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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산책

무엇이 그들을 움직였는가?


한병선의 아름다운 유산 5
무엇이 그들을 움직였는가?


뉴먼(NEW MAN) 선교사

 미국에 도착한 첫날 이루어진 루이스 선교사님과의 깊은 만남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일찍 월셔에 있는 아주사 페스픽 대학을 찾았다. 한국에서 30년 넘게 선교사 생활을 하셨다는 분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뉴먼 선교사란 분인데 이곳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는 교수로 재직하고 있고, 한국어를 아주 잘한다고 했다. 그분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없어 막막했는데 막상 만나 보니 정말 놀라웠다. 30년 넘게 한국에서 선교하셨다고 해서 백발에다 몸이 좀 불편하신 70대 할아버지라 생각했는데, 만나 보니 50세가 좀 넘은 분이셨다. 아주 젊었다. 선교사님은 스무 살이 되기 전에 한국에 와서 그때부터 사람들에게 전도를 하셨다고 한다. 아주 잘생기고 젊어 보이는 점잖은 선교사 출신의 교수셨다. 게다가 한국어까지 아주 잘하는 분이셨다.


한국과의 인연

 그곳 도서관에서 이루어진 인터뷰는 시종일관 화기애애했다. 뉴먼(NEW MAN) 선교사님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섬으로 선교를 가야겠다는 소명이 생겼다고 한다. 섬을 생각한 이유는 섬은 고립되어 있어, 누군가 복음을 전하러 가야만 그들이 복음을 들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섬이 많은 인도와 홍콩을 생각하고 YM을 통해 선교사로 나가려고 준비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한국에 한 달간 놀러 올 수 있는 시간이 있었고, 가고자 했던 나라에서 거절을 당하자 계속해서 한국에 머물게 되었고 한다. 그것이 1978년도였다. 1년 간 한국에 머물면서 한국어도 배우고 주말이 되면 명동에 나가서 무조건 전도지를 주면서 “예수 믿으세요”라고 외치며 전도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이 1년이 되고 2년이 되고 3년이 되고 4년이 되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만 있다면

 한국에 머물면서 한국에도 섬이 많다는 것을 알고 섬 선교에 나섰다고 한다. 배에서 만난 아저씨가 예수가 누구냐고 물어 봤을 때, 자신이 하나님을 전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감동했다고 한다. 그리고 선교를 위해 더욱 열심히 한국어를 배웠고, 그는 누구보다도 한국어를 빨리 익히고 잘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뉴먼 선교사님에게 왜 그렇게 열심히 전도를 하고 싶었냐고 물었다.

 “그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고, 하나님께서 가장 원하시는 것이에요. 전도하는 것은 제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어요. 그래서 전도하러 다닐 수밖에 없었어요.”

 선교사님의 고백이 나를 참 부끄럽게 했다. 말씀을 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위해 계속 노력하는 것. 그것이 자신의 삶에 있어 가장 큰 이유가 된다는 말. 내 욕심으로, 내 생각으로 모든 것을 이끌어 가는 것에 익숙한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단순하게 사는 뉴먼 선교사의 모습은 큰 도전이 되었다.


내 삶의 모태는 한국

 선교사님은 함께 일하던 한국인과 결혼하시고 한국에서 안수도 받고 영어를 가르치는 일도 하셨다고 한다. 지금은 미국에 와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신학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계신다.

 그는 한국이 자신을 입양했다고 했다. 한국이 자신을 키워 주고 세워 주어 자신의 삶의 모태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한국 사람들과 함께 살고 한국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

 외모만 외국인이지 정말 한국인을 만난 것 같았다. 함께 기도하고 마치면서 잔잔한 감동이 있었다. 같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깊은 동질감을 주는지 마음이 따뜻했다. 전 세계에 동지들이 있다는 것이.


네버 엔딩 스토리

 우리는 점심을 간단히 먹고 김인수 총장님을 만났다. 김인수 총장님은 장로회 신학교에서 교회사를 가르치신 분이셨고, 특히 한국 초기 선교사들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하셨던 분이다. 지금은 은퇴 후 미국에 와서 총장을 하고 계셨다. 이분을 만나기 위해 사방에 연락을 해서 어렵게 시간을 잡을 수 있었다.

 총장님은 우리를 정말 기쁘게 맞이하셨다. 김 총장님은 주변에 있는 선교사들의 에피소드를 말씀해 주셨는데 아주 유쾌한 시간들이었다. 우리는 한국에 온 초기 선교사들에 대한 잊고 지내 온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그 중 헤론 선교사 이야기가 마음에 남았다. 헤론 선교사는 뛰어난 의사였고 최고의 수재였기에 뉴욕 병원에서 교수로 남기를 청했지만 그는 한국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이 땅에 왔다. 그는 매일 너무 많은 환자를 돌보느라 오후 4시가 넘어서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진료는 밤까지 계속되는 날이 많았다고 한다. 그는 한국에 온 지 5년 만인 34살의 젊은 나이로 쓰러졌다. 그의 죽음을 슬퍼한 고종 황제가 내어 준 땅이 양화진이고, 그는 그곳에 최초로 묻힌 선교사가 된다.

 헤론 선교사처럼 우리가 빚진 너무 많은 선교사들의 잊고 지내 온 이야기가 계속되었다. 할 수 있는 한 이 지면으로 그분들의 삶을 불러내 힘들어 하는 한국 교회에 한국 교회가 처음 걸었던 길을 회복하게 하고 싶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