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화 산책

열정은 모든 일의 시작이다

 

한병선의 아름다운 유산 2

열정은 모든 일의 시작이다



궁금함과 기대감 사이

 
 

 

  그렇다. 나는 새로운 일을 기획하였다. 한국에서 사역하다 은퇴한 미국 선교사들을 찾아가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 삶을 영상으로 담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나는 이 프로젝트를 생각만 해도 가슴 떨렸고 그 내용을 상상만 해도 행복했다.

그들은 왜 한국에 왔는지, 와서 어떤 일을 했는지, 당시의 한국은 어떤 상황이었는지, 그런 상황 속에서 그들에겐 어떤 고민이 있었는지, 그리고 그들의 아픔은 무엇이었는지. 궁금증이 꼬리를 물었다.

나는 몹시 궁금했다. 그들이 받은 소명은 무엇이었으며, 그 소명이 얼마나 크고 의미 있는 것이었으면, 그들의 나라를 떠나 머나먼 한국 땅까지 오게 하였을까? 대체 그들에게 복음이란 어떤 것이었을까? 궁금함을 넘어 기대감이 생겼다.

궁금함과 기대감 사이에서 나는 이 프로젝트를 현실적으로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했다. 과제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어떤 내용을 어떻게 담아야 하는지 그 기준을 잡는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미국을 오가야하는 이 프로젝트를 위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해야 하는 가였다.



공상과 현실 사이


언제나 그렇듯 공상은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아주 달콤하고, 기분 좋게 한다. 나는 공상 혹은 상상 또는 희망도 모두 같은 말인 것 같다. 공상은 우리를 순간적으로 혹은 당분간 행복하게 하지만 결국은 차디찬 현실의 바닥 속에서 깨어지는 것이 공상의 운명이다. 나는 이 달콤한 공상이 상상으로 그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현실적 대안을 마련해야 했다.

먼저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담을까를 고민했다. 우선 노스캐롤라이나에 있는 은퇴 선교사분들의 명단을 입수하고 그들이 갖고 있다는 자료가 어떤 것인지 확인하는 작업을 했다. 은퇴 선교사분들이 가지고 있는 자료가 가치 있는지를 확인하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이를 위해 이 분야에 가장 정통하고 권위 있는 학자가 누구인지를 알아내서 이들로부터 자료를 검증받고 자료를 보완하는 작업을 하기로 했다.

먼저 자료를 받는 것과 더불어 학자를 찾는 일에 주력했다. 주위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만열 교수님을 꼽았고 더불어 호남신학대 차종순 총장님을 추천했다. 이 두 분은 한국 기독교사 연구에 가장 권위 있는 분이며, 이 분야에서 가장 많은 자료를 갖고 계시다고 했다. 그분들의 많은 경험과 더불어 그분들의 삶 자체가 아름다운 유산이라며 적극 추천해 주셨다.

이만큼 일을 진행하기까지 주변의 친분이 있는 신학자들의 도움이 컸다. 나는 이분들에게 자료를 받거나 취재를 해야 했다. 그때 내가 가진 자료들은 너무 보잘 것없는 것이어서 검증받을 만한 것조차 없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정보는 단지 노스캐롤라이나의 블랙마운틴에 은퇴한 선교사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 전부였다. 그분들이 어디서 어떤 일을 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상상에서 현실로 내려오는 계단


나는 용감해져야만 했다. 나를 잘 모르는 분에게 가서 취재 부탁을 하고 시간을 내어 달라고 해야 했다. 그리고 그분이 갖고 있는 많은 경험과 자료를 나에게 달라고 부탁해야 했다. 얼마나 떨리고 부담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나는 상상이 현실이 될 때까지 계단을 만들어야 했다. 상상에서 현실로 내려오는 계단을 하나씩 만들어야 상상이란 녀석이 현실로 한 계단씩 내려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계단도 그냥 만들어지는 일은 없다. 다 시간과 공이 들어가야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것을 알고 있기에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일은 늘 두렵다. 하지만 그러하기에 내가 꼭 해야 되는 포기할 수 없는 일이다.

이만열 교수님과 호남신학대 차종순 총장님께 이메일을 보냈다. 다행히 이만열 교수님은 안면이 있어서 연락을 주셨다. 만나겠다고. 그 대신 강의하는데 왔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북서울 IVF 강의장으로 갔다.

교수님께서는 우선 그쪽에 대한 자료들이 많지 않고 특히 선교사들은 만나본 적이 없다고 하셨다. 나는 내심 불안했다. 하지만 교수님께서는 그곳에 그분들이 살고 계신 것을 알고 있고 그런 프로젝트에 자신도 함께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주셨다. 후배 교수들까지 추천해 주셨다. 아주 대박이 난 것이다. 나는 감히 교수님께 함께하자고 부탁드리기가 죄송했었다. 그런데 함께할 수 있게 되다니…. 이날은 이번 프로젝트가 새로운 지경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는 순간이었다. 부탁하는 일이 내겐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었는데, 그 어려운 마음을 딛고 이 일을 시작한 것에 참 감사했다.

호남신학대 차종순 총장님을 만나러 광주에 갔다. 흔쾌히 시간을 내주셔서 몇 시간 동안 그곳에서 취재를 할 수 있었다. 이분이 갖고 있는 자료는 내가 정말 알고 싶었던 이야기였다. 노스캐롤라이나 블랙마운틴에 살고 있는 분들이 누구누구인지, 그분들이 어떤 일을 했으면 어떤 가치가 있는지를 알려 주셨다. 그리고 자신이 갖고 있는 자료를 맘껏 보여 주셨다.

나는 단지 한발을 내딛었을 뿐인데 하나님께서는 더 큰 걸음을 예비하고 계신지 마음을 다해 호의를 베푸시는 분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내가 상상만 하고 있었다면 그분들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고 한발도 시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단지 한발을 디뎠는데 세상은 이미 내게 열려 있었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