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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만남

희망을 여는 열쇠(2016.4)

교육을 바로 세우려면 교사의 내면을 바로 세워야합니다. 우리 선생님들이 교육을 일으키는 열쇠예요. 많은 선생님들이 학생들의 반항, 부모의 비난, 업무 스트레스로 상처를 입고 있어요. 출산과 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 등 여러 원인으로 내면이 무너진 선생님들도 많고요. 그래서 저는 학생뿐만 아니라 상처 받은 교사들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희망을 여는 열쇠


대전장대초등학교 임준희 선생님

 





인터뷰, 사진·손현탁 / ·김현경

 


누구에게나 견디기 어려운 시기가 있을 것입니다. 상처 입고 가능성이 가로막힌 개인들에게 섣불리 희망을 말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세상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누구도 희망을 말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상상하기론 정말 외로운 세상이 될 것 같습니다.

이번 호 좋은 만남에서는 아이들과 학부모, 동료 교사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는 임준희 선생님을 만나보았습니다. 선생님이 말하는 희망이란 무엇일까요?

 

 

과거로 미래를 비춰 보다

인터뷰를 위한 사전 질문을 메일로 받고, 답변을 작성하는 시간이 좋았어요. 지금의 내가 되기까지 나에게 어떤 일들이 있었고 어떤 만남이 있었는지,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오르는 거예요. 감사한 시간이었어요. 특히 알게 모르게 영향을 준 기독교사 분들이 있었다는 것이 놀라웠어요. 그러면서 나도 이런 교사가 되어야겠구나하는 지향점을 바라볼 수 있었죠.

대학 때 CCC에 있으면서 사영리를 통해 예수님을 영접했어요. 복음에 빚진 자라는 마음으로 교사가 되면 복음을 전해야한다고 생각해왔죠. 그래서 아이들에게 기회 닿는 대로 복음을 전하려고 했어요. 그때 제가 생각했던 방법은, 부활절과 크리스마스를 이용하는 거였어요. 특별한 날을 기회 삼아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했죠.

그런데 저의 학창 시절이 떠올랐어요. 저는 말로는 복음을 전하면서 행동은 전혀 그렇지 않은 선생님들에 대해 비난하는 마음, 적대적인 마음이 있었어요. 수업을 잘 가르치지도 못할뿐더러 내가 좋아하지도 않는 선생님이 자꾸 복음 전하는 것에 대해 굉장한 거부감도 있었고요. 수업 시간에 기도하는 것도, 어떤 영향력이랄까, 전혀 느껴지지 않았어요. 그런 것이 싫어서 어떤 때는 보충수업에 안 들어가기도 했죠. 이제는 같은 교사가 된 입장에서 그런 행동을 회개하긴 하지만요.

교회에 대해 반감이 많았을 때인데도 불구하고, 그 반대의 기억도 나요. 3때 역사를 가르치셨던 김영희 선생님의 간증은, 지금도 기억할 만큼 주의 깊게 들었던 선생님의 삶이야기였어요. 그리고 교회에서 고3 학생들의 수학 공부를 봐주셨던 강 집사님(고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셨어요)을 통해서는 말씀을 삶으로 실천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어요. 강 집사님이 대가를 바라지 않고 헌신하는 모습을 본 후로 교회에도 잘 나가게 되었어요.

이 선생님들의 공통적인 특징이 있어요. ‘아이들을 사랑한다, 수업 시간에 잘 가르친다, 복음에 대한 열정이 있다는 것이었죠. 내가 맡은 교사의 직무를 소홀히 하면서 복음의 열정만 가지고 있다면 아이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없겠구나, 라는 데에 생각이 미쳤어요. 제가 앞으로도 지향해야 할 마음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좋은 엄마와 좋은 교사 사이에서

꽤 오래 휴직을 했어요. 휴직 기간 동안 엄마, 아내로만 살았어요. 첫아이 낳고 나에게 주어진 엄마라는 말이 너무 어색했어요. 교사로서가 아닌 삶이 낯설기도 했고요. 휴직 전에 학교에서 의욕적으로 일했기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휴직 첫 달은 정말 좋았는데, 아이 보며 살림하는 것이 보통 힘든 게 아니더라고요. 특히 두 살 터울인 둘째 아이를 낳고는 힘들어서 남편한테 짜증도 많이 냈어요. 하지만 아이들이 크고 나서는 계속 휴직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잘 지냈어요.

그렇게 5년 반이 흘러, 2011년에 복직을 했어요. 학교에 나가자 업무포털이라는 것이 생기고, 전자결재라는 것이 있더라고요. 옆 반 후배 선생님께 일일이 물어야 하는 신규교사 아닌 신규교사가 되었어요. 아이들도 어찌나 달라져 있는지 예전에 했던 학급경영과 수업방식으로는 구닥다리 교사가 되어버렸고, 아이들과 관계도 어려웠어요. 그럼에도 연구하면서 아이들을 잘 가르치려고 노력하지도 못했어요. 집에 가면 또 다른 업무인 육아와 살림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죠.

아침에 자는 아이 깨워 밥도 못 먹이고 도시락 싸서 유치원 차에 부랴부랴 태워 보내고 출근. 퇴근해서 집에 가자마자 저녁 준비해서 밥 먹이고 치우는 것도 일. 집안일은 또 다른 업무의 연속이었죠. 한번은 작은아이가 구내염에 걸렸어요. 전염병이라 유치원에 가지 못해 집에 있어야만 했어요. 할머니께서 봐주시기는 했지만, 아침에 남편과 출근하는데 아이가 엄마, 오늘 학교 안가면 안 돼?” 하며 울더라고요. 나를 기다리는 30명의 아이들 때문에 내 아이를 돌보지 못하는, 교사 엄마의 비애를 느꼈죠. 정말 마음 아팠습니다.

 

지옥 같은 시간

복직 첫 해에 저는 6학년을 맡았는데, 보니까 1학년 부장 선생님이 베테랑이더라고요. 그분께 여러모로 배우고 싶은 것이 많아 다음 해에 1학년을 지원했어요. 막상 가까이에서 선생님을 마주하는데, 오히려 열등감이 드는 거예요. 그분은 학급경영, 수업, 업무처리 등 모든 것에 달인인데 저는 뭐 하나 잘하는 것이 없었으니까요.

다른 선생님들을 볼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분들은 어느 분야에서든 전문가가 되어 있거나 승진을 준비하는데, 저는 박물관 그림처럼 정지된 것 같았거든요. 그런 비교의식이 저를 힘들게 했어요.

그러다가 열등감이 폭발하는 사건이 있었어요. 학교를 옮겨 5학년을 맡았고, 저는 늘 그랬듯 학기 초에 규칙을 세운다는 이유로 아이들을 통제했어요. 이런 저의 방식에 거부감을 보이는 한 여자아이가 있었어요. 이 때문에 몇 번의 마찰은 있었지만, 큰 문제는 없었어요. 그러다가 짝꿍과 싸우고 버릇없이 굴기에 엄하게 혼낸 것이 계기였던 것 같아요. 아이가 수업을 거부한 거예요!

아이는 한 달 반 동안 도서실에서 지냈어요. 매일 찾아가 어르고 달래고, 편지도 써보았지만 마음이 열리지 않았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제가 진심으로 다가가지 못했죠. 아이 어머니는 제가 교사로서 아이를 다룰 줄 모른다며 교장 선생님 앞에서 저를 비난했어요. 학부모한테 그런 비난을 처음 들어봤고, 충격이었어요. 지옥 같은 시간이었어요. 하나님께 무릎으로 매달렸어요. 그런데도 관계는 개선되지 못한 채, 아이가 옆 반으로 옮기는 것으로 사건은 끝이 났어요.

교사로서 저의 내면은 와르르 무너졌어요. 이제까지 하나님께서 나를 기독교사로 부르셨다는, 학교는 나의 선교지라는 소명으로 살았는데. 과연 나는 교사 자질이 있는 사람인가, 물음표를 던질 수밖에 없었어요. 사직까지 생각했어요. 이런 마음으로 더 이상 아이들을 못 가르치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혔어요.

아이를 대하는 것 뿐 아니라 학부모를 대하는 것도 어려워졌어요. 그때 아이와 어머니를 매일 찾아갔어요. 처음에는 저를 정말 싫어하셨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오히려 어머니도 미안해하시면서 서로 위로하는 사이가 되기도 했죠. 하지만 그 일 이후로 학부모를 대하는 것은 저에게 아직도 트라우마이고 숙제예요. 지금도 그 학부모와 몸집이 비슷한 사람만 보면 깜짝 놀라곤 하니까요.

 

함께할 때 회복된다

암흑기였어요. 혼자 있으면 비난의 화살이 계속 나에게 향했어요. 자존감도 바닥이었죠. 많은 분들이 저를 도와줬어요. 당시 남편 반에 그 아이의 중학생 언니가 있었어요. 남편을 통해서 학부모 마음이 많이 누그러진 점도 있고요. 남편이 상황을 아니까 도움이 되어줬죠. 교회 집사님들, 공동체 선생님들 등 제 탓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큰 힘이 되었어요.

무엇보다 그해 우리 반 아이들이 정말 예쁘기도 했어요. 수업 거부를 한 아이 어머니가 학부모 사이에서 영향력이 좀 있는 분이어서, 제 얘기를 들은 학부모들은 3월부터 이미 저를 탐탁지 않아하는 면이 있었어요. 그런데 아이들은 저를 대할 때 정말 순수하게 좋아해주고, 먼저 다가와서 표현해줬죠. 특히 11월에 낙엽이 막 떨어질 때였는데, 아이들이 낙엽으로 임준희쌤라고 써준거예요. , 정말로 감동이었어요. 아이에게 입은 상처는 아이들로 힐링이 되는구나!

2014 기독교사대회에 다녀오면서도 회복할 기회가 많이 생겼어요. 남편이 대전 행복한수업연구회(이하 행수연)를 하면서 저도 함께 수업코칭을 접하게 되었어요. 이전에도 대충 알긴 했지만, 수업코칭이 실제 이루어지는 것을 보는 것은 또 다르더라고요. 수업자 선생님이 내면을 성찰하고, 내면이 세워지는 모습을 보며 묘한 흥분을 느꼈어요.

작년에 대전 행수연 모임에 함께 했고, 충청 수업코칭 활동가 과정도 했어요. 이 시간동안 스스로의 내면을 살펴보게 되었어요. 제 망한(?) 수업을 보며 수업친구들이 의미 있는 지점을 이야기해주고 지지해주며 제 수업에 꽃을 달아주었죠. 그러면서 제가 지향하는 수업이 무엇인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 깊이 생각할 수 있었어요. 이렇게 스스로 부족함에 대해 공부하면서 열등감에서 벗어나고 수업에도 자신감이 생겼어요. 수업코칭에 감사하죠. 내면이 무너진 교사들이 이렇게 일어날 수 있겠구나, 알려줬어요.

 

교사 자질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수업코칭을 하면서 제 수업 자체도 많이 변했어요. 수업의 보여지는 면 보다 본질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거죠. 전에는 수업에 대한 제 틀에 아이들을 끼워 맞추려고 에너지를 많이 쏟았어요. 책상 정리는 어떻게, 앉는 자세나 발표할 때는 어떻게 등등 아이들이 제 통제권 안에 있어야 마음이 편했어요. 40분 수업시간 중에 20분을 여기에 할애한 적도 있었어요.

행수연 모임을 통해 특히 중학교 수업을 보면서, 진짜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수업에 들어올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아이들이랑 실랑이하는 20분 동안 오히려 친절하게 아이들이 수업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안내했다면 좋았을 텐데. 무조건 엄하게 교육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부드럽게 아이들을 대하는 것이 필요하구나, 이렇게 스스로 정해놓은 틀을 많이 깰 수 있었어요.

제 변화를 통해 아이들도 공부하는 즐거움을 느끼게 되고 점수도 향상되니 수업을 좋아하더라고요. 교사로서의 자질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무엇보다 복직 후 힘들었던 시간이 무의미하지 않다는 것도 알았고, 오히려 제가 좀더 기독교사로 성장하도록 준비해 주신 과정이 아닌가 싶어요.

 

변화 시키지않고 변화 하기

여전히 교실에서 권위주의적인 부분이 있어요. 이런 모습을 내려놓고 아이들과 관계 맺는 것이 지금 저의 최고 과제예요. 그래서 올해 일부러 6학년을 맡았어요. 4학년만 해도 버럭!’ 한 번이면 따라오는데, 6학년은 안 그렇잖아요. 내 힘으로 아이들을 변화시키고 아이들이 변해야 하는 것이 아닌, 내가 변해야 한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어쩌면 도전을 하는 거예요.

도전을 안 하면 발전할 수 없는 것 같아요. 무능한 교사라 자신 없다며 수업 공개하는 것을 꺼렸다면, 지금처럼 수업을 성찰하고 내면을 세울 수 없었겠죠. 학부모 대하는 것도 두려웠지만, 일부러 학부모들과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했어요. 밴드(SNS)를 하면서 공지 사항, 아이들 활동하는 사진을 올리니 좋아하시더라고요. 작년에는 클래스팅(교실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과 학습을 도와주는 교육용 소셜 플랫폼)도 했어요. 어머니들과 안 부딪치려고 하면 충분히 그럴 수 있지만 도전하는거죠.

앞으로는 학부모들과의 관계에 좀더 힘써보고 싶어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모임하고 있는데요. 사교육에 매이지 않고 아이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말을 학부모들에게 한 적 있어요. 생각보다 받아들이지 않더라고요. 아직은 학부모들에게 제 신념을 말하는 것이 두려워요. 우리 아이도 좀더 크고, 저도 나이가 들어 내공이 쌓이면, 아이들에게 행복한 삶을 살게 하자고 말하는 교사가 되고 싶어요. 학교에서 아무리 행복한 교육을 위해 노력해도, 집에 돌아가서의 삶이 현실이잖아요.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아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선생님이 되고 싶은데, 아직까지 그런 내공은 부족하네요.(웃음)

 

교사에게 희망주는 희망주니

제 닉네임이 희망주니예요. 제 이름 중에 바랄 희() 자를 써서 그냥 붙인 별명인데, 다른 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의미를 붙여 소개하곤 했어요. 처음엔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그러나 학생 혹은 학부모에게서 날아오는 가시를 마주했지요. 내가 희망은커녕 절망을 주는 교사가 아닌가 생각하는 순간, 교사의 내면은 우르르 무너지게 되더라고요. 교사의 내면이 무너지면 교실도 무너지고 학교도 교육도 무너지게 되어있어요.

교육을 바로 세우려면 교사의 내면을 바로 세워야 합니다. 제 경우, 내면이 무너진 채로 교직에 남아있었더라면 학교는 그저 돈 버는 직장이 되었을 거예요. 우리 선생님들이 교육을 일으키는 열쇠예요.

많은 선생님들이 학생들의 반항, 학부모의 비난, 업무 스트레스로 상처를 입고 있어요. 출산과 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 등 여러 원인으로 내면이 무너진 선생님들도 많고요. 그래서 저는 학생뿐만 아니라 상처 받은 교사들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처음엔 부담스러워서 인터뷰 제안을 거절했었는데, 이런 이유로 결국 인터뷰를 했네요. 아직 부족한 것이 많아요. 더 공부하고 기도하며 나아가야겠죠.

 


교사로서 견디기 힘들었을 시간을 극복했고, 여전히 극복하고 있는 임준희 선생님. 스스로 정한 틀을 깨고 두려움에 정면으로 부딪치는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역시 좌절을 극복하기란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서로 돕는 이, 돕는 공동체가 있을 때 이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 이것이 선생님이 전하고 싶은 희망의 단서가 아닐까요?