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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오 칼럼

너무 바빠서 묵상합니다(2018.01) 정병오 칼럼 너무 바빠서 묵상합니다 감사, 그리고 변명 매일 아침 말씀 묵상한 내용을 A4 1면 내외로 정리해서 페이스북 등 온라인에 공유한 지 1년이 다 되어 간다. 2017년 7월호 칼럼에 쓴 것처럼 시작은 가족 톡방에 올려 아이들이 읽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이왕 정리한 내용이어서 여기저기 나누다 보니 지금은 상당히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 있다. 나의 자유로 묵상 글을 나누기 시작한 것이고 반드시 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니, ‘주님이 깨닫게 해 주시는 말씀이 없으면 언제든 그만두겠습니다.’라는 기도를 늘 드리고 있지만 지금까지는 주님이 깨닫게 해 주시는 말씀이 있어 감사할 따름이다. 사실, 이 칼럼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는 이 글을 읽기 전까지 내가 묵상 글을 매일 아침 온라인에 .. 더보기
501주년을 기다리며(2017.12) 정병오 칼럼 501주년을 기다리며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정확하게 10년 전, 2007년의 일이다. 1907년에 있었던 평양 대부흥 운동 100주년을 맞이하여 한국 교회는 그때의 부흥을 다시 재현하기 위해 온 힘을 쏟았다. 각종 학술 대회를 준비하고 엄청난 예산을 쏟아 대규모 집회를 했지만 100년 전의 부흥은 재현되지 않았다. 오히려 한국 교회의 수적인 감소와 영적·윤리적인 영향력의 축소 현상이 가속화될 뿐이었다. 돌이켜 생각하면 어떤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난 지 100년이 되었다고 해서 그와 유사한 사건이 지금 재현되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더군다나 기독교는 직선적 역사관을 믿기에 어떤 일이 주기적으로 반복된다고 생각하지 않을 뿐 아니라 부흥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 더보기
다시 생각하는 기독교와 민주주의(2017.11) 정병오 칼럼 다시 생각하는 기독교와 민주주의 성경은 특별한 정치 체계를 말하고 있지는 않다. 다만 하나님이 모든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세운 특별한 나라였던 이스라엘에게 요구한 통치의 원리나 체계는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만이 왕이고, 인간이 세운 정치 체제나 지도자는 하나님의 왕 되심을 잘 드러내고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법이 잘 지켜지도록 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왕은 그 누구보다 하나님의 법을 잘 지키는 본이 되어야 했고, 하나님의 법에 근거해 백성을 다스리는 제한된 통치자의 역할을 해야 했다. 종교개혁과 민주주의의 태동 종교개혁 이후 서구 정치 체제 가운데 민주주의의 기반을 닦았던 개혁자들은 이스라엘의 정치 체제를 일반적인 언어와 이성적인 합의의 틀로 만들려.. 더보기
위기의 교회, 그 소망의 근거는?(2017.10) 정병오 칼럼 위기의 교회, 그 소망의 근거는? 서신서를 읽다 보면 초대 교회의 상황이 그려진다. 그런데 초대 교회의 상황이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듯이 그렇게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라서 우리를 당혹케 한다. 그냥 조금 문제가 있는 정도가 아니라 복음의 뿌리부터 흔들리는 위태한 상황에 놓여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다른 복음, 다른 교훈 갈라디아서를 보면 갈라디아 교회에 침투하여 ‘다른 복음’을 전하던 이들이 할례나 절기 등 율법의 규례를 지킬 것을 주장했고, 다수의 갈라디아 교인들이 여기에 동조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해 바울은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부정하는 것이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성령의 지배를 받는 길이 아니며, 결국 육체의 소욕을 따르는 길임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 더보기
물질에 빚진 자를 사랑에 빚진 자로(2017.09) 정병오 칼럼 물질에 빚진 자를 사랑에 빚진 자로 고금리 이자 갚을 돈으로 원금까지 십여 년이 넘은 것 같다. 교회 내 한 가정과 이야기를 하다가 그 가정이 많은 빚을 지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빚 가운데는 은행 대출 외에 카드 현금서비스 대출도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은행 대출은 이자가 낮아 그나마 괜찮았는데 카드빚은 이자가 높아 빚이 늘어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늘어나는 빚을 막을 수가 없어 절망감에 눌려 있었다. 누군가가 카드빚을 은행 대출로 바꾸어 주기만 하면 카드 이자 내던 돈으로 갚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 가정이 ‘누군가’가 되어주자고 생각했다. 마침 목돈이 있어서 그 가정의 카드빚을 다 갚아주었다. 대신 그 금액에 해당되는 적금 통장을 내 이름으로 개설하고 그 가정에.. 더보기
갈라디아서 50번 읽기(2017.08) 정병오 칼럼 “갈라디아서 50번 읽기” “갈라디아서 50번 읽기” 페이스북에 올라온 글을 읽다가 김기현 목사님(부산 로고스교회)이 올린 이 제목에 내 눈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내용을 보니 갈라디아서를 7, 8월 두 달 동안 하루에 한 번 꼴로 읽어서 총 50번 이상을 읽자고 교인들에게 제안한 내용이었다. 왜 하필이면 갈라디아서일까? 목사님이 특별한 설명을 해놓지는 않았는데, 아마도 《매일성경》 QT 7월 본문이 두 주 정도 갈라디아서였기 때문이지 않을까 짐작했다. 빌립보서 반복 읽기의 추억 30년 전 군 복무를 할 때가 생각났다. 훈련병에서 이등병으로 이어지면서 고된 훈련과 폭압적인 내무반 생활이 계속되었다. 내게 주어진 유일한 숨통은 매일 밤 2시간씩 서는 경계 근무 시간에 밤하늘 별을 보며 기도했던.. 더보기
다시 말씀 묵상의 바다에 빠지다(2017.07) 정병오 칼럼 다시 말씀 묵상의 바다에 빠지다 말씀 묵상을 글로 정리해 나누기 시작 올 3월부터 매일 아침 말씀 묵상한 것을 글로 정리해서 가족 채팅방과 내가 소속된 지역모임인 기윤실 강남모임 단체 채팅방, 페이스북과 교회 홈페이지 등에 올리고 있다. 말씀 묵상한 것을 글로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가족들의 생애 주기가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였다. 아이들이 자라서 청년 대학생이 되고 막내도 고3이 되니 가족기도회 시간을 확보하기가 어려워졌다. 아이들의 개인 일정이 다 달라지기도 했고 무엇보다 내 나이가 50을 훌쩍 넘기다보니 저녁 식사 후 쏟아지는 잠을 억제하지 못하고 그냥 쓰러져 잠드는 경우가 많아졌다. 현실적으로 가족기도회는 주 1회, 주일 저녁에 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사실 아이들이.. 더보기
사람 노릇, 어른 노릇(2017.06) 정병오 칼럼 사람 노릇, 어른 노릇 몇 주 전 이만열 교수님이 내가 출석하는 교회에 오셔서 오전 예배 설교를 하시고, 오후 모임 특강을 하셨다. 올해 한국 나이로 80세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의식은 젊은이들보다 더 날카로웠고, 겸손과 소탈함이 묻어나오는 그의 태도는 노인의 티를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해직교수, 투사가 아닌 신앙인을 만나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대학 1학년 재학 중이던 1984년 2학기였다. 그는 1980년 7월 전두환 군사 정권에 의해 강제로 해직되었다가 만 4년 만인 1984년 9월에 복직되었다고 했다. 당시 삼엄한 군부독재의 현실을 조금씩 피부로 느껴가던 대학 1학년의 입장에서 ‘해직교수’는 범인이 접근할 수 없는 강인한 의지를 가진 투사일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 더보기
가지 않을 수 없는 길(2017.5) 정병오 칼럼 가지 않을 수 없는 길 기윤실, 모태신앙(?) 지난 3월, 창립 30주년을 기념하는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하 기윤실) 총회에서 공동대표를 맡게 되었다. 내가 처음 기윤실과 인연을 맺은 것이 기윤실 창립의 맹아 역할을 했던 서울대 교수 성경공부 시절부터였으니 나와 기윤실의 관계는 일종의 모태신앙(?)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내가 대학 2학년에 재학 중이던 1985년 무렵부터 서울대 교수 성경공부 모임이 시작되었는데 이 모임에서 학교 복음화를 위해 학생 선교단체들을 많이 도와주고 있었다. 1986년 즈음 내가 선교단체 대표를 하면서 기독교연합 행사 관계로 교수님들 성경공부 모임을 찾아갔을 때 손봉호 교수님의 인도로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산상수훈 강해》를 열심히 공부하던 모습이 지금도 기억.. 더보기
탄핵 이후,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2017.4) 정병오 칼럼 탄핵 이후,우리는무엇을 할 것인가?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책소추안을 인용하여 박 대통령은 대통령 지위를 잃고 자연인의 신분이 되었다. 우리 역사상 대통령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중도에 그만 둔 경우는 이승만, 박정희, 최규하 이렇게 3명이 있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자신의 하야를 주장하는 시위대에게 총격을 가해 수백 명의 희생자를 낸 이후에 물러났다. 박정희 대통령은 자신의 심복에게 총에 맞아 죽음으로 물러났다. 최규하 대통령은 전두환 쿠데타 세력에 의해 강제적으로 물러났다. 즉 모두가 물리적인 폭력을 가하거나 당함으로 물러난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절차에 따라 어떠한 물리적 폭력 없이 물러났다. 본의 아니게 한국 민주주의를 한 단계 성숙시키는 주역이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