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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오 칼럼

세월의 절기, 신앙교육의 계기(2016.2)

정병오 칼럼

세월의 절기, 신앙교육의 계기

 

 

 


 

새해 첫 날 학교에서 뭐하고 있지?

5~6년 전 즈음부터 우리 가족이 새해를 맞으며 하는 연례행사가 있다. 송구영신 예배를 드린 후 맞는 새해 첫 날 아침은 충분히 늦잠을 자고 아침과 점심을 겸하여 먹는다. 그리고 각자 새해 계획을 세우고 그 내용을 서로 나눈다. 그 다음에는 차를 타고 아이들의 학교를 차례로 방문한다. 학교에 도착하면 운동장이나 캠퍼스를 한 바퀴 둘러본 후 학교와 아이를 위해 합심해서 기도를 한다. 처음에 아이들은 추운 날씨에 썰렁한 학교의 운동장과 캠퍼스를 방문하는 것을 싫어하고 그곳에서 기도하는 것을 부끄러워하기도 했지만, 몇 년 반복되면서 이제는 당연한 가정의 문화로 자리를 잡았다.
올해는 고2로 올라가는 막내 아들의 고등학교를 들른 후 첫째와 둘째, 셋째 아이가 재학 중인 대학 캠퍼스들을 방문했다. 다행히 대학의 경우 학생회관이 열려있어서 아이들이 활동하는 동아리 방에서 기도도 하고 찬양도 마음껏 하고 짜장면까지 시켜 먹을 수 있었다. 특별히 캠퍼스를 위해 기도할 때는 우리 아이들이 소속되어 활동하고 있는 선교단체(우리 집 큰 아이는 SFC, 둘째 아이는 IVF, 셋째는 JOY 소속이다)를 포함한 캠퍼스 선교단체들이 복음전도와 하나님 나라 운동을 더 잘 감당하도록 기도했다. 아울러 대학 내 기독 교수들과 학생들이 신앙과 기독교세계관에 기반한 학문과 생활을 잘 감당하여 캠퍼스 내에서 그리스도의 향기와 주권을 드러낼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영성이 없어서 기도합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소위 말하는 ‘땅 밟기 기도’ 류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이 자체가 잘못되어서라기보다는 개인적이고 고백적이며 영적 비밀에 속해야 할 일을 과도하게 보편화하고 집단화하며 신학화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본질은 사라진 채 종교 의례화되거나 형식화되고 미신적 요소까지 포함될 소지가 많아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개인적 차원에서 나는 어딜 가나 먼저 기도를 하고, 어떤 상황에서든 그 상황을 붙들고 기도를 한다. 학교에 출근을 하면 교문을 들어설 때 학교를 축복하고, 교무실 내 자리에 앉으면 하루 일정을 위해 기도하고, 수업하기 위해 복도를 걸어가면서 기도하고, 종례를 마친 후 교무실로 돌아와서도 기도를 한다. 새롭게 한 학년을 맡으면 빈 교실에 들어가 내가 만날 아이들을 위해, 그 공간에서 일어날 많은 일들을 놓고 기도를 한다. 수업을 준비하다가 수업 구상이 잘 안 될 때는 교과서에 손을 얹고 지혜를 구하는 기도를 하기도 하고, 머리가 아프고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때는 운동장을 한 바퀴 돌면서 기도를 하기도 한다.
이렇게 내가 무시로 기도하는 것은 내게 무슨 특별한 영성이 있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내게 아무런 영성이 없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나의 무력함과 무지를, 내 인격과 지혜의 한계를 날마다 수시로 느끼기 때문이다. 내 인격적 감화력으로는 그 어떤 아이도 변화시킬 수 없으며, 오히려 아이들에게 상처 줄 수밖에 없음을 날마다 경험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남들이 보기에는 마치 주문을 외우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나로서는 그렇게 주님을 찾고 의지하지 않을 수 없기에 나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기도한다.

 

학교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훈련하
내가 새해 첫 날 아이들의 학교를 순회하며 그곳에서 기도로 한 해를 시작하는 것은 기도에 대한 나의 태도와 더불어 몇 가지 교육적 목적이 덧붙여진 것이다. 그 중 하나는 하루 중 제일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교야말로 자신들의 신앙이 드러나야 하는 곳이고, 가장 치열한 영적 싸움의 현장임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믿음 생활을 하면 할수록 결국 우리의 믿음이 드러나야 할 곳은 교회가 아닌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터전인 가정과 직장임을 절감한다. 사실 요즘 세상에서 자녀들에게 온전한 교회생활을 하도록 하는 것도 결코 쉽지는 않지만 이를 훈련할 수 있는 종교적인 의례나 훈련 프로그램 등이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가능하다. 가정에서의 믿음 훈련은 자녀들에게 나의 이중적이고 가식적인 모습이 다 드러나기 때문에 교회에서의 믿음 훈련보다 훨씬 어렵다. 그래도 어찌되었든 부모가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할 수 있기 때문에 ‘가정기도회’를 통해 중심을 잡고 자녀와 진솔한 대화, 인격적인 본을 보임을 통해 길을 열어갈 수는 있다.
하지만 자녀들이 학교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도록 하는 것은 어떻게 도울 것인가? 부모가 아이의 학교 생활을 일일이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녀가 어떤 마음과 태도로 공부를 하는지, 학급 내 연약한 친구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학교 내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갈등이나 불의한 상황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처하는지 등에 대해 신앙적 지도를 하는 것은 쉽지않다. 물론 이러한 부분에서도 제일 중요한 것은 ‘가정기도회’와 ‘가족대화’ 가운데서 자연스런 이야기와 기도를 통해 풀어가는 것이다.
또한 특별한 계기가 있을 때마다 아이들로 하여금 자신이 매일 생활하는 학교야말로 자신의 믿음이 드러나야 하는 곳이라는 것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학교의 모든 생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꼭 환기시켜 주어야 한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매해 지키는 유월절을 포함한 절기를 통해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심어주었듯이 말이다.

 

은혜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다음으로 내가 새해 첫날 ‘학교 순회 기도’를 통해 아이들에게 심어주고 싶었던 것은 우리의 모든 삶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의 은혜와 도우심만을 바라보는 것의 중요성이다. 살아갈수록, 나이가 들수록 뼈저리게 느끼고 고백하게 되는 것은 인생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않으면 그 모든 수고와 애씀이 다 헛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큰일에서부터 사소한 일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에게 아뢰고 그분의 도우심을 구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늘 고백하게 된다. 그리고 내 삶에서 일어나는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모든 것을 하나님께 아뢰고 그분의 뜻을 구하며 살아갈 때만 참 평안과 안식을 누릴 수 있음을 절감한다.
아이들이 무엇을 느끼며, 얼마나 절실하게 느끼는지 다 알지 못하지만, 최소한 나로서는 아이들이 ‘학교 순회 기도’를 통해 기도가 삶과 분리된 종교의 영역이 아니라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임을 깨닫게 해주고 싶었다. 기도라는 것은 하나의 형식이 아니라 인간의 그 어떤 수고와 노력을 뛰어넘는 삶의 능력임임을 깨닫게 해주고 싶었다. 무엇보다 기도라는 것이 다른 모든 것을 다한 후에 남는 시간에 그냥 한 번 해 보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에 우선해서 가장 중요하게 해야 할 것임을 말해주고 싶었다.

 

부모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아이들이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노라면 삶의 각 시기마다 자기 나름의 아픔과 위기를 거치며 자라가는 것이 느껴진다. 그러한 시기마다 자기 자신에게 주어진 문제와 씨름하면서 하나님을 만나고 더 깊이 알아가면 좋겠는데, 꼭 그렇게 되지 않는 경우도 많이 있다. 그러기에 부모로서는 아이들의 모든 성장과정 속에서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신앙이 자라도록 자극해주고 격려해줄 수 있는 다양한 장치를 마련해주기에 늘 힘써야 한다.
물론 이러한 장치들은 외부의 좋은 프로그램에서 구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인격을 통해서 흘러나와야 한다. 자녀와 끊임없이 씨름하며 맺어가야 할 신뢰의 관계 형태이기 때문에 결코 쉽지 않다. 그렇지만 이 부분에 있어서도 우리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면서 우리의 한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지혜와 수고로써 다양하게 시도해 볼 일이다. 그분이 주실 열매를 믿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