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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오 칼럼

위태한 길을 걸어가는 지혜(2018.4)

정병오 칼럼

위태한 길을 걸어가는 지혜

 

 

막내가 대학에 진학했다. 그래서 올해 우리 집은 대학원생 1, 대학생 3명을 가진 대학생 가족이 되었다. 주변 사람들은 얘 넷 등록금을 어떻게 다 충당하냐고 걱정을 해 주고, 현실적으로는 N포 세대 청년들이 당면한 절박한 현실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그리고 대학 졸업 이후 취업이나 결혼의 문제를 해결한다고 해도 자녀에 대한 부모의 걱정은 끝이 없는 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에서 자녀를 대학에 보냈다는 것은 자녀 양육의 7부 능선 정도는 넘은 것이 분명하다.

 

자녀 양육, 고비들을 돌아보며

이렇게 자녀 양육의 큰 고비를 넘긴 상황에서 그동안의 시간을 돌아보니 즐겁고 감사했던 시간보다는 아찔했던 순간들이 더 선명하게 다가온다. ‘입덧만 없다면 10명이라도 낳겠다고 할 정도로 힘들어 하던 입덧의 시간들, 23시간 정도 진통의 시간을 견뎌야 했던 첫째 출생의 시간, 한밤중 열이 오르는 아이들을 어떻게 할 줄 몰라 냉수 찜질에 응급실로 뛰어다니던 시간, 2시간 이상 연속해서 잠을 잔 적이 없는 10년의 시간들, 아무리 달래도 울음을 그치지 않고 하염없이 우는 아이를 어떻게 할 줄 몰라 쩔쩔매던 시간들, 아이가 자라 아빠 미워!”라고 소리치고 자기 방에 들어갔을 때의 난감함,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는 전쟁터 같던 집안, 사춘기 여러 면에서 부모와 생각의 차이로 생긴 크고 작은 갈등들, 늘 부모의 마음에 흡족하지 않고 아쉬움이 많지만 자신의 한계 내에서 스스로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입시 기간들.

한 순간 한 순간 돌아볼 때 아쉬움이 많이 남고 후회되는 순간도 많다. 그리고 당시로서는 경황이 없어서 잘 몰랐지만 내가 생각하고 느꼈던 것보다 훨씬 더 위태했던 시간들도 많았다. 다만 순간순간 주의 은혜가 각 상황 가운데서 적절하게 역사했고, 주변 사람들의 크고 작은 도움이 있었고, 그리고 가장 가까이에 있던 사람들이 잘 견뎌주었기에 그나마 봉합되고 무마되고 더 좋게 작용해 왔을 뿐이다.

 

부부생활과 교직생활은 어떤가?

어디 자녀 양육뿐이랴. 결혼 생활도 비슷하다. 올해가 결혼 27주년이고, 내가 26세에 결혼을 했으니, 태어나 부모와 생활했던 시간보다 아내와 생활한 시간이 더 많다. 결혼 생활을 돌아보더라도 기쁘고 감사한 일이 기본 밑그림으로 깔려있겠지만 내 머릿속을 지배하는 기억의 영상은 위태하고 아찔했던 순간들이 더 많이 떠오른다. 한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해서, 서로에게 온전히 집중을 해도 모자랄 그 시간에 2년 터울로 4명의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10년의 시간을 보냈다. 당연히 아이를 어떻게 키우는지도 몰랐기에 아이를 키우는 일은 한편으로 서로를 하나되게 하는 과정이었지만 또 다른 면에서 갈등의 중요한 소재가 되기도 했다. 여기에 더하여 해마다 전세를 옮겨야 하는 경제적 상황이나 교회 공동체의 연약함과 그 가운데 겪는 갈등이 부부 갈등의 또 다른 요인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이제는 눈빛만 봐도 서로의 마음을 이해해야 마땅한 연륜에 도달했지만 실상은 그동안의 누적된 갈등으로 인한 상처들을 수습해야 하는 과제가 결코 공짜로 이루어지지 않음을 절감하고 있다.

22살 대학 졸업 하자마자 교직 발령을 받았으니, 이제 햇수로는 교직생활 30년이 넘어섰다. 늘 교직의 관행에 함몰되지 않고 교육의 본질을 붙들기 위해 몸부림쳐 온 시간이지만 구체적으로 한 해 한 해를 돌아볼 때는 역시 실수와 허물이 더 많이 떠오른다. 말 한마디로 아이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적도 있고, 아이들이 던진 한마디 말로 인해 한참이나 허우적대던 못난 모습도 많았다. 비교육적 관행과 모순된 입시 제도의 한 부분이요, 수행자였던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조금 더 유능하게 아이들 개별 상황에 맞게 끌어주었어야 할 상황에서 나의 무능함으로 인해 직무유기를 했던 경우도 많았다. 경력이 짧을 때는 전체를 보지 못하고 나의 소신이 과도해 선배들에게 상처를 주었고, 경력이 들었을 때는 전체를 고려한다는 명목으로 타협을 했던 경우도 많았다. 나이가 들면서 더 성숙하게 아이들을 이끌어가는 면도 있지만 나이로 인한 아이들과의 간격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한계도 늘 느끼는 바다.

 

나는 판단할 자격이 없다

자식 키우는 사람은 남의 자식에 대해 함부로 말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한다. 내 경우 아이들이 외적으로는 어느 정도 반듯하게 자라주었지만 내가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없다. 정말 없다. 때로 다른 가정의 자녀양육과 관련해서 부족하게 보이는 면이 보이긴 해도 그 가정에 그만한 사정이 있었을 것이라고 이해할 뿐 내가 판단할 수 있는 부분은 없다.

부부생활 관련해서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지 않는 가정은 없을 것이다. 그러다가 어떤 가정은 큰 아픔을 겪기도 한다. 안타깝지만 그 역시 나는 판단할 자격이 없음을 절감한다. 나는 그러한 외적인 아픔의 단계까지 가지 않았을 뿐 배우자를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부분에서 현저하게 부족한 부분이 많았고, 지금도 그러함을 누구보다 나 자신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동료 교사들 가운데 아주 가끔은 교사로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이라는 느낌이 드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교사들은 입시 경쟁의 제도적 한계와 관료적 학교 구조의 틀로 인해 제대로 교육적 소신과 열정을 펼쳐내지 못하고 신음하는 사람들이다. 물론 개인의 전문성 부족이나 인격적 한계로 인해 실수하고 어려움을 겪는 부분도 있다. 이런 부분에도 나는 어떠한 판단을 할 자격이 없다. 다만 내가 나의 연약함을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듯, 이들도 함께 나아가도록 격려하고 도전할 뿐이다.

 

그렇지 않은 인생은 없다

요즘은 100세 시대라고 한다. 문자 그대로 이 말을 받아들인다면 이제 인생의 절반을 갓 넘겼을 뿐이다. 하지만 이제 10년이 남은 교직 정년을 기준으로 본다면 10년 정도가 지나면 교사로서의 사명은 끝이 나고, 자녀들도 거의 다 결혼을 했을 테니 자녀양육의 9부 능선은 지나 있을 것이다. 물론 부부 생활은 이와 무관하게 지속되겠지만, 그 이후는 그동안 살아왔던 삶과는 완전히 다른 삶의 과제를 붙들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남은 10년의 삶에서 자녀 양육과 부부생활, 교직생활, 교회생활, 기타 맡은 시민운동 등에서 내게 주어질 과제가 지금까지 내가 겪어 온 것에 비해 결코 더 쉽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10년 이후 수많은 공적인 과제가 끝나고 새로운 인생의 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하면 두렵고 아찔한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를 피할 수는 없다. 살아간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것은 이러한 인생이 주는 위태한 상황을 직면하며 그 과정을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버텨내고 살아내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인생은 없다.

 

위태함 가운데 임했던 은혜와 사랑을 돌아보며

인생은 본질적으로 위태하다. 그동안 아무리 실수 없이 잘 살아온 사람이라 할지라도 앞으로도 잘 살아가리란 보장은 없다. 늘 긴장하지 않으면 삐끗할 수 있고 그동안 쌓아온 것을 한순간에 다 무너뜨릴 수 있다. 이러한 인생의 위태함을 잘 이겨내는 비결은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위태한 길을 달려왔는지를 알고, 그 가운데 임했던 하나님의 은혜와 주변 사람들의 수고에 감사한 마음을 갖는 것이다. 하나님과 주변 사람들에 대해 얼마나 깊게 감사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주어지는 인생의 위태한 상황에서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의지와 주변 사람들과의 깊은 연대가 가능하다. 그러기에 위태한 길을 가야 하는 인생은 다가올 위태함을 두려워하지 말고 지나 온 위태한 길을 걸어오는 과정에 임했던 하나님의 은혜와 주변 사람들의 사랑을 기억할 일이다. 그리고 진정으로 감사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