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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종료/정병오 칼럼

아프리카도 보아야 하리라(2014.02)

좋은교사 2014. 6. 5. 12:17

정병오 칼럼

아프리카도 보아야 하리라



“좋은교사운동은 한국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고, 아프리카에도 필요합니다. 좋은교사운동이 한국의 교육 현실뿐 아니라 아프리카를 포함한 선교지의 교육 문제를 함께 안고 가야만 더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6년 전 갓 좋은교사운동의 대표를 맡아 좌충우돌하고 있을 때 김두연 선생님(현 좋은교사운동 내 전문모임 중의 하나인‘Youth Global Action 연구회’대표, 월간 <좋은교사> 2013년 3월호‘좋은만남’에서 소개)이 불쑥 찾아와 했던 말이다. 김두연선생님은 서울 광신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학기 중에는 기독학생반 동아리를 통해 아이들을 전도하고 양육하는 일에 매진할 뿐 아니라, 방학이 되면 팀앤팀이라는 아프리카 원주민을 위한 식수 개발 전문NGO의 일원으로서 아프리카 현지와 각국의 재난 지역을 다니면서 섬기는 일을 해 온 열정적인 선생님이었다.

하지만 당시 나는 김두연 선생님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물론 주님의 지상 명령인 선교의 사명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좋은교사운동도 예외가 될 수 없음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국의 교실 상황이 점점 더 무너지고, 이로 인해 아이들과 교사들이 함께 신음하고 있는 상황에서 좋은교사운동은 모든 에너지를 다 모아 우리 교육이 처한 교실의 위기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기독교사는 물론이고 모든 교사들에게 이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하고 비전과 에너지를 심어주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기독교사들로 하여금 어쩌면 아프리카 선교지보다 더 치열한 선교지일 수 있는 학교 현장의 선교사로 서야 함을 강조해야 하는 상황에서 아프리카를 포함한 현실의 선교지를 이야기하는 것이 자칫 기독교사들의 전열을 흩트리고 도피처를 제공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우려가 들었기 때문이었다.


기독교의 풍성함을 한국 교육에

지난 5년간 좋은교사운동 대표직을 수행하며 우리 교육이 처한 위기와 씨름하는 동안 나에게 강하게 다가온 것은 우리 교육이 처한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과 에너지가 나올 수 있는 곳이 기독교 외에는 아무 곳에도 없다는 것이다. 그 동안 우리 사회가 우리 교육 문제 해결을 위해 여러 주체들이 다양한 시도를 해 왔지만 다 한계에부딪혔고, 이제는 교육 문제 해결을 위한 주체나 에너지가 다 고갈되어 버렸다. 물론 한국 기독교는 전체적인 면에서 복음의 능력을 이 시대 가운데 보여주지 못하고 오히려 절망과 걱정만 끼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교육 영역에서는 기독교사들이 우리 교육이 처한 위기에 대해 복음과 기독교 전통에서 실마리를 찾아 우리 교육 현실에 맞는 대안을 제시하고 이를 앞서 실천하여 일반 교육계에 확산함을 통해 그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교사운동이 지금까지 해왔던 이러한 운동들을 어떻게 수행하느냐 하는 것은 향후 한국 교육이 희망을 붙들 수 있느냐 혹은 끝없는 절망의 늪으로 빠질 것인가 하는 분기점이 될 것이다.(이러한 인식은 기본적으로 기독교 운동 내부의 인식이고 대다수의 일반 교사들이나 교육 관련자들은 인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오랜 교육 운동가들 가운데는 신앙과 무관하게 이런 관점에서 좋은교사운동을 주목하는 사람들도 제법 있다.)

물론 현실적인 면에서 공교육에서 기독교를 배제하려는 움직임은 훨씬 더 강화되었다. 그래서 학교 현장에서 기독교가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기독교가 사회적 신뢰를 잃으면서 자초한 면도 있지만, 이렇게 공교육이 기독교를 포함한 종교를 배제하는 것은 종교가 교육에 줄 수 있는 풍성한 생명력을 배제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지 않아도 메마른 교육의 생명력을 더 고사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공교육의 역사에 주목하여 공부하기 시작했다. 공부를 하면서 느낀 것은 서구 사회에서 공교육은 종교개혁으로부터 출발을 했고 기독교와 밀접한 관련을 맺으면서 발전을 해왔다는 것이다. 물론 갈등도 있었고 일정한 선을 긋는 관계 정립도 있었지만, 공교육의 기본 정신과 철학 속에 기독교가 미친 영향은 지금도 남아 있고 또 새로운 형태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는 것이다.(이러한 문제의식을 조금 더 발전시켜 체계화한 것이 2013년 하반기에 기획 연수로 진행했고 단행본으로 준비 중인‘근대 공교육의 전개와 기독교’강좌다.)

물론 오랜 역사 동안 기독교 국가로 존재해 왔던 서구 사회와 오랜 시간 기독교가 아닌 타 종교의 영향권 아래 있었고, 기독교가 들어온 이후에도 다종교 사회의 형태를 띤 한국은 그 배경의 차이가 매우 크다. 그렇기 때문에 공교육과 기독교의 관계 면에서도 서구 사회와는 색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사실 지난 30여 년 공교육에 속한 기독교사들이 펼쳐온 기독교사운동도 서구 사회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형태를 취해 왔다. 유럽과 미국을 제외한 세계 대부분의 지역이 비서구권 선교지라는 현실을 생각할 때, 이러한 다종교 사회의 공교육 가운데서 기독교가 가진 풍성함을 공적 언어와 교육적 행동으로 펼쳐 온 한국 기독교사운동의 경험은 서구 기독교가 줄 수 없는 매우 독특하고 귀한 자산이 되는 것이다.


다시 주어진 제안 앞에서

이렇게 지난 2013년 한 해 동안 한국 공교육의 위기에 대한 기독교의 대응, 그리고 그 동안 한국의 공교육 내에서 기독교사운동이 해 왔던 경험의 선교사적 의미 등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즈음에 김두연 선생님이 한 번 더 찾아왔다.

“아프리카 케냐에서 아프리카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품고 이 일에 자신을 헌신하기로 다짐하는 청년들이 매해 1,000여 명씩 모여 집회를 하고 있으니 같이 가서 한번 봅시다. 그 집회를 통해 좋은교사운동에서 자칫 약화되기 쉬운 영적 열정에 다시 자극을 받고, 또 좋은교사운동이 한국에서 했던 경험들을 들려 주시죠. 그곳에는 예비교사들도 있고 현직 교사들도 있으니 아프리카에서 좋은교사운동이 시작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5년 전 처음 나를 찾아왔을 때와 비슷한 제안이었지만 아프리카 청년들이 아프리카의 문제를 가지고 스스로 일어났다는 소식은 좀 더 진전된 내용이었다. 그리고 나 역시 지난 5년 동안 붙들고 씨름했던 주제 중 하나였던‘한국에서의 기독교사운동의 경험이 다른 선교지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인가’하는 부분에서 확인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프리카 방문에 동행하기로 하고, 지난 2013년 12월 13일부터 23일까지 11일 일정으로 다녀왔다.


 

‘알라’가 주지 않은 것을 ‘기독교인’이 주었다

김두연 선생님이 활동하고 있던 NGO 팀앤팀은 15년 전인 1999년, 예수전도단 훈련 원장으로 있었던 이용주 선교사님이 아프리카의 식수 개발을 통한 긴급구호와 총체적 선교를 위해 설립한 국제 구호 개발 단체다.(월간 <좋은교사>2013년 12월호‘만나고 싶었습니다’에 소개) 주로 다른 구호 단체들이 잘 들어가지 않는 분쟁 지역인 남부 수단, 소말리야, 우간다 등지에서 식수 개발 사역을 해왔는데, 그곳 주민들과의 깊은 소통, 그들과 함께 먹고 자면서 그들과 하나가 되고, 그 주민들을 주체로 세우는 방식을 통해 주민들로부터 가장 신뢰를 받고 사역을 잘하는 단체로 인정을 받고 있었다. 최근에는 케냐의 이슬람 지역인 타나리버 주(우리나라 강원도보다 조금 넓은 면적)의 식수를 개발할 뿐 아니라 건기를 대비해 인공 저수지를 만들어 우기 때 흘러온 물을 저장할 수 있도록 하는 사역, 학교를 세워 주는 사역, 위생 교육 등을 담당하고 있었다.

이용주 선교사님과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인 인공 저수지와 학교를 방문했는데, 방문한 곳마다 마을의 추장과 이맘(이슬람 사원의 사제), 그리고 동네 유지들이 나와서 감사의 인사를 했다. 그 중 한 이맘은“우리들이 마을에 물을 달라고 50년 동안 알라에게 기도해 왔지만 알라는 물을 주지 않았는데, 기독교인들이 물을 주었다.”며 감사를 표했고, 다른 마을에서는“우리가 마을에 학교가 생기기를 15년 동안 알라에게 기도했는데, 결국 기독교인들에 의해 응답이 되었다.”는 고백을 했다. 실제로 어떤 마을에서는 기독교인들이 식수를 준 것에 대해 그냥 있어서는 안 된다며 마을 전체가 집단적으로 기독교로 개종을 한 사례도 있다고 했다. 이렇게 즉각 개종을 하지 않더라도 이들이 진심으로 기독교에 대해 감사하고 마음을 연 그곳에 다른 선교사들이 고아원이나 유치원 등의 사역을 통해 복음을 심는 모습은 선교가 무엇인지 그 실체를 느끼게 해 주었다.

팀앤팀 식수 사역지를 돌아본 후 케냐 청년들의 영적 부흥 운동인 쌤(Student Arise Movement) 아프리카 하베스트 컨퍼런스에 참석했다. 쌤 아프리카는 이용주 선교사님이 아프리카의 청년들을 깨워 그들로 아프리카가 처한 문제들에 대해 헌신하도록 청년들을 복음으로 깨우고 양육하여 파송하는 사역으로 5년 전에 시작했다고 한다. UN을 포함해서 많은 나라와NGO들이 아프리카에 구호를 쏟아 붓지만 결국 자기 나라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겠다고 나서는 헌신된 사람이 길러지지 않으면 결국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격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를 생각할 때 아프리 카를 위해 헌신할 사람을 기르는 이 일이야말로 아프리카의 미래를 위한 핵심적인 사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컨퍼런스에 모인 대학생들이 대학 졸업 후 온 집안을 책임져야 한다는 과중한 무게와 또 가난하고 부패한 국가와 대학 졸업 이후의 취업이 막연한 불안한 상황에서도 하나님과 아프리카를 놓고 눈물 흘리며 자신을 드리는 모습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목도할 수 있었다.


한국 기독교사운동의 경험을 들려 주세요

케냐가 아프리카에서는 조금 나은 형편이라고는 하지만 케냐의 교육적 상황도 매우 좋지 않았다. 교육 시설이나 여건, 취학율의 취약함은 그 나라 경제 형편을 생각할 때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교육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교사들의 상황도 매우 열악했다. 우선 교사들의 처우가 매우 낮고 그나마도 몇 달째 급여를 받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교사들의 이직률이 매우 높고, 교사들의 파업 등으로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교사 후보생의 경우도 자의가 아닌 장학금을 받고 대학에 들어오는 학생 가운데 국가가 지명해 교사를 시키는 상황에서 소명을 기대하기가 힘들었다. 또 아프리카의 심각한 문제인 에이즈 전염의 제일 원인이 트럭 운전수고, 두 번째 원인이 교사라는 현실이 보여주듯 교사들의 도덕적 문제도 심각한 상황이라고 했다.

이러한 현실에서“어려운 교육 여건 가운데서도 교사들이 정부만 탓하고 앉아 있을 것이 아니라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더 헌신하고 교사들이 스스로 바꿀 수 있는 부분부터 바꾸어가야 한다”는 좋은교사운동의 정신이 먹힐 리가 없었다. 특히 팀앤팀이 식수 개발을 해 주고 있던 타나리버 주의 교사들과 교육청 관계자들을 만났을 때는 자신들의 어려운 교육적 상황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물질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만 반복했다. 하지만 쌤 아프리카 하베스트 컨퍼런스에서 만난 예비 교사들은 한국에서 일어난 좋은교사운동의 사례를 들으며 그 운동이 케냐와 아프리카에서도 필요하다며 공감을 표시했다. 특히 기독교사 사역과 예비교사 사역을 하는 한 분을 만났는데, 그분은 3~4년 전부터 여름방학 때 100여 명의 기독교사들이 모여 케냐 교육을 위해 기도하고 기독교사운동을 시작했다며, 좋은교사운동의 경험이 케냐에도 전해지길 간절히 열망했다. 


비록 내 코가 석자일지라도 함께 손을 잡고

짧은 기간, 제한된 만남이었지만‘식민지와 빈곤을 거쳐 온 한국 사회의 경험과 여전히 많은 문제 가운데서 지난한 싸움을 해왔고, 해야 하는 한국 교육의 경험이 아프리카를 포함한 비서구 국가들에게는 서구 사회가 줄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 될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기독교의 역사가 짧고 다종교 사회 가운데서 기독교가 가진 풍성함과 생명력을 바탕으로 교육을 바꾸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경험과 자료들은 우리만이 가진 특수한 경험이라고 부둥켜안고 있을 것이 아니라, 비서구 개발도상국가들과 나누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프리카를 포함한 비서구 개발도상국가들이 긴급한 물질적 지원을 필요로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물질적 지원을 넘어선 그 무엇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것은 자신들의 문제를 다른 누군가가 해결해 주기를 기다리고 의존하는 자세를 뛰어넘어, 스스로 그 문제를 붙들고 씨름하면서 작은 성취의 경험들을 축적해갈 그런 사람들과 공동체가 절실히 필요해 보였다. 그리고 바로 이 부분에서 좋은교사운동의 역할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히 이 부분은 우리가 가서 대신 일을 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주체가 되어 스스로 해 나가도록 경험을 전수하는 일이기에 많은 에너지가 투여되지 않아도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우리는 우리의 문제가 너무 크고 심각하기 때문에 우리 문제를 붙들고 씨름하는 일에 전력을 기울여야 하는 상황이다. 다만 이렇게 전력을 다해 우리 문제를 붙들고 씨름하는 가운데 잠깐 틈을 내고 약간의 에너지를 투여해, 이곳 아프리카의 기독교사 그룹들과 교류하며 서로 배우고 자극함을 통해 그들을 세울 뿐 아니라 우리도 에너지를 공급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문제를 다 해결한 후에 그들을 돕는 것이 아니라 각자 자신의 문제를 가지고 씨름하면서 서로를 돕고 함께 성장하는 일에 조금씩 눈을 돌리고 한 걸음씩 내디딜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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