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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교사운동 이야기

핀란드, 덴마크 교육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핀란드, 덴마크 교육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대담자: 정병오, 김진우, 정리: 김진우


2011.2.10. 사무실에서 대담을 하였다. 작년에 핀란드와 스웨덴을 탐방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번 탐방이 던져 주는 의미를 짚어보기로 하였다.


핀란드 교육의 허실


김진우: 핀란드를 두 번째 방문하게 되었는데 1차 때와의 차이점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정병오: 1차 때는 핀란드 교육의 모범을 보았다고 할 수 있다. 팀티칭이나, 보완교육에 있어서도 철저하게 시행되는 모습, 인문고나 직업교육에 있어서도 최상의 학교를 본 것 같다. 그런데 이번은 핀란드의 일반 학교의 모습을 본 것 같다. 팀티칭이 있는 것도 아니고, 프로젝트 수업을 하는 것도 아니고, 건물이나 체계가 지난번보다는 못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본 것이 좀 더 현실을 잘 나타내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번에는 수업도 좀 더 오래 볼 수 있었고, 교사와 학생들과도 이야기해보면서 핀란드 교육이라고 해서 특별하게 다른 것은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다.


김진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핀란드 교육의 강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팀티칭이나 프로젝트 수업과 같은 것은 일반적이라 할 수 없지만 학습부진아에 대한 보완교육 시스템은 어떤 학교를 막론하고 강력한 형태로 자리잡고 있는 것을 보면서 이것이야말로 핀란드 교육의 가장 큰 특장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병오: 그 점은 확실하다. 보완교육 시스템은 독특하고도 뛰어난 점이다. 그런데 수업 현장을 볼 때는 스웨덴과 비교해 보면 오히려 평범했다. 스웨덴은 프로젝트 수업을 강조하고, 학생들의 주도적 참여와 협력을 강조하는 데 비해 핀란드 교실은 우리나라 교실에서 자주 보는 것과 같은 교사가 주도하고 학생들은 듣는 형태가 많았다. 그렇지만 교육과정이 획일적이지 않고 교사가 자율성을 가지고 수업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학생들 개인에 대한 배려를 좀 더 할 수 있는 여건이 되는 것 같다. 어떤 면에서는 우리나라가 다인수 학급이다보니 수업기법은 좀 더 화려해진 측면이 있다.


김진우: 핀란드 학생의 성적이 우수한 이유를 교사 요인에서 찾는 분석이 많다. 수업에서 특별한 점을 발견할 수 없다면 핀란드 교사들의 우수성은 무엇일까?


정병오: 성적의 측면에서 볼 때 핀란드의 교실 수업의 방식이 평가에 유리한 방식이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도 가능하다. 서구의 교육이 상당히 아동 중심, 활동 중심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인데 비해 핀란드는 그런 측면도 있지만 보다 더 체계성을 강조하고 일정한 수준의 목표 달성을 강조하는 형태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교사들이 아이의 성취에 대해 보다 높은 책무성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김병찬 교수의 분석과 연결해 본다면 그들은 연구자로서의 교사상을 강조한다. 학문 자체도 중시하지만 가르치는 활동 자체의 전문성을 중시한다. 교사교육에 있어 현장교육실습을 상당히 중시하고 절대시간이 확보되어 있다. 그 시간들을 통해 현직에 나가기 전에 전문성을 갖추게 된다. 우리가 보기에는 평범해 보이지만 자신의 교과와 학생들의 반응들을 꿰고 있고, 자신의 수업을 반성적으로 검토하는 그런 활동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한 전문성은 우리나라 교수나 교사가 따라가기 어려운 것이라고 본다.


김진우: 핀란드 학생들의 성적이 높은 이유에는 학생 요인도 큰 것 같다. 덴마크 아이들과 비교해 볼 때 상당히 차분하다. 덴마크 아이들은 밝고 쾌활하고 자유분방한 반면 다소 산만하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는데 핀란드 학생들은 자유로우면서도 차분하다. 복도에서 뛰어다니거나 장난하는 아이들이 없고 조용하게 이야기하고, 수업시간에는 경청한다. 그것이 민족성 때문인지, 유악교육의 결과인지, 혹은 그들 말대로 마음껏 밖에서 뛰어놀게 하니까 그런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핀란드 교육의 철학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스웨덴이나 덴마크는 나름의 교육철학이 있는 것 같은데 핀란드의 경우는 색깔이 분명하지는 않은 것 같다.


정병오: 뚜렷하게 잡히지는 않는다. 크게 보면 교육을 복지의 한 부분으로 보고 평등교육을 중시하는 철학이 있지만 보다 교육적인 측면에서 볼 때 세계 제일이라고 볼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한다. 어떤 면에서 핀란드 교육이 세계적으로 칭송받고 있는 것이 유럽 사람들의 입장에서 볼 때는 좀 이해가 안 될 수도 있다. 단지 평가 결과가 좋다는 것인데 그것이 교육의 질적 우수성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북유럽이 루터교 전통에 있기 때문에 루터의 인간관이나 교육관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 많을 것이다. 루터는 만인제사장을 말했다. 사람은 하나님 앞에 평등하고, 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 소중한 존재라는 생각과 누구나 스스로 성경을 읽어야 하고, 이를 위해 모두가 글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 수도원 중심의 엘리트 교육이 아닌 평민 교육을 강조하고 성직과 일상의 일을 구분하지 않고 일상의 모든 일이 중요하다는 생각들이 북유럽의 교육관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가 공유하고 있는 교육철학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덴마크 교육의 발견


김진우: 그와 같은 교육철학에서 볼 때 루터와 그룬트비히는 어떤 관련이 있다고 보는가? 그룬트비히가 말하는 자유교육의 이념의 실체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정병오: 그룬트비히의 자유의 개념은 무엇인가? 그 전까지 교육이라 하면 라틴어와 고전을 배우는 것이었는데 비해 그룬트비히는 자기 민족의 노래와 전설을 중시했다. 이는 마치 루터가 성경을 라틴어가 아닌 독일어로 읽어야 한다는 주장과 상통한다. 루터가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고, 예배도 독일어로 집례하고, 식탁에서 부모가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을 중시했다. 식탁에서 이야기한 내용을 묶은 책도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루터교도 형식화되는 측면이 있지만 정신적인 근원은 평민의 삶을 중시하는 것이었고, 그것이 그룬트비히로 이어진다고 볼 수 있다.


김진우: 그런데 그룬트비히의 정신이 현재 자유학교에 충분히 이어지고 있다고 보았는가? 자유학교의 이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정병오: 자유학교의 이념은 삶에 대한 강조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가 농업사회이기 때문에 농사를 지으면서 땀을 흘리고 살면서 그것을 풍성하게 누리고 사랑하는 것이 교육의 본질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라틴어를 배우기보다는 자신들의 노동과 생활 가운데 살아 있는 이야기와 노래를 중시했던 것이다. 당시의 지배적 교육 이념으로부터 독립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고 삶을 긍정하는 그런 교육의 정신을 자유교육이라 한 것 같다. 하지만 20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사회가 많이 변했다. 지금은 음악, 미술, 체육과 같은 감성을 강조하는 형태로 변모한 것 같다. 우리가 자유학교에 깊이 들어가지는 않아서 삶을 위한 교육이라는 정신이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지는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다만 제도적으로 볼 때 애프트스쿨이나 포크스쿨과 같은 독특한 형태로 자유학교의 이념이 살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지식교육보다도 자신을 찾을 수 있는 시간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것이 또 사회적으로 충분히 허용되고 인정되고 있는 것이 덴마크 교육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김진우: 자유학교의 존재는 나로 하여금 교육의 본질에 대한 반성을 하게 한다. 예를 들어 시험을 보지 않는데 우리는 기본적으로 가르쳐야 할 내용과 목표가 있다고 보고 그것을 평가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물론 객관식 지필 평가의 한계와 문제점은 있지만 평가는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데 그것이 교육을 망친다고 보고 있다. 또 자유교육의 이념은 아이들이 스스로 발견할 수 있도록 자발성을 강조하는데 비해 나는 개인적으로 내 안에 있는 지식과 신념을 전달하는 것이 수업의 중요한 내용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내가 해 왔던 것은 교육의 본질과 거리가 멀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뿐 아니라 오늘날 학교가 주로 가르치고자 하는 지식과 기술과 같은 것들이 자유교육의 차원에서 볼 때는 교육의 본질과 거리가 먼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지금까지 우리는 무엇을 했던 것인가, 현재의 학교 교육은 정당화가 될 것인가?


정병오: 그것은 사회 시스템과 맞물려 있다. 우리나라는 학교의 역할이 학생을 구별하고 배분하는 역할을 하기 원하고 그것을 위해 줄도 세우는데 그들은 그것은 나중에 사회에서 할 일이고 학교는 아이들로 하여금 삶을 풍성하게 누리는 법을 교육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회는 학교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보장해준다. 그룬트비히는 교육가이도 하지만 정치가인데 그는 그러한 사회 시스템 속에서 학교의 기능과 역할을 구상했던 것 같다. 우리나라도 대안학교가 덴마크 교육에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은데 얼마든지 자유로운 교육을 할 수 있지만 사회시스템이 뒷받침해 주지 않기 때문에 대안학교 학생들의 불안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는 덴마크도 세계화 시대에 다른 나라와의 경쟁 상황에 노출되면서 평가가 강조되고 어느 정도의 위기감이 조성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김진우: 이러한 상황은 교사로서의 실존적 고민을 던져주고 있다. 현재 한국의 학교 교육은 자유교육의 이념에서 보면 거의 대부분이 교육이 아니고 시험만을 위한 것인데, 그런 상황 가운데서 우리는 교사의 정체성을 어디서 찾아야 할 것인가? 자유교육의 이념을 한국 공교육 교사는 어떻게 소화할 수 있을 것인가?


정병오: 한국교육은 교사들이나 학부모들이 이런 체계 속에서 자랐고 그 안에서 아이들을 낳아서 기르고 있기 때문에 다른 상상을 할 수 없고 이것만이 방법이라고 생각해서 돌아가고 있는데, 우리가 북유럽의 교육을 보면서 또 다른 교육이 있고, 그것이 본질에 더 맞는 것이라는 인식을 가지면서 당장 이 현실을 바꾸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그 속에서 아이들의 방패막이가 되면서 교육의 본질을 경험할 수 있도록 숨통을 틔어주는 그런 변화를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그런 본질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큰 차이가 있지 않은가?


공교육과 자유


김진우: 덴마크 교육에서 인상적인 것은 공교육과 학부모의 자유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학부모의 자유로운 학교 설립을 국가가 인정하고 지원해 주고 있다. 이와 같은 정책을 한국에 적용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정병오: 우리나라도 대안학교를 예를 들어 50% 정도로 지원해주게 되면 급격한 쏠림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긍정적인 형태로 될 것인가는 미지수다. 문제는 덴마크와 달리 우리나라는 사회가 평등하지 않다는 것이다. 사회가 평등해야 교육이 다양화될 수 있는데 계층화된 상황에서는 끼리끼리 모이는 현상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많다. 또 경쟁이 심한 상황에서 대안학교의 교육의 건전성을 보장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김진우: 나는 국가가 대안교육을 지원하지 않을 때 오히려 계층적 분리를 부추길 수 있다고 본다. 지금의 대안학교가 공적 지원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서민들은 배제되는 형국이다. 만약 국가가 대안학교를 지원하게 된다면 누구나 갈 수 있게 된다. 필요하면 대안학교를 선택한 저소득층에 대해서는 공교육과 동일한 수준만큼 지원을 하면 계층화 문제는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전제는 있을 것이다. 대안학교가 영리를 추구하거나 학생을 성적이나 계층으로 선발하는 것은 제한되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다양한 교육을 원하는 학생들을 지원함으로써 공교육의 의미를 학생 중심으로 확장하는 것이다. 기존의 학교의 형태에만 공교육의 의미를 가두어 놓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또 경쟁 심화의 문제 또한 대안학교가 촉발하는 것은 아니다. 입시경쟁의 문제가 있다면 대입제도의 해결을 통해서 풀어야지 대안학교를 통제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 보면 지금보다 더 심해지기는 어렵다. 대안학교를 허용한다고 해서 입시경쟁이 지금보다 더 심화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학부모들의 자유가 입시경쟁을 더 심화할 것이라고 가정하지만 지금보다 더 심화되기도 어려울뿐더러 모든 학부모가 입시교육을 원한다고 가정해서도 안 된다. 학부모가 원하는 것은 자녀들의 행복이다. 그 행복을 위해 입시도 필요하겠지만 건강한 교육을 원하는 학부모들도 많다. 그들의 욕구가 정당한 지원을 받을 필요가 있다. 만약 학부모들의 수준이 문제라고 본다면 올바른 교육적 모델을 통해 설득해 가야 한다. 학부모들을 불신하고, 학부모들의 자유를 묶어둔 상태에서 출발하면 안 된다.


정병오: 대안교육을 조금씩 열어주는 것은 필요하다고 본다. 지금까지 완전히 배제했지만 설립 요건을 완화하고, 지원을 조금 더 확대하는 실험의 과정을 10년 정도 거치면서 점진적으로 가야 할 것이다. 교육에 대한 다양한 열정들을 열어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교육이 변해야 하는데 어떤 포인트를 주어서 변할 것인가 할 때 우리나라처럼 관료제가 심하고 집단이기주의가 강한 상황에서 공교육 시스템을 강화하는 쪽으로 변할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있다. 어떤 면에서 핀란드 방향으로 갈 것인가? 덴마크 방향으로 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필요하다. 에너지가 있다는 측면에서는 덴마크가 에너지가 있는 것이 사실이고 우리도 그런 고민을 해야 한다. 그런데 그 기반이라는 것이 북유럽의 기반과 다르기 때문에 핀란드식 개혁도 쉽지 않지만 덴마크식도 쉽지 않은 것이다. 어쟀든 핀란드나 덴마크는 사회가 상당히 평등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 없이 교육만 건드려서 핀란드나 덴마크로 간다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한국 교육문제의 해법


김진우: 교육 문제의 근본은 결국 사회의 불평등 구조라고 한다면 우리 교육 문제의 해법은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정병오: 어려운 문제다. 우리 차원에서 직접적인 교육 문제는 아니지만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할 때 사회구조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 아이들이 명문대학을 나온다 한들 부의 세습이 없는 가운데 빈곤을 탈출하기가 쉽지 않다. 현재 복지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복지는 오대환 목사님 말씀처럼 국가에 대한 신뢰를 전제로 한다. 평등한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정직한 사회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큰 사회적 차원의 숙제가 하나 있고, 그 하위 차원에서 공교육을 강화하는 형태로 갈 것인가, 대안교육의 활성화로 갈 것인가 하는 고민이 필요하다. 핀란드와 덴마크 두 메시지를 다 잡아야 한다. 공교육을 강화하고 보완교육을 철저히 하면서, 또 다른 교육에 대한 근본적인 열정들을 열어주고 경쟁하고 영향을 받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아래 차원에서는 교육운동이 필요한데 나는 무엇보다 교사의 전문성 운동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 전문성은 수업기법의 차원을 넘어서 교사됨에 대한 것, 자신의 정체성과 교육실천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전문성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서는 풀뿌리 운동도 필요하지만 교사로 하여금 교육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학교 구조를 만드는 제도 개혁이 필요하다.


김진우: 북유럽 같은 평등한 사회조차 세계화 속에서 도전받고 흔들리고 있는 상황인데 한국이 이 흐름을 거슬러 평등화된 사회로 갈 수 있을 것인가?


정병오: 세계화를 무시할 수 없고, 미국과 중국의 영향도 같이 받아야 되는데 흐름을 거스르는 것이 어렵다고 보지만 한국사회가 갖고 있는 역동성이 있다. 민주화가 안 될 것 같은 상황에서도 변화가 이루어진 것을 보면 경제적 계급적 고착화가 되어 있는 상황도 한번 뒤집힐 수도 있지 않을까, 급진적으로 유럽처럼 복지사회 쪽으로 갈 수 있지 않을까 한다. 한국사회는 역동성이 있기 때문에 알 수 없는 사회다. 그런데 제도적인 틀은 한판 뒤집기가 가능하지만 의식은 어렵다. 학벌, 문을 숭상하는 것, 과도한 경쟁성, 정직하지 않은 것 등 이런 것들은 또 다른 차원의 긴 호흡의 운동이 필요한 것이다. 이 가운데서 기독교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교육과 종교


김진우: 교육과 종교의 관계도 중요한 주제다. 예를 들어 자유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하나?


정병오: 유럽에서 여러 흐름이 있는 것 같은데 개혁주의 아브라함 카이퍼 전통에 있어서는 영역주권이라 해서 하나님이 영역마다 주신 고유한 목적이 있다고 본다. 기독교학교의 경우는 신앙을 직접적으로 지도하기보다는 교과를 기독교적으로 해석해서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 교회는 교회대로 가정은 가정대로의 고유한 기능이 있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직접 예배를 드리지 않지만 교과를 어떻게 기독교적으로 가르칠 것인가 하는 관심이 있다. 이에 비해 루터파 전통에서는 약간은 분리주의적 접근을 하고 있다. 세상 나라와 하나님 나라가 따로 존재하면서 긴장 관계에 있다고 본다. 칼빈은 하나님나라의 상으로 세상나라를 변화시키는 것을 강조한다. 루터교에서는 그러므로 종교 과목을 따로 두고 성경을 별도로 가르치는 전통이 강했다. 지금은 신앙이 약화되어 다른 종교도 가르치거나 하는 방식이 되었는데 그것이 원래는 성경을 가르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슬람교도 들어오고 하는 종교다원적 상황이 되어서 종교과목의 기독교성이 약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김진우: 기독교교육의 맥락에서 볼 때 종교와 교육이 분리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한다. 교육에서 종교적 측면을 제거할 때 올바른 교육이 될 수 없다고 보는데 우리는 이와 같은 분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정병오: 종교는 삶에서 아주 중요한 가치다. 그것들이 교육에 포함될 때 교육이 풍성해진다. 유럽은 종교를 강요하지도 않지만 배제하지도 않는 가운데 기독교를 자연스럽게 포함시키는 데 비해 우리나라는 너무도 경직된 자세로 종교를 배제하려고 한다. 마치 종교가 악인 것처럼 하다 보니 교육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 비게 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물론 종교다원주의 상황에서 조심할 부분도 있지만 아예 다 빼버리는 식으로 하려다보니 그것이 가능하지도 않은데 빼려고 할 때 문제가 생긴다. 한국인은 상당히 종교적이고 분명히 실체로 있고, 삶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그러므로 이 문제는 미션스쿨뿐 아니라 공교육에서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하는 것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


김진우: 그룬트비히가 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치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것은 루터의 입장이라고 보아야 하나?


정병오: 콜은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그 둘의 차이가 그렇게 큰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유럽이라는 사회가 종교가 삶의 중심이었기 때문이다. 교회를 빼고 생각할 수 없는 사회 속에서 굳이 학교에서 성경을 안 가르쳐도 가정에서 가르친다는 점을 볼 때 그룬트비히는 가정과 학교의 기능을 분리해서 생각한 것 같고, 콜은 교육이 삶이라 했을 때 종교를 배제할 수 없다고 본 것 같다. 실제로 그룬트비히의 노래책에는 찬송가가 있고 성경 이야기를  중요하게 취급했다.


김진우: 유럽의 기독교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좀 헷갈렸다. 우리나라는 신앙적으로 뜨거운 것 같은데 의식과 문화는 못 따라가는 것 같고, 유럽은 문화적 수준은 높은데 신앙은 없는 것 같은 이 부조화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정병오: 원래부터 유럽 사람들은 우리처럼 새벽기도회, 수요예배, 철야예배 등과 같은 것은 없었고, 주일예배는 준수했었는데 주일 예배도 안 나가게 된 것이 불과 40-50년 전부터 갑자기 나타난 현상이다. 그 윗세대는 상상할 수 없는 현실이라 제대로 대처도 못하고 방치한 상태에서 지금 대세가 되었다. 지금은 교회는 잘 안나가지만 어릴 적 전통의 영향에 있는 사람이 남아 있는데 앞으로 또 30년 정도가 흐르면 자신이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약화될 것이다. 그렇게 될 때 앞으로도 유럽의 문화가 유지될 것인가는 알 수 없다. 지금의 유럽의 문화적 수준은 과거의 열매라고 보아야 한다. 한국은 반대다. 지금은 삶의 열매가 별로 없지만 새로운 싹이 많이 돋아나고 있다. 문화를 형성하는 것은 20-30년의 일이 아니고 수백년이 걸리는 것이고, 형성도 그렇고 쇠퇴도 그렇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탐방 이후


김진우: 참석한 선생님들은 무엇을 느꼈을 것인가?


정병오: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인데 그런 것들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들을 보면서 교육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느꼈던 것 같고 나는 선생님들이 좌절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오히려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회복을 경험했던 것 같다. 파커 팔머가 말한 어떤 영성의 회복이 있지 않았는가 싶다. 탐방 자체도 중요하지만 과정에서 같이 이야기하고 나누는 시간을 통해 많은 영적 회복이 있었던 것 같다.


김진우: 탐방과 관련하여 보완해야 할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정병오: 탐방을 하나의 프로그램화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 것인가 생각한다. 북유럽, 북미주, 일본 등의 몇 개의 코스를 마련하면 돈이 부담스럽긴 하지만 호응이 있지 않을까? 또 보완되어야 할 것은 한 번 가서 보는 것만 해도 중요하지만, 그 교육을 좀 깊게 탐구하기 위한 차원을 구분해서 접근이 필요한 것 같다. 기독교사대학원 이야기를 좀 했지만 그런 쪽의 아이디어도 영감이 왔다. 대학원을 한다고 할 경우 자연 속에서 한적한 곳에 자유대학과 같은 그런 식으로 대화하면서 공부하고 중간에 탐방을 하고 그런 식으로 하면 좋지 않을까? 주중에 교사교육을 한다고 하면 토요일 오후부터 저녁까지 하는 방식과 가족이 같이 와서 애들은 다른 사람이 봐 주면서 부부가 같이 듣게 하는 그런 방식도 좋을 것 같고, 방학 때 집중적으로 하는 것도 좋겠다. 어쨌든 삶을 나누면서 회복을 위한 그런 대학원이 필요하다. 한국적 상황에서 너무 지치고 힘들기 때문이다. 탐방만이 아니라 대학원 과정과 연결하는 형태를 모색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