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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산책

혁신 학교는 생활 지도 어떻게 해요?


창의적 만행을 벌하노라

요즘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혁신 학교에서 학생 부장으로 3년째 근무하고 있다 보니 그 학교는 도대체 생활 지도를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 특히 내가 근무하는 덕양중학교가 언론에 자주 소개되다 보니 가끔은 언론 매체로부터도 체벌이나 학생 인권 문제에 대해 현장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요청을 받기도 하였는데 그 때마다 나는 궁색한 변명을 하며 거절하거나 다른 혁신 학교를 소개하는 것으로 대답을 피해 왔다.

그리하여 이번 글은 요즘 인권 조례와 관련하여 말도 많고 걱정도 많은 생활 지도의 방향에 대해 내가 나에게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정리해 보는 글이다. 이 질문을 던지기가 무섭게 떠오르는 나의 자화상이 있다. 나는 그동안 우리 아이들이 저지르는 그 파격적이고도 창의적인 만행들에 진저리를 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학생 부장이라는 자리는 만행을 저지르고도 도무지 반성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괘씸한 녀석들의 치부를 낱낱이 밝혀 정의를 세워야 하거나 혹은 눈부신 카리스마를 발휘해 몇 마디의 말로 아이들을 제압하고 다시는 그런 만행을 저지르지 못하도록 혼을 내야 하는 자리라고 괜스레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서 아이들을 대해 왔던(만나 온 것이 아닌) 것이다. 글을 시작하자마자 그동안 이렇게 내 속에 도사리고 있던 나의 페르소나를 발견하게 된다.

우리 학교의 생활 지도에 대해 혹자는 ‘그 학교는 체벌에 대한 어떤 대안을 가지고 있느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어 온다. 이 질문에 대해 시원하게 내놓을 수 있는 비법이나 묘수 같은 것은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교장 공모제 및 혁신 학교 4년차에 접어드는 올해부터 특히 탄력을 받기 시작한 ‘덕양중학교 배움의 공동체’를 통해 나를 비롯한 우리 학교의 많은 선생님들은 새로운 차원의 생활 지도에 대해 눈을 떠가고 있는 것 같다.



소통의 역량

사실은 굳이 혁신 학교가 아니어도 이 땅의 모든 학교와 교사들은 생활 지도에 대한 정답을 이미 알고 있다. 실효성 있는 생활 지도가 이루어지기 위해선 학생 부장 혹은 학생부 교사들만으로는 어림도 없다는 것을, 담임 교사를 비롯한 모든 교사들이 힘을 합쳐 매달려야만 아이들을 제대로 감당해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이 땅의 모든 학교들은 익히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체벌에 대한 대안이 무엇이냐는 질문은 사실 썩 그리 훌륭한 질문이 되지 못한다. 이 질문은 “학교가 어떻게 하면 (교사들의 뜻과 생각을 모아) 아이들을 변화시킬 수 있느냐?” 하는 질문으로 수정되어야 한다. 그러고 보면 이 질문은 아이들의 변화와 성장에 대한 열쇠를 쥐고 있는 교사들의 뜻과 생각 그리고 실천을 어떻게 모아 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물음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생활 지도의 관건은 체벌 가능 여부가 아니라 학교가 교사들끼리 또 학생들과의 사이에서 얼마나 소통해 낼 수 있느냐 하는 학교의 ‘소통할 수 있는 역량’의 문제라는 것이다. 교사 개개인이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는 학교에서는 체벌이 아닌 그보다 더 강력한 수단을 손에 쥐어 준다 하더라도 실상은 그것으로 아이들의 삶과 인권을 억압할 뿐 아이들에게 아무런 영향력도 발휘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교사 개인만으로는 반짝 용기를 내서 분발하다가도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들의 모습 앞에서 좌절 혹은 분노하다가 결국에는 무력감 속에 나가떨어지게 되고, 또 그렇게 한번 꺾인 교사들이 모인 교무실은 자칫하면 아이들에 대한 성토장으로 전락하기가 쉽다. 그래서 우리 덕양중학교의 생활 지도 방식은 아이들을 변화시키기 위해 학교 전체가 움직이는 집단 지도 방식이다. 전원 공격, 전원 수비를 외치는 토탈사커처럼 모든 교사 나아가 학교 전체가 아이들의 변화와 성장을 위해 움직이는 것이다. 하지만 그 중심에 생활 지도를 놓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배움’을 둔다. 이는 다들 아는 바와 같이 사토 마나부 교수가 주장하는 배움의 공동체 운동에 대한 동의와 공감에서 시작되었고 특히 올해 겨울 방학을 이용해 우리 학교 대부분의 교사들이 참여한 일본 배움의 공동체 연수를 계기로 더욱 탄력을 받게 되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생활 지도의 첫 번째 관문은 그 내부 구성원끼리 얼마나 소통할 수 있는가 하는 소통의 역량이 관건이다. 이번 호에서는 지난해 인권 조례 통과를 앞두고 많은 학교들이 홍역을 치렀고 우리 학교 또한 어렵게 헤쳐 나온 생활 규정 개정의 한 사례를 되짚어 봄으로써 지금도 여전히 이 사안이 진행 중인 학교들에게 조금이나마 참고가 되기를 바란다. 



더딤과 기다림

우리 학교의 경우, 생활 규정 내용 중에서도 학생, 학부모, 교사들의 요구 및 의견이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용의 복장과 관련한 협약을 정하는 데만 지난 1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 시간 동안 수차례의 학급 회의를 통한 학생 여론 수렴, 설문 조사, 그리고 두 번의 전체 공청회 등이 열렸는데 이미 시행 중인 두발 자유화를 제외한 염색, 파마, 화장, 복장(특히 치마)등등 학교가 자체적으로 내부 구성원들의 의견을 모아 정할 수 있는 사안에 대해서 학생, 학부모와는 말할 것도 없이 교사들 내부의 의견을 모으는 것만도 정말 진을 빼는 힘든 과정이었다. 각기

교사들이 가진 가치관이나 성향은 좀처럼 쉽게 바뀌지 않고 끝없이 평행선을 달리는 듯해서 어느 한 사안도 쉽게 결정되는 법이 없었다. 급기야는 모든 선생님들께 그린, 옐로우, 레드카드를 한 장씩 나눠 드리고 각각의 사안에 대해 그린카드(허용), 옐로우카드(조건부 허용), 레드카드(불가)로 자신의 생각을 밝혀서 거기에 대한 반론, 재반론을 듣고 다시 카드를 통해 의견을 모으는 과정까지 거치고서야 겨우 교사들의 의견을 정리할 수 있었다.

이렇게 정리된 안을 가지고 다시 학생, 학부모와의 최종 공청회를 거쳐 나온 안을 살펴보면 염색, 파마, 비비크림, 장신구 등에 대해서는 개인의 신체 자유 및 표현 욕구를 존중하여 받아들이되, 자신의 신체에 해를 가하는 피어싱, 써클렌즈 등은 금지하였고 교복을 변형하여 짧은 치마를 입고 다니는 것 또한 치열한 토론 끝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렇게 의견을 모은 외모와 관련한 내용 이외에도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는 학교 폭력, 흡연, 집단 따돌림 등의 행위를 절대하지 않을 것이며 어떤 경우에도 배움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학생들의 약속을 담고 교사들 또한 학생들의 배울 권리를 존중하여 가르치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고 체벌보다는 대화와 상담으로 학생들을 지도하겠다는 약속 등을 분명히 명시하여 개학 첫 날 전교생이 모인 자리에서 교사, 학생, 학부모 대표가 모여 덕양중학교 공동체 생활 협약서 조인식을 가졌다.

비록 이런 과정들이 더디고 때로 힘겹지만 이런 더딤과 기다림이 뒤로 갈수록 결국에는 더 힘이 세다는 것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