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사로 오래 살아오신 선배님들을 보면, 치열한 영적 싸움 가운데 하루하루 눈물로 기도하며 생긴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이 보입니다. 저도 예수그리스도의 흔적을 쌓아가는 교사가 되길 소망합니다.
안양 관양중학교 김기엽 선생님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을 쌓아가는 교사
글 / 사진·김기웅
저는 강한 학생이었습니다
저는 믿지 않는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친가 쪽이 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절에 놀러 다니며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저는 육상 선수였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대학교 3학년 때까지 13년간 선수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의 소년기, 청소년기, 청년기의 대부분 생활은 반복적인 훈련과 대회 출전의 연속이었습니다. 저는 체육중학교, 체육고등학교를 거치면서 부모님을 떠나 어린 시절부터 많은 고생을 하며 육체적으로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굉장히 강인한 학생이 되어 갔습니다. 그렇게 청소년기를 보내고 나니 ‘나의 인생은 나의 노력으로 결정된다’는 강한 신념을 가진 20살의 청년이 되어 있었습니다.
복음이 제 마음 밭에 뿌려졌습니다
처음 교회에 나가게 된 건 고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입니다. 국가대표 상비군에 발탁되어 합숙 훈련을 할 때였습니다. 당시 주장이었던 대학생 형이 어느 날 후배들을 방으로 불러 모아 놓고 무엇인가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다 그 모습을 우연히 본 저는 호기심에 방으로 들어갔고, 형은 잘 왔다며 4영리 소책자를 가지고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 주었습니다. 평소 잘 따르던 형이었기 때문에 거부감 없이 복음을 들을 수 있었고, 형의 말이 믿기진 않았지만 함께 영접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주일에 함께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3주 정도 형과 함께 교회를 다녔지만 합숙 훈련이 끝나고 주장 형과도 헤어지면서 자연스럽게 교회에 다니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 영접 기도를 통해 제 마음속에 믿음이 씨앗이 뿌려졌다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20살이 되어 성결대학교 체육교육과 육상 특기생으로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20살에 처음으로 깊은 좌절을 경험했습니다. 그동안 노력하면 안되는 게 없다고 믿어 왔는데, 노력해서 해결되지 않는 여러 가지 어려움에 부딪히면서 3개월가량 참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보냈습니다. 혼자 울기도 많이 울고, 자살을 생각해 보지는 않았지만 자살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될 정도로 힘든 시기였습니다.
그런 시기를 지나고 있을 때 친구가 함께 교회에 나가자고 권유했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절실했고 만약 진짜 하나님이 계시면 제가 겪고 있는 어려움들을 해결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금요일 밤 철야기도 중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 감격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그 날 밤 하나님 앞에 엎드려 회개함으로 새사람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그 이후로 제 삶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해결되지 않던 어려움들은 그대로 남아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제 마음을 바꿔 주셔서 모든 것을 해결해 주셨습니다.
기도에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
그렇게 새사람이 된 후 정말 많은 기도 응답들을 경험했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교회 이야기만 꺼내면 화를 내시던 분이셨습니다. 어머니가 몰래 교회에 다니신 적이 있었는데, 그 사실을 알고 교회로 쫓아가 목사님과 싸우실 정도로 교회를 싫어하셨습니다. 그런 아버지를 위해 처음으로 3일 금식 기도를 했습니다. 금식 기도를 하는 중에 우리 가족 넷이 모여 함께 예배를 드리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리곤 그 기도가 응답되어 그 해 송구영신 예배 때 우리 가족 넷이 모여 함께 예배를 드리게 되는 놀라운 광경을 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외에도 많은 기도 응답들로 저와 함께 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은 반드시 하나님이 이루십니다
그렇게 넘치는 기쁨 가운데 삶을 살던 중 비전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과연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제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육상밖에 없었기 때문에 참 답답했습니다. ‘내가 조금만 더 일찍, 중고등학교 때만이라도 하나님을 만났더라면 하나님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생겨났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도하던 중 하나님이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에는 크고 작음이나 많고 적음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차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수만 명의 성도들을 이끄는 대형 교회 목사님이나 어느 시골 작은 교회에서 한 영혼을 위해 헌신하는 주일학교 교사나 하나님께서 똑같이 귀하게 여기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한 영혼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게 해주셨는데 예수님께서는 수많은 세상 사람들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신 것이 아니라 바로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비전도 함께 주셨습니다. 중고등학교 때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던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중고등학교 교사가 되어서 한 해 맡게 되는 40명의 학생들 중 단 한 명이라도 주님 앞으로 인도할 수 있다면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셨고 그 일이 저의 비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대학교 3학년을 끝으로 운동을 그만두고 교사가 되기 위해 임용고사를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13년 동안 운동만 해왔기 때문에 책 한 권 제대로 읽어 본 적이 없는 저였습니다. 임용고사를 준비하겠다고 처음으로 책을 폈던 날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교육학개론 책이었는데 책을 읽긴 읽는데 무슨 말인지 하나도 이해가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첫 장만 10번 정도 읽었을까요? 그래도 이해가 안 돼서 책을 덮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에게 비전은 주셨는데, 정말 하나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할 수 있을까요?’ 그 때 하나님께서는 지혜를 구하라는 마음을 제게 주셨고, 저는 그 다음날부터 새벽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7개월 정도 새벽에 일어나 기도하며 임용고사 서적들과 치열하게 싸웠습니다.
그러나 9월 즈음 되어서 육체적으로 한계가 왔습니다. 몸이 지쳐서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너무 힘들었고 결국 저는 하나님께 솔직하게 말씀 드리고 새벽 기도를 중단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저를 그냥 놔두지 않으셨습니다. 그 당시에 저는 아는 형 자취집에 방 하나를 얻어 살고 있었는데, 형이 결혼하게 돼서 방을 비워 줘야 한다고 갑작스럽게 이야기하는 것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방을 구하러 다녔는데 우연치 않게 대학교 기숙사에 한 자리가 비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주소가 경기도라서 기숙사 이용 대상이 아니었지만 사감님이 받아 주셔서 기숙사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기숙사 규칙이 새벽 기도는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쩔 수 없이 새벽 기도를 계속 나갈 수밖에 없었고, 결국 임용고사 당일까지 하나님께서는 새벽 기도를 시키셨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졸업과 동시에 저를 교사로 세워 주셨습니다. 시험 보는 과정에서도 하나님께서 이루신 간증들이 많지만, 결론은 임용고사를 제 힘으로 합격했다고 말 할 수 없도록, 하나님이 하셨다고 말할 수밖에 없게끔 역사하셨고, 저를 교사로 불러 주셨습니다. 임용고사 합격을 통해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은 하나님이 반드시 이루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깨어지고, 성장하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교사로 세워 주셨지만 저의 신규 교사 생활은 엉망진창이었습니다. 중고등학교 복음화의 비전을 이루어가기는커녕 맡겨진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해 쩔쩔매는 모습, 선배 교사들과 어울리며 세상적인 모습으로 변질되어가는 4개월을 경험했습니다. 4개월 동안 한 영혼에게도 복음을 전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고개를 들 수 없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저는 군대에 입대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3년 4개월의 광야와 같은 군대 생활을 통해 저의 변질되었던 모습을 회개하게 하셨을 뿐 아니라 저를 철저히 단련시키셨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3년 4개월의 군대에서 보낸 시간은 저에게 가장 소중했던 시간이며 가장 많이 성장했던 시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교사선교회를 만나다
군 생활의 막바지에 이르러 다시 시작하는 교직 생활에서 기독교사로서의 모습을 그려가던 중 지금의 제 아내(심하얀나래)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당시 제 아내는 초등학교 교사로서 교사선교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제가 꿈꾸는 사역들을 실천해 가고 있는 기독교사였습니다. 아내로부터 교사선교회의 비전이 무엇인지 어떤 사역들을 하고 있는지를 소개받으며 막연했던 저의 비전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들을 하나님께서 제시해 주고 계시다는 확신이 들었고, 그 이후로 저는 교사선교회 공동체에서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시작된 기독교사의 삶, 제자 양육
그렇게 저는 무사히 전역을 하게 되었고, 기독교사로서의 제 교직 생활은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으로 시작한 것은 학급의 제자들을 대상으로 제자 양육을 하는 일이었습니다.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방과 후 또는 토요일에 시간을 내어 양육을 시작했습니다. 제자 양육을 하면서 많은 은혜들이 있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나누고 싶습니다.
제자 양육을 시작하던 첫해에 있었던 일입니다. 제자 양육을 희망하는 학생들은 종례 후 남으라고 했습니다. 8명 정도가 남았던 것 같습니다. 그 아이들에게 제자 양육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려보내려는데 석현이가 “선생님, 저는 양육 때문에 남은 게 아니라 아까 받지 못한 가정통신문 받으려고 남은 건데요?”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좀 황당했지만 석현이에게 “하나님께서 석현이를 많이 사랑하시나 보다. 같이 양육 받아 보지 않을래?”라고 권유했고, 얼떨결에 석현이도 함께 양육을 시작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저는 사실 학교에 적응도 못하던 때라 양육할 아이들을 뽑아만 놨지 몇 번 양육하지도 못했었는데, 마치 하나님께서 ‘양육은 네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는 것이다’라는 걸 보여 주시기라도 하듯, 교회에도 다니지 않았던 석현이가 몇 달 후 하나님을 만나고, 정말 무섭게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애가 너무 갑자기 변하니까 부모님께서 걱정이 되셨는지 교회를 못 다니게 하시는 등 많은 핍박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석현이는 기도로 이겨내고 지금은 목회자가 꿈인 학생이 되었습니다.
제자 양육을 통해서 깨달은 것은 저는 씨를 뿌리고, 물을 주기만 할 뿐 자라게 하시고 거두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매년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제자들을 양육하고 있고 앞으로도 해 나가려고 합니다.
수요모임을 시작하다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하나 더 있습니다. 저는 첫 발령 때부터 지금까지 학교폭력 및 학생 생활지도 업무만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선생님들이 가장 기피하는 업무이기도 합니다. 업무가 힘든 것도 힘든 것이지만 더 힘든 것은 폭력으로 물든 학교 문화를 바라보는 것과 그런 문화를 주도하는 아이들을 보면 대부분 깨어진 가정과 어려운 환경 속에서 돌봄 받지 못하고 자란, 상처받고 깨어진 영혼의 아이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아이들의 아픔과 상처가 폭력적으로 표출되는 모습을 보며 참 안타까웠습니다.
안타까움을 가지고 학교와 학생들을 위해 기도하는데, 어느 날 하나님께서 혼자서 기도 하지 말고 함께 기도하라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이미지를 하나 보여 주셨는데 아이들과 함께 기도하고 찬양하는 모습의 이미지였습니다. 저는 이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며칠 후 신우회 선생님께서 아이들과 점심시간을 이용해 찬양하는 모임을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떻겠냐고 권유하셨고, 동료 신우회 선생님들과 힘을 모아 아이들과 함께 찬양하고 기도하는 모임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소수 인원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많은 아이들이 점심시간에 하나님께 나와서 찬양하고 기도하는 예배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학교를 위한 기도 모임이 시작되고 나서 작년에 관양중학교가 안양, 과천 지역에서 학교폭력 예방 최우수 학교로 선정될 만큼 하나님께서 학교 문화를 많이 바꾸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도 학교를 위해 아이들과 함께 기도하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두 가지 사역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요,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매년 저에게 맡겨 주시는 40명의 아이들을 잘 섬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주께 하듯 그 아이들을 섬기고, 본이 되어서 그 아이들에게 그리스도인의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이런 교사가 되려면 아직 한참 멀었지만 하루하루 기도하며 노력해 가고 있습니다.
이런 교사가 되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교사로 불러주셨습니다. 만약 제가 정년까지 교사를 하게 될 경우 앞으로 적어도 1200명 이상의 아이들을 만날 수 있게 됩니다. 교감, 교장이 되면 훨씬 더 많은 아이들을 만날 수 있겠죠. 중요한 것은 평교사의 모습이든 혹은 교감, 교장의 모습이든 위치와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겨 주신 아이들의 영혼을 사랑하고 섬기며, 그 영혼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일을 가장 우선순위로 삼는 교사, 변치 않고 그 일에 집중하는 교사의 모습으로 살고 싶습니다.
또한 학교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상처받고 깨어진 아이들이 참 많은데 그런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며 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들을 고민하고 연구해서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교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지금은 못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지경을 넓혀주셔서 학생뿐만 아니라 학부모와 동료 교사, 후배 교사들에게도 복음을 전하는 진정한 기독교사로 서고 싶습니다. 이미 그렇게 살고 계신 선생님들도 주변에 너무나도 많이 계십니다. 그 선생님들을 가만히 바라보면 마치 후광이 비추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 후광 속에 사도 바울이 이야기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이 보입니다. 치열한 영적 싸움 가운데 하루하루 눈물로 기도하며 생긴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 말입니다. 저도 경력만 쌓아가는 교사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을 쌓아가는 교사가 되길 소망합니다.
김기엽 선생님은 생전 처음으로 제의받은 인터뷰라 부담되었지만, ‘내가 네 인생에 함께한 그 이야기를 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응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인생 가운데 행하신 일을 돌아보며 더욱 감사한 시간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김기엽 선생님과의 인터뷰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가 갖고 있는 아이들에 대한 확신이었습니다. 학생들이 함께 모이고 서로 도우며 성장해가는 모습을 발견하면서 이를 잘 돕고 늘 그 기반이 되어 세워 주는 일을 할 뿐이라는 고백을 들었습니다. 청소년기가 하나님 앞에 스스로 나와 자발적으로 모이는 힘이 있는 시기임을 듣고 놀랐습니다. 선생님을 통하여 세워질 수많은 제자들, 그리고 선생님을 통해 써나가실 성령의 역사를 더욱 기대하면서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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