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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종료/정병오 칼럼

교사의 책꽂이(2014.6)

좋은교사 2014. 7. 9. 09:33

정병오 칼럼

교사의 책꽂이

 

 

참고서와 문제집이 다야?

대학 졸업 후 갓 교직에 나왔을 때 모든 것이 낯설었지만 그 중 내가 제일 이해하기 힘들었던 것은 교무실 선생님들의 책꽂이에 참고서와 문제집만 가득 꽂혀있다는 사실이었다. 참고서라는 게 아무리 뛰어난 것이라도 교과서 내용을 잘 요약하거나 일부 좀 더 자세한 부연 설명을 하고 있는 것이고, 문제집이라는 것은 교과서 내용을 잘 이해하고 암기했는지를 확인하는 다양한 문제들을 묶어놓은 책이라는 것이 내가 경험했고 알고 있던 상식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참고서와 문제집은 암기 위주 입시교육의 현실을 가장 잘 보여주는 상징이도 했다.

입시 위주의 교육 현실 한 가운데 살아가는 교사가 당장 이를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이지만, 참고서나 문제집을 활용할 수는 있다 할지라도 이를 가지고 교사의 책꽂이를 완전히 채울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좀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교사의 책꽂이를 가득 채우고 있는 참고서와 문제집은 교사의 직무는 교과서 내용을 잘 요약해서 가르치고, 그것을 아이들이 잘 이해하고 외우고 있는지 평가하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아 몹시 불편했다. 비록 교사의 처지가 입시교육의 거대한 물결 가운데에서 이를 직접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처지에 있다 할지라도 이를 최소화하고 교육의 본질을 살리려는 교사의 자존심을 건 싸움이 있어야 할 텐데, 이 현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교사의 정체성이 담긴 책꽂이에 도전하다

물론 이러한 표현을 동료들 앞에서 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 내가 할 수 있는 소극적인 저항 혹은 약간의 퍼포먼스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선 여러 출판사에서 가지고 온 참고서와 문제집을 다 재활용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리고 대학 시절 보던 전공 책 가운데 교육과정과 관련된 내용을 담은 책들을 학교에 가져와 책꽂이에 꽂기 시작했다. 아울러 틈나는 대로 내가 가르쳐야 하는 해당 학년의 교육과정과 교과서를 연구하는 가운데, 각 단원 주제와 관련해 생각의 깊이와 폭을 넓히는데 도움이 되는 자료, 각 단원과 관련해 아이들이 읽거나 보면 좋을 자료들을 찾아 부지런히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요즘처럼 인터넷이 발달하기 전인지라 대형 서점, 도서관, 여러 단체들로 직접 발품을 팔아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가르쳐야 할 교육과정과 관련해 나의 사고를 틔워주는 좋은 자료나 아이들과 함께 볼 좋은 영상 자료를 찾아 구입했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하나씩 자료를 모으다 보니 한 분야에 대한 어느 정도의 깊이와 폭의 지식을 갖추고 있으면서 동시에 그것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전달하는 자로서의 교사 정체성을 어느 정도 드러내는 책꽂이가 갖추어져가고 있었다. 한 단의 책꽂이로는 모자라 두 단 책꽂이로 교체했고, 교무실 내에서 여러 다른 선생님들이 지나다니며 내 책꽂이에 꽂혀있는 책의 변화에 관심을 가질 정도로 명물이 되었다. 어떤 분들은 내 책꽂이에서 책을 빌려 읽기도 했다.

 

교사의 책꽂이와 업무공간은 어떻게 달라야 하는가?

교사가 하는 일이 학자가 하는 일과 다르기에 교사의 책꽂이나 업무 공간이 최신 논문들과 단행본들로 빼곡한 학자들의 책꽂이나 연구실과 같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교사를 교과서 중심 지식의 단순 전달자이자 훈련가로 규정하는 왜곡된 인식을 그대로 수용하는 듯한 참고서와 문제집 위주의 책꽂이와 현행 업무 공간을 거부할 필요는 있다. 교육과정 전문가이자 삶 속에 살아 움직이는 가르침과 배움을 만들어내는 교육전문가로서의 교사정체성을 잘 드러내는 책꽂이와 업무공간에 대한 새로운 도전은 반드시 필요하다.

교사의 책꽂이와 업무공간을 이야기할 때 또 하나 극복해야 하는 것이 책상 위에는 컴퓨터 하나만 달랑 놓여있고 퇴근할 때는 아무 것도 없는 깨끗한 책상 형태로 남아있는 사무용 혹은 행정가형 책꽂이나 업무공간을 교사에게 강요하는 관행이다. 이렇게 교사의 책꽂이와 업무공간을 일반 행정직 기준에 맞추도록 압박을 가하는 것은 그들이 교사를 교육행정의 말단 담당자라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사가 교육행정의 일부를 담당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교육행정이 교사의 핵심 정체성이 아닌 이상 사무용 혹은 행정가용 책꽂이와 업무공간은 행정실과 관리직에게만 적용되어야 한다.

 

인터넷 시대에도 책은 여전히 중요하다

교사의 책꽂이나 업무공간이 대학 교수와 같이 1인 연구실 체제로 가기는 어렵다 하더라도 최소한 5-10인 정도의 공간에 교사 개인이 어느 정도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칸막이와 벽면에 개인이 사용할 수 있는 큰 책장 하나 정도는 딸린 공간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대학에서 대학원 박사 과정에게 제공되는 공동 연구실 정도의 공간이나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바로 그 공간과 연결된 곳에 아이들이나 학부모를 상담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더욱 좋다. 이러한 교사의 책꽂이나 책장, 연구 분위기는 그 자체로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의 장이 된다. 특별히 중고등학교의 경우 교사의 전공에 따른 다양한 책꽂이와 책장 자체가 다양한 전공을 꿈꾸는 아이들에게 진로교육의 한 장이 될 수가 있다.

물론 인터넷 환경의 발달로 인해 책이나 문서 자료가 교사의 교재 연구나 수업 준비의 제일 중요한 위치에서 밀려난 지 오래 되었다. 오히려 대부분의 교사들에게는 인터넷을 통한 적절한 영상 자료 찾기, 교사 커뮤니티를 통한 동료교사들의 수업 자료 다운받기 등이 제일 중요한 수업 준비의 수단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인터넷 환경을 통한 수업 준비의 과정은 구체적인 실제 수업을 구상하고 기획할 때 유용한 수단이지 수업 준비의 전부일 수는 없다. 교과 전문가로서 교사는 자신의 교과에 대한 지식의 폭을 넓히고 깊이를 더해가는 작업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은 교사에게 급한 일은 아니지만 중요한 일이다. 교사의 수업 준비에 있어서 당장 써 먹을 수 있는 유용한 자료를 많이 확보하고 그것을 적재적소에 잘 배치하고 활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지만, 이와 더불어 그 배후에 교과와 관련된 풍부한 독서를 통한 깊이와 넓이를 더해가는 작업이 있어야만 수업이 일정 단계에서 머물면서 한계에 부딪히는 것을 극복할 수 있다.

 

느리지만 제대로 갖추고 싶다

7년 만에 복직을 하고 학급운영은 몇 가지 주워들은 이벤트와 왕년의 이력을 가지고 어느 정도 적응을 하겠는데, 수업은 매 시간 아쉽고 한계를 느낀다. 물론 여기저기 좋은 자료들을 찾아서 그날그날 적용하고는 있지만, 그동안 내 교과와 관련해서 안테나를 세우고 관련 책을 읽고 생각을 심화시켜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만큼의 한계는 어찌할 수가 없다. 내 사고 깊은 곳에서 끌어올릴 것이 많지 않다는 생각을 계속하게 된다.

그래서 당장 임박한 수업 준비를 하는 것과 동시에 틈나는 대로 교과 관련 책들을 읽으려고 노력 중이다. 당장은 이전에 보던 책들을 뒤적거리고 있지만 틈틈이 대형서점에 가서 최신 책들도 찾아보려고 한다. 그리고 4, 5월 학급 아이들과 독서동아리 운영으로 중1 아이들과 함께 읽은 책들만 꽂혀 있는 교무실 내 책꽂이에 교과 수업과 직접적인 연관성은 떨어지지만 교과와 관련한 생각의 지평을 열어주는 신간들을 구입해서 꽂아놓을 예정이다. 여러 가지로 분주한 일정상 책꽂이에 책이 늘어나는 속도는 느리겠지만 교과 전문가로서 특성이 잘 드러나는 책꽂이에 다시 도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