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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산책

수업은 외롭다


학교가 학교에게 7

수업은 외롭다

  

배움이 중심이 되는 학교

내가 근무하는 덕양중학교는 올해부터 학교의 무게 중심이 ‘수업’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대부분 교사들의 주된 관심사는 학교생활에 잘 적응을 하지 못하는 아이, 혹은 학교 공동체에 피해를 주는 아이들을 학교가 어떻게 품고 변화시켜 나갈 것인가 하는 고민이었다. 내가 처음 덕양중학교에 발령을 받고 수업을 하러 들어갔을 때 느꼈던 그 문화적인 충격을 생각해 보건대, 이제 우리가 ‘드디어’ 서로의 수업을 열고 수업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시작했다는 이 사실이 그동안 덕양중에서 일어났던 많은 변화들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라 생각된다.

매달 모든 교사들이 돌아가면서 자신의 수업을 공개하고, 그 자리에 전 교사가 모여서 우리 아이들이 어떻게 배움에 참여하고 있는지를 논의하며 서로 격려하는 교사들의 동료성이 상당한 수준으로 구축되어 있다. 이뿐만 아니라 매 수업 연구의 말미에는 배움의 공동체 손우정 교수님이나 행복한수업만들기 김태현 선생님 같은 전문 컨설턴트들의 예리하고 영감 넘치는 조언들을 덤으로 들을 수 있으니 교사가 자신의 수업을 성찰해 가면서 성장하기에 이렇게 좋은 환경이 따로 없을 듯하다.

 

내 수업에 대한 고민과 성찰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렇게 많은 수업을 보고(지난 겨울에는 배움의 공동체 수업을 보겠다고 일본까지 다녀왔으니) 수업에 대해 참 많은 이야기들을 주고받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내 수업으로 돌아와 보면 나는 아직도 어떻게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야 할 것인지 여전히 길을 헤매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수업을 잘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자신이 없다.

우리 학교는 수업 연구회가 열리면 모든 교사들이 연구회에 참여한다. 거의 대부분 교과에서 과목 담당 교사가 한 명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교과별 수업 공개나 협의회는 애초에 불가능하다. 그래서 교과는 다르지만 수업의 형식이나 학습(활동)지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가장 중요하게는 그 수업에 참여하고 있는 아이들의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 모니터링을 해서 수업을 공개한 교사에게 피드백을 제공하며 아이들에 대한 정보를 공유한다. 이런 수업 연구회 방식을 통해 공개 수업에 참여한 다른 교사들 또한 자극을 받는다. 특히 배움으로부터 소외되는 아이들을 어떻게 수업 속으로 끌어들일까에 대한 의미 있는 공유를 통해 많은 유익을 얻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각 교과가 가진 고유한 특성과 섬세한 고민들까지 다 나누고 다루기에는 한계가 있다.

영어과인 나의 경우, TEE(Teaching English in English)는 어느 정도까지 따라야 할 것인지(아니 그것을 완벽하게 구현하는 것이 가능할 것인지)에 대한 불안함과 교과서 중심의 수업을 탈피하고 싶은데 그 대안을 마련할 시간은 잘 확보되지 않는 답답함, 영어를 마치 외계어 보듯 하며 아예 배움의 시도조차 하지 않는 아이들을 볼 때 내가 그들을 방치하고 있는 것만 같은 무력감 등등…. 나는 아직 이런 고민들에 대한 선명한 대답을 내 안에 갖고 있지 못한 채 고립되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내가 어딘가를 향해서 움직이고 있는 것은 분명하나 그 걸음이 너무도 더딘 것만 같아 슬럼프를 겪기도 한다.

그런데 누가 내게 묻거나 따져 오지도 않은 이런 치열한 고민과 성찰, 그리고 그 성찰에 동반되는 이 깊은 감정의 굴곡들은 어디서 시작되었는가? 그것은 내가 특히 올해 들어서 집중적으로 많은 훌륭한 수업들을 보며 도전을 받게 된 것 못지않게 나의 수업 또한 아무런 여과 없이 드러나게 된 몇몇의 상황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여태 나는 내가 세워 놓은 수업에 대한 아주 작고 소박한 기준 안에 머물러 왔다. 그런데 과연 내가 가진 그 작고 소박한 기대 수준이 적절한 것인가에 대한 의심이 시작되는 순간, 나는 갑자기 이 가을이라는 계절적인 요인과 더불어 이중의 외로움을 타게 된 것이다.

내가 지금껏 수업을 해 오면서 내 나름대로 설정한 수업의 의미는 ‘수업은 만남이다’는 아이디어였다. 수업을 아이들과의 만남이라는 방향으로 설정하게 된 데에는 고등학교에서만 10년 넘게 근무하면서 얻게 된 수업에 대한 나의 아픈 기억과 상처들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과연 수업이 ‘만남’이라는 정의가 그렇게 작고 소박한 것일까? 또 설사 그렇다손 치더라도 수업이 아이들과의 행복한 만남이 되어야 한다는 내 나름의 수업에 대한 정의를 지켜내기 위해 나는 과연 최선을 다해 왔는가? 내가 지금껏 지녀 온 수업에 대한 나의 아이디어를 바로잡거나 혹은 수정해야 하는데, 내가 그 아이디어에 정말 충실해 왔던 것인지에 대해서조차 자신이 없으니 한 번 일기 시작한 의심의 바람은 그칠 줄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나의 수업에 대해 외로움을 느끼는 지금, 지금 바로 이 순간이 나에게는 정말 소중하고 행복한 시간들이라고 생각하련다. 자신의 수업에 대해 외로움을 느끼는 자만이 자신의 좁은 틀을 깨고 수업 친구를 만날 수 있을 것이며 차라리 지금 외로운 자, 나중에는 외롭지 않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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