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필로 그리는 천국

월간 《좋은교사》 공식 블로그

연재 종료/정병오 칼럼

이오덕 선생님을 그리며(2013.09)

좋은교사 2014. 6. 5. 11:18

정병오 칼럼

이오덕 선생님을 그리며

 

 

이오덕 선생님이 1962년부터 2003년까지 마흔두 해 동안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쓰셨던 일기가 한 뜻있는 출판사의 정성 어린 작업에 힘입어 5권의 책으로 발행되었다. 물론 그 일기 내용은 원고지로 37,986장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지만 출판사 편집부가 원고지 6,126장으로 대폭 줄였다. 이렇게 줄인 것이 책 5권의 분량이니, 일상 이야기의 경우 겪은 일을 더 또렷이 붙잡아 쓴 글, 학교나 세상에서 겪은 일 가운데서는 그 시대의 기록이 될 만한 글을 중심으로 가리고 또 가렸다는 출판사의 고심이 읽히는 듯 했다.

 

<이오덕 일기>가 담고 있는 것

1권과 2권은 교사로 재직할 때의 일기인데, 교직 생활 19년차이던 1962년부터, 그의 글과 활동들이 경찰서 정보과의 감시와 간섭을 받아 더 이상 교직 생활을 지속할 수 없어 명예퇴직을 해야 했던 1986년까지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 두 권의 책에는 아이들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관료적 학교 풍토와 교사로서의 정체성 없이 위에서 시키는 대로 혹은 자신의 안위 중심으로 생활하는 교직 문화에 대한 안타까움과 의분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그렇지만 이 가운데서도 살아 숨 쉬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기뻐하고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찾는 마음으로 아이들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어떻게 해서라도 살아 있는 교육의 참맛을 느끼게 해 주려는 선생님의 몸부림이 잘 담겨 있다. 일개 교사의 일기지만,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우리 교육의 역사를 학교 현장의 목소리로 생생히 기록한 교육사로도 탁월한 기록이다.

3권과 4권은 교직을 그만두고 경기도 과천으로 이사를 와서 한국글쓰기연구회 활동과 아동 문학가로서의 활동, 우리말 바로 쓰기 운동을 포함한 각종 사회 활동, 저술 활동을 활발하게 펼쳤던 1986년부터 1998년까지의 기록이다. 한 개인이 사심 없이 자신이 옳다고 믿는 신념을 따라 얼마나 많은 선한 열매들을 맺을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늘 자기를 성찰하여 세상의 헛된 욕망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고 역사 앞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갈고 닦을 수 있다면, 나이를 먹을수록 그때까지 살아온 모든 경험이 역사의 발전과 후배들을 위해 귀하여 사용될 수 있음을 삶으로 보여주고 있다.

5권은 74세가 되는 1999년 큰 아들이 살고 있던 충주시 무너미 마을로 이사 간 이후 79세의 나이로 돌아가시기 전까지의 기록이다. 여기서도 계속해서 글을 쓰고 사회적 활동에 참여하지만 보다 일상적이고 자기를 보살피며 내면을 성찰하는 글을 많이 남기고 있다. 자신의 몸의 변화를 느끼며 자연스럽게 죽음을 준비해 가는 모습이 아름답게 다가온다.

 

이 아이들을 어찌할 것인가?

내가 이오덕 선생님의 글을 처음 접한 것은 대학 2학년 때였다. 사범대학에 들어왔지만 당시 대학은 개인이 자신의 전공을 따라서 어떻게 시대에 기여할 것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자신의 전공 영역으로 깊이 들어가 그 영역 가운데 하나님의 주권을 선포해야 한다는 사명감은 기독 동아리를 통해 들어왔던지라 우리 교육 현장의 실상과 그곳에서 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의 가능성을 보기를 원했지만 그와 관련한 자료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교육학에서 배우는 내용들은 외국의 이론들이었고, 계급론의 입장에서 교육을 분석한 책들은 예리한 느낌은 들었지만 너무 절망적인 느낌을 주어 싫었다. 여러 교육자들이 쓴 교단 일기들은 감동적이지만 실제 현실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만난 이오덕 선생님의 <이 아이들을 어찌할 것인가>, <삶과 믿음의 교실>, <시 정신과 유희 정신> 등은 내 눈을 번쩍 뜨이게 했다. 이 책들은 아이들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우리의 학교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잘 묘사했으면서도 절망적이지 않고 따뜻했다. 우리의 현실을 이론으로만 다룬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서도 아이들이 어떻게 숨 쉬고 자라고 있으며, 또 한 사람의 교사가 이 모든 현실을 다 바꿀 수는 없더라도 온몸으로 저항하며 대안을 만들기 위해 몸부림칠 때 그 나름의 열매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희망이 가득 담겨 있었다. 무엇보다 반가웠던 것은 이 책이 교육학자가 쓴 책이 아니라 교사가 쓴 책이라는 것이었다. 교사가 한 교실에서 몇 되지 않는 아이들을 붙들고 바른 교육을 위해 몸부림칠 때 그 노력이 아이들에게 영향을 줄 뿐 아니라 시대와 세상을 바꾸는 행위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이오덕 선생님의 책에서 발견했다. 바로 이러한 발견이 있었기에 나는 그동안 교직에 대해 가지고 있던 여러 두려움과 염려를 떨쳐 버리고 곧바로 교직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다.

 

농사 다음에 좋은 것이 교사입니다

이오덕 선생님이 돌아가시기 1년여 전 나는 선생님과 3시간 정도 대담할 기회를 가졌다. 월간 <좋은교사> 초창기 때 정병오가 만난 오피니언 리더’(지금의 만나고 싶었습니다’) 꼭지를 맡아 진행을 했었다. 그때 교육과 관련된 여러 저명인사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가졌는데, 그 중 한 분이 이오덕 선생님이었다.(20024월호)

선생님은 초등학교 졸업 후 1년 농사를 짓다가 2년제 기숙형 농업학교에 다녔는데, 그 학교에 대한 매우 좋은 추억을 가지고 계셨다. 선생님과 학생들이 같이 먹고 자면서 농사도 짓고 공부도 하면서 땅과 땀의 소중함을 배우는 그런 것이 교육의 원형이라고 생각하셨고, 자신이 조금만 더 젊었더라도 그런 학교를 시작해 보고 싶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그는 농사를 짓는 것이 제일 죄를 적게 짓고 정직하게 살 수 있는 길이라고 하셨다.(물론 현재 다수의 농업은 농사가 아닌 장사로 너무 치우쳤다며 안타까움을 표시하셨다) 하지만 농사 다음으로 좋은 직업(죄를 덜 짓고 정직하게 사는 길)이 곧 교사라고 하셨다. 물론 우리 학교 현실이 교사가 제대로 교육을 할 수 없게 만드는 상황이긴 하지만 그래도 몸부림칠 수 있는 여지는 여전히 열려 있다고 강조했다. 자신이 일평생 글쓰기 교육에 전념했던 것도 아이들로 하여금 자기의 삶을 거짓 없이 표현하게 하는 글쓰기야말로 아이들의 인성을 깨우고 교육의 본질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일평생 쉼 없이 달려온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또 현 교육을 보면서 그가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그렇게 높은 교육열과 관심 속에서도 정작 아이들이 존중받지 못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이렇게 죽어가고 있음에도 교육 관련자든 정치인이든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현실에 대해 개탄했다. 또한 농사 다음으로 좋은 직업인 교직으로 부름 받은 교사들이 자신의 일을 즐기고 매진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안타까움을 표시하셨다. 교사의 일은 일반 노동과 달라서 정한 근무 시간에만 제한될 수 없는 일이고, 아이들이 좋아 아침 일찍부터 아이들을 만나고자 하고, 퇴근 이후에도 아이들의 글을 읽고 다음날 수업 준비를 하는 가운데 기쁨을 누려야 하는데 그런 것에 대한 강조가 사라져 감을 안타까워하셨다.

 

어둠을 비추는 한 줄기 빛으로 작용하길

선생님이 돌아가신 지 10년이 다 되어 가고 이제는 이전에 선생님이 쓰셨던 책들도 거의 품절이 되어, 선생님에 대한 기억이 선생님을 만났던 몇몇 사람들의 기억에만 남아 있게 된 상황에서 선생님의 일기가 이렇게 정갈하게 정리되어 나오니 감사한 마음 이를 데 없다. 어두운 한국 교육의 역사 가운데서도 아이들과 우리 교육을 비추어 주는 한 줄기 빛으로 살았던 선생님의 모습이, 점점 더 어두워져가는 우리 교육의 현실 가운데서도 희망을 놓지 않고 고군분투하는 후배 교사들에게 희망의 빛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연재 종료 > 정병오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50대를 맞는 자세(2013.11)  (0) 2014.06.05
공부의 즐거움(2013.10)  (0) 2014.06.05
반성은 나의 힘(2013.08)  (0) 2014.06.05
거절의 의미(2013.07)  (0) 2014.06.05
나는 기도할 때(2013.06)  (0) 2014.0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