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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산책

쿨한 사랑 VS 헤픈 사랑

쿨한 사랑 VS 헤픈 사랑

  

얼마 전 무심코 메일을 검색하던 중 발견한 한 통의 편지가 저를 다시 이 지면으로 불러낸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편지는 조은하 선생님의 마지막 원고 청탁과 함께 편집장으로서 고별사를 담고 있는 메일이었습니다.

덕양중학교로 옮긴 직후 문화 산책은커녕 문화의 향기나 냄새조차 맡을 수 없을 만큼 모질고 팍팍하게 굴러가는 일상의 삶을 개탄하며, 살아남기 위해선 외부와 연결된 대부분의 고리들을 차단해야 한다는 굳은 마음을 먹고 일방적인 절필을 선언한 이래로 마음 한 켠에는 조은하 편집장에 대한 어떤 빚진 마음 내지는 고마운 마음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여전히 졸필을 면하지 못하는 원고를 마감에 쫓겨 거칠게 넘길 때에도 긍정적인 피드백을 잊지 않아 필자의 자존감을 세워 주었고, 넘겨받은 글을 그냥 그대로 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생략된 제목을 달아 내거나 2% 부족한 글을 채워서 하나의 꼭지를 정성스레 다듬어 내는 모습들을 볼 때마다 느꼈던 고마움들이겠지요.

원고를 청탁할 때도 그냥 원고만 달라는 메마른 요구가 아닌, 따뜻한 감성과 나눔이 묻어나는 한 편의 세련된 에세이와 같은 글을 통해 필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을 보며 ‘아! 학급 운영도 이렇게 하는 거구나!’ 하는 자극도 받곤 했습니다. 그러다 학교에 좀 적응이 되고 상황이 나아지면 다시 원고를 재개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고 한번 노력해 보겠다는 두루뭉술한 약속을 했지만 지키지 못하고 있던 터였기에 그 메일을 읽자마자 주저 없이 고별 원고를 드리겠다는 선명한 약속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서 다시 글을 써야겠다고 저를 다짐케 한 사건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중3 연합고사를 마친 우리 학교 아이들의 중3 특별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제가 아끼고 아껴 온 영화들을 보여 준 일이었습니다. 중3 아이들에게 고입의 마지막 관문인 연합고사만 끝나면 정말 감동적이고도 우리 아이들이 쉽게 접할 수 없는 작품들을 한번 소개해 주리라 마음먹었고 그렇게 실행에 옮겼건만, 결과는 저의 기대를 완전히 배반하는 실패였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영화를 관람하던 교실에서 제가 목격한 장면은 마치 어두컴컴한 사우나의 수면실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참혹한 풍경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우리 아이들에게 영화란 ‘보면서’ 쾌락을 즐기는 대상인 동시에 ‘읽고 생각하면서’ 더 큰 즐거움과 환희를 느낄 수도 있는 대상이라는 것을 가르쳐 줄 수 있는 스크린 리터러시(screen literacy)에 대한 안내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 소개하려고 하는 <가족의 탄생>은 그때 중3 특별 프로그램의 일부로 추천해서 아이들에게 소개했던 영화였습니다.

가족의 탄생

이 영화를 처음 만난 것은 유네스코 한국 - 호주 영어 교사 연수에서다. 문화 교류의 일환으로 호주의 애버리진(원주민) 문제를 다룬 독립 영화를 한 편 먼저 보고 열띤 토론이 오고간 뒤였기에 과연 한국의 영화로는 어떤 작품이 소개될지 무척 궁금한 마음으로 이 낯선 영화를 만나게 되었다.

영화는 기차간에서 처음 만난 경석(봉태규 연)과 채현(정유미 연)의 풋풋한 만남으로 시작된다. 이 싱

그러운 커플의 만남이 성공한다면 바야흐로 또 하나의 가족이 탄생하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마치 기찻길을 거꾸로 달리던 <박하사탕>의 한 장면처럼 시간을 확 거슬러 올라가 그네들이 아닌 그들의 가족을 먼저 만나게 한다. 이렇게 우리가 만나게 되는 가족들은 안정된 가족이라는 틀에서 거리가 먼 존재들이다. 이들 대부분은 자신의 가족들에 대해 화가 나 있는 듯하며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고 항변한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우리 아이들에게 꼭 소개하리라 그때부터 이미 마음을 먹고 있었다. 왜냐하면 이 영화 속의 가족들은 어딘지 모르게 내가 근무하는 학교의 아이들과 또 그들의 상황과 많이 닮아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렇게 비정규직처럼 불안정하고 미래가 불투명한 이 가족 관계 속에서 가장 크게 신음하는 존재는 선경(공효진 연)이다. 선경은 사회생활을 통해 만나는 사람들에게 쾌활, 명랑하고 싹싹한 겉모습을 하고 있지만, 끊임없이 바람을 피우는 엄마를 비롯한 자신의 가족들만 보면 올라오는 화를 참을 수 없다. 선경은 마치 복수라도 하듯 우악스럽게 굴며 그들의 마음에, 그리고 자신의 마음에 끊임없이 생채기를 낸다. 선경이 자신의 집으로 찾아온 엄마, 자신의 남자 친구, 엄마와 바람을 피우는 아저씨 등을 문밖으로 몰아내는 반복적인 장면들은 의미심장하다. 선경은 이렇게 가족들을 ‘배척’함으로써 그 구질구질한 부대낌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어 하지만 그런 선경의 일상은 고립되어 있으며 쓸쓸하다. (이런 분노 → 배척 →고독으로 이어지는 사이클은 공효진이라는 배우의 훌륭한 연기력에 힘입은 바 크다.)

그런데 선경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또 다른 인물이 있는데 이는 바로 채현이다. 그녀는 호적 등본이나 주민 등록 등본 같은 것으로는 자신의 출신이 확인이 안 되는, 말 그대로 굴러굴러 들어온 아이다. 하지만 채현은 이런 자신의 ‘부모의 부재’ 혹은 출신에 대한 콤플렉스로부터 상처받거나 아파하지 않고, 굴러다니던 자신이 받아들여지게 된 그 누군가의 ‘헤픔’을 흡수해서 체화시켜 버린 존재다. 그녀에게는 울타리나 경계에 대한 인식이 희박하며 그녀는 어른이든, 아이든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 따라 언제든 자신의 역할을 거기에 맞출 수 있는 카멜레온과도 같다. 그 결과 채현은 ‘헤픈 여자’라는 비난을 피하지 못하며 이런 채현의 넓은 오지랖은 자신의 여자 친구라는 분명한 바운더리와 경계를 원하는 경석과의 사이에서 계속해서 부딪히며 서로 상처를 주고받는다. 연인이든 부부든 계속해서 동일한 문제로 부딪히는 것을 놓고 보면 많은 공감을 불러내는 대목이다.

하지만 영화의 엔딩 부분에서 경석이 채현의 집을 방문하게 되고 그곳에서 채현보다 몇 술 더 뜨는 채현의 엄마들(!)로부터 따뜻한 환대를 받는 장면은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가 가장 가슴 따뜻하게 전해지는 명장면이다. 이 헤픈 채현의 가족들을 통해 경석은 자신을 그토록 힘들게 했던 채현의 넓은 오지랖의 원형을 진하게 경험하게 되는데 다행히 이번에는 그가 소외되거나 희생되지 않고 오히려 그 끈적하고 헤픈 ‘환대’의 주인공이 된다.

밥상머리에 둘러앉은 이들을 배경으로 밤하늘에 터지던 불꽃들은 경석과 채현 두 사람이 오랜 부대낌의 시간들을 벗어나 서로의 심층을 형성하고 있는 것들을 이해하게 되는 순간 - 즉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느냐?”는 자폐적인 항변을 벗어나 “아! 이래서 네가 그렇구나!”를 알게 되는 순간 - 비로소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된 새로운 가족의 탄생을 알리는 축포와도 같은 것이다. 여기에 이 영화의 상쾌함과 희망의 메시지가 있다.

이때 채현의 입에서 너무도 자연스럽게 튀어나온 ‘엄마들’이라는 단어는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마법과도 같은 말이다. 그녀는 부모의 부재를 상처로 받아들이거나 혹은 자신의 뼈대 없는 정체성에 결코 집착하지 않는다. 대신 혈연에 개의치 않고 자신에게 헤픈 마음의 정을 건네 온 낯선 이들을 ‘엄마들’로 받아들여 버림으로서 새로운 가족을 탄생시킨 것이다. 자신의 핏줄을 찾아 그 가족 속으로 편입되려는 시도는 생각조차 없어 보인다.

(잠깐 샛길로 빠지는 말이지만 채현에 비해 우리는 어린 시절이나 지금이나 자신에게 결여된 것들, 혹은 부재하는 것들에 대해서 얼마나 집착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그런 것들을 상처 혹은 트라우마라고 부르면서)

  진정한 가족 탄생의 비밀

이 영화는 우리가 너나 당연히 여기는 혈연 혹은 혈통 중심의 가족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면서 무엇이 진정한 가족의 탄생을 가능케 하는 핵심인지 그 실마리를 던져 주고 있다. 그 실마리는 세상의 모든 가족이 탄생하게 되는 비밀에는 그 누군가의 헤픈 마음이 녹아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우리를 이끈다. 자신에게로 오는 관계들을 그렇게 배척하던 선경이 결국 자신의 이복동생인 경석을 거두어 키우고, 형철과 무신이 채현을 거두어 키우고, 또 미라가 그런 그들을 통째로 받아들이는 만남들 속에도 이 헤픈 사랑의 미학이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우리에게 이 시대에 인정받지 못하는 헤픔의 가치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이어 가게 한다.

 헤프다는 것은 촌스럽거나 비합리적인 것이라 여겨지며 세상은 ‘쿨한’ 것들에 대한 믿음으로 넘쳐 난다. 쉽게 만났다 입맛에 맞지 않으면 쉽게 헤어지는 요즘 우리 아이들의 사랑의 방식은 얼마나 쿨한가? 아이들만이 아니다. 아마 교사인 나 또한 학급에서 내 자존심을 다치지 않는 쿨한 사랑의 방식으로 괜히 쓸데없는 헤픈 사랑을 아이들에게 쏟아붓지 않도록 단속해 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 보면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한 이면에 숱한 헤픈 사랑이 있었다. 지금도 제 한 몸 돌보기보다는 육아에 매진하는 우리 주변의 숱한 헤픈 엄마들을 보라! 우리는 다만 그 헤픈 사랑을 혈연이라는 울타리 속에 가두어 두고 있을 뿐이다.

기독 교사인 나에게 이 영화는 교사로서의 나의 한계와 허접스러움 또 내 가슴 밑바닥에 퇴적된 그 숱한 죄성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것들을 고백하고 그분 앞에 나갈 때마다 끝없이 받아 주시는 우리 헤픈 하나님의 헤픈 사랑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한다. 그러고 보면 이 세상에서 가장 헤프게 오가는 말도 사랑이려니와 사랑의 본질 자체가 헤픔이 아닐까!

 2011년 새롭게 시작하는 학기에는 좀 더 헤픈 교사가 되어야겠다.

이병주의 문화 산책 201년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