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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산책

나는 이렇게 혁신 학교에 갔다


학교가 학교에게 6

나는 이렇게 혁신 학교에 갔다

 승진만 있는 학교

2006년이었다. 시흥에 있는 한 고등학교로 옮기게 되었다. 출석하던 교회 가까이에 있는 학교에 근무하면 좀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에 신청한 내신이었다. 그렇게 해서 발령받은 학교는 공단 지역 가산점이 있는 학교. 승진이라고 하는 목표를 가지고 모여든 교사가 교직원의 절반을 차지하는 학교였기 때문에 현행 교장 승진 제도의 폐해를 몸으로 겪을 수 있는 곳이었다. 그해 2학기, 학교에 대한 답답함이 커질 무렵에 기윤실교사모임의 몇몇 선생님들이 공부 모임을 하자는 제안을 해 왔다. 생태와 토지, 공동체 등 대안 사회에 대한 여러 주제를 가지고 공부 모임을 진행해 왔던 모임에서 이번에는 ‘교육’을 주제로 잡아 대안 교육을 모색해 보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도 대안 사회에 대한 소망과 현재 학교에 대한 답답함을 가지고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10명 정도의 선생님들이 모였다. 1인당 10만 원씩의 회비를 모아 강사비를 마련했다. 대안 교육에 대한 책을 읽고 가급적 저자를 초청해서 강의를 듣고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책의 내용과 관련된 현장 활동가들을 초청해서 강의를 듣게 되었다. 《키노쿠니 어린이 마을》(호리 신이치로, 민들레), 《이야기가 있는 학교》(존 볼트, 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 《학교 기성복을 벗다》(엘리엇 레빈, 민들레), 《수업이 바뀌면 학교가 바뀐다》(사토마나부, 에듀케어), 《홈스쿨링, 오래된 미래 : 새로운 길을 여는 부모들의 이야기》(민들레 편집실, 민들레) 《노래하는 나무》(한주미, 민들레) 등. 책을 읽고 강의를 들으면서 다양한 생각들을 할 수 있었다. 현실 교육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해도 학교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가는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배움에 있어서의 학습 동기, 학습자의 리듬, 학습자들 간의 협력 등의 문제에 대해 새로운 통찰을 얻을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아톰 학교?

그렇게 새로운 학교를 상상할 토대가 마련될 즈음에 참여 정부가 추진했던 개방형 자율 학교 응모를 준비하게 되었다. 처음 개방형 자율 학교 이야기를 접했을 때만 하더라도 그것은 매우 획기적인 학교 정책이었다. 한 학교에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교사 팀을 만들어 모아 준다는 것이다. 지역을 가리지 않고 드림팀을 구성할 수 있도록 학교의 문을 열어 준다는 것이다. 후에 구체적인 정책 시행 방침이 정해지면서 시․도 지역 내에서의 이동만 허락하는 것으로 후퇴하기는 했지만, 학교를 변화시킴에 있어 외부의 교육 정책만을 건드려 오던 기존의 방식에서, 학교 내부에 변화의 에너지를 만들고, 그 에너지에 의해 변화된 학교 모델을 만들어 다른 학교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전략적 실험을 하게 된 것이다.

당시에 이 정책을 보는 마음은 어린 시절에 즐겨 보던 만화 ‘아톰’에서 괴물의 입속으로 들어가 배를 뚫고 나오는 작전으로 괴물을 무찌르는 아톰 앞에 약간의 입을 벌린 괴물을 보는 것 같았다. 도저히 변화를 기대하기 힘들었던 괴물과도 같은 교육계가 약간 입을 벌린 것이다. 좋은교사 정책 위원회를 중심으로 준비 팀이 꾸려졌고, 함께 대안 교육을 공부했던 사람들이 합류하게 되었다. 새로운 학교를 준비했고,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우리가 준비할 새로운 학교의 별명을 ‘아톰 학교’라 부르게 되었다. 당시 나는 이 일을 이끌어 가던 사람이 아니었지만, 모여서 함께 새로운 학교를 상상하고 그것을 계획서로 만들어 가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신나는 일이었다.

 

덕양중학교에 대신 들어가 주세요

결과는 실패였다. 그러나 실패는 그냥 실패에 머무르지 않았다. 그 실패를 바탕으로 1년 후 이번에는 교장 공모제를 준비하였다. 개방형 자율 학교를 준비했던 경험을 토대로 이번에는 매우 세밀하게 준비했던 모양이다. 그 준비에 나는 전혀 도움을 주지 못했다. 소식만 듣고 있었을 뿐. 그리고 들려오는 성공의 소식. 좋은교사에서 준비한 평교사 출신의 교장 선생님이 덕양중학교에 교장으로 들어가시게 되었다는 것이다. 참 잘됐다고 생각했다. 성공의 소식에 감탄만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학교가 내가 있어야 할 자리로 생각되지는 않았다. 그 학교를 준비한 사람들은 따로 있었으니까. 학교에 제출한 학교 경영 계획서도 보지 못했다. 그런 내게 1년 후 제안이 들어왔다.

“선생님이 덕양중에 들어가 주면 좋겠어!” 원래 들어가기로 계획되어 있던 공모 TF팀장인 김성천 선생님이 좋은교사 일로 휴직을 하면서 현임교 근무 경력이 2년이 안 되는 바람에 초빙 자격 요건을 갖추지 못했고, 사회 과목을 가르치는 다른 선생님 두 분에게 제안을 했지만 두 분 모두 어렵다고 하셨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제안은 나에게까지 왔다. 길게 기도하지 않았다. “하나님! 좋은교사를 통해 일하시지요? 제가 쓰일 수 있다면 그 길 가겠습니다.”

 

내가 상상했던 학교

2009년 3월. 덕양중은 나를 환영해 주었다. 20시간 수업에 교무 기획, 연구 기획, 자율 학교 담당, 2학년 담임. 교직 7년 동안 수업과 담임을 제외하고는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던 일. 자율 학교가 정확히 무엇인지도 잘 몰랐던 내게 맡겨진 일이었다. 어떤 일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교장 선생님도 혼자서 많이 고민하셨던 것 같다.

그러나 한두 달을 지내면서 지난 2006년 공부하면서 상상했던 학교, 개방형 자율 학교 준비에 참여하면서 상상했던 학교의 모습들이 떠오르면서 덕양중학교가 가야 할 그림들이 조금씩 내 마음속에 그려지게 되었다. 하나님은 이 일을 위해 3년전 나를 공부시키셨던 것이다.

게다가 하나님은 특별한 선물을 하나 더 준비해 주셨다. 바로 ‘김상곤 교육감!’ 2009년 4월에 1년 임기의 교육감으로 당선된 김상곤 교육감은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변수였다. 교육감 당선자는 덕양중학교를 방문하였다. 그가 앞으로 추진할 혁신 학교의 모델이 바로 우리 학교라는 것이다. 그의 등장과 함께 덕양중은 경기도 혁신 학교 정책의 모델로, 후원자로, 때로는 리더로 서게 되었다. 학교의 변화가 탄력을 받는 순간이기도 했다.

 

누군가 공부하자고 제안했을 때 약간의 시간을 내어 참여하였고, 꿈꾸는 사람들이 학교를 꿈꿀 때 옆에 살짝 붙어 오가는 논의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꿈꾸는 일에 뛰어 들기를 요구 받았을 때, 약간의 용기를 내어 뛰어 들었다. 나는 이렇게 혁신 학교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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