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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만남

30대, 절망에서 열망의 씨앗을 찾다(2012.3)

나이가 들수록 두려움보다 기대가 커지는 것 같아요. 더 어렸을 때는 가끔 넘어지는 나를 보는 것이 두렵고 초조했거든요. 그러나 지금은 넘어지는 일과 나의 연약함을 자연스레 받아들여요. 정직하게 직면한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까요? 나를 지으시고, 부르신 분의 지혜와 의지를 믿는 믿음이 자라나서 나타나는 변화예요. 그래서 말인데, 솔직히 전 한 살 더 먹는 게 좋아요.”

 

 

 

 

인천 소양초등학교 김진아 선생님

30, 절망에서 열망의 씨앗을 찾다

 

 

 

 

·김태현

 

 

올해는 30대 초반의 미혼 기독 교사들을 만나면서, 30대 청춘이 갖고 있는 아픔을 담아내려고 한다. 그래서 1, 2월은 총각 기독 교사 박윤환, 손현탁 선생님(이들은 눈 빠지게 현숙한 자매들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다.)을 만나 봤고 3, 4월은 처녀 기독 교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려고 한다. 총각 교사들은 앞으로 이 기사에 더 많이 집중해 주길 바란다.

오늘 만난 선생님은 김진아 선생님이다. 김진아 선생님을 취재 대상으로 삼은 것은, 최근에 실연의 아픔을 겪었다는 이야기를 지인으로부터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기독 교사의 이야기는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새롭게 회심하는 이야기는 많지만, 실연의 아픔을 딛고 일어나는 이야기는 별로 없는 것 같아, 김진아 선생님에게 달려가 묻지 마 인터뷰를 시작했다. 물론 김진아 선생님은 극구 반대했지만, 나의 물귀신 작전에 결국 인터뷰에 응하게 되었다.

 

건방진 프로필

김진아, 현재 그녀의 나이는 31, 교직 데뷔 8년차. 1982년 선비의 고장 영주에서 평범한 가정의 12녀 중 장녀로 태어남. 아버지는 자아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하셨는지 딸의 이름을 진아(眞我, 참된 나)라고 지으심. 어머니는 스님께 작명을 받아 진경’(進京, 서울로 진출함)이라 불렀으나 아버지의 출생 신고로 마무리. 나자마자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해결할 사명을 받음.

초등학교 3학년, 여자 부반장이 담임 부재 시에는 손을 쉬며 친구들을 부리다가 담임이 나타나면 청소하는 척을 반복하자, 부반장에게 대 놓고 따지는 친구가 나타나는 바람에 그 친구와 적이 됨. 이 친구와 5학년 때 재회. 불의해 보이는 친구가 공부 1등이라는 사실에 날마다 문제집을 한 권씩 풀어 결국 1등을 해냄. 의지의 한국인 김진아 ! 이후 미술 대회와 글짓기 대회, 수학 경시 대회까지 지경을 넓히며 상을 휩쓸자 이후 영주의 공식 엄친딸이 됨.

1 때에는 공부하다가 뜻하지 않게 밤을 새고 참새 소리에 놀라 엉엉울며 하는 말. “공부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어요.” 아침 밥상에서 이런 망언을 찍찍. 3 때에는 사회 선생님께서 동태눈을 하고 수업을 듣는 아이들이 한심했는지 니들 왜 사냐?”고 말하자 우리의 엄친딸 김진아는 왜 사는지 알아내려고 살고 있어요라고 대답하여 사회 선생님을 놀라게 함.

학교의 아름다운 조경에 눈이 멀어 친구들 다 가는 영주여고를 버리고 영광여고로 진학. 미션 스쿨에서 예수님을 만나 집안에서 첫 그리스도인이 됨. 심미성과 공간 인지력을 타고나 미대 진학을 꿈꾸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날개를 접고 있었음.

하지만 어느 날, 음악을 하던 그리스도인 친구와 짝이 됨. 삼남매에 아버지는 공무원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진 친구의 가정이 남달라 보였음. 예체능 입시생이 겪는 경제적 부담과 두려움을 온 가족이 믿음으로 이겨 내는 모습에 충격을 받음. 그때 처음으로, 지금은 열렬히 사모하는 그분께 기도를 올림. “하나님이라고 불러야 할지, 예수님이라고 불러야 할지, 성령님이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지만 저도 당신을 알고 싶어요.” 이 애타는 기도를 촉발시킨 그분께서 인격적으로 만나 주심.

고등학교 전교 부회장과 전교 회장을 하며 카리스마를 키우고, 가족들에게 미대에 가겠다고 폭탄선언을 함. 드디어 부모님의 승낙을 받아 고2 때부터 미대 입시 준비를 시작함. S대 디자인 학부 수시 모집 불합격 통지를 받고, 홀로 조경이 아름다운 교정에서 울다가 하나님의 위로를 들음. “진아야, 나는 항상 너를 최고의 길로 인도하고 있단다.”

대학 정시에서도 미대는 떨어지고, 부모님의 뜻대로 넣은 경인교대만 합격. 엄마는 이름이 진경(進京, 서울로 진출함)이어야 했었다며 한탄하심.

대학교 1학년, CCC와 좋은 교회와의 만남을 통해 진아가 진아(眞我)를 발견함. 스무 살, 이 어린 나이에 탄생과 함께 부여받은 사명을 깔끔히 해결. 심지어 교대 졸업 작품 제목도 ‘Who am I?’ 그러다 보니 교대 생활은 삶의 변두리, 교회 생활은 삶의 중심지가 됨. 일명 교대 부진아. ‘남에게 피해는 주지 말자라는 신조로 조별 과제는 헌신적으로 참여해 아직도 동기들은 교대 우수생으로 기억함. 제자 삼는 일을 하며 청년부가 2년마다 배가하는 것을 10년 째 지켜봄.

대학교 3학년, 전염병 사스가 창궐하던 때 중국을 방문,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역사, 문화, 정치, 권력 등 모든 것을 붙들고 다스리시는 광대하신 그분을 만남. 타문화권 선교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대학교 3학년 2학기, 처음으로 강의실 맨 앞자리에 앉음. 지금 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면 이것도 쓰실 것이라 생각함.

20053, 스물네 살의 청춘, 인천 계양구에서 교직에 데뷔함. 선교 한국 수련회, 단기 선교, PSP 훈련 등 타문화권 선교 훈련에 집중하면서 맡은 학급 아이들마저 미전도 종족이라 부르는 지경에 이름. 신규 교사를 위한 학급 경영 관련 책을 읽고 열정적으로 새내기 교사 시절을 보냄. 내심 이 열정이 언제 식을까 두렵기도 했음.

2008년 변우진 목사님과의 만남. 기독교사동역회를 소개 받았지만 아직!”이라는 대답을 함. 내가 가야 할 민족이 정해지면 교사로서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 정해질 거라 생각함. 2008년 생일, 프랑스 느와용의 칼뱅 생가를 방문하고 엄마에게 전화함. 나의 생가를 잘 보존해 두라는 망언을 찍찍.

2009년 초, 1정 연수를 받고, 나의 가르침의 이유와 전제를 모른다는 것, 교육 철학의 부재 가운데 교단에 서서 이것저것 섞은 부대찌개 같은 교실을 만들었다는 것에 충격을 받음. 지금, ‘여기를 변혁할 수 없는데, 나중 거기를 변혁하려는 자신이 부끄러워짐. 기독교사동역회에 제 발로 찾아감.

2009년 기독교사동역회에서 가르침은 예술이다라는 책으로 1년간 워크숍을 하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육의 출발선을 찾음. 이후,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육 과정 전공에 입학하여 학문의 길을 계속 걸어가겠다고 함. 이젠 교육의 회복을 위해 지역 교회, 기독교사동역회를 넘어 학문의 길까지 계속 걸어가리라 결심하는 김진아는 욕심쟁이 우후훗!

 

30대 여교사는 어떤 아픔이 있는가?

김진아 선생님은 보기와는 다르게 굉장히 단단한(?) 여성이다. 프로필에서도 나왔듯이 이해할 수 없거나 불의한 일을 보게 되면 말로 표현하고 그것을 해결하려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나를 처음 만났을 때, 내가 속하지 않은 그룹의 간식을 생각 없이 집어 들자 그러시면 곤란해요. 선생님네 것 소비하세요라고 말할 정도다. 겉모습으로는 고민 없이 교사 생활을 잘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김진아 선생님에게도 학교는 학교였다.

지난 11월 수업 협의회를 통해 저의 수업을 평가 받는 일이 있었어요. 많은 연구와 준비를 거쳐 수업을 설계하고 공개했는데, 저와 교육 철학과 인생관이 다르신 교장 선생님께서 저의 수업을 신랄하게 비판하셨어요. 저의 수업 목표를 빵점짜리 목표라고 하신다거나 한 학생의 학습지 내용을 읽으시면서 아이들이 배운 게 없는 수업이라고 하셨어요. 그 외에도 많은 비판을 들으며 협의회 자리에서 잘 버티고 나왔는데, 연구 부장님께서 찾아오셔서 등을 두드리며 위로해 주시는 순간 눈물이 나더라고요. 그런 비판 때문에 눈물이 나는 게 더 속상했어요. 이 일을 통해 아직은 견고함도 깊이도 많이 부족한 교사임을 깨달았어요. 금세 흔들리잖아요. 그래서 저는 나와 교육 철학이 다른 자의 따가운 시선에도 흔들림이 없는 교사가 되고 싶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고민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지난해 가을에는 이성 교제하던 사람과 헤어졌어요. 힘들었죠. 달려오는 거대한 파도 앞에 서 있는 느낌이랄까?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는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덮쳐서 휘청거렸어요. 제가 더 헤아리지 못했던 것에 대한 미안함에 몇 주를 아파하고, 제가 힘들었던 먹먹한 감정들이 떠올라 한껏 울고 나서는 저의 한계를 인정하게 되더라고요.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하면서 마음이 정리되어 갔어요. 이별이 주는 감정을 정직하게 직면하면서도 이런 상황으로 인해 나를 규정하지 않는 서른 살의 이별, 좀 특별한 경험이었어요. 미혼 시절이 끝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다시 혼자가 되니까 이 시간이 매우 소중하게 느껴졌어요.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걸어갈 길을 진지하게 하나님과 상담하는 시간이 되었어요.”

 

새로운 공동체를 찾다

김진아 선생님의 아픔을 들으면서, 30대 여교사는 겉보기에는 아무리 행복해 보여도 안으로 들여다보면, 고통의 시간을 견뎌 낸 흔적이 있음을 알게 된다. 30대 여교사는 공적인 가면을 쓰고 사람들 앞에서는 웃지만, 각 자에게 부여된 고통의 시간을 지나며 셀 수 없이 쓰러지기도 한다. 결국 이런 연약함 속에서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은 건강한 공동체다. 김진아 선생님은 좋은교사운동의 회원 단체인 기독교사동역회를 진실되게 섬기면서 서른에 찾아온 아픔을 치유 받고 있었다.

기독교사동역회는 선생님이면서 목사님이신 변우진 선생님께서 만드신 기독 교사 단체예요. 저는 2008년 대학교 후배이자 같은 직장 동료였던 선생님의 소개로 변우진 목사님을 만났어요. 기독교사동역회를 소개 받았지만 저의 반응은 아직이었어요. 제가 당시에 타문화권 선교에 관심을 쏟고 있는 시기였거든요. 1년 후 1정 연수를 받는데 저에겐 특별한 시간이었어요. 강사들이 던져 놓은 질문에 제가 걸려든 거죠. ‘학생들 발표할 때 손신호는 왜 하는 거죠?’, ‘학생들에게 보상 제도를 실시하면 이런 부작용이 있는데 왜 하는 거죠?’, ‘협동 학습으로 지도하면 아이들이 다투고 시끄럽고 해결할 문제가 더 많아 지는데 왜 하는 거죠?’ 1정 연수를 요약하면 왜 하는 거죠?’였어요. 책과 선배 교사들을 통해 배우고 실행해 왔던 손신호, 보상 제도, 훈육, 협동 학습 등에 왜 하느냐?’고 물으니까 할 말이 없는 거예요. 제가 습관적으로 해 왔던 모든 것에 의미 부여가 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은 정말 충격적이었어요. ‘?’라는 질문에 답할 수 없는데 습관대로 이전처럼 할 수가 없었어요. 1급 정교사가 되었는데, 정작 저는 옷을 벗고 교단에 선 기분이었어요. 자신 있게 1년간 학급을 이렇게 끌어가겠다고 말해야 할 3월 첫날, 끔찍하게도 전 어떤 생각도 말할 수가 없었어요. 아직도 잊을 수 없는 200932, 답답하고 암담한 심정으로 기독교사동역회에 문을 두드렸답니다.”

기독교사동역회는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서 함께 책을 읽고 워크숍을 해요. 2월에는 학급 운영에 필요한 자료를 같이 만들기도 하고 3월에는 기도 모임이 있어요. 여름에는 양육하던 학급 학생들을 초청해서 여호수아 캠프를 열고요. 문화 모임, 교사 MT, 수양회 등을 통해 교제하는 시간도 있어요. 올해는 예비 교사 아카데미를 경인교대에서 교대생들을 대상으로 열어요. 저도 강의를 해야 돼서 긴장도 되고 기대도 되네요.”

 

40대를 꿈꾸다 !

30대 초반은 참 아픈 시기다. 20대에 꿈꿔 왔던 비전이 현실에서 이루어지가 너무 힘들다는 것을 파악하고, 한 번은 나 자신의 연약함을 처절하게 깨닫는 시기다. 기존에 가졌던 이상과 가치가 상실되고, 한없이 눈물짓는 시기다. 그러나 이때 김진아 선생님은 특유의 뚝심과 공동체의 힘으로 다시 일어나 씩씩하게 걷고 있었다.

서른이라는 나이는 좀 특별한가 봐요. 작년 서른이 되었을 때 서점가에 서른 살이 들어간 책이 많더라고요. 제 눈에 유독 보인 건지도 모르죠. 다윗이 왕위에 오른 나이도 서른이고 가까운 나라 지도자도 서른이고 작년에는 서른한 살 박지성이 국가 대표 은퇴 후 새로운 길을 준비하는 모습도 저를 상념에 빠지게 하더라고요. 저에게 20대는 제가 걸어가야 할 길을 탐색하는 시기였다면 30대는 그 길을 힘껏 만들며 전진하는 시기란 생각이 들어요. 다른 누군가에게 새 길을 만들어 낼 용기와 아이디어를 주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 그런 기특한 생각을 하게 되네요. 나이가 들수록 두려움보다 기대가 커지는 것 같아요. 더 어렸을 때는 가끔 넘어지는 나를 보는 것이 두렵고 초조했거든요. 그러나 지금은 넘어지는 일과 나의 연약함을 자연스레 받아들여요. 정직하게 직면한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까요? 나를 지으시고, 부르신 분의 지혜와 의지를 믿는 믿음이 자라나서 나타나는 변화예요. 그래서 말인데, 솔직히 전 한 살 더 먹는 게 좋아요.”

저는 절망이란 열매에서 열망이란 씨앗을 찾아내는 사람, 열망의 씨가 자라도록 빛과 물이 들어오게 문을 여는 사람이 되고 싶답니다. 제가 작년 초에 초보 운전일 때 빙판에서 미끄러지면서 순간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운전대를 잡고 있으나 통제가 불가능한 위급한 상황에서 제 온몸이 본능적으로 살기 위해 반응하는 것을 봤죠. 그때 알았어요.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에 살고 싶은 마음을 주셨구나. 살고 싶은 열망이 가득한 사람들이 살아야 이유를 찾지 못해서, 헌신을 통해 보람을 얻고 싶으나 헌신의 대상을 발견하지 못해서 열망이 절망이 되고, 살고 싶은 자들이 죽기도 하는 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신규 교사일 때 교사는 참 위험한 직업이라고 생각했어요. 절망으로 사나워진 학생, 학부모, 동료 교사, 관리자까지 4중 관계에 늘 노출되어 있는 직업이잖아요. 시간이 지나면서 그 사나움과 절망 속에 열망의 씨앗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어요. ‘살고자 하는 열망, 그 열렬한 바람이 싹을 틔우면 헌신의 힘으로 전환되겠구나. 그 씨앗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을 회복케 하는 아름다운 열매로 맺히도록 난 그저 문지기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빛과 물, 즉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 거룩한 통로, 그런 교사가 되고 싶답니다.”

열망이 헌신이 되도록 도우려면 제가 먼저 세상을 새롭게 보고 문제에 직면하며 회복하는 실천가가 되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신앙과 학문이 함께 깊어지고 통합이 일어나는 방향으로 준비하고 있어요. 계속 배우는 교사가 되어야겠다는 단순한 생각을 해요. ‘하나님의 말씀과 창조 세계(학문)를 알아 가는 일을 쉬지 말아야겠다. 성령의 역사하심을 계속 신뢰하고 의지해야겠다라고요. 그래서 선택한 것이 교회와 기독교사동역회 둘 다 섬기는 것, 말씀을 가르치는 일과 학문을 연구하는 일을 함께하는 것이 제가 하고 있는 준비예요.”

 

김진아 선생님과 인터뷰를 마치고, 좋은교사운동의 미래가 밝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발견했다. 냉혹한 현실 앞에서 넘어지기도 하지만 다시 일어서는 젊은 기독 교사의 뚝심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순간 교사라는 정체성에 대해서 고민하게 된다. 처음에는 막연하게 목자, 전도자, 예배자, 선교사 등 온갖 말들을 갖다 붙여서 교사직을 높이 생각하지만, 결국에 우리는 깨닫게 된다. 교사란 상처받는 자임을. 갑자기 헨리 나우웬의 결국 그리스도인은 상처받은 치유자다라는 말이 기억난다. 상처받은 치유자, 결국 이 말이 기독 교사의 정체성을 알려 주는 가장 정확한 단어일 것이다. 30대 초반에 서 있는 김진아 선생님의 모습에서 상처받은 치유자의 모습이 비춰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