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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 일기

우리들의 연애를 기다리며


담임 엄마의 말랑말랑 연애편지 12
우리들의 연애를 기다리며

이 여 진


너희들은 나의 미래야

 사랑하는 12반.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세상에서 제일 착한 1학년 12반. 고마워. 너희들을 환대하며 한 해를 보내게 해 주어서. 너희들은 내 꿈이고, 나의 현재고, 나의 미래야. (음, 이제 한 1년 듣고 나니, 손가락이 오므라들다가도 그러려니 하고 다시 펴지지? ㅋㅋ)

 가끔 “우리 선생님은 불공평해, 불합리해” 하고 느꼈던 적이 있었다면 미안해. 선생님이 아직 수련이 부족한 어린 교사라 그래. 그래도 애들아, 선생님은 참 열심히 너희들을 좋아하고 마음을 쓰고 그랬다. 이제 조금쯤은 알아줄 거지. ^___^

 학기 초 비빔밥, 김밥, 샌드위치… 가리지 않고 만들어 먹던 당신들의 먹성, 힘쓰는 경기에만 강한 12반의 체육 대회, 꼼지락꼼지락 발 씻어 주기와 파자마 야자 파티, 너희들을 향한 스물아홉 통의 연애편지, 내 최강의 벌칙 ‘앉았다 일어서기’ 지혜 양 달인 되셨음, 백설기로 나의 생일을 경축해 준 여진 탄신일.

 내 마음이 자랐고, 좀 더 따뜻해졌다. 그리고 더 많이 너희들을 좋아하게 되었다. 사랑하는 12반, 사랑할 수 있게 해 줘서 고마워. 우리 함께 사랑했던 이 시간들이, 길에서 뒷모습만 봐도 반가움 뭉클하던 우리 이 모든 순간들이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추억의 힘이 될 것을 믿어.


텅 빈 교실처럼

 사실 올 한 해 너희들을 정말 정말 열심히 사랑해서, 너희들을 보내는 것도, 새로운 아이들을 맡을 일도 엄두가 잘 안나. 뭐랄까? 종업식을 하고 나면 막 애 낳은 임산부처럼, 뱃속이 휑하니 빈 느낌일 것 같아.

 그래도 나는 또 담임을 할 거다. (비담임의 유혹은 정말 매년 초마다 나의 잠자리를 엄습한다만. 아흑) 그리고 또 최선을 다해 내 아이들을 사랑할 거다.  우리 다시 만나지 못한다 해도. ‘하지 말자 뒷담화, 왕따 없는 우리 반’이 다른 반 조회 시간에 들린다 해도 서운해 하면 안 돼.


간절히 살자

 내가 너희들에게 매 순간을 간절히 살라 말했던 잔소리가 거짓말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 나도 최선을 다해 나의 새 한 해를 살 거거든. 그것이 내가 12반을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니까. 나는 너희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생님이 되어야 하니까. 


그러니까 12반. 너희들도 열심히 살아야 해.


사랑할 줄 아는 사람

사랑받을 줄 아는 사람으로

하루하루를 간.절.히. 살아서

너희들이 심어진 자리에서 꽃을 피우길 기도해.

우리 더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 다시 만나자.

언젠가. 다시 또. 반갑게.


연애쟁이 담임 샘의 마지막 편지.

그러나, 戀愛란, 사랑하는 마음.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될

우리들의 연애를 기다리며.


《좋은교사》 선생님께 보내는 연애편지

 1학년 12반과 함께했던 스물아홉 통의 연애편지. 그 마지막 편지를 이번 6월호에 소개해요. 시기적으로 맞지 않아 고민도 됐지만, 남은 6개월을 보다 의미 있게 보낼 수도 있겠다 싶어 용기를 냈어요.

 도종환 선생님은 “교사란 날려 보내기 위해, 잘 떠나보내기 위해 새들을 키우는 사람”이라는데, 저는 어쩜 이리 한결같이 부족한지요. 늘, 항상, 언제나, 촌스럽게도 헤어지는 일이 낯설고 싫어요.

 앞으로 소개할 연애편지는 1학년 12반을 떠나보내고 새롭게 만난 아이들과의 연애담이에요. 1학년 아이들이 좋아 따라 올라갔던 2학년 11반에서는 어지간한 쇼 프로그램을 방불케 하는 다사다난, 파란만장 일상사가 펼쳐졌어요. 더 이상 아이들과의 연애에서 삶의 의미, 인생의 락(樂)을 찾을 것이 아니라 ‘20대 이상의 성인 남자’와의 연애에 심혈을 기울여 봐야겠다 생각하게 한 고마운(?) 11반 아이들. 부끄럽지만 새로운 아이들과의 이야기는 다음 달부터 시작할게요.

 《좋은교사》 선생님. 흔들리며 피는 꽃, 세상의 모든 희망, 5월의 봄비 같은 아이들의 웃음소리 가득 담아 보냅니다. 선생님들이 계셔서 참 고맙습니다.

말랑말랑 담임 엄마. 여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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