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화 산책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너는 그에게 반했지만, 그는 너에게 반하지 않았다면?
-여자들의 상상력과 남자의 심리


한병선

2월의 마지막 주 금요일 한낮. 두 명의 30살 넘은 처녀와 함께 이 영화를 보면서 끊임없이 박수와 웃음을 보냈다. 여성의 심리를 보며 ‘맞다, 맞아’라고 공감도 하고 혹은 ‘어떡해, 불쌍해서’를 연발하며 안타까워하기도 하면서 영화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를 보았다.
100% 할리우드 스타일의 해피엔딩이 주는 가벼움과 로맨스, 멜로가 뒤섞인, 깊이라고는 씨알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영화다. 딱 기분 전환용이고, 내년쯤 되면 케이블 TV에서 무지막지하게 재방송을 해 줄 그런 영화였다. 그런데도 우리의 안타까움과 노처녀들의 속을 시원하게 풀어 줄 수 있는 재미가 있고, 비록 현실이 가혹해도 그런대로 기분이 좋아지는 영화였다.

그 남자의 ‘진짜’ 속마음은 무엇인가?

이 영화에는 몇 명의 여자와 또 몇 명의 남자가 나온다. 남자와 사랑도 하고 싶고, 남자에게 사랑도 받고 싶지만, 남자 심리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어, 눈치 없이 매달리기만 해서 결국 남자들이 도망가고 싶게 하는, 정말 채이기만 하는 여자(지지 역)와 주변 친구들의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 영화의 대전제는 ‘과연 남자의 진정한 의도는 무엇인가’이다. 여자는 남자의 의도를 자기 식대로 받아들이고 주변의 여자들은 그 착각을 격려하고 확인시켜 주면서 여자 스스로 환상을 키우는 잘못된 방법은 늘 우리 곁에 있다는 전제에서 시작한다. 그런 그녀(지지)를 불쌍히 여기는 편한 남자 친구 알렉스는 그녀와 만나는 남자의 심리를 솔직하게 말해 준다. 진정한 남자의 심리는 며칠간 흥미 있게 만나는 여자와 정말 지속적으로 사랑하는 여자 사이에 절대적인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알려 준다. 여기서 중요 테마는 여자들의 착각과 상상력. 여자들끼리 서로 위로하면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상황들을 재밌게 나열하면서 여성의 자기 직시를 가장 중요한 큰 주제로 삼는다.

여자들은 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가?

지지는 예쁘고 귀여운 여자다. 그런데 외모는 귀엽지만 눈치가 없다. 사람들이 좋은 말로 표현하는 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그 속에 숨어 있는 뉘앙스를 발견하지 못한다. 그런 그녀가 상처받을까 봐 친구들은 위로해 주는데, 실제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 착각이 아닌 현실이다. 그녀에게 현실감을 준 사람은 알렉스였다. 그는 “좋아하는 여자가 생긴 남성이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여자에게 접근한다”고 조언해 주었다. 진짜 그녀에게 꽂힌 남자가 아니라면 헤어지는 데 시간이 걸릴 뿐이지, 결국 헤어질 사람이라 더 이상 만날 필요가 없다고 그녀 마음에 대못을 박았다.
그 말은 맞다. 그러나 여자들은 큰 상처를 받기 싫어서, 자존심과 자긍심에 상처를 받을까 그 사실을 부정하게 된다. ‘그가 내성적이라 그래’, ‘내가 잘해 주면 달라질 거야’, ‘조금은 나에게 관심 있어’, ‘이렇게 하는 것 보면 나에게 맘이 있는 거야’, ‘아주 좋아하지는 않지만 아주 아닌 것은 아닌 것 같아’ 등등으로 관계를 지속하지만 결국 남는 것은 별것 없다. 결혼까지 가진 않는다는 말이다. 결혼까지 간다 할지라도 지속적으로 행복하진 않다.
여자들은 자신을 정말 사랑해 주는 사람이 없는 현실은 자신의 존재감이 완전히 없어진 것으로 생각한다. 사실 여자들에겐 한 사람만 필요하지만, 그래도 나에게 매력이 있어야 그 한 남자도 날 좋아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날 사랑해 주는 남자가 없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 현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자신에 대한 실망감 때문에 좌절하기 때문이다. 정말 그러한가?

나에게 반하지 않은 남자에게 굳이 목맬 필요가 있을까?

자신이 관심 갖고 있는 남자가 자신에게 반하지 않았다고 해도 별로 슬퍼할 필요가 없다. 이것은 슬픈 일이지만 짝사랑이나 착각에 빠진 사랑은 우리에게 심한 혼란과 우울감을 준다. 실제 자신을 자신답게 만드는 것이 가장 필요하다. 그래야 어떠한 혼란이 있다 하더라도 자신의 존재감을 스스로 잃지 않을 수 있으니까…. 사실 사랑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존재감을 스스로 갖는 일일 것이다. 외로움 때문이라면 좋은 친구들을 만드는 것이 현명한 일이고, 일의 능력을 개발하는 것 역시 자존감을 높이는 일이다. 나에게 관심 없는 사람에게 목을 매는 것은 ‘돼지에게 진주 목걸이’, ‘초딩에게 철학을 논하는 것’처럼 자신의 가치를 절하시키는 일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후회하지 않은 일일 것 같다. 사랑하고 싶은 것과 결혼하고 싶은 것은 별개의 일이다. 내가 사랑에 목을 매는지 결혼에 목을 매는지 알아야 한다. 결혼에 목을 매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다. 결혼에 맞춰서 사람도 고르고 사랑도 하면서 결혼 후의 삶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사랑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될 일이다.
결혼 후에도 계속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때는 상대를 위해 뭘 해 주려 하기보다 상대가 날 위해 뭘 해 주길 바라기 때문이다. 자꾸 상대를 나의 기준에 맞게 맞추려고 하기 때문이다. 노력하지 않고 지속적인 사랑은 없다. 결혼이 사랑을 담보해 주지 않는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상대의 심리를 알아서 머리싸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잠깐의 감정적 사랑에 목을 매서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지 말고 진정으로 사랑하려는 마음을 먹는 것, 그것이 당신이 지속적으로 사랑할 수 있는 근본이 되는 것이다.

-------------------------------------------------<좋은교사 2009년 4월호>에서 가져옴.

한병선
IVF 간사를 역임했으며 현재는 '한병선의 영상 만들기'를 운영하면서 여러 기독 운동을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