없었다는 말을 하고 싶다.

이제 두 선생님이 송인수의 길을 갈지 아니면 정병오의 길을 갈지는 본인들의 선택의 몫이다. 아니 김진우의 길’,‘임종화의 길이라는 새로운 경로를 만들어가도 좋을 것 같다. 어떤 길이든 주님이 지금 각자에게 아주 조금 열어 주시는 문틈을 잘 포착하고 그곳에 한 발을 쑥 내밀어 보길 권한다. 그리고 이후 각자의 선택과 헌신을 통해 계속해서 조금씩 더 열리는 문으로 잘 걸어가길 부탁드린다. 열린 문과 열리는 문을 통해 걸어가면서 얻은 영감과 은혜를 함께 나누는 기쁨을 같이 누릴 수 있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