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오 칼럼
공부의 즐거움
<수학의 정석>에 새겨진 할렐루야!
지금은 어디로 사라져 버렸는지 없어졌지만, 결혼을 하고서도 한동안 보관하고 있던 고등학생 시절의 물건 중에 <수학의 정석>과 <성문종합영어>가 있었다. 그 책들은 나의 고등학생 시절 개인 공부 시간의 대부분을 쏟았던 것들이라 그 책의 여백 곳곳에 내가 그 공부를 하면서 했던 생각의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수학의 정석> 곳곳에는 ‘할렐루야!’라는 문구가 표시되어 있었는데, 하루 종일 붙들고 있어도 도무지 풀리지 않던 문제가 풀렸을 때의 희열의 흔적이었다. <성문종합영어>에는 각 과마다 처음 공부할 때, 그리고 2번째, 3번째 공부할 때 걸린 시간과 소감이 적혀 있었다.
지금과 전혀 다를 바 없는 반복 암기 위주의 공부 체계 가운데서도 수학을 통해서는 한 문제를 붙들고 끝까지 씨름함을 통해 문제의 원리를 간파해내는 기쁨을, 영어를 통해서는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공부할 때 그 전에 이해되지 않던 것들이 새롭게 이해되고 나의 지식으로 완전히 소화되는 원리들을 발견했던 것이다. 영어나 수학뿐 아니라 국어나 사회, 과학 과목들도 처음에 잘 이해되지 않고 부담스럽게만 느껴지던 내용들이 공부를 해 나가고 내용을 익혀 갈수록 전체적인 내용들이 머릿속에 들어오면서 그 나름의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비록 지극히 왜곡된 입시 체제 가운데 이렇게 작고 비본질적이긴 하지만 공부가 주는 소소한 기쁨들이 은근히 깔려 있었기 때문에 그 시절을 비교적 건강하게 버틸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대학 공부가 왜 이렇지?
대학에 와서 처음 느낀 당혹감은 대학의 공부가 고등학교 공부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다. 물론 대학의 공부는 정답이 아닌 질문을 많이 던졌고, 다양한 읽기 자료가 제시되고, 때로 학생들의 발표나 토론, 그리고 서술형 평가 등에서 차이는 분명 있었다. 그렇지만 많은 양의 지식 가운데 삶과 진리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을 얻고자 했던 바람이 채워지는 수업은 극히 적었다. 이렇게 대학 공부는 나로 대학원에 진학해서 공부에 매진해야겠다는 매력을 주지 못했고, 나는 교사로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 공부는 사물을 단순하게 바라보지 않고 다층적이고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을 길러주었고, 어떤 주제든 스스로 자료를 찾아 비판적으로 읽고 정리할 수 있는 기초적인 능력을 길러주었다. 어떤 공부를 할 때 한 권의 주 교재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와 관련된 여러 참고 서적들을 읽으면서 그 주제와 관련된 감을 잡고, 또 그 공부를 하는 가운데 파생되는 또 다른 중요한 주제들에 대해 흥미를 갖고 그와 관련된 책을 찾게 되는 ‘공부의 릴레이’가 주는 매력에 빠져본 것도 소중한 경험이었다. 학문이 현실 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해답을 제시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복잡한 현실을 한 눈에 보게 해 주는 지도 역할을 하고, 또 현실에 의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수정해 가는 학문과 현실의 변증법에 대해 어렴풋이 눈을 뜬 것도 이후의 삶에 큰 도움이 되었다.
하고 싶어서 하는 공부
교직에 나와 아이들을 가르치려니 대학에서 배웠던 내용들이 새롭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아이들에게 교과 지식의 깊은 맛을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려고 하니 우선 내가 그 지식을 제대로 이해하고 깊은 깨달음에 도달하지 않고는 불가능했다. 그래서 대학 시절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 것은 물론이고 그 주제와 관련된 다른 책들을 많이 보게 되었는데, 교직에서의 책 읽기는 대학 시절의 책 읽기와는 달리 바로바로 현실에 적용되는 구체성 면에서 확연히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을 가르치다보니 교직에서는 정말 필요한데 대학에서는 제대로 배우지 않은 것이 매우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더군다나 단지 지식의 차원이 아닌 경험과 적용 차원에서 선후배 교사들과 함께 하는 공부의 필요성이 강하게 다가왔고, 이러한 필요는 나를 기독교학문연구회 교육연구모임과 기독교윤리실천운동 교사모임으로 이끌었다.
교직 생활 3년을 채우고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 진학 자격을 얻은 시점에서 계절제 대학원에 진학을 했다. 물론 대학원에서도 대학 시절에 느낀 아쉬움을 반복해서 느꼈고 여기에 더하여 교육대학원이 학교 현장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아쉬움까지 더해져 실망이 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원에서의 공부는 학점이나 졸업장 등 외재적 조건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고 공부 자체에 그리고 내 속에서 일어나는 공부의 내적 동기에 집중하는 기쁨을 맛볼 수 있었다.
이후 북한과 통일에 대한 공부를 하기 위해 경남대학교 북한대학원(현 북한대학원대학교)에 진학했을 때는 이러한 기쁨을 더 크게 누릴 수 있었다. 북한과 통일에 대한 공부가 나의 교과(도덕과)와 어느 정도 관련이 있기는 했지만 대학원 공부 자체는 하지 않아도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었고, 그럼에도 내 속에 있는 북한 동포들에 대한 애정과 통일을 대비해야 한다는 소명에 따른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좋은교사운동 상근자 생활을 하면서도 공부의 맛에 흠뻑 빠질 수 있었다.
지적 유희면 어떠한가?
좋은교사운동 대표직을 수행하면서는 기본적으로 교육 정책과 관련된 책이나 자료들은 꾸준히 관심을 유지하고 읽어야 했다. 하지만 교육만 들여다보고 있다가는 자칫 거기에 갇힐 수 있고, 그것을 좀 더 높은 차원에서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갖기는 힘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틈나는 대로 교회사나 일반 역사와 관련된 책, 전기나 인물 평전, 좋은 설교집 등을 많이 읽으려고 노력했다. 그런 책을 통해서 시대를 분별하는 지혜와 안목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때로는 현재 내가 하는 일과는 무관하지만 그냥 내 관심이나 욕구에 따른 세미나나 강좌에 참여하려고 힘썼다. 그래서 학원복음화협의회의 “김세윤 박사의 신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성서유니온의 “김회권 박사의 성경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SFC의 “존 요더 읽기”, 복음과상황의 “어거스틴의 신국론 강독”, 기독청년아카데미의 “루터와 유럽 문명”, 오마이뉴스의 “김호기 교수의 현대의 사회사상가들”, 경향신문의 “최장집 교수의 정치철학”, 프레시안의 “강신준 교수의 자본론 읽기” 등에 참여해 공부했다.
지금 당장 내가 결정하고 해야 할 일이 있는 상황에서 당장 필요하지 않은 공부에 시간을 들여 참여하는 것은 일종의 낭비이기도 했고, 지적 유희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로서는 건강한 유희였고, 쉼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현재의 삶과 무관한 듯 보이는 공부들로 인해 전체적인 지성과 영성, 세상을 보는 안목들이 소생케 되었고 사역도 지치지 않고 감당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가끔 주변 사람들로부터 노후를 위해 악기나 사진 등 예능을 배우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하지만 나는 나이가 들어 모든 공적인 삶의 부담으로부터 해방되고 나면 마음껏 공부를 하고 싶다. 비록 눈이 어두워져 책을 보기가 쉽지 않고 지적 능력이 떨어져 많은 제약이 있긴 하겠지만 지금으로서는 하고 싶은 공부가 너무 많다. 읽고 싶은 책도 많고, 배우고 싶고 파헤쳐 보고 싶은 주제도 많다. 쓰고 싶은 책의 주제도 많다. 주께서 여러 상황을 허락하신다면 마음껏 공부하다가 주의 품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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