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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오 칼럼

책 읽기의 기쁨, 누리고 나누기(2018.5)

정병오 칼럼

책 읽기의 기쁨, 누리고 나누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책과 관련해서 자신에게 있었던 경험을 다 적어 볼래요? 예를 들어 난생 처음으로 책을 접했던 경험과 그 때의 느낌, 내가 읽었던 책 중에서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책들, 혹 책과 멀어지게 되었다면 그 계기, 앞으로 책과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가고 싶은지 등 다 좋아요.”

 

책의 힘은 살아 있다

이번 학기에 문학과 성장이라는 과목을 맡으면서 첫 시간에 아이들에게 책과 나라는 주제로 책과 관련된 자신의 이력을 써 보게 하고 그것을 함께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과목을 신청한 아이들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내 예상보다 훨씬 책과 얽힌 이야기들이 많았다. 특히 유치원 때와 초등학교 저학년 때의 책에 얽힌 기억들이 많았다. 그리고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여러 이유로 책과 멀어졌거나 특정 분야로 치우친 책 읽기를 한 아이들이 많긴 했지만 그래도 책 읽기에 다시 빠져 보고 싶은 갈망들은 다들 가지고 있음을 발견했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흔히 요즘 세대를 영상 세대라고 단정 짓는 것이 좀 성급한 판단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영상은 영상으로 가치가 있는 것이고, 영상으로 대표되는 뉴미디어가 그 어느 때보다 아이들에게 강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뉴미디어를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훈련과 동시에 뉴미디어를 활용하여 자신을 표현하고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역량을 갖추도록 하는 교육이 중요해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미디어가 포괄할 수 없는 책만의 매력과 힘은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것이고, 아이들은 책을 통해 성장하고자 하는 욕구를 여전히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책의 맛을 느끼고 책을 통한 성장의 기쁨을 누리게 해 주는 교육 역시 더 새롭고도 다양하게 시도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문학을 통한 성장, 전략 세우기

이를 위해 좋은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빠져들어 읽는 경험, 그리고 그 책 가운데서 저자와 대화하며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능력, 자신이 읽은 책의 내용을 지금의 자기 상황과 연결해서 생각해 보는 훈련, 같은 책을 여러 사람이 함께 읽고 대화를 나누면서 생각의 폭을 넓혀 가고 다른 사람들을 이해해 가는 것을 경험하도록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자신이 신뢰하는 사람들로부터 좋은 책을 추천을 받고 또 자신이 평소 읽고 싶었던 책도 포함시켜 10권 정도의 독서 목록을 정하도록 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하여 내가 추천하는 책도 공통적으로 읽을 책으로 선정을 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보다 중요한 것은 이 수업을 이끌어 가는 나 자신이 문학을 통해, 좀 더 확대해서 책을 통해 성장의 기쁨을 누리는 것이 이 수업을 위한 가장 좋은 준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이들이 책과 나라는 주제의 글을 쓰는 동안 나도 같은 주제로 책과 관련된 내 삶을 돌이켜 생각해 보았다.

 

내 속에 책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어릴 적 책과 관련된 내 속의 가장 강력한 동기는 갈증이었다. 단칸방에서 여섯 식구가 근근이 생활했던지라 집에 책이 있을 리 없었다. 그래서 다 비슷하긴 했지만 그나마 형편이 조금 나은 친척 집이나 친구 집에 방문할 때마다 그 집 한 구석에 처박혀 있는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었던 기억이 난다. 친척 집이나 친구 집에 가지 않는 평소에는 당연히 교과서가 주 독서 목록이었다. 일전에 만났던 초등학교 동창이 어릴 적 우리 집에 놀러오면 내가 동생들과 사회과부도를 펴 놓고 나라 찾기를 하며 노는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이야기를 한 것을 보면 교과서들을 다양하게 활용해서 시간도 보내고 놀았던 것 같다. 그리고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는 몇 권 되지도 않는 학교 도서관의 책들을 섭렵했던 기억도 난다.

중학생이 된 후부터는 입시체제에 맞추어 생활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책과 멀어졌다. 그런데 시험 기간이 되면 집에서는 공부할 여건이 안 되다 보니 자기 공부방을 가지고 있는 친구 집에 가서 밤늦게까지 공부를 하거나 밤을 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그런 친구들 집은 그래도 어느 정도 형편이 되는 집들이었기에 나를 유혹하는 책들이 많았다. 당시 대중적인 글쓰기를 하는 철학자인 김형석, 안병욱, 김동길 같은 분들의 수상록, 현대문학 같은 문학잡지, 한국 단편문학이나 세계 단편문학, 그리고 꽃들에게 희망을, 아낌없이 주는 나무같은 책을 보면 손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 시절 실제 교과 공부를 했던 시간보다 책을 뒤적이던 시간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세상과 삶을 읽는 책 읽기

대학 이후 학술적인 책 읽기에 익숙해지면서, 세상과 삶을 제대로 알고자 하는 욕구가 나의 독서를 이끌었다. 우선 당시 캠퍼스가 군부독재에 대응하는 학생 운동권의 투쟁이 중요한 흐름이었기에 비록 내가 학생 운동에 깊게 참여하지는 않지만 왜곡된 한국 현대사의 아픔과 이에 대응하는 학생 운동권의 이념적 토대였던 마르크스 철학에 대한 책들을 많이 읽었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을 내가 믿는 기독교 신앙의 관점에서 어떻게 보아야 할지에 대한 부분을 풀어야 했기에 기독교 세계관이나 사회 참여에 관련된 책들도 탐독을 했다. 또 성경에 대해 눈을 뜨면서 각 성경 권별에 대한 깊은 연구서는 물론이고, 조직 신학이나 교회사 관련 책들도 관심을 가지고 탐독했었다.

교사가 되고 가정을 이루고 활동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독서는 일단 시간적으로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내가 제대로 알고 가르치는가에 대한 의문이 늘 있었기에 윤리교육석사 과정과북한대학원석사 과정을 공부하면서 두 분야에 대해서는 깊이 있는 독서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기독교사운동을 하면서 부딪히는 문제들과 관련해 필요한 책들과 기본적인 신앙과 신학 서적들은 꾸준히 읽어 왔다.

 

내 속의 욕구는 무엇인가?

이번에 아이들과 문학과 성장수업을 하면서 다시 나에게 물었다. ‘책과 관련해서 지금 내 속에 있는 욕구는 무엇인가?’, ‘지금 나는 어떤 책을 읽고 싶은가?’ 이 질문에 대해 내 가슴과 머리가 함께 반응한 것은 고전이다. 대학 시절부터 지금까지 고전에 대해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실제로 읽은 책은 많지 않다. 그래도 여러 계기로 고전을 읽을 때마다 그 책들이 주는 도전과 감동은 여느 다른 책들과 달랐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그런 책은 나이가 들면서 다시 읽으면 그 때마다 더 깊은 맛이 우러나오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예를 들어 플라톤의 책은 대학 시절 한 번 경험했고 최근 다시 몇 권 보고 있는데, 읽을수록 그 사유의 흐름에 빠져드는 느낌을 받는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만 해도 여러 차례 읽었는데 읽을수록 이전에 발견하지 못했던 인간 본성에 대한 성찰을 하게 되고 하나님과 그 창조에 대한 사유의 폭이 확장되는 것을 느낀다. 토마스모어의 유토피아나 유성룡의 징비록같은 책들은 40대 들어 처음 읽었는데, 이런 책은 청소년들과 함께 읽어도 좋을 정도로 쉬우면서도 깊이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보에티우스의 철학의 위안이나 도스토에프스키의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같이 젊은 시절 읽었던 고전들을 지금 다시 읽어 보고 싶기도 하다.

아이들과 함께 한 학기 동안 읽고 나눌 책 목록을 정리하면서 나도 아이들 앞에서 내가 읽을 책 목록을 제시하고 약속을 했다. 교사인 내가 아이들 책 읽기를 독려하는 자가 아닌 책 읽기의 기쁨을 누리는 자로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그리고 그 기쁨이 자연스럽게 수업을 통해 아이들에게 스며들어 가는 한 학기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