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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산책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



학교가 학교에게 4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

김 영 식


 “교감 선생님! 죽으세요. 제가 할게요.”

 “싫은데, 김 선생이 죽으면 안 돼?”

 지난 2010년 7월, 한 리조트에서 벌어진 교감 선생님과 나와의 대화다. 그날은 경기도교육청에서 진행하던 혁신 학교 직무 연수가 있었고, 나를 포함해 우리 학교 교감 선생님, 교무부장 선생님, 그리고 다른 선생님 2명, 총 5명이 연수에 참여하게 되었다. 도교육청에서 무조건 학교당 5명씩 참석하라는 말에 어쩔 수 없이 가게 되었다. 4박 5일 동안 삼시 세 끼 먹여 주는 밥 먹으며 이런저런 강의를 듣고 있었다. 그리고 밤에는 치킨 한 마리 시켜 놓고 5명이 모여 고스톱을 쳤다. 참 재미지게도 쳤다. 그날 나의 끗발에 모든 분들이 나가떨어졌고 당연히 닭 값은 내가 치렀다.


학교 변화는 번개 모임으로부터

 그렇게 놀면서 우리 다섯 명은 참 많은 대화를 나눴다. 학교와 삶, 그리고 혁신에 대해…. 우리 학교가 가야 할 방향은 어디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에 대한 이해와 서로가 갖고 있는 학교에 대한 이해의 공감대를 넓혀 갈 수 있었다. 그리고 혁신 학교 직무 연수에 모인 다른 학교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동안 우리 학교가 진행시켜 온 변화와 방향을 봤을 때, ‘제대로 가고 있구나!’를 새삼 깨닫는 시간이 되기도 하였다. 내가 보기에 그 해 새로 부임한 교감 선생님은 뭔가 열심히는 하고 있지만 분주하고 정신없는 학교 모습에 혼란스러워 하셨다. 교무부장님은 교장 선생님 부임과 함께 발령받아 오셨는데 학교의 변화 과정을 쭉 지켜본 분으로서 변화의 방향에 충분히 공감하셨지만 그 방법이나 속도에서 교장 선생님의 생각에 100% 동의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답답해 하셨다. 체육 선생님은 학교 경영의 방향에는 공감하고 있었으나 교장 선생님의 업무 처리 방식에는 상당한 문제의식을 갖고 계셨던 것으로 알고 있고, 마지막 한 분은 학교 변화를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놓으며 변화를 추동하고 있었다.

 내 입장에서 이 분들을 생각한 것이기는 하지만, 이것은 내가 이분들과 일을 추진해 가면서 갖고 있던 두려움과 염려, 그리고 조심스러워 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4박 5일 동안 다섯 명이 모여 나눈 이야기 속에서 나왔던 학교 변화에 대한 다양한 그림과 소망을 이해한 순간, 그러한 두려움과 염려가 상당 부분 사라졌다. 얼마든지 이 분들과 내 생각을 나누고 공유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 연수의 마지막 날 밤 교무부장님이 툭 던진 “우리 개학하기 전 번개 한 번 하자! 모여서 2학기 이야기 좀 하자!”라는 제안에 그 해 2학기 학교생활이 달라지기도 하였다. 그분이 내 맘속에서 학교 변화의 주체로 서는 순간이었다.  

이런 기회는 그 해 겨울 또 한 번 있었다. 동료 교사 9명이 떠난 일본 배움의 공동체 학교 탐방에서 우리 학교 선생님들은 밤마다 모여 아이들에 대해, 수업에 대해, 학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호텔 방에서 나누었던 이야기들이 올 해 덕양중을 움직이는 핵심 사업이 되었고, 그때 생긴 동료 의식이 2011년을 끌어가는 덕양중의 힘이 되고 있다. 한 달에 한 번씩 진행되는 공개수업연구회는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지켜지고 있고, 중간에 공개 수업을 중단해 버린 수업에서도 교사들은 자신이 배운 점을 말하고, 관찰한 학생들의 반응을 말하고 있다.


여럿이 함께 만들어 가는 학교

 일련의 여러 일들을 돌아보면서 또 한 번 생각한다. 학교의 변화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첫 변화는 변화를 더 많이 갈망한 사람들이 만들어 낸다. 변화를 갈망했던 사람들이 교장으로, 초빙 교사로, 내신을 내고 그 학교에 들어갔다. 그들은 그곳에서 변화의 씨앗을 뿌리고 스스로 거름이 되고, 작은 열매들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그들이 만들어 낸 변화는 그들만의 변화요 진정한 변화는 아니다. 그저 학교 안에 다른 두 문화가 있을 뿐, 그것을 학교의 변화라고 말하지는 못한다. 그것을 변화라고 말하는 순간 다른 한 쪽에서는 ‘정말? 진짜? 우리 학교 변한 것 맞아?’라는 말이 나온다. 학교가 진정한 변화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른 한 쪽을 변화의 길로 초대하는 일이 수반되어야 한다. 첫 번째 일어났던 변화를 함께 공유하고, 그 취지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 내고, 나아가서는 학교 변화의 주체로 그 분들을 세워 나갈 수 있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나의 생각이 반드시 옳다는 보장도 없기 때문에 다른 분들의 교육적 열정이 결코 거짓된 것이 아니라는 믿음만 있다면 그 분들과의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그분들에게도 배울 것이 있음도 생각해야 할 것이다. 내가 먼저 배워야 그 분들도 마음을 열고 나와 함께 배우지 않겠는가? 예수님 말씀이 다 옳지, 내 생각이 다 옳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이야기하다 보니 결국 필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으로 귀결된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빌2:3)



 시간이 필요하다. 함께하는 시간이 깊어질수록 변화의 힘은 더 커진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하나씩 하나씩 변화의 동력을 만들어 가면서 진리와 함께하면 조금이나마 빛이 보일 것으로 기대한다. 아직 덕양중이 가야 할 길이 멀다. 먼 만큼 동료들과 함께해야 할 시간이 더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