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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산책

교사의 성장은 어디에서 오는가?


학교가 학교에게 2
교사의 성장은 어디에서 오는가?

김 영 식


“길 어떨까? 길?”

“길? 오, 괜찮아요. 사회과에서는 비단길, 바닷길, 초원길 등을 주제로 해서 문화가 오가는 길에 대해 다룰 수 있어요.”

“과학도 할 만한 내용이 있어요. 우리 몸의 순환 계통으로 해서 피가 움직이는 길에 대해 수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국어도 길을 소재로 한 작품을 다룰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영어도 길에 대한 텍스트를 찾아보면 되니까.”

“집도 있다. 집이라는 주제도 괜찮지 않아요?”

“그렇죠. 1학년 사회에 여러 나라의 집을 다룰 수 있어요. 기술ㆍ가정에서는 주택 건축에 대한 단원도 있고요.”

“과학은 뭘 해야 하나? 동물들의 집?”


보건과 과학이 만났을 때

 지진을 주제로 과학과 보건이 교과 통합 팀티칭 수업을 해보았다.지난 2010년 12월, 서오릉 근처에 있는 보리밥 집에서 덕양중 선생님들 간에 오갔던 대화의 내용이다. 당시 우리 학교 선생님들은 교과 통합 수업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각 교과에 있는 공통적인 주제를 수업으로 풀어 보자는 이야기였다. 보통 통합 수업 하면 인권이나 다양성 같은 큰 주제를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정작 그 주제를 수업으로 풀어내려 하면 교사들은 방향을 잃고 헤매기 일쑤다. 주제가 너무 넓다 보니 1시간 동안 어떤 수업을 해야 할지 막막해지는 것이다. 그러다 우연히 식사 자리에서 주제를 좁게 잡아 보자는 말이 나왔고, 그 속에 ‘길’, ‘집’, ‘심장’, ‘별’ 등 다양한 주제가 나오게 되었다.

 지난 3월 전 세계인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일본 동북부 대지진이 일어나고 나서, 교무실에서 ‘지진’을 가지고 수업을 한번 해 보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과학 선생님이 먼저 1학년 2학기에 예정되어 있던 지구 내부 탐구 수업과 지진 단원을 앞당겨서 수업을 진행하였다. 수업 내용 중에 포함되어 있던 지진 발생 시 대피 요령 학습 단원에서는 보건 선생님과 함께 수업에 들어가서 보건 선생님이 주 수업을 이끌고, 과학 선생님은 중간 중간에 개입하는 일종의 팀티칭 수업을 진행했었다. 이 수업도 식사하면서 수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팀티칭 하면 좋을 것 같다’는 말 한마디에 이루어진 것이다.



성장하지 않는 수업

 교사 학습 공동체 구축을 위한 교사 전문화 연수교직을 소명으로 알고 교단에 들어온 교사들은 별일이 없는 한 정년퇴직을 할 때까지 약 30여 년을 교직에 몸담게 된다. 교사 직분을 감당하면서 가장 큰 고민은 초임 때 수업하던 것과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난 지금 수업을 하는 것에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그 말은 교사가 성장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경험이 쌓여서 아이들을 잘 통제할 수 있는 요령은 많이 가지게 되었을지는 모르나 수업의 내용을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잘 가르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늘 자신이 없다.

 덕양중학교를 좋은 학교의 모델로 만들어 보자는 일을 시작하면서 가장 중요한 일 중의 하나로 생각했던 것이 교사 학습 공동체 구축을 통한 교사의 성장이었다. 이를 위해 2008년부터 시작된 전문화 연수는 3년 동안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많게는 1년에 20회(50시간), 적게는 12회(36시간)의 연수를 진행하는 동안 교사들은 협동 학습, 강풍법, 에니어그램, 교사 역할 훈련 등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험담의 동료성에서 성장의 동료성으로

 학교에서 연수를 진행하면서 얻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수확은 실제 배운 내용보다 수업과 아이들에 대해 교사 공동체 전체가 함께 논의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단순한 푸념을 넘어 대안을 찾고, 실천해 보고 반성하는 시간들이 점점 늘어나게 되면서 내 옆자리의 동료를 내 성장의 지지대로 생각하게 된 것이다. 나의 성공뿐만 아니라 실패까지도 나눌 수 있는 공동체 안에서 교사들은 나의 수업을 공개하고, 수업 진행에 대한 조언을 구하며, 나의 수업 시간이 아닐지라도 기꺼이 함께 수업에 들어가 팀티칭을 진행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관리자와 동료 교사, 학생들을 함께 험담하던 ‘험담의 동료성’이 이제 나의 수업을 어떻게 발전시켜 가며, 내가 맡은 아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이를 어떻게 도울 것인가를 고민하는 ‘성장의 동료성’으로 발전한 것이다. 학교 혁신의 핵심에는 교사 문화의 혁신이 있고, 혁신된 교사 문화의 핵심에는 진정한 의미의 동료성 구축이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함께 배워 가는 동료성

 지난 2010학년도에 덕양중에서는 창의적 재량 활동과 특별 활동을 통합해서 2009 개정 교육 과정에서 요구하는 창의적 체험 활동을 1년 먼저 시행해 볼 수 있었다. 환경 활동가와 연계해서 진행한 습지 체험, 월드 비전을 초청해서 1박 2일로 진행했던 기아 체험 활동, 국어 교과와 연계한 봉평 문학 체험, 사회 교과와 연계해서 진행했던 그리스 박물관 탐방, 전통 도자기 체험 등.

 국어과와 연계한 봉평 문학 체험 학습작년 1년 동안 창의적 체험 활동을 진행하면서 늘 좋은 결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많은 예산과 에너지를 투입해서 진행한 프로그램에 불성실하게 참여하고, 뭐든지 보는 둥 마는 둥의 태도로 일관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실망한 적도 있다.

 그러나 그 어떤 교사도 이를 부정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았다. 왜 일을 그런 식으로 진행했는지 지적하는 관리자도 없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교사들은 1년의 활동을 스스로 반성하면서, 2011년도의 계획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체험 활동의 규모를 줄이면 어떨까?’, ‘좋다. 학년별로 계획을 세워 보자’, ‘교과와의 연계성을 좀 더 살려서 사전에 미리 계획해 보자’, ‘아이들이 어떤 활동을 할지 미리 알 수 있도록 Worksheet를 잘 만들어 보자’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왔다. 학생들에게 의미 있는 경험을 갖게 하고, 그것을 자신의 배움으로 만들어 표현하도록 만들어 가는 체험 활동의 필요성을 교사들이 모두 공감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였다. 또한 체험 학습 전체를 교사들에게 맡겨서 교사들 스스로 고민하게 만들어 준 학교 경영자의 리더십과 이를 담당자 한 명의 일이 아닌 전체 교사가 함께 아이들의 배움을 고민해야 하는 일로 받아들이는 동료성이 만들어 낸 합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교사는 어떻게 성장해 가는가? 사람들마다 다르기 때문에 한마디로 정리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러나 현재 우리 학교에서 선생님들끼리 만들어 가고 있는 이야기 속에서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요즘 많이 배우고 있다고. 일하면서 나도 모르게 성장해 가는 것 같다고. 교육 과정의 운영을 교사들에게 맡기고 고민하게 만드는 리더십과 든든한 신뢰 관계 속에서 함께 배워 가는 동료성. 이 둘의 연합 속에 교사들은 조금씩 성장해 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