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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종료/정병오 칼럼

교과서 단상(2014.04)

좋은교사 2014. 6. 5. 13:51

정병오 칼럼

교과서 단상

 

 

선생님, 1학년 담임이니까 오후에 신입생 예비 소집 때 아이들 지도 부탁해요.”

7년 만의 복직, 모든 것이 낯선 상황에서 업무분장일에 첫 출근을 했는데, 1학년 담임에 1학년 기획 업무가 주어졌다. 하루라도 빨리 학교에 적응해야 하는 입장에서 담임을 맡는 것이 가장 빠른 적응 방법이라 생각하고 있었고, 모든 것이 새로운 내 입장에서 처음 중학교 생활을 시작하는 1학년을 맡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기에 감사하게 받아들였다.

신입생 예비 소집일에 입학식 준비를 위한 여러 가지 전달 사항을 제외하고 가장 중요한 업무는 교과서를 나눠주는 일이었다. 이전보다 훨씬 더 두터워지고 종이 질도 좋아진 교과서를 나눠주다 보니 교과서와 관련된 어릴 적 추억들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교과서 읽기의 즐거움

교과서와 관련해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매 학년 새 교과서를 받을 때마다 책 겉표지를 싸주시던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전형적인 경상도 사나이에다 지극히 내성적이었던 아버지는 평소에 말이 거의 없는 편이었다. 자녀들의 생활에 관여하는 일도 거의 없었다. 그런 아버지가 새 학년 교과서를 받을 즈음 어디서 구해 오셨는지 책 겉표지를 쌀 종이를 가지고 와서 네 자녀의 책을 싸기 시작했다. 종이가 귀했던 그 시절, 아마도 아버지는 새 학년 새 교과서가 나오기 몇 달 전부터 네 자녀의 책 겉표지에 적절한, 시멘트 부대로 사용되었던 황토색 종이라든가 아니면 지난 해 달력들을 모았을 것이다. 당신이 충분한 학교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자녀들은 어찌하든지 교육을 시키고자 하는 열의가 강했던 아버지에게 자녀들의 새 책 겉표지를 싸는 작업은 아버지 나름의 자녀 교육에 대한 강한 열정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아버지가 정성껏 겉표지를 싼 교과서를 수도 없이 읽었다. 긴긴 방학 기간에도 그랬고, 학기 중에도 학교 마치고 집에 오면 할 일이 없어서 교과서를 읽었다. 물론 친구들과 밖에 나가 노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렇게 활동적이지 않았던지라 주로 집에서 지내는 경우가 많았다. 집에는 다른 읽을 책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교과서를 읽는 것은 나의 주요한 낙이었다. 내 교과서를 워낙 많이 읽어 재미가 없어지면 누나 혹은 동생의 교과서를 빼서 읽기도 했다.

교과서 읽기는 심심함을 해소해 주는 중요한 수단임과 동시에 어머니를 향한 내가 공부를 하고 있다는 과시의 수단이기도 했다. 어머니는 생전 나에게 공부하라는 소리를 한 적이 없었지만, 내가 공부를 하고 있으면 어머니께서 좋아한다는 것을 어린 시절에도 눈치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당시 공부라는 것은 선생님이 내 준 숙제를 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교과서를 소리 내어 읽는 것, 그 이상의 방법을 알지 못했다. 정말이지 수학을 제외한 모든 과목 교과서는 이렇게 소리 내어 읽는 것으로 공부했던 것 같다. 돌아보면 지극히 단순한 방법이었지만 당시 어린 내가 생각할 수 있었던 유일한 공부 방법이었다.

 

교과서를 넘어서

교과서에 대한 나의 생각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대학에 진학하면서부터였다. 일단 대학에는 교과서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과목에 따라서는 주교재를 선택하는 과목이 있긴 했지만 대부분의 과목은 그야말로 여러 권의 참고 도서만 존재할 뿐이었다. 그리고 한 권의 책을 여러 번 읽어서 내용을 숙달하는 것보다 내가 공부하고자 하는 주제와 관련된 여러 권의 책을 중첩해서 읽으며 다양한 관점을 접하고, 그 내용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공부하는 것이 참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교직에 나와서는 과도한 교과서 중심주의가 한국 교육의 큰 병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교과서가 마치 일점일획의 오류도 없는 경전 취급을 받고, 교사는 교과서에 있는 내용만 가르쳐야 하고, 학생은 교과서에 있는 것만 유일한 진리처럼 생각하게 만드는 이 체제는 교사의 자율성과 전문성을 가로막고, 수업의 생명력을 죽이는 독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 교과만이라도 특히 내가 한 학년을 다 가르치게 될 때에는 교과서를 고의적으로 무시하려고 노력을 했다. 교과서가 아닌 교육과정을 깊이 들여다보고 그에 근거해서 교과서에 있는 내용도 하나의 자료로 생각하고 가급적 교육과정 주제와 관련된 여러 다양한 자료들을 아이들에게 읽히고 생각하고 토론하는 방식으로 주로 수업을 진행했다. 그래서 때로 아이들에게 왜 교과서는 안 보냐는 항의를 듣기도 했지만, 교과서가 가진 독점적 지위를 상대화시키는 것은 이 시대 교사가 해야 할 매우 중요한 태도라는 생각을 견지했다.

 

그래도 이건 아니다

그런데 교과서에 과도하게 얽매여 있는 왜곡된 교실 수업의 현실과는 별도로, 아이들이 교과서를 함부로 다루는 태도들도 눈에 띄기 시작했다. 교과서에 겉표지를 싸서 책을 보호하던 문화가 사라진 지 정말 오래되었고, 책을 함부로 다뤄 걸레처럼 너덜거리게 만드는 경우도 많았다. 교과서에 낙서를 하는 것도 도가 지나쳐 연습장이나 낙서장 수준으로 만들기도 한다. 책을 잘 보관하는 태도 또한 사라져서 책을 잘 가지고 다니지 않을 뿐 아니라 이름도 써놓지 않아 잃어버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공부할 때도 교과서를 기본적으로 충실하게 읽고 내용을 파악하는 데서 출발하지 않고, 참고서의 요약본이나 문제집에 매달리기도 한다.

이러한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교과서가 절대 진리가 아니라 하나의 중요한 참고도서임을 교육해야 하지만, 동시에 이 중요한 참고 도서를 소중하게 다루고 그 내용을 충실히 읽고 파악하는 것도 교육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과도한 교과서 중심주의도 극복해야 하지만, 기본적인 학습도구인 교과서를 소중하게 다루지 않고 제대로 활용하지 않는 자세 역시 극복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본균형을 다시 새기며

7년 만에 다시 아이들 앞에 서면서 기본균형에 대해 생각한다. 이를 교과서에 대한 아이들의 자세에서부터 시작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무거운 교과서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을 보며, 아이들이 가르쳐준 어머니 휴대 전화로 다음과 같은 내용의 문자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1학년 2반 담임을 맡은 정병오입니다. 어제 아이들에게 교과서를 나누어주면서 어린 시절 매 해 교과서를 받을 때마다 지난 해 달력으로 정성껏 책  표지를 싸 주시던 아버지를 떠올렸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교과서를 소중히 여기지 않고 심지어 이름도 쓰지 않은 채 아무렇게나 내팽개치는 경우가 많지만, 교과서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 교육의 첫 시작인 것 같습니다. 우선 교과서에 예쁘게 이름을 쓰게 하고 개학 전에 대충이라도 한 번 훑어보도록 지도해 주십시오. 

 

그리고 비슷한 내용의 문자를 아이들에게도 보냈다. 아이들이 나의 생각을 얼마나 알아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학부모들은 비슷한 세대를 보낸 분들이기에 나의 생각을 좀 더 이해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