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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산책

열정이 세상을 변화시킨다

한병선의 아름다운 유산 10

열정이 세상을 변화시킨다

   

은퇴 선교사님들을 위한 마을

노스캐롤라이나에는 블랙 마운틴이란 곳이 있다. 그곳에는 미국 남장로회 소속 은퇴한 선교사들을 위한 마을이 있고 우리는 그곳에 살고 계신 한 선교사님을 찾아가기로 했다. 도대체 그 마을에는 몇 분의 선교사님들이 살고 계실까?

우리가 묵을 숙소는 그곳에서 미리 준비해 준 곳이 있었다. 사실 우리는 은퇴 선교사님들과 홈스테이를 하고 싶었는데 다들 연세가가 많으셔서 이제는 홈스테이를 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마음이 아팠다.

선교사님들과 식사를 약속하고 선교사님들을 뵈러 식사 장소로 갔다. 한 무리의 노인들이 가슴에 이름표를 붙이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10여 명이 넘는 수였다. 우리 일행과 합치니 족히 20명이 넘었다.

각자 자신을 간단히 소개했다. 우리도 우리가 온 목적을 이야기하고 앞으로 4일간 머물면서 각 선교사님 댁을 방문해서 촬영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우리가 한국인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매우 좋아하셨다. 어쩌다 가끔씩 한국인들이 와서 촬영도 하고 인터뷰도 한다고 하시면서 우리를 환대해 주셨다. 우리가 누구인지는 그네들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그들은 우리가 한국인이기에 좋아해 주셨고 자신들이 살아낸 삶을 기꺼이 보여 주시겠다고 하셨다.

 

마리엘라 탈마지 프로보스트(Mariella Talmage Provost) 선교사

이곳은 학급 반장처럼 모든 것을 관장하시는 할머니 선교사님이 계셨다. 그녀는 탈마지(Talmage, John Van Neste) 선교사의 따님이시며 프로보스트(Raymond Provost, 한국명 부례문)의 아내였다. 그녀는 한국에서 선교사 자녀로 태어나서 살았고 나중에 다시 남편과 한국에 와서 경주 문화학교를 세웠다. 그녀는 바로 마리엘라 탈마지 프로보스트(Mariella Talmage Provost) 선교사님이다.

탈마지 할머니 선교사님은 1923년 전라도 광주에서 출생하셨고, 지금은 80세가 훨씬 넘었지만 얼마나 정정하고 기억력이 좋으신지 우리가 다 놀랐다. 사실 그분한테 놀란 것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그분의 집에 가 보니 온통 뜨개질로 만든 담요들이 쌓여 있었다. 그것은 모두 아프리카 말라위로 보내질 담요들이다. 아프리카 고산 지대에 사는 말라위 사람들이 밤마다 추위에 시달리는데 덮을 담요가 부족하다는 소식을 듣고, 탈마지 할머니 선교사님이 이곳 할머니들에게 부탁을 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뜨개질로 정사각형 모양의 작은 판을 만들고 이것을 서로 이으면 담요가 된다고 한다. 할머니는 혼자서 정사각형 모양의 작은 판을 600개나 보내고 있었다. 덕분에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앉으나 서나 모두 뜨개질을 하고 있었고 할머니는 손뜨개뿐 아니라 재봉틀을 이용해서도 만들고 계셨다. 얼마나 잘 만드시는지 기술자가 따로 없었다.

 

끝나지 않는 선교사의 삶

나는 할머니 댁에서 홈스테이를 하기로 했다. 할머니께서는 자고 가라고 하시면서 옷도 주고 이불도 주셨다. 그리고 자신이 뜬 작은 목도리를 선물로 주시고 주방에서 쓰는 행주도 주셨다.

선교사님은 본인이 작은 집에 사는 이유를 조용히 이야기하셨다. 본인도 다른 사람들처럼 큰 침대가 있는 집에서 살고도 싶고 손님이 오면 손님방도 내줄 수 있는 곳에 살고 싶지만 그러면 돈이 많이 든다고 하셨다. 자신은 그렇게 사는 것보다 이렇게 작은 집에 살면서 절약해서 모은 돈으로 선교지로 후원금을 보내는 게 더 행복하다고 하셨다. 할머니의 절약 정신은 굉장히 투철했다. 아침도 간단하게 시리얼로 먹었다. 마을에서 운영하는 식당을 이용하면 편하지만 이용 횟수에 따라 돈을 내야 해서 자신은 일주일에 2회만 이용한다고 했다.

그리고 할머니는 자기 차도 손주에게 주고 자신은 마을 내에만 다닐 수 있는 전기차를 타고 계셨다. 그 전기차는 전기 충전만 하면 되는데 그냥 차를 타면 보험료와 기름 값으로 한 달에 100달러나 드니, 그 돈도 모아서 역시 말라위로 보내고 계셨다. 차가 필요하면 근처에 있는 린튼 할머니에게 전화해서 같이 다니면 된다고 했다. 조금 불편하지만 그래도 돈을 모아서 선교지에 보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하셨을 때 나는 마음이 울컥했다.

이분은 평생 그렇게 선교사로 살아오셨다. 한국에 있으면서도 미국에 와서 많은 분들로부터 헌금을 모아 가셨다. “당신이 5달러를 내면 한국에서는 한 아이가 공부를 할 수 있습니다.” 1950년 전쟁 통에 고아와 학생을 거두면서 이들을 공부시키기고 먹이기 위해 그분은 그렇게 헌금을 모아서 선교를 했다.

그렇게 사셨기에 선교를 할 수 있었다는 말을 듣고 나는 할 말을 잊었다. 자기 아버지는 언제든 신발 끈도 묶지 못하고 뛰어나갔다고 하셨다. 탈마지 선교사. 1910년 한국에 입국해서 7남매를 낳고 선교사들이 쫓겨날 때 가장 오랫동안 버티다 결국 일본인에 의해 감옥에 갇히고 결국 강제 추방을 당한 선교사였다. 언제나 복음을 전하고 싶은 마음에 신발 끈도 제대로 묶지 못하고 뛰어나간 아버지. 그녀는 그런 아버지를 보고 자라면서 한국에 다시 왔고 그녀 역시 6ㆍ25를 겪었다. 이런 할머니의 강단과 열정은 나를 감동시켰고, 결국 나는 울었다. 너무 미안하고 고맙고 부끄러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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