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가 꿈꾸는 것은 비슷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자신의 삶의 주인을 예수님으로 고백하는 것에서 출발하여, 학교현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의 진리와 지혜를 배워가고, 자신에게 주어진 재능과 은사들을 잘 발휘하여 주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하나님의 원대한 뜻에 동참하는 교사가 되는 것입니다.
은어송초등학교 김기웅 선생님
복음으로 생명이 살아나는 교실
글 / 사진·김중훈
2012년 여름은 참 특별했습니다. 얼마나 날씨가 무더웠던지 이번 달 전기요금 고지서를 보며 다시 한 번 지난여름의 존재감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누구보다 뜨거운 여름을 보낸 선생님이 여기 한분 더 계십니다. 바로 김기웅 선생님입니다. 기독교사대회를 마치고 하루쯤은 쉬어야 하는데, 바로 시작된 것이 제자들과 함께 하는 디모데 캠프입니다. 그는 동료 선생님들과 함께 디모데 캠프를 준비하고, 헌신적으로 섬겼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자신도 모르게 아이들이 너무 귀여워 보여서 선생님이 되고자 했다고 합니다. 교대시절부터 기독교사단체에서 예비 기독교사로서 철저히 양육훈련을 받아왔습니다. 그리고 경력 있는 선배 기독교사들도 힘들다는 지역모임 개척을 동기들과 함께 일구어냈습니다. 그런데 그의 도전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예비교사를 위한 캠퍼스 개척과 제자양육까지 언제나 치열한 삶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좋은만남을 위해 인터뷰를 하는 날에도 지난해 함께 했던 학부모 모임에 초대되어 갈 준비를 하는 참으로 바쁜 선생님입니다.
후배 교사이지만 참으로 존경스럽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어떤 열정과 비전을 주셨을까요? 김기웅 선생님를 만나보았습니다.
선생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서울과 매우 가까운 시골이었던 파주시 심학산 아래 자리 잡은 동네에서 살았습니다. 지금은 ‘자유로’를 타고 오다보면, 찾아올 수 있는 출판단지 옆 동네인 곳인데, 당시에는 산을 넘어 초등학교를 다녔습니다. 제일 인상 깊었던 것은 산 정상에 오르면, 한강을 거슬러 올라 행주산성과 여의도 국회의사당과 63빌딩을 어슴푸레 보며, 가까운 특별시 서울을 막연히 동경했던 것 같습니다.
부모님은 평범한 농부로 지금까지 살고 계십니다. 친가, 외가 모두 대부분의 가족들이 신앙이 없었기에, 저의 신앙과 믿음은 가정 밖에서 형성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가정에서 형성된 것이 있습니다. 친가에서 종손(첫째아들의 첫째아들)이었기에, 사랑과 인정을 제일 많이 받았습니다. 늘 따뜻한 정서와 밝은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어렵지 않은 이유인 것 같습니다. 특히, 가정사정이 여의치 않아 고등학교 졸업 후 취업을 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께서는 저와 동생이 원했던 대학교를 다녀서 더 큰 꿈을 이루어가라는 말씀과 함께, 농사 이외의 일을 하셔서 그 비용을 감당해주신 것은 말 그대로 ‘어버이 은혜’였습니다.
묵묵히 교회를 다니시며 찬송가책을 읽으시던 할머니께서 저와 동생을 주님께 이끄셨습니다
저의 학창시절에 지대한 영향력을 준 것은 산남교회 중고등부였습니다. 작은 시골교회였기 때문에, 소수가 모였지만, 가족 같은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본격적으로 교회를 다니기 시작한 6학년 때에는 교회 형과 누나들의 환대해주는 모습 속에서, 기독교는 사랑과 정감 넘치는 공동체임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내성적이었던 성격의 변화 역시 교회 공동체의 사랑과 용납 속에서 적극적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저희 가정의 기독교 개척자는 할머니였습니다. 찬송가가 곡조 있는 기도라고 하던데, 할머니께서는 가사만 적혀있는 찬송가책을 나름대로의 곡조를 입혀서 성경처럼 읽으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던 우리 가문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으셨지만, 묵묵히 교회를 다니시며 찬송가책을 읽으시던 할머니께서 손자인 저와 동생을 주님께 이끄셨습니다.
진정한 믿음과 삶의 변화는 고등학교 2학년, 장신대 신학생으로써 우리 시골마을에 전도사님으로 오셨던 배철 전도사님과의 성경공부 모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말씀이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제가 가지고 있던 모든 가치관과 영혼을 바꾸어놓았습니다. 7~8명 남짓한 중고등부 모임이었지만, ‘한 사람’이 세상을 새롭게 하고, 많은 영혼을 주님께 돌아오게 할 것이라는 축복의 가르침은 여전히 저의 인생의 모토입니다.
어떤 계기로 교대를 진학하게 되었나요?
고등학교 3학년 시절 저는 경영이나 교육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특히 그 시절 저는 해맑은 아이들 모습을 너무 좋아했고, 또한 귀여워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교사라는 직업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사범대를 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대학교 진학상담을 하면서 초등학생을 가르치는 교육대학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담임선생님께서는 아이들을 좋아하는 저에게 인천교대에 원서를 쓸 것을 추천하셨습니다. 그래서 원서를 넣어보기로 하였습니다.
참으로 제겐 운명과 같은 일이 시작된 순간이기도 합니다. 원서접수를 하러 왔던 날부터 교사선교회는 저에게 ‘환영의 공동체’였습니다. 대학교 교문 입구부터 팔짱을 끼며 접수 창구로 끌려가면서는 이렇게 따뜻한 선배들이 섬겨주는 캠퍼스로 꼭 와야겠다고 생각했고, 면접날 면접요령과 점심 제공, 뒷주머니에 찔러주는 교통비를 받으면서는 잠시 열혈 이단집단(?)이라고 의심했으나, 3월 입학하기도 전에 예배에 초청받아 선교회의 교사들 및 선배들과 만남을 하면서는 이단의심이 사라졌습니다. 입학 이후 아침저녁 동아리방에서의 큐티와 기도 모임과 정기예배, 동기모임, 양육팀 등등 풍요로운 모임에 참석하면서는 주님 사랑이 충만한 공동체임을 확증하게 되었습니다. 대학교에 가서 반드시 100번 정도 미팅을 해보겠다는 대학생활의 목표를 접어두고, 저는 경건하게 변해가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캠퍼스 시절부터 기독교사단체와 함께 했습니다. 선생님께는 남다를 것 같은데 선생님께 기독교사단체는 어떤 존재였나요?
참 신앙의 길과 기독교사의 소명감이 배양되었던 인천교대 I-TEM, 복음과 선교가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온 몸으로 체험하며 배웠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때로는 아비처럼, 때로는 스승으로, 삶으로 가르치셨고, 그들은 제자라는 정체성으로 자신들의 삶을 선교의 도구로 드렸던 삶의 패턴 말입니다. 2학년이 되면서부터는 여느 선교단체 이상으로 전도와 양육, 훈련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한편으로는 교육현장에서 기독교사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시는 선생님들의 삶으로 도전받으며, 선배님들을 닮은 교사가 되겠다는 소망이 자연스럽게 생겼습니다. 제자를 특별히 ‘디모데’라는 애칭으로 부르면서, 학교에서 세워가는 하나님의 나라를 간접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디모데들과 선생님들이 함께 캠프로 모였을 때에는 그 소망은 뜨거워졌습니다.
대전지역으로 임용고사를 본 이유와 그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오늘날과 같이 교단의 슬픈 소식이지만…. 1999년 대규모 명예퇴직이 이루어지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당시 교사선교회에서는 전국적으로 활발하게 지역모임이 개척되고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인천교대 캠퍼스 간사로 섬기시던 김동현 선생님께서 4학년 지체들에게 임용시험을 통해 지역과 캠퍼스 개척할 수 있다고 도전을 주셨습니다. 복음의 불모지로 향하는 선배들처럼 전국의 많은 지역과 캠퍼스(교대, 사대)에서 하나님의 예비교사들이 세워지며, 부흥케 되는 일에 도전해보겠다는 강한 동기를 저 뿐만 아니라 몇몇 96학번 동기들에게도 강하게 주셨습니다. 현재 대전지역에서 함께 일하고 있는 위대한 워킹맘이자, 교사선교사인 조숙형, 조지혜 선생님이 바로 그와 같은 친구들이자, 존경하는 동역자입니다.
동기들과 함께 공주교대 개척을 하셨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대전지역에서 저희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신규교사로서 교육현장에 적응하면서, 대전지역의 초등 교사들의 주공급원인 공주교대를 개척하는 일이었습니다. 대학시절에 훈련받았던 캠퍼스 사역을 적용해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한 학기 만에 군대로 떠났고, 두 친구는 퇴근 후 자신들의 20대 청춘의 밤을 대전에서 공주로 달려가 후배들은 제자를 삼으며, 교육선교를 꿈꾸는 하나님의 공동체를 세워갔습니다. 때론 교통사고를 당하면서도 전혀 요동함 없이 ‘용사’처럼 굳게 일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때 함께 했던 캠퍼스 후배들은 역시 용사처럼 그리고 군사처럼 지금도 학교 현장에서 기독교사의 삶을 든든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군 제대 후, 이런 두 명의 열혈 교사들로 헌신의 토양 속에서 성장했던 공주교대에서 저는 좋은 공동체를 함께 이루어갈 수 있었습니다. 별로 잘하는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었지만, 대학생들과 함께 있는 것을 좋아하고, 주님께 인도하고 싶었던 마음으로 나아갔을 때, 조금씩 주님 앞으로 나아오는 친구들을 보면서 참 기뻤습니다.
학원복음화 사역에 대한 경험들과 앞으로 기대하는 것을 소개해주세요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에서부터 시작했던 캠퍼스 사역은 그 이후 서서히 학교 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도록 인도하셨습니다. ‘교실에서 이 일을 잘 해낼 수 있을까?’ ‘힘들지 않을까?’ 머뭇거리며 계산을 하고 있었던 교만한 저에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앞에, 말씀 앞에 순수하게 나아가는 아이들을 보게 하셨습니다.
가장 까칠하고 공격적인 아이가 저와 함께 조금씩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겪으면서, 교사선교회의 핵심 사역인 제자양육에 속도를 붙여주셨습니다. 때로는 예수님 모르는 아이들과 함께 인터넷 게임과 스포츠를 즐기면서 전도와 성경공부를 해나가고, 때로는 찬양, 워십 댄스, 성경 이야기를 즐기면서 진지하게 하나님을 영접하기도 했습니다. 복음의 생명력은 제자(디모데)들의 부모님과 형제자매, 다른 반 친구들도 불러일으켰습니다. 때로는 학교현장에 민원이나 어려움을 걱정하기도 했지만, 이를 생각지도 못하게 하는 하나님의 도움과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 세대가 참 진리와 행복 그리고 하나님께 나아가기를 원하는구나!’ 이었습니다.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던 요나가 마음을 고쳐먹고 참 진리와 계시를 선포했을 때, 니느웨 성읍 사람들이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하나님께 나아갔다는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이 세대와 아이들이 찾는 것이 바로 하나님임을 깨달았기에, 이 일은 멈출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입니다.
제자들과 함께 새로운 디모데 캠프
몇 해 전부터 교사선교회에서는 점점 어려워져가는 학원복음화 사역을 두고 한숨만 쉴 것이 아니라 함께 기도하고, 도전하자는 뜨거운 헌신자 선생님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얼마나 기쁘셨는지 오히려 예전의 전성기 때 보다 더 많은 부흥의 열매를 부어 주셨습니다. 전체적으로 모든 학교에서 예전보다 점점 학원복음화 사역이 어려워진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올해 여름 교사선교회 디모데 캠프에서는 약 900명 정도가 참가하는 참 놀라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특별히 올해는 전북, 대전, 충청도 지역의 선생님과 함께 제자양육에 참여하는 제자들을 위한 ‘중부권 디모데 캠프’는 역사적인 장소인 별무리마을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어린 유아에서부터 초중고 디모데 그리고 교사에 이르기까지 270여명이 함께 참여했습니다. 이를 위해 별무리학교에서 기숙사를 사용할 수 있도록 했고, 별무리마을 주민들은 제자들을 위해 자신의 방을 내주는 홈스테이 섬김으로 지원해 주셨습니다. 그야 말로 지역모임, 별무리마을, 별무리교회, 별무리학교까지 모든 역량을 아이들에게 집중하여 헌신적으로 섬기는 캠프였습니다. 제자들을 위해 교사, 교회, 학교 그리고 마을이 한 몸으로 연합하여 헌신적으로 섬기는 새로운 형태의 디모데 캠프였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더 헌신하고 싶은 분야가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우리 모두가 꿈꾸는 것은 비슷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자신의 삶의 주인을 예수님으로 고백하는 것에서 출발하여, 학교현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수업, 생활)을 통해 하나님의 진리와 지혜를 배워가고, 자신에게 주어진 재능과 은사들을 잘 발휘하여 주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하나님의 원대한 뜻에 동참하는 교사가 되는 것입니다.
복음으로 생명이 살아나는 일을 기독교사 본인의 교실에서 학생들 속에서 체험하는 일을 돕고 싶습니다. 아름다운 일을 해내는 두 가지 요소는 좋은 동기를 갖는 것과 동기를 잘 발휘해 갈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 교사들의 영성훈련, 교사양육 및 제자양육의 다양한 사례를 관통하는 핵심원리를 정리하는 동시에, 다양한 현장 상황에 맞게 ‘상황화’할 수 있는 매뉴얼도 구비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 속에서 경건습관이 형성되어 직접 하나님을 만나고, 자신들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여, 자신에게 주어진 재능과 은사로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일을 목회자와 선교사의 마음으로 감당하는 교사들을 세워가는 일입니다. 또한, 학교폭력, 양극화, 이기주의 등 교육 사회학적인 당면과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접근으로 ‘가정세우기’, ‘부모세우기’를 중요하게 보고 있습니다. 기독교 교육을 공부해보신 분들은 학생들을 믿음으로 키워내는 가정의 교육기능을 모두가 공감하는 영역입니다. 기독교사들이 연합해서, 가정의 무너진 부분들을 중보해야 합니다. 가정과 부모님의 회복과 변화는 직접적으로 학생들의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을 기독교사라면 잘 이해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30대 기독교사로서 기독교사단체와 좋은교사운동에 기대하는 것 또는 바라는 점을 말씀해주세요
우선 다양한 형태의 제자들 모임, 제자 지원 체제가 만들어지면 좋겠습니다. 교사들을 위한 지원체제와 연구모임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더더욱 우리의 제자들을 향해야 합니다. 우리의 교육력을 증명하는 것은 결국 아이들의 삶에 변화에 있습니다. 그들은 기독교사 교육력의 실체이자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초중고 시절을 겪어갈 때에, 지속적으로 그들의 삶에 변화를 주고, ‘힐링캠프’가 되어주는 일에 응집력과 단합력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전국 기독교사들이 가르쳤거나 가르치고 있는 제자들을 위해, 지역별 제자모임, 장래희망 직업군별 제자들 모임 등을 구축하여 ‘일년용 관계’, ‘담임용 관계’가 아닌 장기적인 멘토 역할을 해주는 것입니다. 이 일에 사명감을 갖고 있는 교사들을 중심으로 만들어 가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마지막으로 복음의 방향은 더 낮은 곳으로, 더 열악한 곳으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의 좋은교사운동을 통해 결집된 운동력과 리더쉽, 기독교사들이 좀 더 지방으로, 시골로, 해외로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흩어지는 것을 멸하자는 취지하에 지어간 바벨탑의 시행착오를 거울삼아서 흩어질 때에 비로소 더 강력하게 일어나는 복음의 능력으로 교육계에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 나라를 더불어 경험하고 싶습니다. 성장과 성취를 경험한 기독교사 세대가 개척지로 떠날 때에, 20대, 30대의 자라나는 젊은 기독교사들이 그 자리를 잘 계승해 나갈 것입니다.
언젠가부터 기독교사단체에서도 학원복음화 사역이 점점 어려워지고, ‘이제는 불가능해 보이는 것이 아닌 것인가?’라고 모두 걱정하고 있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하나님게서는 헌신자를 통해 그 어느 때보다 학원복음화의 부흥을 나타내시고 있다. 그 한가운데서 누구보다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김기웅 선생님, 그가 꿈꾸는 ‘복음으로 생명이 살아나는 교실’을 함께 꿈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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