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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오 칼럼

평화의 길목에서, 역사를 읽고 교회를 품자(2018.6)

정병오 칼럼

평화의 길목에서, 역사를 읽고 교회를 품자

 

 

우리 앞에 열린 새로운 평화의 시대

지난 4·27 남북정상회담은 분단 73, 정전 65년 체제의 대전환을 가져오는 사건으로 기록이 될 것이다. 두 정상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을 통해 이제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렸음을 양국 국민은 물론이고 온 세계에 분명하게 선포했다.

물론 실제 휴전협정을 정전협정으로, 그리고 평화협정까지 나아가는 것은 북미정상회담을 거쳐, 남한과 북한, 미국과 중국이 함께 합의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남북이 이번 회담에서 합의했던 것처럼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설, 모든 도발 행위나 적대 행위 금지 및 단계적 군비 축소, 서해북방한계선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선포 및 공동어로 활동 보장, 동해선과 경의선 철도와 도로 복원을 통한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 이산가족 및 친척 상봉 재개, 각 분야별 고위급 회담을 통한 각 분야별 정부와 민간 교류 확대, 문 대통령의 이번 가을 평양 방문을 시작하여 남북정상 간 만남의 정례화 등이 신속하고도 정확하게 이루어지기 시작하면 남북 간의 실제적인 평화 체제는 빠른 시일 내에 이루어질 것이다.

당연히 북핵 문제도 전쟁 없는 평화의 한반도로 나아가는 데 있어서 큰 변수가 될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선언을 한 것이 매우 의미 있는 일이긴 하지만 구체적인 비핵화 일정이나 실행 계획이 나오지는 않았다. 이것은 북핵 문제가 단지 남북 간의 문제를 넘어서 북미 간의 문제이기에 북미정상회담에서 다루어야 할 과제로 넘겨준 측면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러기 때문에 북미정상회담에서의 완전한 비핵화와 관련된 구체적인 합의 도출 여부에 따라 정전협정과 평화협정으로 가는 과정에 상당한 영향을 받을 것은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부분 역시 현재 남과 북의 지도자들이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보여 준 진정성과 의지를 가지고 함께 노력한다면 상당한 성과를 거둘 것이라는 것이 대부분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북한이 해 온 선택과 그 이유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의 한 켠에는 지금 상황이 너무 급격한 반전의 상황이기 때문에 좀 당황스럽고 혼란한 마음이 남아 있을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남북관계는 극한 대립과 악화의 연속이지 않았는가? 그리고 지난해 내내 북한은 핵과 미사일 실험을 했고, 이에 미국은 경제 제재를 넘어 폭격을 공공연하게 선언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트럼프와 김정은 간의 말 폭탄은 우리 모두를 전쟁의 공포와 긴장감으로 몰아넣지 않았던가? 그런데 평창 올림픽 참가를 계기로 이렇게까지 평화 모드로 급진전할 수 있다는 말인가?

하지만 북한의 역사를 지켜봐 온 북한 전문가들은 이 정도의 급속한 변화는 아닐지라도 북한이 유화적 대화 모드로 나오리라는 것은 짐작하고 있었다. 북한은 한국전쟁을 통해 미국에 의해 국토가 초토화되는 경험을 했다. 그래서 이제 전쟁을 통해서는 통일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알게 되었다. 그나마 전쟁 이후 빠른 경제 회복을 통해 남한보다 경제적·외교적 우위를 점하던 1970년 중반까지는 여러 형태의 국지적 군사적 도발을 통해 남한을 혼란에 빠뜨리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1970년대를 거치면서 남북의 경제력이 역전이 되고 1980년대 들어서면서는 이제는 남한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았고, 오히려 이제는 남한에 의해 흡수되는 것을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1980년대 들어 북한이 내세우기 시작한 것이 고려 연방제라고 불리는 연방제 통일 방안이다. 이 연방제 통일 방안은 남북이 각자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하나의 국가를 형성하는 체제를 말하는 것으로, 어떤 의미에서는 통일을 하지 말고 두 국가로 평화롭게 지내자는 것을 의미했다. 즉 이때부터 북한의 제일 목표는 자신의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된 것이다. 그만큼 북한은 자신의 체제 안전 유지에 급급할 만큼 고립되고 약화되었음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북한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 핵무기였다. 북한 입장에서 핵무기는 가장 적은 비용으로 미국이나 남한의 무력 위협 앞에서 자신들의 체제 안전을 지킬 수 있는 방안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1990년대 들어서면 소련을 비롯한 동구 공산권이 완전히 붕괴되었고, 북한 경제는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급기야 몇 차례 자연 재해를 겪으면서 북한은 대량 아사자가 발생했지만 국가는 아무런 손을 쓰지 못하는 상태까지 이르렀다. 이 상황에서도 북한은 핵개발을 놓을 수가 없었다. 아니 더욱 집착하게 되었다. 물론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를 통해 경수로를 지원 받는 대가로 핵 폐기로 가는 과정을 밟기도 했지만 양쪽의 약속 준수가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자 북한은 갈수록 심화되는 경제 제재에도 불구하고 집요하게 계속 핵과 미사일 개발에 매달렸고, 결국 몇 개의 핵탄두와 이를 미국 본토까지 날릴 수 있는 미사일 개발에까지 이른 것이다.

 

잃어버린 10년과 북한의 선택

하지만 북한도 핵무기 몇 개와 미사일이 자신의 체제를 지키기 위한 최후의 방편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 경제 개발을 통해 국민들의 기본적인 삶을 개선시킬 수 없으면 그것이 한계가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특히 소련과 동구권 공산주의의 몰락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중국과 베트남, 쿠바의 사례를 볼 때 북한이 나아갈 방향은 분명해 보였을 것이다. 그것은 정치적으로는 공산주의 1당 독재, 그리고 김일성 집안의 유일 지배체제를 유지하면서도 경제적으로 개방을 통해 자본주의 경제를 도입하여 국민들의 삶을 개선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북한은 한편으로 핵무기를 개발하지만 동시에 이 핵무기를 지렛대로 해서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핵무기를 포기하는 대신 미국이 북한 체제의 안전을 보장해 주고 경제 제재를 해제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래야 체제의 흔들림 없이 외국 자본을 통한 중국식 경제 개발이 가능하다고 본 것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차원에서 남한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도 쉬지 않았다. 북한 입장에서 남한이 가장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경제 개발의 고리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김일성도 김영삼을 만나려고 했었고, 김정일은 김대중과 노무현을 만나서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등의 협력을 끌어냈던 것이다.

그런데 지난 10년은 북한으로서는 암흑기였다. 이명박, 박근혜 두 정부는 그 이전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 쌓아 놓았던 남북한 경제 협력의 고리들을 다 끊어 버리고 북한 체제를 오직 자기 정권 유지를 위해 이용만 하려 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북한은 남한의 정부가 바뀔 때마다 대북 정책이 극에서 극으로 오가는 것을 경험하면서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정부가 있을 때에 어떻게든 남북 관계 개선을 통해 남한의 경제 협력을 얻어 내고, 이를 지렛대로 해서 미국과 핵협상을 마무리함을 통해 체제 안전 보장과 경제 개발을 위한 초석을 마련하겠다고 결심을 했을 것이다. 더군다나 그동안 여러 국제적인 제재 가운데서도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을 어느 정도 수준까지 끌어올렸음을 세계에 과시한 지금이 적기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우리 정부의 노력과 새로운 북미 관계

문재인 정부 입장에서는 북한의 이러한 상황과 전략을 꿰뚫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북한이 막바지 핵무기와 미사일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리는 과정에서 미국의 북한 폭격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나오는 과정에서도 인내력을 가지고 미국과 북한을 설득하고 조율하는 과정을 거쳐 왔다. 그리고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남북한 특사 교환 과정을 거치면서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을 이끌어 낸 것이다. 그리고 기어이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선언적이긴 하지만 북한 핵의 완전한 포기와 전쟁 없는 한반도를 향한 신뢰 구축의 실질적인 합의들을 이끌어 낸 것이다.

이제 공은 북미정상회담으로 넘어갔다. 미국 입장에서는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핵 폐기를 확인한 후에 북한 체제 안전 보장과 경제 제재 해제를 하려고 할 것이다. 반면 북한은 미국이 북한 체제 안전 보장과 경제 제재 해제를 해 주는 것을 확인한 후 완전한 핵 폐기를 하려고 할 것이다. 당연히 두 나라가 다 진정성이 있고 합리적인 판단을 한다면 이 두 과정을 치밀하게 엮어서 전체적인 설계를 합의한 후 한 단계씩 검증하고 주고받는 과정을 밟을 것이다. 당연히 남한은 이 과정에서 적극적인 중재자의 역할을 할 것이다.

모든 협상이 그렇듯 이러한 과정이 얼마나 합리적으로 잘 진행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떤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길지, 또 북한이나 미국 내 국내 정치적 요인이 작용할지, 중국이나 일본 등 국제 정치적 요소가 어떻게 작용할지 아무도 모른다. 어쨌든 우리 정부는 북한과 미국 간의 비핵화 협상이 원만하게 진행되도록 최선의 중재 노력을 다할 것이다. 그리고 북미정상회담과 관계없이 남북 간의 합의를 통해 진행할 수 있는 것들은 신속하게 진행함을 통해 원만한 북미 협상의 분위기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평화의 시대, 우리의 소명과 역할

지금 대다수의 국민들이 남북한이 군사적인 적대 관계를 끊고 평화체제로 나아가며, 북한이 핵을 폐기하는 대가로 체제 안전과 경제 개혁의 단계로 나아가려는 이 흐름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아직도 일부 국민들은 이 상황을 노골적으로 반대하지는 못하지만 왜 북한 인권 문제를 제기하지 않느냐?’, ‘한국 전쟁과 그동안의 도발에 대한 사과를 먼저 요구하지 않느냐?’, ‘북한의 위장 평화 공세에 속고 있다.’, ‘북한이 불러준 대로 합의했다.’ 등의 꼬투리를 잡으면서 못마땅한 심정을 드러내고 있다. 이들은 북한이 계속해서 악마로 남아 있어야 하는데 보통 국가로 드러나자 이를 인정하기가 싫은 것이다. 그런데 자신들이 구세주로 섬기고 있는 미국이 북한을 응징하고 강하게 다루어야 하는데, 지금 미국이 북한과 핵을 매개로 타협을 하려고 하고 있으니 이들은 북미 간의 협상이 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남북 관계와 북미 관계가 다시 이전처럼 나빠지기를 바라고 있는 사람들의 다수가 기독교인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들 가운데는 실제로 북한 정권에 의해 모든 재산과 가족들의 목숨을 잃었던 경험을 가진 분들도 있다. 이런 분들은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실제로 암울했던 독재정권 시기 북한과의 화해와 평화를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운동을 펼쳤던 분들 가운데 북한 정권에 의해 가족의 목숨을 잃었던 아픔을 신앙으로 극복했던 분들이 많았던 것을 기억할 때 이런 분들의 행동이 다 합리화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런 경험과 무관하게 반공 이데올로기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나 성경보다 더 우위에 있는 분들도 많이 있다. 물론 이런 분들도 여러 역사적 정황과 잘못된 교회 지도자들의 영향 하에 있는 분들임을 알기에 불쌍히 여겨야 하지만 이들로 인해 하나님의 교회가 반평화 세력으로 낙인 찍히고 있는 현실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러기에 지금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열린 남북 평화의 상황이 하나님이 이 민족에게 주신 큰 은혜임을 믿는 기독교인들은 더 큰 책임을 느껴야 한다. 이들은 이 상황에서 남북 관계 평화의 흐름이 깨어지고 다시 적대적인 관계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상당수의 기독교인들의 몫까지 안고 더 적극적으로 평화와 화해의 실천자로 나서야 한다. 가장 일차적으로는 북미정상회담을 통한 적극적인 비핵화 과정 합의, 그리고 남북한 완전한 평화협상, 그리고 이 상황을 통해 북한 주민의 삶 전반이 개선되며, 남한에게도 북방경제의 활성화 및 평화 공동체로 나아가는 길이 열리도록 기도에 힘써야 할 것이다. 동시에 평화로 나아가는 이 길에서 개인이든 공동체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실천하고 참여하며 평화를 만들어 가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그래서 지금 이 시기에 하나님이 주신 역사적 책임과 소명을 잘 감당하는 평화의 사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