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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오 칼럼

다시 생각하는 기독교와 민주주의(2017.11)

정병오 칼럼

 

다시 생각하는 기독교와 민주주의

 

 

 

성경은 특별한 정치 체계를 말하고 있지는 않다. 다만 하나님이 모든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세운 특별한 나라였던 이스라엘에게 요구한 통치의 원리나 체계는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만이 왕이고, 인간이 세운 정치 체제나 지도자는 하나님의 왕 되심을 잘 드러내고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법이 잘 지켜지도록 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왕은 그 누구보다 하나님의 법을 잘 지키는 본이 되어야 했고, 하나님의 법에 근거해 백성을 다스리는 제한된 통치자의 역할을 해야 했다.

 

종교개혁과 민주주의의 태동

종교개혁 이후 서구 정치 체제 가운데 민주주의의 기반을 닦았던 개혁자들은 이스라엘의 정치 체제를 일반적인 언어와 이성적인 합의의 틀로 만들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왕이든 대통령이든 수상이든 어떤 형태의 통치자라도 하나님을 대신한, 국민의 뜻 아래서 국민의 뜻을 잘 수행하는 자가 되게 했다. 이른바 국민주권론이다. 그리고 왕이든 국민이든 관계없이 모든 사람은 하나님이 정하신 법에 순복해야 했는데, 하나님의 법을 대신한 것이 하나님이 사람에게 심어 주신 자연법 같은 것이었다. 이른바 자연법 사상, 법치국가 이념이다. 또한 사람은 죄인이고 완벽할 수 없다는 성경의 인간론에 근거해서 할 수 있는 대로 한 사람이나 한 기관에 권력이 집중되지 못하도록 권력을 분산하고 상호 견제를 하게 했다. 이른바 권력분립론이다.

물론 서구의 민주주의 제도가 하나의 체계화된 사상에 근거해 세워진 제도는 아니다. 중세 이후 여러 정치사회적 역동 가운데서 하나씩 제도의 틀이 형성되었고, 나라마다 발전의 속도나 모양이 달랐다. 모든 민주주의 제도나 의식의 발달이 다 성경에 기반을 두고 발전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종교개혁이 개인의 신앙의 자유를 부르짖고 싸워서 열어 놓은 자유와 권리의 공간 속에 기타 모든 다른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자리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민주주의의 고비마다 개신교가 성경에 기반을 두어 천부인권사상이나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모든 개인이 가져야 하는 자유와 평등의 이념으로 민주주의 발전을 앞당기는데 기여한 것은 분명하다.

 

민주주의를 붙든 한국

서구에서 발달한 민주주의는 복음의 전파와 함께 세계 각 나라의 민주주의 확립에 큰 영향을 주었다. 특별히 미국과 미국의 민주주의는 19세기 말 백척간두의 위기에 있던 조선의 나아갈 길을 찾는 선각자들에게 큰 빛이 되었다. 그들은 더 이상 조선 왕조의 복귀를 꿈꾸지 않았고, 민주 공화국으로서 새로운 나라를 꿈꾸었다. 민주 공화국에 대한 꿈은 1919년 상해 임시정부의 정강에 그대로 반영이 되었고, 이후 대부분 독립 운동의 기본이자 방향이 되었다.

대한민국은 해방이 되었지만 분단과 전쟁으로 돌이킬 수 없는 비극 위에 두 국가의 형태로 대립하게 되었다. 더군다나 남한은 친일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해 분단과 친일파 득세라는 이중적인 역사의 왜곡을 안고 출발을 하게 되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남한은 비록 제도적 차원이지만 민주 공화국 체제로 출발했다는 것이다. 물론 민주 공화국 체제는 허울뿐이었고 친일청산 실패와 이승만의 독재로 이어지면서 역사적 비극은 계속 이어졌다. 그러나 북한이 친일청산과 토지개혁 위에 야심차게 출발했으나 결국 공산당 1당 독재와 김일성 1인 독재를 넘어 김일성 세습 왕조로 전락해 버린 현실을 생각해 볼 때 남한이 부족하지만 민주 공화국의 형태로 출발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민주 공화국의 틀이 있었기에 이승만 독재 체제하에서 4.19 혁명이 가능했고,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군부 독재 체제하에서도 민주화 운동이 가능했던 것이다.

 

한국 민주주의와 한국 기독교

한국 기독교는 개화기와 일제 강점기에 미국식 민주주의를 소개하고 이를 민족의 미래로 제시하며 확산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리고 해방 이후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를 도입하는데도 기여했다. 하지만 이후 이승만 독재 체제를 지지함으로 민주주의 발전에 걸림돌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박정희와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군사 독재 시절에는 다수의 교회가 독재 체제를 지지하고 그를 통한 이익을 차지하려는 태도를 취하였지만, 소수의 진보적인 기독교인들이 바탕이 되어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함으로 민주주의의 발전에 기여했다.

전두환 군부 독재가 종식된 후 노태우, 김영삼으로 이어지는 10년간의 보수적 민주주의 정부에서 완만하게 민주주의가 진행이 되었고, 김대중, 노무현으로 이어지는 진보적 민주주의 정부에서는 민주주의가 좀 더 급속하게 진행이 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 가운데 한국 기독교는 기독교윤리실천운동과 같은 기독시민운동을 필두로 해서 공명선거운동, 음란물퇴치운동 등의 영역에서 민주주의 발전에 긍정적으로 기여했다. 그리고 좋은교사운동이나 토지정의시민운동과 같은 기독전문인운동을 통해 각각의 분야에서 구체적으로 기여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독교 안에서 민주주의 발전을 퇴행시키는 흐름도 일어났다. 박정희, 전두환 군부 독재 시절에 정교분리라는 이름으로 대다수의 성도들을 정치에 무관심하게 하여 독재에 동조하게 했던 교회의 지도자들은 민주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자 민주화의 흐름에 저항하는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운동은 주로 북한과의 화해와 협력의 흐름에 반대하거나 경제민주화에 반대하는 흐름으로 이어지다가 최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는 탄핵에 반대하는 중심 세력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절망 속의 희망, 희망 속의 과제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러한 한국 교회 내의 흐름은 일부 지도자, 일부 연령대, 일부 지역에 국한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세력을 형성하고 목소리를 크게 내고 있어 밖으로 부각되고 있지만 실제로 그 세력은 그렇게 크지 않고 또 약화되어 가고 있다. 이에 반해 기독교와 민주주의의 올바른 관계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그에 맞게 행동하려는 흐름은 비록 조직화는 덜 되었지만 조금씩 두터워지고 있다.

물론 이들은 아직까진 조직화되지도 체계화되어 있지도 않다. 일부 교회 지도자들의 반민주적인 행태에 대해 동조할 수가 없어 지극히 상식적인 차원에서 탄핵 촛불에 참여하고 새로운 민주 정부 탄생을 위해 투표를 하기는 했지만, 이러한 자신의 행동에 대한 신학적인 정당성까지 고민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후 한국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이들에게 한국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한국 기독교와 기독교인이 해야 할 역할에 대해 성경에 근거한 올바른 신학과 행동 원리를 제시해 주는 작업이 매우 필요해 보인다.

 

한국 민주주의 성숙에 한국 기독교가 더 기여해야 한다

한국 기독교가 전반적으로 약화되고 있다. 그래서 이 흐름을 반전시키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일어나고 있다. 제한된 힘을 단지 기독교인의 숫자를 늘리는 일에만 쏟아부을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를 성숙시키는 일에 신경쓰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그래서 반민주 수구세력이라는 잘못된 이미지를 벗고 민주주의 발전에 제대로 기여한 종교로 자리를 잡는 것이 이후 선교의 교두보가 되지 않을까? 요즘 한국 사회의 흐름과 그 가운데 기독교의 역할을 생각하며 많이 하고 있는 고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