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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산책

절망의 끝에서 기적을 보다

홍인기의 교육 정책 뒷담화 5

절망의 끝에서 기적을 보다


날마다 기적을 맛본다

정책을 다루다 보면 세상의 모든 정책이 철저하게 강자 중심으로 진행되는 것을 너무나 자주 보게 된다. 정책을 생산하는 정치 무대를 한마디로 하면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세계다 . 그런데 이런 현실 상황을 뛰어넘어 약자의 목소리가, 진심 어린 선의가 어느 날 정책에 반영되는 상황을 만나게 된다. 물론 그 사이 관련하여 수많은 약자들의 목소리가 있다. 하지만 정치 구도적인 측면으로 볼 때 전혀 변화의 가능성이 없던 일들이 어느 날 기대하지도 못한 순간에 정책에 반영되거나 관련법이 제정되는 경험을 한다.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느끼는 순간이다.

약한 목소리지만 진실을 담고 있을 때 세력화되지 못한 이 목소리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울릴 때, 그리고 하나님의 개입함이 계실 때 세상은 소리 없이 변한다. 문제는 이 변화를 사람들은 모른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가지고 기도의 자리에 나아가 보지 못한 사람은, 절망의 끝에 서서 주님께 하소연 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기적이 일어나도 그 기적을 볼 수 없다.

 

정책에서의 대박 유혹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가장 큰 유혹은 한 건으로 대박을 내고자 하는 것이다. 학생 인권 조례를 만드는 분들도 사실 인권 문제를 통해 우리 교육이 가지고 있는 평가 서열의 문제와 같은 교육 본질의 문제를 다루고 싶어 한다. 정책을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자신에게 권력이 주어진 시간이 짧기 때문에 더더욱 그런 유혹을 받기가 쉽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다양한 사람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정책의 획기적인 변화에는 반드시 반작용과 부작용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정책이 정책을 기획했던 사람의 손을 떠나 관료 사회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용두사미가 되는 경우가 많다. 여러 가지 정치적 타협이 생기기 마련이다.

강경한 사람들의 경우 획기적인 변화가 되지 않을 경우 차라리 정책을 시행하지 말거나 입법을 하지 말자고 한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을 조금이라도 변화시킬 수 있다면 발전의 발걸음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나도 가끔은 어디까지가 생색내기고 어디까지가 진보인지 구분이 안 될 때도 있다.

 

교육만 봐서는 교육이 보이지 않는다

교육이 경제 다음으로 중요한 국가 이슈가 되고 있다. 교육 정책이라는 것이 단순히 교육만 봐서는 풀리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다. 좋은 대학이 좋은 직장으로 이어지는 학벌 사회에 관한 이야기는 노동 시장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 문제, 외국이나 경쟁이 없는 의료계나 법조계로 고급 인력이 몰리는 국가 인재 정책의 고민 등등 많은 부분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방과 후 교육 활성화를 위해 우수하고 안정적인 강사 인력 확보나 학교 부적응 학생 문제 해소를 위한 상담 인력 확보, 행정 업무 해소를 위한 전담 인력 배치 등은 결국 국가 공무원 확대 문제와 걸려 있기 때문에 국가 차원에서 복지 분야와 교육 분야의 인력을 관리하고 공급하는 사회복지공단의 설립 문제와도 연결된다. 최근 문제가 되고 대학 등록금 문제도 사학의 비리 문제나 대학 구조 조정, 대기업의 대학 등록금 보조 등 예산과 사회 전반에 걸친 다양한 지식이 필요한 일이다.

이렇다 보니 교육 정책을 위해서 기본적인 인문적 지식의 깊이도 갖추어야 하는데, 정말 배워도 배워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희망의 끈은 놓지 않으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