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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산책

학교, 교사들의 마음을 품다

학교가 학교에게 5

학교, 교사들의 마음을 품다


선생님들께서 《좋은교사》 9월호를 손에 들고 이 글을 읽어 보실 때 즈음이면 선선한 가을바람이 조금씩 불어오기 시작하겠지요? 하지만 전 지금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는 한여름의 더위를 피해 도서관 어느 모퉁이에서 선선한 가을바람대신 에어컨 바람을 쐬며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편집장님의 말에 의하면 요즘 혁신 학교에 관심들이 많고, 또 혁신 학교를 준비하는 모임들이 많아져서 덕양중학교의 사례가 많은 도움이 될 거라고 하면서 부담을 팍팍 주네요. 그래서 어떻게 지난 1학기를 살아왔는지, 그 속에서 건질만한 것은 없는지 되짚어 보고 있습니다.

 

교사도 상담이 필요해요

 

분주했던 한 학기를 마치고 방학을 했지만 우리 덕양중 선생님들은 방학 후에도 모든 교사가 이틀을 더 출근해야 했습니다. 우리 학교가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NTTP 연수 ‘셀프파워 인간관계 훈련 연수’가 있었거든요, 연수의 주제가 이렇게 정해진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김삼진 교장 선생님께서 공모 교장으로 덕양중에 오신 이후로 처음부터 표방한 것이 ‘돌봄’이 있는 학교, ‘책임’지는 학교였습니다. 그래서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지원해 주고 특히 그 속에서 마음을 다친 아이들, 마음이 아픈 아이들을 전문가들과 연계해서 돕는 일들을 매우 일관성 있게 진행했었습니다. 워낙에 소규모 학교인 덕양의 특성상 한 아이를 돕고자 하는 마음이 모아지면 자연스레 대부분의 교사들이 그 아이에게 관심을 갖고 예의 주시하게 되어 있습니다. 협력해서 선을 이루기에 아주 좋은 구조라 할 수 있지요. 다만 아이 입장에서는 이런 덕양의 특성이 아주 끔찍하게 다가올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듭니다. 어쨌거나 그런 관심이 생기면 한 아이의 작은 변화 하나만으로도 많은 선생님들이 웃다가 때로는 좌절하다가 하는 일들이 반복되기 마련인데 아이들을 보면 단기적으로는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 반복되지만 길게 놓고 보면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인지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관심과 도움을 받고 변화되어 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교사들이 보람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론 살짝 샘이 났던 모양인지 다음과 같은 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아이가 상담 등의 도움을 받고 좋아지면 그 혜택이 그 아이뿐만 아니라 주변 아이들에게로 돌아가듯이 만일 교사들 또한 그런 전문가적 도움을 받고 성장할 수 있다면 그 혜택이 대대로 그 교사를 만나게 될 수많은 아이들에게 돌아가게 되지 않을까요? 그러니 우리 교사들도 그런 상담 치료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의 내면에 복잡하게 꼬여 있는, 그래서 아이들 혹은 동료들과의 소통을 저해하는 마음의 문제들을 좀 털고 갑시다! 그것뿐만 아니라 한비야 씨처럼 긴급 구호를 하는 사람들도 구호 현장에 다녀온 뒤엔 반드시 심리 치료를 받는다고 하던데, 우리 덕양중 교사들도 매 학기 동안 거의 크레이지 모드로 살아가면서 얼마나 힘들고 때론 처참(?)한 일들을 많이 겪고 있나요. 우리도 치료해 주세요.”

이렇게 해서 마침내 교사들을 위한 집단 심리 치료 연수가 계획되고 실행되었던 것입니다. 저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교사들이 난생 처음으로 받아 본 집단 심리 치료 연수였는데 이 연수를 통해 한 개인의 심리적 혹은 무의식적 경향성이 집단에서의 인간관계 혹은 대외적인 활동에서 어떻게 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지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가상의 한 젊은 부부의 이혼 사유를 놓고 당사자인 젊은 부부와 그들을 둘러싼 주변인들의 행동을 논하는 토론 장면에서는 각 개인의 생각들이 얼마나 뼛속 깊이 다른지, 그리고 그 다른 생각들을 관철시켜 나가는 과정에서 자신의 심리적 경향성들을 어떻게 드러내고 있는지를 토론 후에 강사님의 예리한 관찰을 통해 피드백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궁금해 하실 분들은 많지 않겠지만 그래도 제가 받은 전문가의 피드백을 살짝 공개하자면, 이 토론에서 제가 사회를 보게 되었는데 집단의 의견을 조정해 나감에 있어서 반대 의견을 처리할 때 사회자라는 자신의 역할로 반대하는 사람들의 주장을 억누르려고 함으로써 반대 의견을 말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어 주지 못하고 또 그것이 집단의 통합된 의견을 세워 나가는 데 오히려 장애 요소로 작용한다는 날카로운 지적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제가 담임하면서 겪었던 많은 갈등과 어려움들이 담임이라는 나의 우월적인 지위를 내세워 담임의 학급 운영에 기꺼이 동참하지 않으려는 아이들의 마음을 읽어 내지 못한 데 있었구나 하는 교훈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공감적 대화를 배우던 마지막 날엔 모든 교사가 돌아가면서 자신이 이제껏 살아오면서 들었던 말 중 가장 힘들었던 말, 그때 해 주고 싶었던 말, 내가 듣고 싶은 말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 시간에는 겉으론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지만 각자의 내면에 숨겨져 있던 상처와 그 눈물들을 확인하고 또 어떤 선생님은 용기를 내어 동료로부터 받은 상처를 고백하여 즉석에서 화해가 이루어지기도 하였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자신을 가장 힘들게 했던 사람들 중의 대부분이 학창 시절의 담임 교사, 어릴 적 같은 반 친구, 교목, 학교 관리자 등등 학교가 가장 많은 상처를 만들어 내는 온상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마음의 숙제, 어떻게 푸시나요?

한 학기를 지내다 보면 학교에는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이야기들이 생겨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누군가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거나 기록으로 남겨 두지 않으면, 그냥 서서히 사라져 가고 맙니다. 그러면 나는 왜 우리 교사들의 집단 심리 치료 연수를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 중 한 가지 이유는 어쩌면 내 안에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마음의 숙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겠지요. 저는 정말 궁금합니다. 다른 많은 선생님들은 자신의 마음속에 가라앉아 있다가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아이들에 대한 분노, 불안, 두려움, 우울감, 외로움 등등의 수많은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 나가는지 말입니다. 정말 좋은 학교를 세워 가려면 이런 고민들을 개인적 차원으로 치부하거나 혹은 덜 중요하다고 덮어두지 말고 각자 마음의 짐들이 나누어질 수 있는 다양한 소통의 장들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교사 한 개인의 심리적 문제는 수업을 통해서, 아이들과의 생활 지도를 통해서 많은 문제를 파생시키기 때문이지요. 2학기부터 좋은교사 행복한수업만들기에서 본격적으로 시작하려고 하는 수업 토크도 비슷한 맥락과 철학을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번 연수를 소개하는 또 다른 이면의 동기는 지난 7월호 <함께 근무할 사람을 찾습니다>에 이어서 덕양중학교를 아예 노골적(?)으로 홍보해 보고자 함입니다. 덕양중학교가 일이 많고 힘든 것이 사실이지만 그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도 동료들 간에 서로의 마음을 품고, 또 교사로서 마음의 내공을 키우기 위한 섬세한 노력과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을 널리 알려서 아직도 덕양중에 가면 개고생한다는 거짓 소문을 종결짓고자 함입니다. 사실 요즘 학교들마다 고생 안 하는 학교가 어디 있나요? 잘못된 소문과 오해로 인해 아직도 덕양중학교에 지원하기를 주저하고 있는 많은 선생님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의견을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